1. 들어가는 말

'자연이 담긴 동화'라고 하면 먼저 '생태동화'가 떠오른다. 그만큼 어느새 우리에게 생태동화가 익숙해졌다.
그런데 '생태동화'란 뭐고, 생태동화가 각광(!)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생태동화'라 일컬어지고 있거나, 혹은 생태동화라는 딱지가 붙어 나온 책들을 살펴보니 대개는 동물이나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이다. 동물이나 식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사건을 끌고 나가기도 하고, 때론 사람이 이들 동물이나 식물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 대개 자연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먼저 읽힌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삶이 어느새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듯하다. 지금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아니라, 자연이란 특별히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삶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특별히 생태동화가 부각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2. 자연 속에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장난감이 없던 시절, 아이들에게 자연은 그 자체가 장난감이요 친구였다.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풀들을 뜯어 풀각시를 만들고, 우산도 만들어 쓰고, 물레방아도 만들어 놀았다. 커다란 나뭇잎으로 모자도 만들어 쓰고 화관에 반지도 해 꼈다. 이 풀 저 풀, 이 꽃 저 꽃 꺾어다가 자르고 찧고 해서 밥이며 반찬을 만들어 소꿉놀이도 했다. 어쩌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우면 칼 찬 장군이 되었다가, 지팡이 짚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기도 했다.

「콩닦아 줄게 나무새기 나라, 콩닦아 줄게 나무새기 나라.」
웅철이는 먼지가 폴폴이는 봉당우를 손바닥으로 살살 쓸면서 이러케 외였습니다. 그러니까 노르스름하고 파릇파릇한 나무새기가 흙속으로부터 콩을 어서 달라는 듯이 그 솔닢새 처럼 뾰죽뾰죽한 입들을 짝짝 벌리면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웅철이는 콩을 닦아준다던 약속은 금방 잊어버리고 그 고은 나무새기들을 쪽쪽 뽑아서 조갑지 안에 담었습니다.
                           - 주요섭, <웅철이의 모험>, 《소년》 1937. 1.

아이는 봉당 흙바닥을 손바닥으로 살살 쓸으며 나무새기가 자라길 바란다. 그 바람 속에는 그래야 나무새기를 뽑아 조갑지 안에 담아 김치도 담고 다른 반찬도 하면서 소꿉놀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런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위의 풀들을 익힌다. 또 풀들은 곧 자신의 놀잇감이기에 한없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