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는 <소공녀>

 

1. 이래서 <소공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소공녀>를 생각하면 참 헷갈린다. 나는 <소공녀>를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해주기에는 웬지 내키지가 않고 찜찜하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은 이 책을 좋아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일단 교보분고에 들려서 출판 현황을 알아보았다. 교보문고 도서찾기 단말기에서 <소공녀>를 누르면 40여 권이나 되는 목록이 쫙 뜬다. 40여 권이나 되는 <소공녀> 책은 그 분야도 다양하여 외국어·학습 교재용이 7권, 유아용이 26권, 아동용이 15권이었다 (6월 초에 알아본 것입. 그나마 20여 권이 재고가 없 는 상태였다).
나는 <소공녀> 완역본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서점에서도 완역본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린이 책은 워낙 내용을 간추린 책들이 많아 완역한 책은 '완역했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책마다 '완역본'이란 문구가 없는 것을 보면 완역한 책은 없는 모양이었다.
할수없이 나는 고학년 용 가운데 가장 잘 나간다는 대일출판사와 계림출판사에서 나온 <소공녀>책을 읽기로 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나의 생각은 이 두 책에 의존한 것이다. 따라서 원본 <소공녀>에 대한 평가는 아님을 밝힌다.

2. 다시 보았더니

1)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책을 다시 보았더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눈에 보였다. 주인공 세라 크루는 우선 마음씨가 좋은 착한 아이였다. 세라 크루는 프랑스어를 못해 쩔쩔 매는 아멘가드와 친구가 되고 그를 이해한다. 또 일 찍이 엄마를 여의고 툭하면 울고 투정부리는 로티를 감싸안는다. 남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하녀 베키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친구가 된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 편이다. 세라는 부잣집 딸인데도 래비니어처럼 잘난 척도 하지 않고, 늘 착한 마음 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세라가 하녀로 되자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하녀가 된 세라는 그래도 착한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자기도 배고프면서 다른 배고픈 소녀에게 자기의 빵을 양보하는 세라 에게 아이들은 매료당한고 만다. 그런 세라가 너무나 안됐고, 불쌍하여 세라에게 다시 행복이 찾아오기 를 아이들은 간절히 바라면서 이 책을 읽게 된다. 세라에게 행복이 찾아왔을 때 아이들은 간절히 바란 던 바였으니 자기일처럼 기뻐하고, 진정으로 세라가 계속계속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덮게 되는 것이다.

2) 그래도 권할 수는 없다.
아이들이 <소공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음에도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위의 스토리만 보면 너무나 좋은 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이야 기 스토리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다.
<소공녀>의 세라 크루는 요샛말로 공주병에 걸린 아이이다. 물론 공주병이 '소공녀'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지만. 세라 크루는 늘 '……가 있는 셈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이다.

"그래, 내가 공주님이 된 셈치면 어떻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해서 공주님처럼 행동하고 싶은 거야. 그 런데 네가 무슨 참견이야?"
… (중략)…친구들이 거의 다 세라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라비니아는 지금도 아이들이 세라의 말에 귀가 솔깃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대일출판사 / 67쪽)

세라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마룻바닥에는 두텁고 부드러운 인도에서 생산된 비로드를 깐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푹 신푹신한 긴 의자를 둔다고 하자. 의자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책꽂이를 두고 난로 앞에는 모피를 깔고 벽은 커튼이나 그림을 넣은 천으로 모두 가려버리는 거야. 장밋빛의 갓을 씌운 전기 스탠 드가 하나 더 필요하군. 방 한가운데에는 찻잔을 올려놓은 테이블이 있고, 구리로 만든 동그란 차 끓이 는 주전자가 난로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거야. 침대로 새 것으로 갈아야지. 그리고 참새들은 창가 에 날아와 '들어가도 좋습니까?' 하고 말하도록 훈련을 시키고."
로티는 꿈을 꾸는 듯하였습니다.
"세라, 나도 여기 있고 싶어." (계림문고 115∼116쪽)

세라의 이 '…한 셈치는' 병고 바른 마음인 것처럼 그려져 주위 친구들도 닮으려고 하고, 부러워한다. 이러한 묘사는 책의 어느 부분을 펴더라고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더구나 세라가 뭔가 특별난 아이라는 분위기를 자꾸 풍기기도 한다.

세라의 목소리는 그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거지 소녀와는 너무나 다르며, 그 태도도 어느 귀한 집 따님 들과 다를 것이 없자 마차 안의 소녀들은 머리를 내밀고 세라를 바라보았습니다. (계림문고, 126쪽)

이렇게 '…한 셈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인가. '희망'이 나의 현실을 무시하고, '…한 셈치 는' 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현실을 가상해보곤 한다. 나도 어렸을 적에 아니, 지금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건 공상이요, 망상이다. 공상은 가끔은 기분 즐겁게도 해주지만 그것이 일상화된 다면 큰 병이 될 수도 있다.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를 기억하는가? 그는 영화의 망상에 빠져 자기 삶 을 나락으로 이끌어갔다.
세라 크루도 늘 '…한 셈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작품에서는 그런 세라가 바른 것처럼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도 그런 세라에게 동화되어간다.

진정한 꿈과 희망이란 나의 현실을 가상하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은 마음 밑바탕에 내적인 힘을 주는 것이다. 그 내적인 힘은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등장인물의 삶 속에서 얻을 수가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어린이는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 이므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 거다.
세라는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세라는 우아함으로 극복하였다. 우아함으로 주위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 친구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이 글에서는 책 비평이 목적이 아니니까 내가 이 책을 권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정도에서 마칠까 한다.

3. 생각해봅시다.

이 글의 목적은 여기입니다. 두 출판사에서 나온 <소공녀>를 읽다가 우리나라 아동 출판물의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여러분과같이 의견을 나누고 싶다.

1) 같은 책인데 이야기 전개가 다르다.
내가 읽은 두 권의 <소공녀>는 번역자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가 다르다.

계림의 책은 '민틴 여자 사범학교'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주 부잣집 아이가 우리 학교로 온다는 소식이 학교에 전해진다 → 세라가 아버지와 함께 에밀리(인형)을 산다 → 그 이튿날 세라는 아버지와 함께 학 교에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 → 아버지와 작별하고 이튿날부터 수업한다.
대일의 책은 세라가 아버지와 함께 학교를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세라는 선생님과 인사한다 → 아버지와 함께 가게에서 에밀리를 산다. → 아버지 혼자 민틴 선생을 만나 세라를 부탁한다 → 수업 을 시작한다.

혹시 편역인가 하여 자꾸 살펴보았지만 표지에는 '옮김'이라고만 되어있다.
이런 부분은 자주 발견된다.
또 인물의 역할 정도가 다르기도 하다. 계림의 책에서는 래비니어가 나쁜 아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 고 있다. 그리고 래비니어의 심복 제시의 역할도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대일의 책에서는 래비니어의 역할이 아주 미비하고, 별로 등장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완역이 아니니까 역자가 이야기 순서와 인물의 역할 정도를 나름대로 구성한 결과인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보내주십시오.

2)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도 합니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어떤 책에서 '소공녀'라는 말이 보여 얼른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부분이라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중략) 하지만 이런 세라에게 어려움이 닥칩니다. 어버지가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폭동이 일어난 거지요. 세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빨리 폭동이 진압되기를 바랍니다. (중략) 군대가 파견되고 폭 동은 진압되었지만 세라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소 식에 세라의 처지도 바뀝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2> (어린이 교육연구회 엮음 / 오늘어린이/ 150쪽)에서 -

내가 읽은 두 권의 <소공녀>에서는 광산 일에 투자했다가 망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4. 답답합니다.

독서교육에 대한 어떤 포럼에 참가(포럼 토론자가 아니라 그냥 구경하는 사람)했는데 어떤 토론자가 이런 말을 했다.
"모 도서관에 갔는데 '서유기' 3권이 있었다. 3권은 분명 번역자가 다 달랐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보니 3 권의 글이 모두 같았다."
이런 문제(출판 관행)를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자꾸 확인이 되니 답답할 뿐이다.
이런 풍토와 문화 속에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글 : 김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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