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저학년 창작 동화의 경향 (주석1)

   겨울연수 준비 모임에서 2001년 1월부터 11월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저학년 창작 동화 140권을 읽었다. 그 동안은 잘 몰랐는데 막상 찾아 읽으려 하니 정말 많은 책들이 나왔다는 걸 실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학년 창작 동화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출판된 책의 양만을 본다면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던 것 같다. 그건 새롭게 저학년 창작 동화를 내는 출판사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요 몇 년간 흐름을 보면, 기존에 학년 구별 없이 아동물을 내던 출판사들이 기존의 편집 방식에서 탈피하며 저학년 문고를 발행하기도 했고(창작과비평사, 산하), 이미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서 내던 출판사들도 판형을 키우고 그림을 많이 넣어 새로운 저학년 문고를 내기도 했다(우리교육, 파랑새어린이). 또 새롭게 어린이 책을 내기 시작하는 출판사에서도 고학년 문고보다는 저학년 문고를 먼저 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푸른숲, 채우리, 낮은산, 도깨비). 이처럼 출판사들이 거의 대부분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을 겨냥해 다양한 책을 내고 있다. 덕분에 출판 종수만 볼 때는 2001년은 고학년 문고보다는 저학년 문고가, 외국 동화보다는 우리 창작 동화가 더 많았던 한 해였다.(주석2)

140권을 살펴보면 '과학 동화'나 '학습 동화' 같이 순수하게 동화라고 말할 수 없는 책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건 일단 빼 놓더라고 저학년 책들이 종수도 많아졌고, 소재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우리에게서 멀어졌던 옛이야기 속의 도깨비가 동화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움직이기도 했고(《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철가방을 든 독갭이》, 《내가 만난 꼬깨미》, 《도깨비 퍼렁이는 방송국에 산다》(주석3)), 아이들의 왕따 문제를 다룬 책(《양파의 왕따 일기》, 《너랑 놀고 싶어》(주석4))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의 몸과 관련된 적나라한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 동안 동화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가 다뤄지기도 했다(《콧구멍 속의 비밀》, 《뚱뚱하면 어때 난 나야》,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주석5)). 물론 동화에서 꾸준히 다루어져 왔던 가족에 대한 사랑(주석6), 동물에 대한 애정(주석7), 자연 사랑(주석8), 장애(주석9), 친구(주석10) 문제도 꾸준하다. 소재 면에서만 본다면 나쁜 동화는 거의 없는 셈이다. 하지만 소재만으로 동화를 판단할 수는 없다. 소재를 얼마만큼이나 잘 뽑아 내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건 작가가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만큼 잘 전달하느냐는 작품의 완성도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완성도를 하나하나 평가할 수는 없다. 워낙 책이 많기도 했고, 준비한 기간은 길지 않았기에 조목조목 짚어 가며 140권을 평가할 수가 없었다. 겨울 연수 모임 여섯 명은 140권의 책을 돌아가며 읽고 간략하게 의견을 나눈 다음, 그 가운데 저학년에게 권할 수 있는 책을 뽑아 봤다. 먼저 네 사람 이상이 동의한 책을 뽑았고, 그 가운데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은 빼고 나름대로 신선함이 살아 있는 다섯 권을 골랐다.
그 다섯 권이 《철가방을 든 독갭이》(안미란, 채우리), 《우리 엄마 데려다 줘》(김옥, 파랑새어린이), 《콧구멍 속의 비밀》(이은하, 여명미디어), 《양파의 왕따 일기》(문선, 파랑새어린이), 《나보다 작은 형》(임정진, 푸른숲)이다.
채우리, 여명미디어, 푸른숲. 모두 우리 회와 익숙한 출판사는 아니다. 여명미디어의 '저학년 너랑나랑 장편동화' 시리즈도 2001년에 출판되기 시작했고, 채우리 역시 2001년 새롭게 어린이 책을 내기 시작한 신생 출판사다. 푸른숲도 성인 출판 시장에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어린이 책으로 창작 동화를 내기 시작한 건 2001년이 시작이다. 파랑새어린이 정도가 우리에게 익숙한 셈이다.

이 다섯 권은 대개 겨울 연수 모임 여섯 명이 흔쾌히 선정에 동의를 한 책이다. 하지만 그 선정에 의문을 갖는 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진다. 아래에서는 겨울 연수 모임에서 이 다섯 권을 어떤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선정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책에 대한 내용은 해당하는 책을 눌러서 살펴주세요.)


우리가 검토한 책들 가운데는 이 책들말고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책들이 많이 있다. 우리 회 평가 기준에서 보자면 《비나리 달이네 집》(권정생, 낮은산),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임정자, 창작과비평사), 《초대받은 아이들》(황선미, 웅진닷컴)도 올챙이 세 마리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책들은 이미 여름 연수 때나 우리 회에서 혹은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이어서 이번 토론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또 올챙이 세 마리까지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으로《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노경실, 계림닷컴), 《나는 책이야》(김향이, 푸른책들), 《지붕 위의 내 이빨》(이금이, 푸른책들), 《뚱보면 어때 난 나야》(이미애, 파랑새어린이), 《내가 만난 꼬깨미》(배익천,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난 키다리 현주가 좋아》(김혜리, 시공주니어),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박상률, 시공주니어), 《나답게와 나고은》(김향이, 사계절), 《날아라 독수리야》(강숙인, 푸른책들), 《너랑 놀고 싶어》(배봉기, 산하), 《다람쥐 다솔이의 여행》(임영숙, 바른사), 《만만치 않은 놈 이대장》(김순이, 도깨비), 《멍텅구리 편지》(장문식,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조금 늦어도 괜찮아》(원유순, 채우리), 《하늘이 이야기》(최재숙, 보림), 《옹달샘 이야기》(이현주, 한겨레아이들)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되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아이보다는 글을 쓰는 어른의 감상이나 어른의 잣대로 쓴 책들, 그저 사소한 에피소드의 나열(주석11)에 그친 책들도 많았다.
그 가운데 아이들 처지보다는 어른인 작가의 감상에 따라 쓴 책들(주석12)은 좀더 주의해 봤으면 한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거지만 대부분의 동화는 어른이 쓰고 어른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자신의 감상에만 젖어 동화를 쓴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 현실 속의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거나, 아이들 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앞서 자신의 감정 속에 아이들의 모습을 가둬버리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때문에 얼핏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따스하게 그려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마음이 앞서거나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엄마 생각》에서 주인공 유경이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외로운 아이다. 유경이를 보살펴 주는 할머니와 개가 있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 줄 리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유경이의 마음과 내면을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보다는 시골의 낭만적인 풍경에 대한 묘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독자가 미처 유경이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물론 작가는 애잔한 풍경 묘사를 통해 유경이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풍경 묘사보다는 유경이의 행동을 통해 유경이의 마음에 다가간다. 저학년은 특히나. 작가는 유경이에 대해 좀더 애정이 있다면 마치 풍경화 속의 부속물인 양 유경이를 그려서는 안 되었다.
《엉뚱이 뚱이》는 뚱이의 캐릭터는 잘 표현되어서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책이다. 하지만 뚱이의 캐릭터가 지나치에 엉뚱하다. 선생님이 늘 깃발 앞에 모이라고 했다고 선생님이 따라오라고 해도 그냥 깃발 아래에만 서 있거나, 뚱이가 살아 있는 무당벌레를 브로치로 선물하는 것처럼 1학년 아이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벌이곤 한다. 거꾸로 선생님의 이미지는 너무 좋은 선생님이다. 이렇게 말썽을 부려 대는 아이들을 잘 아우르니 말이다. 작가 자신이 선생님이기 때문이었을까? 선생님 쪽의 무게를 덜고 뚱이를 좀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기획 동화의 비중도 꽤 많다. 과학이나 생태(주석13) 또는 풍속(주석14)을 다루기도 하고, 실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식 동화(주석15)도 등장했다. 물론 기획 동화라고 모두 다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동화는 아이들이 주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용이 너무 딱딱해서 아이들이 어려워할 책도 동화로 단장을 하면 아이들이 쉽게 읽기도 한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할 목적도 아니면서 마치 도덕 교과서 같은 주제를 잡아 놓고 그 주제에 따라 동화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기획 동화도 많다.(주석16) 또 학교 교과서에 맞춘 동화책의 출판도 여전하다.(주석17) 가끔 학교 숙제라며 과목별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듣고 했는데, 바로 이런 책들이 거기에 해당하는 책인가 싶다. 어떤 이야기든지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교훈과 가르침을 되풀이하거나 정해진 교훈을 결말로 끌어내기 위해 우연성을 남발하는 책들도 있다.(주석18)

2001년 한 해 동안 출판된 책들을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저학년 창작 동화가 갑자기 출판 붐을 이룬 게 왜일까? 혹시 작가나 출판사들이 저학년 창작 동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작가들의 층도 두터워진 걸까?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엔 여러 모로 의심이 가는 게 많다.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쓴 책들, 교훈만을 나열하는 책들, 아이들 수준을 무시하는 책들이 여전히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동화를 쓴 작가가 누군가 궁금해진다. 눈에 많이 띄는 작가들이 있다. 김영원, 김정희, 김향이, 노경실, 박신식, 소중애, 안선모, 윤수천, 이상배.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편의 동화를 발표한 작가들이다. 그런데 김향이, 노경실을 빼고는 기획 동화류나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책들을 쓴 작가들이다. 2편 정도를 발표한 배익천, 선안나, 손춘익, 송재찬, 원유순, 이규희, 이미애, 이지현, 임정진, 조대현. 모두 새로운 작가는 아니다. 권정생, 조성자, 이금이, 홍기, 황선미, 장문식, 차보금, 박상률, 고정욱, 김서정, 안미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작가군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닌 듯하다. 《콧구멍 속의 비밀》을 쓴 이은하, 《제키의 지구 여행》에 이어 두 번째로 《양파의 왕따 일기》를 발표한 문선, 《학교에 간 개돌이》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 엄마 데려다 줘》를 발표한 김옥, 그리고 《너 먼저 울지마》,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에 이어 《철가방을 든 독갭이》, 《하도록 말도록》을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안미란.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를 낸 임정자. 이들 작가에게 관심이 쏠린다. 작가군이 두터워졌다고 판단할 만한 확실한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요 몇 년 사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 이들 작가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궁금해지는 게 있다. 예전처럼 저학년 문고의 개념이 없었을 때처럼 두껍게 책으로 묶여 나왔다면 출판량이 얼마나 될까 하는 거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를 뜯어서 요즘 저학년 동화의 편집 경향처럼 그림을 빵빵하게(!) 집어넣고 편집한다면 몇 권의 책으로 나뉘어 나올까 싶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학년 동화에 그림의 비중이 너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도 아니면서 때론 그림에 더 눈길이 가거나, 아니면 훌륭한 문학성 덕에 글만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책들까지 그림책으로 나오거나, 그림의 비중을 높여서 출판되곤 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과 그림 수준 이야기는 빼더라도 혹시 부족한 저학년 동화 원고를 그림으로 메우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간다. 그리고 이렇게 판형을 키우고 그림의 비중을 높이면 무조건 저학년 책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저학년 책'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1학년들이 읽을 만한 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학년을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저학년 책'이라고 나온 책의 수준은 대개 2-3학년 수준에 맞춰져 있다. 유아기에 좋은 그림책을 많이 보고 자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서 책을 읽게 되면서 책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그림책을 계속 봐도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림책을 보는 걸 꺼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검토한 책들 가운데 1학년에게 맞는 작품은 《하늘이 이야기》 정도였다. 내용에 내한 이견은 있지만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아이들에게 수준을 맞춘 기획력은 높이 평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부족하나마 2001년에 나온 저학년 창작 동화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나 잘못 본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우리가 저학년 책에 대한 문제 의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이 글의 몫은 다한 거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함께 문제 의식을 갖고 앞으로 나올 저학년 우리 창작 동화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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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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