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이야기, 유무죄 따져 보기

1.
   신데렐라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이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유치원 갈 나이쯤 될 때까지 이 유명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찾아봐도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신데렐라 노래에 맞춰 게임도 한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 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샤바 샤바 아이 샤바 19OO년"

이런 식의 노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또, 영리하게도 신데렐라가 '재투성이'라는 뜻이라는 것까지도 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에 대해서 다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데렐라 이야기가 워낙 극적이어서 그럴까?
  신데렐라 이야기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편이다. 물론 대다수의 부모님들께서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준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니까 당연히 알고 넘어가야할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반면 페미니즘 입장이 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나쁜 이야기'로 치부하고 우리에게서 없어져야 할 것으로 몰아세우는 경우도 있다.
  흔히 우리는 '~신데렐라'라는 말을 자주 쓴다. '가요계의 신데렐라', '영화계의 신데렐라'라는 말은 가장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다. 무명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뜨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연예계 쪽에서만 이런 말을 자주 쓰는 건 아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멋진 남자(높은 신분, 많은 돈, 잘 생긴 얼굴)를 만나 신분 상승을 이뤘을 때 우리는 '신데렐라'라는 말을 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신도 그런 꿈을 꾼다. 내 처지가 지금은 이렇지만 신데렐라처럼 어느 날 갑자기 공주처럼 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말이다. 이를 가르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말한다.
  이쯤되면 누구나 인정한다. 자신에게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는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래서 신데렐라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2.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귀여운 여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라는 쟁쟁한 배우를 내세운 이 영화는 흥행에도 당연히(!)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낭만적이고 달콤한 이 영화의 뒷면에는 '매춘도 신데렐라 꿈을 실현시키는 쉬운 방법의 하나' 일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여자의 팔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혹시 신데렐라 이야기 아세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거의 100%) 사람들은 당연히 '안다'고 대답을 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좀 해주실래요?"  라고 하면,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는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으로 호박마차를 타고 유리 구두를 타고 왕자님의 무도회에 가는데, 12시가 되면 요술이 풀리기 때문에 바쁘게 나오다가 유리 구두 한짝을 잃어버리게 되고, 신데렐라를 사모한 왕자가 그 유리 구두의 주인인 신데렐라를 찾아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그리고 신데렐라에 대한 좋고 나쁜 모든 평가는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온다.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환타지적인 요소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확' 휘어잡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 이야기가 디즈니에 의해 만화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디즈니 덕에 더욱 유명해진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 덕분에 이 이야기말로 또 조금은 다른 내용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잊혀지게 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다름 아닌
그림형제에 의해 채록된 <신데렐라>이야기다.
  그리고 디즈니가 그 원형으로 사용한 이 이야기는 프랑스
페로에 의해 쓰여진 <신데렐라>다. 이 두 이야기는 얼핏 보면 기본 줄거리는 상당히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뜻은 사뭇 다르다. 두 이야기의 차이점을 견주어 보면 다음과 같다.

페로의 신데렐라

그림형제의 신데렐라

*잿더미 속에 사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신데렐라도 무도회에 가고 싶었지만 전혀 내색을 안 하고 언니들의 뒷치닥거리를 해 주다 언니들이 떠난 뒤 흐느껴 운다.
*대모인 선녀가 호박마차, 생쥐로 만든 말, 쥐로 만든 마부, 도마뱀으로 만든 시종과 함께 예쁜 옷과 유리 구두를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무도회에 갈 수 있을지는 자신도 모른다.
*무도회에 가는 건 하루뿐이고, 밤 12시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요술이 풀린다.

*의붓언니들이 잿더미 속에서 자도록 시킨다.
*어머니를 상징하는 나뭇가지와 새가 등장
*언니들이 시키는대로 도와주기는 하지만 무도회에 가고 싶은 신데렐라는 계모에게 자신도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도회에 가는 조건으로 계모와 한 약속을 계모가 무시하자, 어머니 무덤가로 가서 울면서 소리쳐 옷과 신을 얻는다.
*3일에 걸쳐서 무도회에 가고, 집에 일찍 돌아오는 건 식구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다.

두 이야기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먼저 페로의 신데렐라는 너무나 순진하고 착하기만 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사랑스럽고(?) 답답하고, 어쨌든 지금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전형이다.
반면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는 의붓언니와 계모한테 괴롭힘을 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주장을 할 줄 안다. 왕자에게서 도망쳐 오는 것도 페로의 신데렐라처럼 요술이 풀려 자기 자신이 탄로가 날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도회에 가게 되고 거기서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기본 줄거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줄거리만 요약해놓은 다이제스트판이 위험한 것처럼 그런 줄거리만으로는 두 가지 신데렐라 이야기를 한꺼번에 같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불행에 빠졌던 신데렐라가 행복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지가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디즈니의 신데렐라만 보고, 페로의 신데렐라 이야기만을 알고 있다. 물론 이건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디즈니의 국제적인 위력 덕분에 전 세계는 모두 한 가지 신데렐라 이야기만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착한 듯 하지만 사실은 너무 바보같고, 그래서 스스로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우연한 행운을 통해 왕비가 된 신데렐라를 꿈꾸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전세계에 퍼지게 된 건 아닐까 여겨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
사실 아이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일부러 아이에게 들려주지 않아도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마련이니 들려줄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디즈니의 신데렐라에 묻혀 있는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정말 아쉽다. 힘든 상황에서도 스스로 노력도  하고, 자기 주장도 하고, 그 결과로서 행운을 갖게 되는 옛이야기는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말고,
혹시 아이들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페로)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형제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두 이야기를 함께 알게 되면 적어도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지거나 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글·오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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