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  숙


1

인간의 삶을 좀 더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 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원하자. 생태계에 진 빚은 갚되 사람들과는 싸우지 말자!   - 피엘 카스트로,1992년 리우환경회의 연설문중에서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았다. 아이들은 주인공 하울의 수려한 외모를 보고 감탄하였지만 난 감독이 펼쳐놓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그 아름다움이 훼손될까봐 마음 조이며 만화 영화에 빠져 들었다. 내가 보았던 자연은 단순히 영상속의 자연이 아니었다.
  지난 여름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왔다. 조금은 산에 단련된 몸이지만 정말 죽는 줄 알았다. 5시간이면 된다는 코스였는데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힘든 곳을 겁 없이 식구들을 데려오다니?’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함께 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 곳은 정말 아름다웠다. 인간인 내가 그 곳에 있다는 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도 그 곳의 일부라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생명체라고, 그래서 함께 하겠노라고.’  내내 이런 마음으로 산을 등반했고 내려와서는 바로 쓰러졌다.
  합리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죽어도 내 말이 맞는 것인데, 저 사람들이 틀린 길을 가고 있는데, 왜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해야 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저들이 받아들이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논쟁’은 끝이 없다. 해결점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회는 더욱 양분되고 개인은 더욱 더 냉소적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합리적인 삶과 정의로운 세계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답은 감히 ‘자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만이 아이들에게 너그러움을 가르쳐줄 수 있고 자연만이 아이들에게 평화로움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만이 삶의 왜소함과 삶의 치열함을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느끼는 일은 물론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자, 지금 제가 들어갑니다. 허락해주세요’라고 얘기하며 직접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 직접 몸으로 겪는 것! 그것이 최상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마음 아파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설 두 권을 읽었다.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은 두 소설은 생태주의 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의 힘을 빌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연을 노래하는 이 책들이 어떠한 지점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한다. 작으나마 이 책들이 합리적인 삶을, 정의로운 질서를 사람들과 싸우지 않는 세계를 만드는데 일조하길 바라며.  

2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한다는 지성 이사벨 아옌데가 쓴 《야수의 도시》(비룡소)는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밀림지대가 배경이다. 주인공은 소년 알렉스이다. 그는 열다섯 살이다. 그에게 이제 평범하고 안락한 삶은 없다. 주인공을 보살펴 주었던 안락한 공간, 즉 어머니라는 울타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설에서는 암투병중인 어머니의 치료 때문에 친할머니에게로 보내졌고 괴짜 할머니와 함께 아마존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설정은 소년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가기위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 소년은 모험의 끝자락에서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생명의 물’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데, ‘떠남’에서 ‘돌아올’ 때에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받는 것에 익숙한 유년의 시절이 아닌,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소년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존에서 소년은 나디아라는 소녀를 만난다. 안내인의 딸로 원주민과 친하고 동물과도 교감을 가지는 신비한 소녀다. 주인공 소년이 모험을 떠나게 될 때 중요한 동조자의 역할을 한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소녀는 위험한 순간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지혜로움까지 겸비했다. 그들이 함께 가는 탐험대원 중에는 안개족이라고 불리는 원주민들을 없애고 그 땅을 차지하려는 외지인들이 있었다. 알레스와 나디아는 그들의 음모를 예감하고 파헤쳐나간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순수한 땅을 지키려는 알레스와 나디아의 모험은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지키려는 노력과 닿아있다. 이러한 점이 이 소설을 단순한 환경모험 소설에 성장 소설의 요소를 지니게 하여 재미를 증폭시킨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사이에 있는 아마존! 황금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 아마존은 어찌 보면 슬픔을 간직한 신비로운 장소이다. 태초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야수들이 살고 있는 미지의 땅. 작가는 아이들을 아마존 한 복판으로 데려가 마술적 힘이 느껴지는 자연과 만나게 한다. 전 지구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심각한 소비문화에 빠져있는 지금, 작가는 그 정반대의 세계에서 아이들을 헤매게 하는 것이다.
  소비문화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자꾸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한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배우들처럼 나도 날씬하게 혹은 예쁘게……그리고 좀더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자신의 것이 소중하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생태주의가 추구하는 본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지역을 이해하고 그 지역의 공동체를 존중하며 지켜나가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탐험과 모험의 의미가 아닌, 자연스럽게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야수의 도시에서 알렉스와 나디아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나디아는 꿈속에서 보았던 세 개의 알을 원하는데 후에 그 알은 다이아몬드로 밝혀져 환경보호 운동의 재원으로 쓰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자칫 상투적인 모험소설로 전락할 소지가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디아가 그것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의 모험을 한 것이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고 난 다음에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는 ‘생명의 물’ 또한 같은 과정으로 얻은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우리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지친 우리를 쉬게끔 하는 역할도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무엇일까? 그 자연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지켜나가는 것, 정성을 다해 생각하는 것, 자연과 친구가 되는 것, 아니, 어쩌면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아주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소년은 모험을 통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았다. 진정으로 환경을 걱정하는 성숙한 소년이 되었다. 소년의 인식의 변화는 아이들에게 그저 흥미로운 사건으로 치부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 소설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는 모험적 요소도 있지만 태초의 아름다움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절로 사랑하게 만드는 힘, 아이들을 변화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바라본 대로 보지 않는 것, 즉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문학작품의 매력이다. ‘슬프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는데 슬픔을 감지하고 눈물짓게 만드는 것도 문학의 매력이다. 위에서 바라보지 않고 옆에서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 완전히 ‘연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연어》(문학동네)의 작가 안도현은 말한다. 거기에다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보게 하는 힘이 있다나.
《연어》의 작가 안도현은 시인이다. 그래서인지 《연어》는 치열하지만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가 있다. 상상력이 고갈되어 삭막하게 살고 있는 어른들을 위해 쓴 동화인가보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정말로, (작가의 말대로) 강물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강물’을 상상하며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와 함께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연어들은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도 그러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그러하다.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도 닮아있다. 작가는 연어의 삶을 인간의 삶과 비교하고 있다. ‘고통’을 통해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하고 ‘시험’을 당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통과 시험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내야만 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연어’와 ‘자연’이라는 것을 매개로 풀어 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환경을 이야기하면 도식적이고 성의 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사이가 없는 아이들은 그저 대상으로서만 자연을 생각한다.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학습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아이들, 글 속에서만 존재하는 환경보호의 필요성들, 몇 가지 실천사항으로만 존재하는 자연사랑들은 공허한 느낌만을 준다. 그래서 어쩌면 동화나 소설에서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좀 더 효과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어들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때 많은 위험이 따랐다. 그러면서 연어들은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들은 느낀다. 강물과 땅이 두개가 아님을. 인간과 연어가 적이 아님을 결국은 같이 살아가야할 공동체임을, 함께 살아가야할 세상임을 느낀다. 이 점을 아이들도 느낀다. 가슴 밑바닥 묵직한 감동을 느끼며 선한 아이들이 되어간다.

4

  청소년 문학에서 생태주의의 표출은 아이들의 ‘성장’과 관계가 깊다. 아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안락한 곳을 떠나 거친 자연에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해나간다. 그러면서 자연존중에 대한 사상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된다. 위의 두 소설은 형태는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다.
  생태주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국작품은 많다. 하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 창작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최근에야 우리 작가들이 다양한 형태의 청소년 소설들을 내 놓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의 영혼을 정화하고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자라나게 하는 것은 문학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게 만드는 부모나 교사가 필요하다. 몸을 움직여 마음의 스트레스를 없애려는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감동을 선사하여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만드는 문학의 힘도 필요하다.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통해 아이들은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자연과 접할 것이고 그 의미들을 새겨나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다양한, 좀 더 풍성한 우리 작품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