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할머니가 꿈꾸는 세상

 

1.

옛날 옛날 산신령이 여신이었던 때가 있었다. 모악산(母岳山), 대모산(大母山)은 여성이 산의 주인이었음을 짐작케하는 흔적이다..
산은 신비롭고 신령스러운 공간이다. 높이 솟은 산은 하늘과 이어져 있어 하늘의 뜻을 받드는 곳으로 여겨졌다. 흔히 말하는 우주목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은 왕과 귀족의 무덤을 만들 때 산의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구지가에서 볼 수 있듯이 산은 하늘의 뜻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했다.

산은 수많은 생명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아기가 없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산신령의 모습을 여신으로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거나 옆에 호랑이를 낀,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산의 이름에서 여성이 산의 주인이었음을 짐작케하는 흔적이 있듯이 여신들의 흔적도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 마고 할미다. 지역에 따라 마구 할미, 노고 할미, 서구 할미, 설문대 할망이라고도 부르지만 모두 차이는 없다. 이들은 땅과 산과 물길을 만들어 낸 존재로 산에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사라진 신이 되고 말았다. 마고할미는 마귀할멈이 됐고, 설문대 할망은 깊은 물속에 빠져 사라져버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래 여신을 뜻하는 말이었던 ‘할멈’은 나이 많은 여자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되고 말았다.

옛이야기 속에도 흔적은 있다. 산신령이라고 말은 안 하지만 산속에 사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할머니들이 바로 그들이다. <연이와 버들잎 도령>에서 연이에게 버들잎 도령을 살릴 수 있는 약병을 주는 산골짝 오막살이에 사는 할머니가 그렇고, <구렁덩덩 신선비>에서 신선비를 찾아간 셋째 딸이 신선비와 혼인을 하기로 한 색시와 내기를 할 때 호랑이 눈썹을 뽑도록 도와주는 할머니가 그렇다.

남성 산신령처럼 근사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깊은 산속 작은 오두막에서 홀로 사는 모습이다. 세상이 남성 중심으로 변해가면서 산신령의 지위는 박탈당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할 도리를 하고 사는 진정한 산신령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언젠가 자신의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2.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보기도 정말 많이 봤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밤마다 늘 빠지지 않고 들려주던 이야기다.
“할멈 할멈 왜 울어?”

“팥죽 한 그릇 주면 못 잡아먹게 해 주지.”

반복되는 대사도 재미있었지만, 할머니를 도와 호랑이를 물리치는 밤톨이며, 자라, 물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의 모습이 경쾌하면서도 통쾌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다른 옛이야기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자라를 제외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아닌, 사물인 등장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물활론적 세계관의 진수라고나 할까? 지금껏 많은 이야기를 읽어봤지만 이처럼 물활론적 세계관이 살아있는 이야기는 보지 못한 듯 싶다. 때문에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어린 유아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궁금했다. 옛이야기에서 흔히 나오지 않는 이런 물활론적 세계가 이 이야기에서만 등장한 이유가 말이다. 혹시 이 이야기가 물활론적 세계관이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팥죽할머니의 모습이 아무래도 범상치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 그런데 그 할머니는 다른 곡식도 아니고 굳이 팥을 가꾼다. 벽사의 의미인 팥을 말이다.

혼자서 팥밭을 일구던 할머니는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하는 순간에도 그대로 까무러치거나 하지 않는다.

“이 팥을 잘 가꾸어서 가을이 되어 팥을 거두면 팥죽을 쑤어먹게 해 다오.”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해도 할머니는 이렇게 시간을 번다.

팥죽을 쑤는 건 일반적으로 동지 때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하지만 밤이 가장 긴 날이라는 말은, 다음 날부터는 점차 낮이 길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즉, 어둠이 서서히 물러날 때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동지를 작은설이라 부르기도 하고, 실질적인 새해로 여기기도 했다.

아무튼 어둠이 가장 깊은 동짓날, 할머니는 팥죽을 쑤며 운다. 어둠이 길게 드리운 동짓날답게 할머니에게도 어둠의 기운이 길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이때 할머니의 울음은 단순한 신세한탄이 아니다. 울음은 사이렌처럼 하나의 신호가 된다. 할머니 주위에 있던 알밤, 자라, 개똥, 송곳, 절구, 멍석, 지게가 차례로 다가와 묻는다.

“할멈, 할멈, 왜 울어?”

“팥죽 한 그릇 주면 못 잡아먹게 하지.”

이들은 할머니에게 팥죽 한 그릇을 얻어먹고서 각자의 자리로 간다. 그렇다. 울음은 할머니가 동지를 모으는 신호였다.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호랑이 앞에서도 까무러치지 않고 시간을 벌었던 배짱 있는 할머니는 이렇게 팥죽을 나누며 동지들을 모아들인다. 과연 범상치 않은 할머니다.

그렇다면 이 팥죽 할머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산신령이 여신에서 호랑이와 수염이 허연 산신령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남아있던 산신령은 아닐까? 주류에서 밀려나 산속 깊은 곳 작은 집에서 혼자 살며 팥 밭을 가꾸는 것이나,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한테 배짱 좋게 시간을 버는 모습이 마치 산신령에서 밀려나는 시기의 여신의 모습과 닮아있다. 게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자 할머니는 벽사의 기능이 있는 팥죽을 비록 힘은 없지만 늘 함께 하던 것들과 나눠먹고 연대를 한다. 할머니의 울음은 어쩌면 남성이데올로기 때문에 산신령의 위치에서 밀려나는 여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듯 싶고, 이로 인해 늘 할머니와 같이 살아왔던 주변의 힘없는 것이 깨어난 것 같다.

팥죽할머니는 산속에 혼자 사는 가엾은 노인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호랑이에 밀려난 산신령임이 분명하다. 팥죽 할머니의 범상치 않은 모습들이 이를 증명한다.

비록 지금은 주류에서 밀려난 신세지만 팥죽할머니는 이렇게 주위의 힘없는 존재들과 서로 힘을 합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3.

내가 공부하는 옛이야기모임의 이름은 ‘팥죽할머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팥죽할미가 됐다.
사실 처음 팥죽할머니란 이름을 지을 때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져가며 지었던 건 아니었다. 2007년 daum에 카페를 만들면서 카페 이름이 필요했다. 나는 카페를 만드는 책임을 떠맡았다. 카페 이름도 마음대로 정하라는 전권(!)을 부여받았다. 깊은 생각을 할 처지는 못 됐고, 우리가 함께 공부한 옛이야기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때 떠오른 게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것이 좋았다. 또 당시 모임에서는 옛날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할머니들이 알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 또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카페 이름을 ‘팥죽 할머니’로 정했다. 무엇보다 원래 ‘할머니’는 ‘여신’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비록 지금은 카페가 거의 죽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이름은 남았다.

이후 최해숙 선생님은 우리를 부를 때 ‘팥죽할미들~’이라고 부르실 때가 많다. 처음엔 조금 낯설고 어색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선생님이 우리를 ‘팥죽할미들~’하고 부르실 때면 점점 정답게 느껴진다. ‘맞아, 우린 팥죽할미였지’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되새겨 보기도 한다.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속의 팥죽할머니가 비록 밀려날 대로 밀려난 여자 산신령으로,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위의 사물들을 불러 모은 것처럼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사람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옛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옛이야기가 갖고 있는 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팥죽할미답게 말이다. 그것이 이야기 속의 팥죽할머니가 꿈꾸던 세계와도 만나게 되는 길일 것이다.

4.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그림책을 본다. 이번엔 오로지 그림 속 팥죽할머니 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봤다.
내가 팥죽할머니에서 본 건 여신의 당당함이다. 비록 우는 장면이 있다고는 해도 그건 호소이고, 동지를 모으는 과정이니 마냥 불쌍한 모습으로만 그려져서는 안 된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최숙희 그림/조대인 그림/보림/1997)


할머니의 불쌍한 모습이 사라지는 건 호랑이가 절구에 깔릴 때 문을 열고 슬쩍 내다보는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 할머니에게 팥죽을 받으려 손을 내민 아이들의 손과 팥죽을 나눠주는 할머니 모습은 좋다.

표지는 아쉽다. 호랑이한테 당하는 불쌍한 할머니.


<팥죽 할멈과 호랑이>(서정오 글/박경진 그림/보리/1997)

물활론적 세계관과는 상관없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그림이다.
멍석, 지게 등이 의인화되지 못하다 보니 보이는 건 까치뿐이다.

호랑이를 마지막에 강물에 빠뜨릴 때를 빼곤 할머니는 한없이 불쌍해 보이기만 한다.

표지도 아쉽다. 호랑이한테 당하는 불쌍한 할머니의 모습. 그것도 아주 리얼하게.


<팥죽 할멈과 호랑이>(윤미숙 그림/조호상 글/호롱불/2003)

지금껏 봤던 그림책 가운데 가장 잘 됐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팥죽할머니 모습에만 신경 쓰고 다시 봐도 역시 좋다.할
머니 표정의 변화도 좋고, 할머니는 호랑이를 강물에 던질 때까지 함께 있다.

표지 :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호랑이, 그리고 팥을 뿌리는 할머니의 미소 띤 모습이 보기 좋다. 전집이라 아쉬움이 있다.


<팥죽 할멈과호랑이>(백희나 그림/박윤규 글/시공주니어/2006)

 

종이 인형으로 섬세한 감정 표현이 불가능했던 걸까? 너무 약하디 약한 호호할머니의 모습이다.
표지는 팥죽 한 그릇을 소반에 받쳐 들고 서 있는 할머니이다. 웃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너무 나이 들고 힘없어 보이는 호호 할머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짐작케 할 호랑이도, 할머니를 도와주는 것들도 모두 없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소중애 글/김정한 그림/비룡소/2010)

할머니의 억척스럽고 당당하면서도 능글맞고 유쾌한 표정이 돋보인다.
마지막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팥죽 잔치를 한 것도 좋다. 근데 할머니는 산 아래 작은 집에 사는데 마을 사람들 이렇게 많나?

표지에는 호랑이를 강물에 던지는 장면과 호랑이 등에 탄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 표정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