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잡지 <히트> 보셨어요?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못 하겠다고 투덜거리다가도 만화책을 보면 밤을 새워서라도 한번에 읽어버린다. 몇 년 전까지는 텔레비전 만화도 무척 좋아했다. 다른 프로그램은 안 봐도 만화는 꼭 봐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소년중앙>이니 하는 잡지와 익숙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만화를 보면 화가 났다가도 풀어지고, 기분이 유쾌해졌다. 만화의 소재는 다양했고 만화에 열광하며 그 만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스포츠, 공상과학, 역사 그 어떤 것이든)에 관심이 끌려 이런 저런 것에 얼씬거리기도 했다. 텔레비전 만화 주제가도 열심히 불러 재꼈다. 덕분에 아직까지 만화 주제가 20개 정도는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만화와 좀 멀어지게 되었다. 멀어지게 되었다는 건 만화책을 보는 횟수나 권수도 줄었지만 만화라고 모든 만화가 다 재미있지만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미 내가 커버렸기(기성세대로 편입되었기?) 때문인지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 인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가끔은 만화책을 빌려다 밤새 보기도 하고, 만화책을 직접 사 보는 일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재미가 어린 시절 봤던 만화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주진 못한다. 어린 시절 만화는 내에게 가장 의미있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만화를 적극 권하고 싶다. 학교 공부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만화는 아이들에게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여력이 없어서 손을 못대고 있지만 언젠가 '오른발왼발'에도 좋은 만화책을 소개하는 난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주간 만화 잡지 《히트》를 보게 되면서 만화에 대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실 동화책보다는 만화책과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요즘 들어 각 신문사마다 주마다 한 면을 꼬박 할애해 가며 나오고 있는 만화(에니메이션 포함) 기사를 유심히 눈여겨보던 차에 이 잡지가 '만화의 붐'을 위해 파격적인 가격 '1,000원'에 판매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눈에 띠었다. '꼭 봐야지' 마음 먹고 있었는데, 며칠 뒤 동생이 이 책을 보고 있어서 얼른 빌려다 봤다.
  표지엔 '주간 소년코믹스'라 써있어, 성인용이 아니고,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아이들이 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난 뒤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들보다 만화에 대해 나름대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만화를 권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이건 아니야'라는 생각뿐이었다.
  문학 작품의 구성과 견준다는 건 만화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성 싶긴 하지만, 그래도 구성이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작가는 우리 나라 사람이 분명한데 우리 나라 만화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내용도 지나치게 폭력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제목에서부터 '폭렬힙합', '혈류학원(뉴웨이브 학원호러물), 삐따기(초특급학원액션물)처럼 폭력을 내세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폭력은 언제나 정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진짜 이런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진회 같은 폭력조직이 있다고 하지만 그건 전체 모습이 아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만화가 폭력적일까? 어디선가 본 기억에 의하면 현재 우리 만화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게 '학원물'이라고 한다. 문제는 '학원물'이라는 게 '학원폭력물'이라는 거다. 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학원폭력물'에 매력을 느낄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폭력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갇혀 있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폭력을 어떻게 다루냐의 문제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폭력이라도 폭력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다를 수 있다. 폭력을 위한 폭력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폭력은 마치 신분만 학생이지 조직폭력배간의 세력 경쟁을 위한 폭력 같아 보인다. 이처럼 미화된 폭력이 마음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간다면 그건 무척 위험한 일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미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폭력물의 정체가 아무래도 우리 것이 아니라는 심증이 강하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의 얼굴도 일본 만화에서 익숙한 얼굴이고, 이미 우리 나라에서는 사라진 옛날 교복(일제 때 일본에서 들어온 검정색 스탠드 카라의 교복말이다)을 입고 있고, 화면 곳곳에 피튀기는 장면 투성이다.
  물론 여기 실린 만화의 전부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괜찮은 만화 한 두 개는 이 폭력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새천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내세우고 있는 만화 역시 일본 교복을 입고, 우리 나라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머리를 하고서는 폭력을 일삼는다. 이게 진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긴가?

  만화 검열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체질적으로 '검열'이란 말에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우리는 그 동안 만화 검열 때문에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인물도 아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를 이런 식으로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법으로 막거나 검열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만화가 스스로 변해야만 한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만화의 부흥은 단순히 가격을 낮춰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볼 기회를 많이 준다고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질 낮은 만화를 아이들에게 대량 살포하면 독자의 수준은 하향평준화 되어서 진짜 좋은 만화를 보는 안목이 사라진다.
  
  만화 검열의 토대가 되었던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의 만화윤리 실천 요강(1989)이 오히려 더 절실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모든 법률 조항이 그렇듯이 만화윤리 실천 요강 역시 그냥 그 말만 봤을 땐 보통은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인데, 그동안 이 요강은 만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검열을 위한 잣대로 이용되어 왔다.
  이제 만화에서 검열제도는 사라졌다.(물론 완전한 의미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만화가들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히트>의 만화는 사라진 검열제도를 이용해 책임지지 않는 자유(?), 아니 방종(!)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껴진다. 마치 오랜 기간 동안 억눌렸던 자유가 갑자기 풀렸을 때의 혼란스러움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검열을 하지 않으니까 이렇다고. 그래서 검열이 필요하다고 말이다.더군다나 아동용, 청소년용은 검열을 하지 않으면 더욱 더 안 된다"고 하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다시 한번 만화가와 출판사의 책임이 무거워질 것 같다. 물론 만화가와 출판사만의 잘못은 아니다. 만화는 뻔한 거라고, 좋지 않은 책이라고, 그냥 심심풀이에 불과한 책이라고 가볍게 넘기고 지나가 버리곤 하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각 신문에서 만화에 대한 기획을 싣고 있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또 만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겨나고, 만화를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잡지가 생겨나는 것은 더욱 반갑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만화를 가장 즐겨보는 아동 및 청소년 층을 위한 만화 정보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말이다. 아직까지 만화는 성인용과 아동물 구분없이 그냥 '만화'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같은 문학작품이라도 아이들이 읽는 문학은 동화로 구분하듯이 이제 만화도 아이들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좋은 만화를 보고 자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오진원)

 

다른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