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미   자


  우리 작가가 쓴 우리나라 생태 이야기들
  
작가 이상권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거기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얘기를 풀어가는 좋은 재주까지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는 자연을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당연히 느끼며 살아온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책 속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사실 그가  뛰어놀며 만났던 산과 강, 그 속에 있던 동물들, 곤충, 풀들은 그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라면, 특히 시골에서 자람 사람들에게는 정도만 다를 뿐 충분히 겪었음직한 이야기들이다. 혹시 아이가 읽고 있는 이상권의 책을 옆에서 보던 엄마, 아버지들이 보게 된다면 훨씬 더 신이 나 읽게 되는 이유이다.  책 속에는 부모 세대들의 추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놀이, 보았던 동물, 곤충들이 나온다, 게다가 된장, 고추장, 똥파리, 구더기, 똥먹는 개 .... 이런 것을 얘기로 해도 되는가 하고 주춤거리며 자신 없었던 어른들에게 우리 것이 이렇게도 재미난 얘기가 되어 아이들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과 대응하는 동물
  
이상권은 1997년 12월에 처음으로 ‘생태동화’라고 하여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창비)를 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책 속에 나오는 문태 형 이라는 인물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만큼 그 책 속에서 문태 형과 족제비의 대결이 치열하게 묘사되었다. 작가가 어린시절의 사실을 근거로 했다고 하니 독자는 맘대로 책 내용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으로 작가는 특별한 자신의 경험을 끈질기게 더듬으며 생생하게 글로 옮겨놓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야생 동물들이 얼마나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지를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읽고 나면 갖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족제비와 싸우다가 끝내는 자기가 키우던 진돗개까지 죽게 만드는 문태 형이나, 먹이를 찾아 방에 들어온 쥐 한 마리를 40일이 넘도록 괴롭히는 시우의 행동이 훨씬 강하게 기억된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떨까? 인간에게 시달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야생 동물편이 되었을까? 혹시 ‘긴꼬리 들쥐에 대한 추억’을 읽으면서 아이들도 쥐 한 마리 있다면 방에 가두어 놓고 이것 저것 시우처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게다가 책 속에서 시우의 어머니나 할머니까지도 나서서 시우의 쥐잡기 작전을 돕는다.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에 나오는 해남 할아버지, <두 발로 걷는 족제비>의 할머니는 삶의 오랜 경험만큼 자연을 바라보고 예언하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그 무모한 전쟁을 막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나산강 물귀신 소동’에서 수달을 잡으려는 사람들과 그들 편에 서있는 경찰을 말 한 마디로 꼼짝 못하게 만든 사람은 해남 할아버지도 아니고 수달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우도 아니었다. 방학을 이용해 광주에서 올라온 대학생 사촌형이었다.
  아직도 나산강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수달, 40일 동안 방에서 학대를 받다가 간신히 도망간 긴꼬리들쥐, 문태형 때문에 죽은 진돗개와 족제비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동화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세상을 멀리 내다보고 계신 어르신들이 좀 더 나서 주었더라면 일이 그렇게 까지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인간과 조화로운 동물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속에 있는 <고양이가 키운 다람쥐>에서는 할머니의 역할이 도드라져 보인다. 야생 다람쥐를 데려다 키울 수 밖에 없는 할머니의 외로움, 생명을 거두는 정성어린 손길, 그리고 야성을 잃어가는 다람쥐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할머니의 힘든 결심이 보인다. 이 과정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죽어가는 지도 알게 된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이 책 속에 들어있는 여섯 개 이야기 중에 자연에게 사람 손이 가장 적게 미치면서도 가장 큰 결과를 얻어낸 이야기다. 사람이 한 일이라면 큰 웅덩이를 파 가운데 섬이 있는 연못을 만들고 집오리 네 마리를 사다가 풀어놓은 것이다. 나머지는 저희 오리들 스스로 해나갔다. 결국 네 마리 중에 세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남은 오리 한 마리가 다시 일곱 마리 로 늘어난다. 이렇게 끊어질 듯하며 또 이어가는 집오리의 험난한 삶의 과정을 더 가까이 가서 간섭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 양갑수 아저씨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남아있다.
  《똥이 어디로 갔을까》(창비)는 앞서 나온 동화와는 차별이 있다. 딸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눈을 맞추며 얘기를 들려주는 사랑스런 아빠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얘기가 순전히 똥, 방귀, 똥개, 똥항아리, 똥술...처럼 똥이 들어간 얘기다. 어른들은 ‘이런 얘기를 책으로 써도 되는 건가’ 갸웃거리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 이야기에 빠져든다. 똥이란 것이 원래 우리네 삶에서 이름 지어 부르는 것에서부터 먹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것들과 이어져 있다보니 이야기는 끝이 없다.
  특별히 개체를 하나씩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자연의 순리를 그냥 덤으로 알게 된다. 수세식 화장실 덕분에 자기 몸에서 나온 똥을 잠깐이라도 바라보기 거북해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나마 똥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워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더럽다고 생각되는 똥을 약으로 쓰는 할머니나, 귀한 똥을 남의 밭에다 누고 온 손자를 부짓갱이로 혼내시는 할머니의 행동에 설사 과장이 있다고 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이 이야기들 속에는 노인들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든든하게 서있고 아이들은 그분들의 품 안에서 자라난다. 자기들 엉덩이 똥까지 핥아먹으면서 친하게 지내던 개를 어른들이 잡아먹는 것을 보고는 아이들은 더 이상 개에게 똥을 내주지 않는다. 노인과 아이들이 자연에, 생명에 한결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관찰의 대상, 곤충  
   
작가 이상권은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면서 자연 한 귀퉁이에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에 도봉산 자락에서 텃밭을 일구며 산다고 한다. 그의 글의 소재가 동물에서 곤충이나 벌레들로 바뀌게 된 것은 시간으로나 환경으로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생명 있는 것들 중에서 아직까지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곤충과 벌레들이다. 작가는 그것들을 살피고 기록하는 데도 변함없는 공을 들여 2004년 봄에 곤충기 시리즈를 세 권 냈다. 이 책은 파리나 쉬파리처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들을 아이들이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새롭게 발견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런 곤충들과 얽힌 우리네 삶의 얘기도 여지없이 풀어내었다

 

지금 부모들 세대는 ‘곤충’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파브르 곤충기’를 읽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의 억압이 있다.파브르가 관찰했던 곤충이나 벌레들은 분명히 파브르가 살았던 땅 프랑스에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작가가 쉬운 말로 우리의 곤충, 벌레들을 얘기해준다. 우리 나라에 있는 산, 강, 우리가 먹는 된장, 고추장, 우리 들판에 뛰놀던 아이들을 예로 들어 곤충을 설명하니 우선 쉬워서 좋다. 작가가 어린시절 논바닥에서 모쟁이를 하며 보았던 거미, 참새를 잡기 위해 동네 어른들이 쳐 놓았던 그물을 들어 거미줄을 얘기한다. 여기서도 역시 작가의 어린시절이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자신의 제한된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보니 지식의 잣대로 보면 의심이 가는 부분, 분명치 않게 답을 낸 것도 없지는 않다. 다양하고 엉뚱한 아이들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아저씨, 식물도 아닌 거미 새끼들이 어떻게 태양 에너지를 먹어요?
그건 나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아주 많잖아. 우리는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단다. 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들에게도 영원한 비밀일 뿐이야

나는 아직까지 낮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본 적이 없어.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때가 가장 일을 하기 좋은 거야, 아무래도 여름에는 한낮이 무더우니까 일을 하기에는 쉽지 않겠지

  곤충의 생태를 다룬 어린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곤충을 알아가기도 하고 새로운 호기심을 만들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작가가 곤충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 욕심을 내자면 “생태”라는 것은 문학보다 과학 쪽에 더 무게 중심이 가 있다. 곤충의 생태를 다룬 책의 내용은 무엇보다 정확해야한다. 작가는 지금 우리가 서있는 시점까지 밝혀진 생태계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주고 아직 모르는 것, 더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아이들에게 과제로 주어야 한다. 책을 읽는 아이들이 스스로 다양한 호기심을 쫓던 끝에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내도록 자극하는 것도 어린이 생태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
  생태에 관한 책에는 ‘무릇 생명 있는 것은 다 귀한 것이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굳이 말하면 자연 속에서 하나 하나 들여다보아 가치없는 것이 없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알고 나면 그 만큼 애정이 생겨나게 된다.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자연 속의 생명있는 것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리려 하는 것도 결국 ‘잘 알아서 제대로 존중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좋은 관계를 위해 인격을 지켜야한다고 배우듯이 자연 속에 있는 힘없는 것까지도 함부로 하지 말고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특별히 어린이 책에서 생태를 다루는 작가는 생태 지식을 넘어 아이들이 환경을 보는 눈, 생명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까지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① 쉬파리들을 잡으려면 분사형 파리약을 뿌릴 수밖에 없어ㅡ 그렇지 않고는 쉬파리를 잡을 수가 없거든, 비행기보다 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파리를 떨어뜨릴 수 있는 미사일 같은 것이 있다면 모를까.
“아저씨, 정말 그런 미사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은 바늘처럼 생긴 미사일로 파리들을 격추하면서 놀면 재미있을 텐데……
그래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을 것 같구나. 너희들이 한 번 만들어 보렴(《곤충의 왕 딱정벌레》52~53)

② 나는 군대에서 전차를 조정했는데, 가끔씩 전술훈련을 나가면 육군 보병들을 전차 위에다 가득 싣고서 전속력으로 달리지. 나는 새끼들을 업은 늑대거미가 꼭 전차 같았단다. 요즘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전차는 자주 뉴스에 나오거든, 이미 적군이 물러난 도시로 들어가는 전차 위에는……《낙하산 타고 날아가는 거미》37~38

  전쟁만큼 생태계와 상극을 이루는 것이 또 있을까? 아무리 작은 전쟁이라 하여도 전쟁이 나면 그 앞에서는 생명이고 자연이고를 막론하고 모든 존재와 의미가 살아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곤충의 생긴 모양을 살펴 전쟁에 쓰일 무기를 만든 것은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여도 작가가 전쟁이나 무기에 대한 엄격한 비판 없이 그냥 비유를 든다는 것은 특히 어린이책에서 위험하다. 사람이 곤충에게 얻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무기를 만들어 서로를 죽이고 전쟁을 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위와 같은 글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미사일을 만들어 파리를 격추해보라’니 아이들더러 무기를 만들어 전쟁연습을 해보라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게 거미를 이해하기 위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전차를 떠올리라고 하기에는 그 전차가 휘젓고 다니는 전쟁판의 파괴와 고통이 너무나 크다.

  생태와 어린이를 알고 있는 작가의 몫
  지금 우리 주위의 많은 아이들은 여전히 벌레 한 마리 볼 수 없는 깔끔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쉬파리 금파리가 아무리 흔하다고 하여도 아이들 생활에서는 여전히 보기 힘든 곤충일 뿐이다. 어쩌다 열린 방충망 틈으로 냄새를 쫓아 들어온 파리는 온 식구의 표적이 되어 아주 짦은 순간에 죽임을 당한다. 이 파리들을 아이들이 좀 더 관찰한 후에 죽이게 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일까? 아이들이 주위에 사는 벌레나 곤충들의 생태를 신기하게 여기고 좀 더 오래 보고 관찰하는 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 집 안에 배추벌레 상자를 들여놓고 그것이 흰나비가 될 까지 눈을 떼지 않고 들여다보는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자연과 생태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인가?
  파리 한 마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먹고, 알을 낳고, 죽고, 개미 한 마리가 태어나고, 먹고, 알을 낳고, 죽고,……이처럼 생명 있는 것들이 살아가면서 먹이를 구하고, 자기 종족을 번식시키고 죽어가는 과정은 다 다른 특징을 가지지만 커다란 범주 안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책마다 조금씩 방법을 달리했다고 하나 벌들의 짝짓기, 개미의 집짓기를 설명하고 나서 “얘들아 놀랍지 않느냐” 고 묻는 어린이 책이 시장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곤충이나 벌레 같은 것에 남다른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이런 책들 몇 권을 읽고나면 거미가 곤충의 범위에 들지 않는 이유나 곤충을 익충과 해충으로 나누는 일쯤은 외우듯이 말하게 된다.
  생태계 속에 있는 생명있는 것들을 어떻게 건드려주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실이 아이들에게 놀라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상권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섞어 곤충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의 책 속에는 과거의 아이들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아이들이 들어있다, 지금 아이들이 그 시절을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책에서 아이의 놀이와 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귀하게 생각된다.  
  이상권은 아이들의 세계를 알고 있고, 또 자연을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쓰는 어린이 생태책에 남다른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가 아이들을 좀 더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지금 아이들이 자연을 보며 가지는 생각, 아이들이 누리는 생활, 아이들 주위에 놓인 환경을 돌아볼 수 있게 건드려주어야 한다.
  책 속에서 곤충 이야기를 재미나게 보고 받아들인 아이들이 왜 생활에서 곤충을 만나지 못하고 살까? 아이들은 지렁이를 이론으로는 받아들이는데 실제로 보면 몸을 웅크린다. 지금 아이들은 자연을 ‘관찰’할 수는 있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작가는 어른을 대표하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깨끗한(깨끗하기만 한) 환경이 가져온 장 단점을 고백하고 아이들이 솔직하게 자기가 처해있는 자리 환경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
  곤충이라는 것은 영원히 우리 일상생활과는 멀리 있는 것인가? 곤충을 만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소로 옮겨가거나 과거로 거슬러 가거나 또는 특정한 장비를 들여놓고 관찰 하는 방법만 있는 것일까? 텔레비전방송에 나오는 선전들을 생각해보자. 먹는 것, 입는 것, 아파트, 화장품까지 모두들 환경과 자연사랑을 얘기한다,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새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녹음한 기계에서 나오는 새소리이다. 우리가 마치 자연 속에서 사는 것처럼 착각하기 딱 좋은 세상이다. 정작 우리 생활은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기만 하는 것을.
   이상권 몇 몇 동화에서 할머니와 아이들이 자연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도 작가가 그 할머니의 자리에서 넓은 할머니 품으로 아이들을 자연으로 끌어가주길 바란다.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따뜻하게.


김 미 자
어린이도서연구회 출판문화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 4학년 아이랑 만화 보고
중학교 1학년 아이랑 박경리의 토지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린이 책을 만난 것을 다시 한번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