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경 희

     
  사람들이 저지르는 전쟁과 파괴의 정도가 심해지는 만큼 인류의 희망을 ‘환경과 생태보존’에서 찾으려는 노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런 기류는 어린이책 속으로도 퍼져 들어와  ‘자연, 환경, 생명’을 다룬 동화들이 주목받게 되었고, ‘생태동화’란 말로 묶어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생태에 대한 지식만 드러낸 억지 동화들이 벌창하게 되었고 그 틈에서 좋은 생태동화를 가려내는 일도 필요해졌다.  

  자연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거의 모든 동화 속에 깔려있다. 하지만 범위를 좁혀서 요즘 말하는 생태동화들의 특성을 기준 삼았을 때, 우리 창작동화 중에서 손춘익의 《도도새와 카바리아 나무》는 ‘생태동화’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생태론적 관점에서 씌어진 ‘생태동화’라고 할 수 있다.
  《도도새와 카바리아 나무》는 1994년에 출판된 책인데 여기 실린 단편 동화들는 자연을 망가뜨리면 인류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걱정하는 이야기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존중받는 모습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1. 자연이 슬프면 우리의 미래도 슬프다.

  <도도새와 카바리아 나무>
  카바리아 나무 숲에는 도도새가 평화롭게 떼를 지어 살고, 숲과 강에서 먹을 것을 얻으면서 어머니와 같은 땅을 지키며 사는 인디오 마을에 침략자들이 들이닥친다. 침략자들은 총과 칼을 휘두르면서 인디오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약탈한다.
  그들 눈에는 도도새도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보였기 때문데 조롱 속에 가둬서 기르려고 했지만 갇힌 도도새들은 울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죽어갔다. 화가 난 그들은 도도새를 모조리 죽여 박제로 만들려고 했다.
  스모호 추장은 이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든 도도새와 카바리아 나무를 살리려고 온 숲을 헤매고 다녔고 드디어 카바리아 나무 한 그루와 도도새 한 쌍을 발견했다. 그 후 스모호 추장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1992년 스모호 추장이 살았던 그 땅, 리우에서 열린 세계환경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한 그루의 카바리아 나무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스모호 추장의 글을 카바리아 나무 껍질에서 읽을 수 있었다.

…… 이 카바리아 나무가 끝내 살아남지 못한다면 지구는 머잖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스모호 추장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면서 자연을 지켜내고 있다. 위험하고 절망적인 인간의 파괴성 속에서도 살아남은 한 그루의 카바리아 나무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스모호 추장의 따끔한 꾸짖음을 받아들여 계속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침략을 멈추고 우리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간다면 리우에 있는  한 그루의 카바리아 나무 위로 다시 도도새가 날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얀 무지개>
 
 낮잠을 즐기던 하느님은 무지개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들이 무지개의 색깔이 “빨주노초파남보!”라며 외쳐대는 바람에 잠을 깬다. 아이들에게 무지개를 보여주고 싶어서 별안간 소나기를 뿌려보지만 일곱 색깔의 고운 무지개는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 때문에 순식간에 빛을 잃고 만다.
  늘어나는 공장 수만큼 고운 아이들의 꿈도 색깔을 잃어 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작가의 한숨이 묻어나오고 있다.

   <하느님의 눈물>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여기에 미국, 영국, 프랑스가 힘을 보태서 전쟁이 더 커지고 이라크는 쿠웨이트의 유전을 파괴하는 바람에 걸프 만이 온통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인 ‘걸프 전쟁’ 이야기다.
  하느님은 가여운 갈매기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온 몸이 기름 범벅이 된 갈매기를 보면서 하느님은 눈물을 흘릴 뿐이다.
  하느님은 제멋대로 땅을 파헤치고 바다와 강을 마구 오염시키고  함부로 짐승을 죽이고 숲을 베는 사람들에게 야단을 친다.

 “들어라 ! 내 일찍이 지구를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낙원이 되게 했는데도 어찌하여 밤낮 몸살을 앓게 하는가. 이러다간 끝내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는 것을 모르는가? 더 늦기 전에 제발 정신을 차리렷다 ! 어흠 ! 어흠…….”

  하지만  하느님이 야단치는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핵 실험을 하느라 버섯꼴 구름이 일어나고 화가 난 하느님은 채찍을 휘둘러 번개를 일으켰다.
 그래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존층까지 파괴 시켰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해서 지구를 살리려고 할 수 없이 토끼들이 모여 사는 섬 하늘의 오존층에 구멍을 뚫고 만다. 아무 것도 모르고 풀을 뜯던 토끼들은 태양열 때문에 모두 장님이 된다.
   <하얀 무지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내세워 제발 그러지 말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나타내고, 하느님의 노여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 소극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님이 된 토끼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자연재해나 생태계가 보존되지 못해 생기는 여러 질병 때문에 고통 받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창조의 힘이 재앙의 힘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경고의 사이렌을 계속 듣고 있으면서도 자연을 약탈해서 욕심을 채워나가고 있다.

2.  나무도, 동물도 마음이 있다.

  <그 마을의 부자 소나무>
 
 한 농부가 보살핀 소나무가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낙락장송이 되었다. 나무의 그늘 품에서 자란 부지런한 농부가 자신의 재산을 ‘송석천’에게 남기고 죽었다. ‘송석천’은 바로 이 소나무의 이름이고 마을 사람들은 농부가 ‘송석천’에게 남긴 땅에서 거둔 곡물을 팔아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긴 세월 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나무의 일생을 사람과 맺어진 관계 속에서 일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이야기 속에서 흐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으며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숲 속 다람쥐의 옛집>
 
 상처 입은 아기 다람쥐를 데려다가 어미 고양이 젖을 물려 키운 사냥꾼 할아버지는 다람쥐가 다 자라자 섭섭한 마음을 누르고 다시 숲으로 다람쥐를 보낸다. 할아버지 기억에서 다람쥐가 사라져 갈 즈음, 다람쥐가 다시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너무 반가와 다람쥐를 어루만지지만 다람쥐는 할아버지 손을 꽉 깨문다. 이것이 사람쥐가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상처를 보면서도 기쁘다.
  이 이야기는 사람이 준 사랑을 기억하는 동물의 이야기다.
  고양이 젖을 먹고 자라는 다람쥐의 모습과 다시 찾아와서 할아버지 손을 물고 달아나는 다람쥐 모습이 재미있고 다람쥐답다.

  <아파트 단지를 떠난 샘이네>
 
 절름발이 강아지, 콩콩이를 길에서 주어다가 기른 샘이네는 콩콩이 때문에 난처해진다. 콩콩이가 짖어대는 바람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불평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샘이네는 콩콩이를 마음 놓고 기를 수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간다.
  도시 생활과 소가족 단위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아파트에서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편하게 키우려고 짖지 못하게 하는 수술과 번식을 막는 수술도 해준다. 개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사람 편한대로 개에게서 본성을 빼앗고 있다. 이사가는 샘이네를 보면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다른 생명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부와 들개>
 
 보릿짚 안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던 들개를 발견한 최 노인은 아무도 몰래 들개를 돌본다. 하지만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은 들개가 죽고 만다. 최 노인은 어미를 잃은 새끼들을 집에 데려와  어느 정도 키워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어미를 꼭 닮은 검둥이 한 마리는  남겨둔다. 
  들개가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대견해 하면서도 들개의 본성을 건드리지 않고 도와주려는 최 노인의 모습에서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바다로 간 고양이>
 
 쥐를 잡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배에 갇힌 꼴이 된 고양이 이야기다.
  고양이가 배에 탄 것을 안 어부들은 재수가 없을까봐 걱정하지만 오히려 청어 떼가 몰려오자  고양이에게 청어 한 마리를 던져준다.
  사람들이 미워하는 쥐도, 도둑고양이도 사실은 사람이 자연에서 얻는 것을 함께 얻으면서 살 권리가 있는 당당한 생명이란 생각이 든다.

  《도도새와 카바리아 나무》에 실린 자연과 동식물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 생태론적 관점이 분명하게 보이는 작품을 골라 소개해 보았다. 간단하게 소개한 줄거리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작가는 늘 따뜻한 눈으로 모든 생명을 바라보고 있다. 위에서 말한 소나무, 개, 고양이와 소개하지 않은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게, 송아지, 염소, 노루, 질경이 등이 모두 사람과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다른 생명이 ‘나’를 위해 존재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제대로 대접해 주는 것이 ‘생태주의’가 아닐까.
  상처투성이 지구를 보는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이 이야기 밖으로 심하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인물들의 행동이 과장되었거나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동화들 속에서 곧게 이어져 흐르고 있는 작가의 생각은 소중하다.
  손춘익은 울창한 카바리아 나무숲의 냄새가 오존층에 뚫린 구멍을 막아내고 한가롭게 알을 품은 도도새 무리의 울음소리가 전쟁의 총소리를 대신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윤 경 희
64년 생.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어린이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어린이 책 속에 빠져 살면서도 아이들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아이 마음을 다치게 하는 엄마지만, 동화를 읽으면서 흩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