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제스트판> 출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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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생각해봅시다'에서 소공녀가 유아용에서부터 고학년까지 다앙하게 출판되어 있다는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다. 유아용으로 나왔다는 것은 원래 책 내용을 줄여서 유아용으로 맞게 다이제스트 판으로 출판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잠깐 생각을 해봐야 겠다. 이런 방법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것인가 하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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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이제스트되어 출판되는 책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서점에서 알아보았다.  A4 크기로 출판되어 있는 책은 제외하고, 시리즈로 책이 나오는 곳은 아래와  같다.   

출판사

시리즈 이름

초판 발행 연도

교학사

엄마와 함께 읽는 애니메이션 세계 명작동화

1994년

삼성

처음 만나는 명작동화

1996년

새샘

명작 동화 시리즈

1993, 1995년

예림당

스타북스

1997년

은하수

 

1997년

중앙미디어

애니메이션 환타지

1997년

지경사

월트 디즈니TM

1998년 거듭 찍음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세계 명작동화(이 이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명작동화'라고 부르고 있으니 일단은 이  명칭에 따른다)로 알려진 책을 다이제스트해서 내고 있다. 또 발행년도를 보면, 그리 오래된 책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만큼 소비가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책을 어려서부터 읽게 하자는 학부모의 의도와 맞물렸다는 의미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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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이제스트 된 책들은 모두 줄거리 전달에 급급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긴 내용의 책을 유아용에 맞는 길이로 줄이려니 줄거리만 전달할 수밖에 없다. 줄거리도 똑같은 비중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한 일화를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이제 이 즈음에서 우리는 왜 어린이에게 책을 읽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
아이가 <소공녀>라는 책을 읽었다는 성취감이 중요한 것인가? 어떤 어른이 "얘, 너 소공녀 이야기 아니?" 하고 물었을 때 "네, 알아요!"하고 대답할 수 있기 위해서 책을 읽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책을 읽고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어린이는 그 감동에서 바로 내적 힘을 얻을 것이며, 이 세상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울 것이다.
그럼 책을 읽고나서 느끼는 감동은- 감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찡한 마음만이 감동이 아님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감동에는 찡한 것뿐만 아니라 통쾌한 감동도 있으며, 즐거운 감동 등등이 있다. - 어디서 올까?
이야기 줄거리에서 올까?
그렇지 않다. 그 책 전체에서 감동을 받는다. 묘사된 문장, 인물들의 대화·심리·행동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전체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다이제스트 된 책에서 이런 총체적인 것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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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 자체에 대한 평가는 감히 못하겠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가서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부분이다.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하게 하면서 어떤 기대를 갖게 만들고 그 기대에 따라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좀 긴 인용이지만 중간 생략 없이(중간 생략을 한다는 것이 이 글의 목적과 맞지 않다)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테이블 위에는 작은 병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아까는 없었던 건데……?" 앨리스는 이렇게 중얼기리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 병의 목 부분에 종이 라벨이 묶여 있어 살펴보니 '마셔요!'라는 커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당장 마시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영리한 앨리스는 서둘지 않았다.
"아냐, 먼저 잘 살펴 봐야 해."
그녀는 자신을 타이르듯 말했다.
"'독'이란 글자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야지."
앨리스는,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이미 배운 간단한 지식들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커다란 위험이나 불행한 일을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 작은 병에는 어디를 살펴 봐도 위험물이라는 표시가 없어 앨리스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뭐라고 할까. 버찌 파이, 파인애플 쥬스, 칠면조 튀김,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 등의 맛을 섞어 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 그녀는 단숨에 마셔 버렸다.
"정말 이상한 기분인군?"
앨리스는 중얼거렸다.
"내 몸이 망원경처럼 줄어들었나 봐!"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키는 잘해야 30센티나 될까말까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순간 앨리스의 표정이 빛을 품을 정도로 밝아졌다. 이제는 저 아름다운 정원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은가!
앨리스는 날 듯이 문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 이를 어쩌나! 문에 이르러서야 열쇠를 테이블 위에 놓고 왔다는 걸 생각해 냈던 것이다.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온 앨리스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쇠가 있는 테이블 위는 이제 그녀로서는 까마득히 높은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유리기둥(테이블 다리)을 기어오르려 했으나 허사였다. 유리기둥은 매끄럽기만 할 뿐 잡을 것 하나, 디딜 곳 한 군데 없었던 것이
다. 기를 쓸 대로 쓰다 지쳐 주저앉은 앨리스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래선 안돼. 운다고 무슨 방버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한참을 울고 난 앨리스는 제법 날카로운 목소리로 자신을 꾸짖었다.
"당장 그쳐!"
눈물을 닦아내던 앨리스는 문득 테이블 아래 바닥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유리상자를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작은 케이크가 들어 있었고 케이크에는 아주 작은 건포도들로 '먹으세요'라는 글씨가 예쁘게 새겨져 있었다.
"그래, 먹을 테야."
앨리스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이걸 먹고 키가 커지게 되면 열쇠를 집을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더 작아진다면 문 틈 사이로 기어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어떻게 변하든 난 저 아름다운 정원으로 나갈 수 있게 돼.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어!"
그녀는 우선 조금 먹어 보고는 불안스러운 마음으로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어떻게 되는 걸까? 커지는 걸까, 작아지는 걸까?'
그러나 자신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깜짝 놀랐다. 케이크를 먹는다고 해서 몸에 변화가 생길 리는 없었으나, 이상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는 앨리스로서는 당연한 일이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먹어대 잠시 후 그녀는 작은 케이크를 말끔히 먹어치웠다.
"어머나, 세상에 이럴 수가……!"
앨리스는 입만 벌리고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김성렬 옮김/범우사/22-27쪽)

그러면 똑같은 부분을 다이제스트된 책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나를 마셔오!'리거 써붙인 병을 발견했어요.
"어디 한번 마셔볼까?"
병에 든 것을 마시자마자 앨리스의 몸이 작아지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가 내 몸이 너무 작아져 버리면 어떻게하지?"
그 때 '나를 먹어요!'라고 씌여 있는 과자를 보았습니다.
"옳지, 이걸 먹어 보자!"
과자를 먹은 앨리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커져 버렸답니다.(<앨리스> - 지경사/6-7쪽)


완역본에서 느껴지는 재미가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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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다이제스트된 책을 권하지 않게 됩니다만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의견을 주세요
. (글·김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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