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진 원
 

  1.

 "우리 아이가 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자연관찰 책을 사주려고 하는데 어떤 책이 좋을까요?"

  3-5세쯤의 아이가 있는 엄마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자연관찰 책에 대한 고민이다.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이 또래 아이들에게 자연관찰 책이 마치 필독서처럼 여겨지곤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가 자연관찰 책을 봐야 할 시기인데, 아이가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어오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그런데 아이가 이보다 조금 더 크고 나면 어느 순간, 이런 고민을 하는 엄마들은 사라지고 만다. 빠르면 7-8세 무렵만 되면 이런 질문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아이가 3학년 이상이 도고 나면 자연관찰 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는 거의 사라진다. 더 이상 자연관찰 책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의 걱정거리가 되고 만다. 아니, 엄마만이 아니다. 어려서는 동물에 대해, 자연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갖고 많은 책을 봤다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 관심이 사라지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동안 봐 왔던 자연관찰 책, 자연과학동화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여기서는 유아용 그림책에서 자연이 어떤 식으로 보여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자연은 사물 그림책이다. 사물 그림책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그림책의 하나다. 사물 그림책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익숙한 사물의 이름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동물이나 나무, 꽃 등 자연은 그 사물 그림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을 보면서 바로 자연의 한 부분과 만남을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사물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건 어떤 걸까? 아무래도 사물 그림책의 특성상 아이들과 친근한 자연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식물 가운데는 주로 과일을 비롯한 먹을 것이 중심이 되고, 동물들은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과 호랑이나 기린 같이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 위험성이 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동물이 사람들 손에 의해 다듬어지고 꾸며진 예쁜 모습이거나 혹은 늘 우리 속에 갇혀서 사람의 볼거리로 여겨지는 동물원 속의 동물들로만 여겨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귀엽고 깜찍하게만 그려진 동물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동물에 대한 획일적인 이미지를 주기도 한다. 또 때로는 아이들이 실제 동물의 모습과 책 속의 동물을 제대로 연결을 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사물 그림책을 주로 보는 1-2세의 아이들이 사물을 인지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아이의 수준에서 가장 큰 특징을 찾아내서 동물과 일치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책으로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구분하던 아이라도 실제로 보게 되는 건 강아지가 많기 때문에 네 발을 갖고 있는 비슷한 몸집의 동물은 다 강아지라고 여긴다. 그래서 고양이가 지나가도 역시 강아지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두 발에 날개를 갖고 있는 동물은 모두 그냥 '새'라고만 여길 뿐이다. 혹은 그 새의 이름이 자기가 봤던 새인 '까치'라면 아이들은 모든 새는 다 까치라고 여기게끔 된다. 이처럼 아이들은 자기가 처음 사물에 대해서 인식했던 그 사물의 특징을 중심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이 범주에 들어오는 사물은 모두 같은 거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사물의 특징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난 뒤에야 자기가 같은 범주에 넣었던 사물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다른 사물로 인식하곤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을 데리고 책에서 본 동물을 보여주기 위해 동물원에 가도 아이들은 동물을 볼 수가 없다. 철창과 철조망 속의 갇힌 동물은 보지 못하고 뭘 봐야할지 몰라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사물 책에서 본 동물들에게 생명이 있고 없음을 가리기란 불가능하다. 아이들에게 이들 동물은 움직일 수 있는 장난감처럼 여겨질 뿐이다. 마치 장난감 강아지가 멍멍 짖고 재주를 넘듯이, 이들 동물도 자기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처럼 여겨지곤 한다. 특히 아이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이 대개는 강아지 같은 애완동물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갖고 놀 듯이 애완동물을 대한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내던지고 만다. 모든 것이 사람이 보기에 예쁘게만 꾸며진 까닭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만다.

  3.

  자연을 담고 있는 많은 유아용 그림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1-5세트'(이태수 외 그림/보리)다. 사물 그림책에 이야기 그림책이 합쳐졌다고나 할까? 때문에 일반 사물 그림책보다는 대상 연령이 조금 높은 2-3세 정도의 아이들에게 적당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 면에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오른쪽 면에서는 여기에 등장하는 대상을 세밀화로 보여준다.
  이 책의 1권 《어디 숨었지》를 보자.

"개구리 한 마리 어디 갔지?"
"보리에 숨었지, 개굴."
 "개구리 또 한 마리 어디 갔지?"
"밀에 숨었지, 개굴."

  처음 일곱 마리였던 개구리는 뱀을 보고 도망치는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마리씩 보리, 밀, 옥수수, 조, 콩, 벼, 수수에 숨고 뱀은 결국 개구리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개구리가 숨을 때마다 오른쪽 면에 세밀화로 보리, 밀, 옥수수, 조, 콩, 벼, 수수를 보여준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낯설기도 하고 잘 구분이 안 되기도 하지만 이야기 구조 속에 빠져들면서 사물의 특징을 익히게 한다. 이 세밀화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특징을 잡아내 캐릭터처럼 만들어낸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에 아이들은 실제로 보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속에서 스스로 그 특징을 잡아서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이 책에 곡식이나 채소, 과일, 나무, 새, 꽃, 곤충, 동물, 물고기가 모두 이 땅에서 자라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대개 이 시기에 아이들이 보는 책 속의 자연들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애완동물이거나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도 우리와는 거리가 먼 나라의 동물인 코끼리, 기린, 사자로 채워지는 게 보통이었다. 이런 문제는 본격적인 자연관찰 책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 아닌, 동물원에 갇힌 동물, 동물의 세계 같은 외국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과 익숙해지는 건 아무래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동물(자연)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동물원의 동물처럼 갇혀 있는 자연을 떠올린다. 동물원의 동물, 정원에 있는 꽃과 나무……, 그리고 이런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관심조차 갖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자연이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 혹은 아프리카 초원, 정글을 떠올린다. 결국 자연이란 막연한 관념의 대상이 되고 만다.

  비슷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책으로 '뭐야 뭐야? - 동물', '뭐야 뭐야? 식물'(2004, 사계절)을 들 수 있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이 생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대상을 보여준다면, 이 책은 대상의 특징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뭐야 뭐야? - 동물' 가운데 《누구 소리지》(신혜은 글/김재홍 그림)을 보자.

멍멍 누구 소리지?
털은 복술복술, 코는 킁킁 개

야-옹 누구 소리지?
반짝이는 눈, 날카로운 발톱 고양이

  왼쪽 면에는  "** 누구 소리지?" 하는 글과 함께 동물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오른쪽 면에서는 특징과 이름을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세트 가운데는 '동물원에서 보는 동물' 편인 《엄마처럼 할 거야》(차보금 글/조광현 그림)이 따로 있는데 그래도 동물을 철창 속에 가둬두지 않고 자연 속에서의 모습을 그려내려 한 점은 눈에 띈다.
  마찬가지로 '뭐야 뭐야? - 식물'편은 대상을 좀더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들레
민들레랑 놀까?
하얀 솜털 후-불어봐.
훨훨 멀리 날아가.

  《풀꽃 안녕》(신혜은 글/정유정 그림)은 풀꽃의 모습과 함께 풀꽃과 노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한번 먹어볼까》(정해왕 글/정유정 그림)와 《우리 함께 길러요》(차보금 글/정유정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과 곡식을 우리가 흔히 보는 모습과 함께 여러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식물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4.

  하지만 4-7세가 되면 엄마들은 이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자연 관찰 책을 선호하곤 한다.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동물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이름과  그 특징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시기이다. "저게 뭐야?"라는 질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왜 그런데?"라고 질문을 하는 시기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지금까지 그림책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동물이나 식물에 관심을 갖는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생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이 시기, 이런 자연관찰 책에 푹 빠져들기도 한다. 4-5살 아이들 가운데는 종종 백과사전류까지 꼼꼼하게 보면서 이름과 특징을 외우는 경우도 있다. 어른들은 아이가 이렇게 외우는 걸 신통하게 여겨서 칭찬을 하고 아이는 칭찬을 받고 싶어 더더욱 책에 몰두하곤 한다.
  반면 아이가 자연관찰 책에 관심이 없으면 엄마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자연관찰 책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될까요?"
   하는 질문이 나오는 건 그 때문일 거다. 그런데 가만 보면 어른들의 관심은 '자연관찰 책'이지 결코 '자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새로 구입한 자연관찰 책을 잘 보지 않으면 해결 방법으로 또 다른 자연관찰 책을 대안으로 생각한다. 자연관찰 책은 자연을 알아가기 위한 접근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을 하나의 지식으로 익혀나가는 도구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