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나온 옛이야기 책을 살펴보며

 

2. 2010년에 나온 비룡소 전래동화


《단물고개》(소중애 글/오정택 그림/2010. 3. 5.)
《토끼와 자라》(성석제 글/윤미숙 그림/2010. 7. 2.)
《심청전》(유은실 글/홍선주 그림/2010. 11. 5.)
《반쪽이》(이현주 글/송희진 그림/2010. 12. 28.)
《팥죽 할멈과 호랑이》(소중애 글/김정한 그림/2010. 12. 29.)

2010년에 나온 비룡소 전래동화는 이렇게 다섯 권이다.
보통 옛이야기에 포함되긴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고전소설 혹은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불리는 《토끼와 자라》와 《심청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비룡소 전래동화 시리즈는 2011년 2월 현재 모두 18권이 나왔다. 1998년과 2002년에 창작 그림책으로 나왔던 이영경의 《아씨방 일곱 동무》와 《신기한 그림족자》, 역시 2002년에 《살려 줄까 말까?》(조은수 글/유승하 그림)도 비룡소 전래동화 시리즈가 나오면서 전래동화 시리즈에 포함됐다.
예전에 나온 책들까지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비룡소 전래동화는 좀 파격적인 부분이 있다. 이야기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다. 그 파격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격이란 일종의 ‘도전’이다.
2010년에 나온 비룡소 전래동화는 이전에 나온 책들보다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았다. 2011년에 나올 책들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은 기대감을 높인다.
그럼 2010년에 나온 책들을 한편씩 살펴보도록 하자.

《단물고개》는 효성 깊고 착한 총각이 우연히 얼음처럼 차갑고 머루처럼 달콤하고 박하처럼 향기로운 단물샘을 발견하면서 욕심이 생기고, 결국엔 그 욕심 때문에 모든 걸 잃고 만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오고 가며 단물 샘에서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데 만족하던 총각은 이 단물을 자신처럼 목마른 사람들과 나눠 마시기로 한다. 단, 조금 돈을 받아서!
단물 샘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리고, 돈이 들어오자 돈 계산하기에 바빠 어머니도 돌보지 않고 좀 더 많은 돈을 벌 생각만 한다.
드디어, 단물이 더 많이 솟아나면 돈을 더 벌 거라는 생각에 샘의 물구멍을 쾅쾅 파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물이 더 많이 솟아나기는커녕 단물은 땅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옛이야기에서 이처럼 지나친 욕심 때문에 화를 입는 경우는 참 많다. 대개는 착한 주인공과 나쁜 인물을 대비해 보여주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착했던 총각이 돈 때문에 한순간 달라진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글이 주는 맛도 상당하다. 어머니와 총각의 대화글은 정감이 넘치고 서로가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또 리듬감 있는 글은 읽다보면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여기에 다색 석판화 방식을 응용한 그림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수묵화 느낌의 검정색 그림에 상황에 따라 주황색과 파랑색을 주로 사용했는데, 주황색은 더운 열기와 총각의 욕심을, 파랑색은 물의 시원함과 총각의 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살펴보면 처음엔 파랑색 테두리로 둘러있던 총각의 모습이 실재로 욕심 사나운 행동을 할 때는 주황색 테두리로 둘러있는 걸 볼 수 있다.

《토끼와 자라》, 《심청가》는 흔히 ‘수궁가’와 ‘심청가’로 불리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계 소설을 엄밀한 의미에서 옛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린이 책에서 통상 ‘고전소설’의 범주까지 포함하곤 하는 걸 고려한다면 별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다소 내용이 긴 작품을 그림책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작품성 있는 그림책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토끼와 자라》에서 우선 눈에 띄는 건 글 작가가 소설가 성석제라는 점이다. 많은 소설가들이 어린이책에 도전을 했지만 성공한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성석제의 글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원작이 갖고 있는 해학과 풍자가 잘 드러난다.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들은 자칫 남용하면 책의 꼴이 우스워지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쓰이는 의성어 의태어들은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또 판소리 느낌을 담아낸 운율 또한 구수하고 신명난다. 사실 이처럼 긴 이야기를 그림책 글로 짧게 쓰기란 쉽지 않다. 원작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림 또한 돋보인다. 바다의 색깔이 파랑과 토끼가 사는 육지의 색깔인 초록의 강렬한 색감은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게 한다. 여기에 토끼의 빨간 색은 영민한 토끼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실재로 토끼가 자신의 간을 계수나무 꼭대기에 달아매어 놓았다며 용왕을 속이는 장면은 토끼 눈과 똑같은 빨간 바탕이다.

《심청전》의 주제로 ‘효’를 꼽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만 보면 심심하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고 만다. 《심청전》의 바탕에는 ‘구원’이라는 부분이 더 크다.
심청은 자신을 낳고 바로 엄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동네 아주머니들의 동냥젖을 먹으며 자란다. 즉, 심청의 목숨은 동네 아주머니들 덕에 구원받은 것이다. 이렇게 자란 심청은 이를 보답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존재가 된다.
눈먼 아버지를 보살피고, 뱃사람에게 팔려 가는 건 단순한 ‘효’의 개념을 넘어선다. 뱃사람들의 인신공양을 좋게 볼 수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심청의 죽음은 뱃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것이었다.
심청은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고, 다시 연꽃을 통해 다시 부활한다.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했다는 건 심청이 구원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잡는 것이다. 심청이 왕비가 된 것은 단순한 신분상승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됐음을 상징한다.
왕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맹인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반가운 마음에 청이 얼굴을 보려다 눈이 번쩍 뜨인다. 아버지만 눈을 뜨는 게 아니다. 온 나라의 맹인들의 눈이 다 번쩍 뜨인다.
이런 심청이니 그 모습이 결코 약할 리가 없다. 씩씩하면서도 다부진 심청의 모습이다.
이 책은 이런 심청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글은 원전의 깊고 풍부한 의미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잘 살려냈다. 한복의 색을 참고하여 색 대비를 주었다는 그림은 옛이야기의 느낌을 잘 살려준다. 또 곳곳에 보이는 상징적인 장면들은 이야기를 보다 풍부하게 해 준다.
아쉬움이 있다면 마지막 장면이다.

왕은 청이 아버지 심학규를 부원군으로 삼았어.
청이는 어진 왕비가 되어 가난한 백성에게 빛이 되었지.
그리고 왕과 함께 귀하고 행복한 삶을 오래오래 누렸대.

구원자 심청의 감동이 마지막에서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차라리 온 나라 맹인들이 눈을 뜨는 장면에서 끝나는 편이 다 나았을 것 같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십장생도를 배경으로(해 대신 여기서는 구름 사이에 궁궐이 보인다) 서 있는 사람은 심학규다. 심청은 어디에 있는 걸까? 혹시 구름 사이에 보이는 궁궐?

《반쪽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옛이야기다.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뭘까? 아이들은 이야기 주인공과 쉽게 동일시하곤 한다. 그렇다면 눈도 하나, 콧구멍도 하나,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뿐인 반쪽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몸이 온전하지 않은 아이가 보통 사람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쳐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아이들은 반쪽이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반쪽이만큼은 아니지만 어른과 견줄 때 한없이 작은 자신의 모습이 반쪽이처럼 불완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른들처럼 모든 걸 스스로 하지 못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 때문에 스스로를 불완전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반편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몸이 커다래도 하는 짓이 부족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 속의 반쪽이를 진짜 몸이 반 밖에 없는 걸로 표현하는 건 늘 거북하다. 지금까지 단행본으로 나온 ‘반쪽이’ 그림책은 모두 반쪽이가 진짜로 몸이 반 밖에 없게 표현했다.
이 책도 사정은 비슷하다. 옆모습으로 그려 보기에는 몸이 불완전해 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지만, 불완전한 몸을 그대로 드러나게 표현한 그림도 있다. 특히나 반쪽이가 예쁜 색시와 결혼해 잘 사는 장면에서는 반밖에 없는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불완전하게 태어난 반쪽이지만 무의식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고, 우리가 흔히 ‘나의 반쪽’이라 하는 배우자를 얻었을 때는 불완전함을 극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면 곳곳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배치한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옛이야기 그림책은 창작그림책과는 성격이 다르다. 옛이야기 그림책의 그림은 옛이야기가 갖고 있는 성격을 반영해야 한다. 옛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은 자기 역할을 다 하고 나면 사라진다. 고양이 역시 그래야 한다.
반쪽이가 부잣집 딸을 지키던 사람들이 잠들은 집에 찾아가는 장면은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반쪽이가 부잣집 딸을 잡아가는 긴박감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반쪽이가 딸을 잡아가지만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는 장면까지의 장면 구성을 조금 바꿨더라면 긴박감과 통쾌함을 좀더 잘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는 《단물 고개》에 이어 ‘소중애의 재발견’ 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중애는 이 이야기에서 논란이 되곤 하는 호랑이와의 내기 같은 건 과감히 생략했다. 그리고 원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상징을 보다 쉽게 풀어 놓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호랑이가 산 아래 작은 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열심히 가꾼 얼마 안 되는 것마저 빼앗아 가려는 권력자의 상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할머니도 무조건 울기만 하지 않는다. 팥을 거둬 팥죽을 쑤면서도 호랑이에 대한 분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할머니가 우는 건 호랑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분하고 슬픈 마음 때문이다.
보통의 ‘팥죽 할멈과 호랑이’ 이야기보다는 할머니를 도와주러 오는 물건들의 수가 좀 적다. 보통 일곱 개 정도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밤톨, 맷돌, 동아줄, 멍석, 지게까지 모두 다섯이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존재감이 덜하지는 않는다. 다른 책들에서 하나씩 등장하던 물건들이 분량의 문제 때문에 한꺼번에 등장하곤 하는데, 이 책은 수가 적은 대신 하나 하나 차례대로 등장해 팥죽을 얻어먹고 자기 위치에 가서 선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팥죽 잔치를 하는 장면 또한 훌륭한 결말이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있으라고 등장시킨 것이겠지만 토끼나 개는 이야기의 시선을 분산시킬 뿐이다. 더구나 개는 할머니가 키우는 동물로 계속 등장을 하는데, 무생물인 밤톨, 맷돌, 동아줄, 멍석, 지게가 등장할 때 살아있는 생물의 등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밤톨과 맷돌, 동아줄, 멍석이 할머니 집 곳곳에 숨어 있는 장면도 아쉽다. 이 장면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 숨어 있고 이후 어떻게 사건이 펼쳐질지를 기대하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의 주인공들이 너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대신 할머니가 팥을 거두고 팥죽을 쓰는 장면은 할머니가 팥죽 쑤는 과정과 함께 고조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