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서출판 보리

  
땀 냄새 물씬 나는 출판사
시골 냄새, 자연 냄새, 그리고 힘겨운 노동으로 흘린 값진 땀 냄새가 나는 출판사!
이곳 '도서출판 보리'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 이름부터가 옛날 우리 백성들의 중요한 먹을거리의 하나였던 '보리'인 것도 그렇고, 내는 책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그 가운데 우리 자연을 꼼꼼하게 세밀화로 담아 내고 있는 '보리 아기 그림책', '도토리 아기 벽그림', '도토리 계절 그림책',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 도감'은 가장 대표적이다.

'보리'의 두 축 - 자연, 그리고 교육
보리에서 나오는 책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크게 자연과 교육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세밀화'로 보여주고 있는 '보리 아기 그림책', '도토리 계절 그림책', '식물도감', '동물도감', 그리고 '도토리 자연 그림책'으로 나온 <누구야 누구>, 달팽이 과학 동화 시리즈는 모두 우리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 세밀화 작업만을 고집했을 때는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들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보리의 세밀화 작업을 인정한다.
아이가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친해지고 그러면서 자연을 알아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게 우리 현실이다. 어쩌면 자연을 있는 모습 그대로 책으로 옮겨오는 게 자연을 모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연과 만나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을 아이들의 품에 안기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밀화 분야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 우리 나라에서 세밀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힘과 노력이 더욱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어느 출판사에서도 해내지 못하는, 보리 출판사에서만 해 낼 수 있는 분야로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축은 바로 교육과 관련된 책들이다.
교육과 관련된 책 가운데 하나의 틀은 아이들이 직접 쓰거나 그린 것들을 엮어서 낸 책들이다.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엮은 아이들의 글모음집인 <엄마의 런닝구>, <아무도 내 이름을 안 불러 줘>, <아주 기분 좋은 날>이 그렇고, 선생님들이 직접 가르친 아이들의 글이나 그림을 모은 <내가 처음 쓴 일기>, <연필을 잡으면 그리고 싶어요>, <허수아비도 깍꿀로 덕새를 넘고>가 바로 그렇다.
또 하나의 틀은 아이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교육관을 보여주는 책들이다. 이호철 선생님의 <살아 있는 글쓰기>,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윤태규 선생님의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는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참고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 지침서이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무엇을 어떻게 쓸까>는 그야말로 어른들과 청소년에게 주는 글쓰기 길잡이 책이다.
또 있다. 윤구병 선생님의 교육관을 보여주는 <조그마한 내 꿈 하나> <실험학교 이야기> <잡초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관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새벽의 집>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최근 나온 <조화로운 삶>은 바로 새로운 교육과 공동체를 생각케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한 지붕 세 가족
'보리'는 1988년 아이들 그림책 전문 기획 집단인 '보리 기획'이 뿌리다. 당시 대표였던 윤구병 선생님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왜 책을 주어야 하는가'부터 고민하며 함께 공부를 하기 시작하여 내린 결론이 "어린 아이 책부터 시작하자", "우리 아이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시골의 모습, 그리고 우리 것을 보여주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기획된 것이 '달팽이 과학동화' 시리즈다. 각 권마다 하나의 주제를 잡아 그림책으로 꾸민 '달팽이 과학 동화'는 취학 전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는 드물게 동물, 식물, 생태, 사회, 감각에 걸친 과학 지식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했다는 평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체 출판을 하지 못해 웅진출판사 이름으로, 전집의 형태로 첫 선을 보였다. 현재는 웅진으로부터 판권을 인수해 '보리' 이름으로 40권의 단행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보리 기획'은 1991년 (주)도서출판 보리로 출판등록을 하고,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위해 다양한 실천 사례, 새로운 교육 모델들을 제시하는 책들을 한 권씩 고집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가족들도 생겼다. '도서출판 도토리'와 '도서출판 작은책'이다.
'도토리'는 '보리'의 세밀화를 세밀하게(!)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보리의 세밀화 시리즈를 기획하고 편집한 곳이기 때문이다.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곳이다. <월간 작은책>과 <58년 개띠><골리앗 공화국> 등 '작은책 문고'를 펴내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출판 등록을 하고 있는 세 곳을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표현한 건 세 곳 모두 똑같이 '보리기획'에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곳은 하는 일이 조금은 달라 보이기도 한다. '보리'는 어린이 책, '도토리'는 세밀화, '작은책'은 노동 현장의 글쓰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꾸 들여다보면 역시 그 토대가 같기 때문에 세 곳은 서로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자연, 일하는 삶, 교육이라는 토대는 모두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 '보리기획'에서 하고자 했던 일들이 세분화되면서 좀더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고 할까?

보리의 고집
그런데 누구나 어린이 책 출판사로 생각하고 있는 보리건만 가만 보면 동화책이 별로 없다는 게 또한 보리의 특징이다.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보따리' 10권이 있고, '겨레아동문학선집' 10권이 있고, <휠체어를 타는 친구>, <왜 나를 미워해>가 있을 뿐이다. 권수로만 따지자면 23권이니 적을 것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보통 동화라 할 때는 창작동화를 생각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옛이야기 보따리' 10권은 빠져야 될 것 같고, '겨레아동문학선집' 역시 1920년대부터 1950년까지 발표된 동화 동시 가운데서 가려 뽑은 작품들이니 요즘 나오는 동화들을 생각할 때는 조금 거리감이 있다. 또 <휠체어를 타는 친구>와 <왜 나를 미워해>는 외국 동화이다.
이런 모습이 어떻게 보면 "보리에서 왜?"라는 의문을 갖게도 한다.
하지만 곧 의문도 풀린다.
"동화책을 내는 곳은 많잖아요. 우리는 남들이 잘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동화책을 안 내는 건 아니지요. 우리의 출판 철학과 맞는 거라면 언제든지 낼 거예요. 우리는 자연과 함께,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하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할 거예요. <휠체어를 타는 친구>나 <왜 나를 미워해>도 바로 우리의 철학과 맞기 때문에 낸 것이고요, '옛이야기 보따리'나 '겨레아동문학선집'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곳에서 안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것이죠."
편집장의 말이다.
이런 고집이 있기에 지금의 보리가 있었구나 싶다. 자기 철학에 맞는 책만을 꾸준히 내는 출판사, 남들이 다 하는 것 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는 출판사, 그래서 '보리'는 소박하지만 자신만의 구수한 향기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글·오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