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중 철


1.

  아주 아주 큰 도시 서울에서는 온갖 물건들이 가득하다. 냉장고며 에어컨이며 핸드폰이며 컴퓨터며 생활에 필요하다고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무수하고, 길거리에는 수많은 차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의 삶이 이전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추위도 잊고 더위도 잊고, 손가락 하나만 누르면 온갖 영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매우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물건들을 소유할 수 있는 여력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걸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상실감이 들 것이고, 오로지 삶의 목표란 이런 물건을 살 수 있는 돈만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도 빈부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갈등이 심해지게 된다. 소유의 균형이 심하게 어긋나면 날수록 관계는 깨지게 되고,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그 누구도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사회가 불안해지고, 또한 사람들의 삶 또한 편리함보다는 또다른 불안감에 떨지도 모른다. 사람의 역사는 이런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한 사회는 그 틀이 굳건한 건 같지만,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심하게 깨어질 때면 늘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의 삶 역시 불안한 것은 이런 관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학 기술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려면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차피 자연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자연을 대상으로 보고, 그것을 사람의 삶만을 위해 쓰다 보니 자연자원이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거니와, 또한 과학 기술의 만든 물건들이 쏟아내는 온갖 공해 물질들이 사람이 사는 이 지구 공간에 가득하게 되었다. 자연 자원의 고갈이, 예를 들어 석유 문제 때문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게 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을 높일 수밖에 없게 되고, 환경 파괴는 사람들이 다른 생명체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이제 사람의 삶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사람의 삶은 있는 삶이든 없는 사람이든 모두 다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고, 결국 사람의 종 자체도 자칫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아무튼 이런 문제 때문에 생태계라는 측면이 관심을 끌게 되었는데, 어린이 책에서는 문제가 그리 쉽지 않다. 아직 어떤 책이 생태책인가 하는 개념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사전적 의미로 보아 폭넓게 쓰고자 한다. 생태학을 “생물의 생활 상태 및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부문“(<새우리말 사전>, 신기철, 신용철 편저, 삼성출판사)으로 볼 때, 생태책을 과학책의 한 분야로, ‘생물의 생활 상태’나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다룬 책을 말하고자 한다.

  요즘 들어 어린이 과학 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생태학을 찾기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과학 책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듯이, 아직은 과학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안에서 과학이 밝힌 여러 사실들을 알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고 봐야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이라는 측면에서 ‘생물의 생활 상태’만을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이는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만을 중심으로 너무 자세하게 그리고 너무나 지엽적인 문제이거나 특수한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경향이 심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책들이 그렇다. 이제 과학 책이 더 다양하게 나오면서 그 가운데는 생태책에 가까운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 글에서는 자연을 다룬 책 몇 권을 중심으로 서술자의 시점에 따라 어떻게 생태를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 한다.

2.

  과학 책에서는 대부분 삼인칭 서술자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학 책에서 다루는 사실을 아이들이 모른다는 걸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과학이란 ‘어떻게’와 ‘왜’를 답해야 하는 것이므로 논리성을 전제로 글을 풀어 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인칭 서술자라 하더라도 그 시점은 제각기 다른 경우가 있는데, 먼저 전지 전능한 서술자의 관점에서 쓴 글을 살펴보면, 이는 대부분 동화 형식을 따른다. 여러 개체를 다룰 때 이 개체들의 행동을 보고 이를 객관으로 표현하기 좋은 형식이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에게 좀더 친근하고 쉽게 어떤 사실을 전달하기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적 사실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런 글은 객관으로 표현하여야 하기 때문에 딱딱해지기 쉽고, 사실을 나열했을 때 지루해지기 때문에 되도록 이런 문제를 피하고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쓴다.
   《갯벌이 좋아요》(유애로 글, 보림)는 과학 책이라기보다는 자연 책으로 보아야 하는데, 이 책은 과학 사실을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갯벌이라는 서식지 공간에서 뭇 생명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책으로 생태계 측면! 을 잘 보여 준 책이다.

말미잘을 업고 있는 게가 말했어요.
“헤헤헤. 말미잘에는 무서운 독이 있어서 이렇게 업고 다니면 아무도 공격하지 못해! 그 대신 말미잘이 좋아하는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주거든.”

  이렇게 어떤 사실을 대화로 끌어가는 방식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과학 사실을 많이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구체성이 떨어지고 마는 위험이 있다.  

  《물방울이 퐁퐁》(이미애 글, 대교출판)은 조금 다르다. 물방울이 수정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고, 다시 수정이를 만나고 싶은 꿈을 그리고 있는 동화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저지른 환경 오염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물의 순환이라는 과학 사실을 다룬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물의 순환을 과학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 글에서는 물방울이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인물과 이야기하면서 여러 사실들을 알려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글도 아이들에게 어떤 사실을 직접으로 드러내고 만다. 물방울이 각시붕어를 만나 듣는 말이다.

“정말이지 우리 물고기들에게는 깨끗한 물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물고기만 그런 게 아냐. 사람은 몸의 3분의 2가 물이야. 그런데 왜 물을 함부로 더럽히는지 모르겠어. 물은 돌고 돌아서 결국은 사람과 모든 생명들을 살아가게 하는 데 말야, 헤헤.”(23쪽)

  이 글은 이미 작가의 생각을 다 드러내고 있는데, 곧바로 그 의도를 대화에서 직접 드러내고 말았다. 또한 이런 동화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사람 중심의 생각이 손쉽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동백꽃과 동박새》(이미숙 글, 마루벌)에서도 동화 형식으로 의인법을 쓰고 있는데, 이 책의 서술자 시점은 전지 전능하기보다는 한 개체에 초점을 맞추는 글을 쓰고 있다. 동박새라는 개체의 생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특정한 인물을 바깥에서 객관으로 그리려다 보니까, 그만 다른 개체에 대해 편견을 드러내고 말았다.

동박새보다 몸집이 조금 큰 직박구리는 어두운 회갈색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동박새의 예쁜 노란 털을 부러워해요.

  이런 글은 밝은 색은 멋지고 어두운 색은 멋이 없다는 사람의 관점에서 나오는 발상인데, 왜 동박새는 밝은 색이고, 직박구리는 어두운 색인가 하는 과학적 사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동화 형식에서 나오는 결과이기도 하고 서술자의 관점을 특정한 개체에 맞추다 보니 다른 걸 배려하지 못해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 어떤 점을 더 고려해야 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동박새와 동백꽃과의 관계를 잘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충실히 담담하게 서술한 글은 동화 형식의 글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저기에서 진달래, 산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 동백꽃은 하나 둘 지기 시작’한다던가, ‘땅에 떨어진 동백꽃이 모두 없어질 때쯤 동백나무는 둥글고 윤기 나는 작은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는 글을 보면 구체성이 드러낸 좋은 글이라고 ! 생각한다. 이렇게 삼인칭 서술자의 객관으로 바라본 서술글이 구체성을 띄면 좋은 글이 된다.

  동화와 과학적 사실을 모두 다 만족시키는 글을 만나기란 어렵다. <갯벌이 좋아요>처럼 과학적 사실보다는 서식지 공간에서 여러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그리는 글이라든가, 아니면 과학적 사실을 충실히 다루는 책이 좋다.

3.

  과학적 사실을 다루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어떤 사실을 기반으로 사실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전해 주고자 하는 과학 책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자세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사실을 다루는 책들이 잡다한 지식을 나열하던 것에서 지식의 원리나 핵심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 역시 삼인칭 서술자의 시점을 택하고 있다.    
  한 개체를 다루는 책들은 대부분 제한된 시점을 지니고 있다. 그 개체만을 초점으로 잡아 글을 쓰고 있다. 서술글로만 이루어진 글 가운데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주 제한된 시점으로 다루는 글이다.

   ‘가까이 들여다 봐.’나 ‘이것 좀 봐’(《개구리가 알을 낳았어요》, 이성실 글, 다섯수레) 하는 말투가 그렇다. 이런 책은 그림책으로 그림으로 드러난 구체성을 글로 되풀이해 알려 주면서 사물을 좀더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과학은 사물을 관찰하는 것으로 출발하는데, 이런 글은 아이들에게 생생함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반면에 이런 글이 지닌 한계는 한 개체의 삶을 지나치게 좁게 가둘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서식지 공간인 논의 생태계를 보여 주려는 의도가 있었음에도 그런 관계가 잘 드러나지 못했다는 점은 바로 이런 서술자의 시점과 글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다룬 과학 책이 대부분 각 개체가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에 대한 관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한 개체의 환경에 대한 ‘적응’과 그 환경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전체 생태계의 관점을 놓치고 마는 한계가 있다. 개체를 다룬 다른 책들 역시 이런 한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은 결국 서술자의 시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만 개체를 다룬 책들이 지닌 장점은 뭐라고 해도 그 구체성에 있다.
 《네발 나비》(안은영 글, 그림, 돌베개어린이)나 《날아라, 호랑나비야》(권혁도 글 그림, 길벗어린이), 《개구리논으로 놀러오세요》(여정은 글, 돌베개어린이) 모두 구체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구체성이 주위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런 개체 책과 견주어, 원리를 담고 있는 책에서는 그 구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제한된 시점보다는 전지 전능한 서술자 시점에서 다루고 있는 원리 책들은 상투성이나 관념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  

마을이 없으면 사람들이 살 수 없듯이, 숲이 없으면 새나 곤충, 토끼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집을 지어 동물들이 집을 지을 곳이 없습니다. 새들은 숲이 없어져서 집 지을 재료를 구하지 못합니다. 불쌍한 새들은 전선과 나뭇젓가락으로 어설픈 집을 짓습니다.(《우리 집은 커다란 조개 껍데기》, 아이세움, 김동광 글)

  이 글에서는 비유적인 표현을 빌어서, 동물들이 숲이란 공간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조금 더 큰 공간에 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새들은 적자 생존의 틀과는 달리 사람이 숲이란 공간을 파괴하여 결국 새들 전체가 멸종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잘 다룬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큰 단위하고의 관계를 전제하는 글이 생태 책에 어울린다고 볼 수 있지만, 이는 또다른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는데, 이는 구체성의 상실을 들 수 있다. 어떤 새가 어떤 숲에서 살고, 그 숲이 사라질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자세히 보여 주어야 하는데, 일반성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런 글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어떤 새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이건 서술자의 관! 점에서 나오는 문제라기보다는 과학 책이 갖추어야 할 기본이 아닐까 싶다. 개체를 다룬 책이 풍부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데 견주어, 큰 관점에서 다룬 책들이 구체성을 상실하고 일반성에 머무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결국 상투성에 머물르게 되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얻게 하는 데 실패가 할 가능성이 높다.

  《죽은 나무가 다시 살아났어요》(김동광 글, 아이세움)는 이런 점에서 구체성을 어느 정도 획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죽은 나무 속에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식물들이 서로를 도와 가며 더불어 살아갑니다’란 일반성을 지닌 글이 있지만, 그 뒤로 ‘죽은 나무에 피어난 버섯을 먹고사는 작은 동물들은 버섯의 씨앗인 포자를 숲 이곳 저곳으로 퍼트려 주지요. 이들 작은 동물들은 숲에 사는 올빼미나 여우와 같은 육식 동물들의 먹이가 됩니다.’란 글로 이어지면서 구체성을 획득하여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글이 된다. 이렇게 해서 생명체들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고, 생태 책으로서의 전형을 갖추게 된다.

4.

  1인칭 서술은 독특하다. 이야기 책에서는 1인칭 서술이 자주 쓰이는데 견주어, 과학 책에서는 1인칭 서술이 별로 쓰이지 않는다. 이는 과학이란 객관을 다루는 걸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초점에 따라 과학을 풀어 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 책은 아이들이 알아 가야 할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1인칭 서술자의 장점은 주관적인 느낌을 강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런 점에서 이런 글은 대부분 동화 형식이다.

“나는 숨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나보다 몸집이 열 배나 큰 그 늑대거미도 말벌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뛰어나가 도와 주고 싶었지만 어린 나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되어 무척이나 부끄러웠지만 결국 나는 수풀 속에 숨어 눈만을 내놓은 채 그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열려라! 거미 나라》, 지성사, 임문순, 김승태 지음, 49쪽)

  이 글에서 보듯이 먹고 먹히는 관계를 드러내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내’가 보는 것이다. 이런 생생함을 살릴 수 있어서 1인칭 서술은 3인칭 서술이 지닌 딱딱함이나 일반성을 뛰어넘어 재미를 한껏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체가 지닌 한계는 결국 다른 이들의 말로 보충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어린 개체일수록 그 한계는 더 두드러지는데, 이 때문에 ‘나’보다 세상을 더 잘 아는 다른 개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서 돌아가. 여기는 살 만한 곳이 못 돼. 길을 건널 때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철상자들을 조심해. 그 철상자는 네 개의 동그라미를 가지고 움직이는데 깔리면 죽어. 그리고 이곳은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어. 또 인간들이 얼마나 사나운지 우리 같은 거미의 그물을 보면 빗자루로 사정없이 쓸어버려. 더럽다나 뭐라나.”(위 책, 107-108쪽)

  이렇게 다른 개체의 말을 빌어 표현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전체로 보아 주인공 거미가 긴 여행을 하면서 직접 보고 듣는 걸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때문에 거미의 삶을 생생히 볼 수 있고, 인간의 눈이 아닌 거미의 눈으로 사물을 새롭게 보고 있다. 거미의 삶을 사람의 일생과 비슷하게 보려는 인간 중심의 생각이 담겨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거미의 눈으로 생명의 모습을 잘 풀어낸 생태 책이라 할 만하다.

  《바다로 간 큰밀잠자리》(김용택 글, 푸른숲) 역시 1인칭 시점의 서술 글로, 《열려라! 거미 나라》와 비슷한 구성의 책이다. 큰밀 잠자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그리면서 이 잠자리가 물이라는 서식지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뒷부분에서 암잠자리를 만나면서 대화 글을 넣고 있긴 하지만, 글의 대부분은 서술글이다. 끝까지 서술 글로 썼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서술 글이 생생감을 전달하는 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둠을 도와 세 시간 동안 조심조심 조금씩조금씩 수초를 타고 물 위로 오르는 거야. 고개를 내밀면 물 밖인데,…… 아, 어지럽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막힌다. 용기를 내어 물 위로 얼굴을 내밀어 볼까. 아니야. 큰 일이 날 것만 같아. 숨이 멎을지도 몰라.(26쪽)

  이런 글은 생생함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이 책이 과학 책이라기보다는 문학의 냄새를 한껏 풍기는 까닭은 이런 글에 있다. 하지만 이 글은 ‘물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듯이, 물이라는 서식지 공간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그만 구체성을 잃고 말았다. 바깥에서 보는 서술자의 시점으로 시점이 옮겨간 탓이라고 봐야겠다.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면서도 물을 바라보는 처지는 3인칭 서술자의 시점을 택하고 있는 듯하다. 물이라는 서식지 공간이 큰밀잠자리와 구체성을 갖고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만 높이 떠올라 날아다니면서 감상하는 듯한 느낌의 글로는 1인칭 시점의 효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글은 1인칭 시점의 장점을 살려내지는 못하고 말았다. 잠자리의 생태를 ‘나’의 처지에서 느끼는 감정은 충실한데도, 물이라는 큰 틀을 설명하는 데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5.

  지금까지 서술자의 시점으로 여러 권의 책을 견주어 보았다. 이외에도 여러 시점에서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책이 있긴 하겠지만, 시점으로 보아 이런 것들이 주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들은 그 범위가 아주 다양하다. 동화에서 과학 책, 아니면 문학적 향기를 지닌 책까지 그 범위가 아주 넓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을 내 본다면, 개체의 삶을 충실하게 보여 주면서도 다른 개체와의 관계를 생태계와 자연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그동안 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여러 자연의 비밀을 서술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과학 책을 충실히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나치게 과학 책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큰 틀에서 어떻게 생명체들이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런 책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구체성을 잃어버린 동화 형식이라든가, 관념적인 일반성을 직접 드러내는 글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