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미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2년이 되어간다.
  올해도 선생님 돌아가신 8월 25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선생님을 기억할 것이다.
  그날 그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동문학 비평가, 우리말과 글을 살리시려 애쓰신 교육자. 초등학교 선생님…….
  다 내가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부터 익히 알았던 선생님 모습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선생님을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비로소 선생님이 시인인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남기신 시를 부끄러워 하셨지만, 돌아가시는 마지막까지 시를 쓰셨다. 나는 이제서야 부랴부랴 선생님 시집을 읽으며, 선생님은 시인이었으며,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시인으로 기억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에 쓰신 선생님의 동시들, 그 속에는 선생님이 살아오신 모습이 그대로 다 보이고, 선생님이 만난  우리 겨레 어린이들, 그 삶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진다.

문학이란 예술 역시 언어를 통해 시대의 표정을 붙잡는다. 언어라는 촉수를 내뻗어 한 시대의 상처와 희망을 날렵하게 포착하는 것이다. 문학이 겨레의 기억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문학작품에는 겨레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순간이 담겨 있다.
문학이 겨레의 기억이라면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는 겨레의 기억을 전수하는 이들이다.
                          -  이오덕론  《숲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가운데 김상욱 지음)  

  50년 전, 우리 겨레가 기억해야할 것이란 무엇일까?
  선생님 동시에 해답이 있다.
  1953년부터 동시를 쓰신 선생님은 1966년 《별들의 합창》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냈고 이후 1969년에 《탱자나무 울타리》 1974년에 《까만 새》를 내었다. 그리고 1981년 이 세 권의 시집을 모아 엮어 《개구리 울던 마을》이 나오게 되고 1982년 《언젠가 한번은》이란 동시집이 나오게 되었다.
  별, 탱자나무, 까만 새, 개구리... 시집의 제목들이 그 당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친근한 나무, 새, 곤충들이다. 제목 뿐 아니라 첫 시집의 첫 장을 넘기면 '봄아 오너라'가 나오고 '진달래', '뻐꾸기'가 이어서 나온다.

그리고 전체 작품에 공통되는 것은 가난한 어린이들, 특히 농촌 어린이들이 겉치레만 하는 생활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땀 흘리고 일하는 생활에 자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과 불의와 부정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감정을 불어넣고 주고 싶어한 점이다. 이러한 간절한 생각에서 씌어진 이 모든 작품 속에 나오는 얘기나 그려진 장면은 철저하게 내가 그 때 그 때 겪었고 현장에서 관찰한 사실임을 말해두고 싶다.   
                                                                    - 《개구리 울던 마을》(창비)

  하지만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면 시집 제목처럼  시의 제목처럼 친근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 동시는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의 삶을 쓰셨다고 하신다. 50년 60년대 아이들이다. 시의 제목 뻐꾸기, 진달래, 별…… 사실은 우리 아이들이다.

  1.새

뻐꾸기

뻐꾸기가 울어 쌓는
한낮이 되면

쑥 뜯는 칼자루에
손이 아프다.

찔레꽃 따먹자.
누나야 찔레꽃!

바람 부는 냇가에
바구닐랑 버려 두고

꽃잎을 따서 물면
달싹한 맛……

꽃잎은 떨어져
물위에 뜨고

뻐꾸기는  뻐꾸기는
저리 우는데,

재 너머 비탈밭엔
보리 이삭이 피는가?

도라짓골 감자가
새끼손가락만큼 굵었는가?

찔레꽃은 따먹어도
배는 고프고

뻐꾸기만 어디서
자꾸 우네.

  제목은 뻐꾸기지만, 하루 종일 쑥을 캐서 손이 아픈 아이가 주인공이다.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니 찔레꽃을 따먹는다. 무심히 우는 뻐꾸기 소리는 아직도 봄이 다가려면 멀었다는 듯 자꾸 울고. 아직도 뻐꾸기 소리 한창인 봄인데 언제 재 너머 비탈밭엔 보리 이삭이 피고, 감자알이 굵어 질까? 뻐꾸기는 자꾸 우는데.
  뻐꾸기 소리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봄이 지나야 보리가 피고 감자는 익는다. 그래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배고픈 아이와 뻐꾸기 울음 소리! 그 당시 많은 시인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느라 가려야만 했던 배고픈 아이들이 겨레의 기억이 되어 살아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오덕 선생님 시에 나오는 뻐꾸기 즉 자연은 시의 배경이나 노래 불러야 할 아름다운 대상이 결코 아니다.
  뻐꾸기는 바로 그 당시 배고픈 아이들의 피울음이고 그러니 뻐꾸기 울음소리는 겨레 어린이들의 목숨이다. 생명이다. 아마 뻐꾸기도 그런 바램을 가지고 울 것이다.

버들피리를 불게 해다오./쑥을 캐게 해다오./(중략)봄아,오너라/봄아,오너라
                                                             - <봄아, 오너라> 가운데

  아이들이 기다리는 것, 뻐꾸기가 기다리는 것, 봄이 오길 기다리고, 봄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그래야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시는 아름답게 써야 하고, 자연을 아름답게만 노래한 수많은 시들을 보고 자랐으니 뻐꾸기 소리가 사실은 배고픈 우리 겨레 아이들의 피눈물임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똑같은 자연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비로서 잊혀진 겨레의 기억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선생님을 시인으로 기억하고 싶은 까닭이다.

종달새에게

……/온종일 지치지도 않고/어서 보리가 자라나라고/보리 이삭이 피어나라고
잔약한 두 날개를 파닥거리며 울어대는 구나.//
종달새야!/너의 노래에 피가 맺혀/너의 노래에 눈물이 스며/매마른 이 땅에/
보리가 피어나나보다./보리가 익어가나 보다.

  종달새가 우는 것도 어서 보리가 자라고, 보리가 피어나라고 울어대는 것이다. 보리가 피고 감자가 열려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종달새 노래도 목숨을, 생명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 시의 자연은 바로 생명이다.

2. 꽃

진달래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무꾼들이 슬픈 산타령이 우리는 고개면
너는 어디든지 피었었다.

진달래야!
그리도 이 땅이 좋더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이 땅이
그리도 좋더냐?

찬 바람 불고 먼지 나는 산마다 골짝마다
온통 붉게 꾸며 놓고
이른 봄, 너는 누구를 기다리느냐?

밤이면 두견이 피울음만 들려오고
낮이면 흰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넘어가고 넘어오는 산고개마다
누구를 위해 그러게 붉게 타느냐?
아무리 기다려도
뿌연 하늘이요, 안개요, 바람 소리뿐인데

그래도 너는 해마다
보리고개 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갈 때
배가 고파 비탈 길을 넘어질 번하면서
너를 두 손으로 마구 따 먹던 것이 좋앗더냐?

진달래야,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차라리 져 버리는
너무나 순직한 어린이 같은 꽃아!
내 마음 속 환희 피어 있거라.
영원히 붉게  붉게 피어 있거라.

  진달래는 꽃이 먼저 핀다. 그것도 아무 것도 없는 헐벗은 땅에 제일 먼저 핀다. 이른 봄, 제일 먼저 피어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곳은 나무꾼들의 슬픈 산타령이 울리는 곳이며 흰옷 입은 사람들 무거운 짐 등에 지고 넘어가고 넘어 오는 고개다. 그 고개는 배 고픈아이들이 넘는 보리 고개이다. 진달래는 그 아이들을 위해 피어난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헐벗은 이 땅이 좋아 이른 봄, 붉게 피어  누구를 기다리는 진달래.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피어나는 꽃, 보리고개를 넘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피어나는 꽃. 그 곳이 바로 우리 겨레의 아이들이 진달래를 따먹으며 넘어가던 바로 역사의 터전이다.
  진달래는 바로 역사를 지켜낸 겨레의 어린이인 것이다.

  3. 나무 그리고 산

산에게

산아!
너는 우리 엄마지?
너의 등에 업혀
나는 자랐다.

너는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불러
그 높은 등에 기어오르게 하고,

너는
나무하다가 지쳐
양지쪽 바위 옆에 나에게
멧새들의 자장가를 불러 주고,

너는
딸기와 머루, 다래, 개암, 으름,
온갖 열매를 먹여 주고,

봄이면 진달래 꽃밭 속에서
참나물 다래나물을 피워 기다리고,

가을이면 패랭이꽃, 도라지꽃 흩어진 고개에서
도토리가 익었다고 손짓하고,

언제나 흰구름에 태워
눈이 모자라게 가물가물 먼 나라로
데려다 주었다.

나의 형제 다람쥐와 산토끼를
품에 안고 있는 산,

헐벗은 옷
주름잡힌 이마로
나를 지켜 보는 산아,

너는 우리 엄마지?
나는 오늘도 일하는 손을 쉬어
낯설은 집 창 밖으로
멀리 하늘 높이 솟은 너를
그리운 엄마를 바라보듯

보고 있다.  

  산은 날 업어주고, 기어오르게 하고, 자장가를 불러 주고, 온갖 열매를 먹여 주고, 기다려 주고, 데려다 주고, 품어 주고, 그래서 산은 엄마이다. 아가의 엄마이고 다람쥐의 엄마이고, 우리 모두의 엄마이다.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 <새와 산>

  그래서 새들은 하늘을 날아 엄마 품으로 날아간다. 산은 엄마다. 모든 걸 준다.
  선생님이 남기신 시를 읽으면서 선생님이 남기신 무수한 책들 가운데 가장 먼저 쓰신 동시야말로 이오덕 선생님의 출발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통해 이야기하신 것들이 처음자리인 동시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 배고파 굶주리고 신음할 때 우리는 충분히 아프지 않았다. 모두 배고팠고 헐벗었지만 많은 시인들은 아닌 척 가리고, 아름답게 꾸미고, 헛된 것을 가르키기에 바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 상처는 남아있고 도리어 아직도 그 상처에 갇혀 살고 있다. 충분히 아프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이 판을 치는 시기였던 그때 선생님은 참된 시로 우리 겨레 어린이의 삶을 살펴 주셨다. 선생님 시의 자연은 배경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목숨을 지켜주는 곳이며 그래서 삶의 자리가 되었다. 이제 그곳은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하는 엄마 품이며 함께 평화를 누려야 할 곳이다.
  이제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이곳에 안계시지만 우리 겨레의 어린이들이 신작로에 우뚝 선 포플러처럼 목숨의 자리 역사의 자리를 지나 구부러진 허리를 죽 펴고 겨드랑이 푸른 날개가 돋는 힘찬 어린이길 바라실 것이다.   

포플러1

눈부신 수만의 비늘을 단
물고기
호수에 잉어가 꼬리치듯
하늘에는 포플러가 살아간다
파도 소리보다 더 찬란한 호흡으로
흐느끼며 헤엄치는
그 곁에 내가 서면
구부러진 허리가 죽 펴지고
겨드랑이 푸른 날개가 돋는다.


김 영 미
어린이 책을 좋아하지만
어린이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더 좋아한다.
어린이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과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