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실


 

   나는 빈둥대는 시간이 많습니다. 책 읽고, 상상하고, 살아온 날들을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하는 일없이 보내는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바쁘게 일할 때도 많지만 생각할 시간을 위해 다른 욕심은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지요. 작가는 이야기꾼입니다. 좀 더 덧붙여 말하면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지요. 나는 작가는 생긴 대로 책을 낸다고 믿습니다.  

 ▲ 작가가 쓴 자연책

  그래서 '만들고 싶은 책'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래도록 '내가 누구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물론 평소에도 할 일 없이 이런 생각에 빠져 있지만)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 어른이 된 뒤의 수많은 일들, 읽은 책들, 최근의 경험, 내가 사는 사회, 집안 내력까지 너무 많은 것들이 생각나더군요. 결국 나의 삶은 이것저것 함께 모아 태우는 모닥불 같아서 무엇이 타서 불이 되었나 알 수 없겠다 싶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 할머니, 먼 조상들의 슬픈 역사까지 들어있으니……. 내가 누구인지, 어떤 책을 쓰고 만들게 될지 사실은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는 말할 수 있지요.           

  햇빛이 밝은 봄날이었다고 합니다. 오빠들의 소풍 길에 어린 내가 따라갔던 모양입니다. 여우고개를 넘기 전에 암탉 가족을 만났는데 세 살 난 내가 병아리 구경을 하느라 움직일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어찌나 열심히 보는지 소풍행렬이 멈춰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무심히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기의 병아리 구경이 다 끝난 뒤에야 다시 고개 넘어 솔밭으로 소풍갔을 초등학교 아이들 모습이 그려지고 60년대 풍경이 떠오릅니다. 특히 세 살 아이의 경이에 찬 눈길이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림책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려나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나는 60년대에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자동차를 만드는 집이었습니다.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와 함께 철판을 펴고 엔진을 달아 자동차를 직접 만들었다는데 내게는 자세한 기억이 없습니다. 강가에 모래사장이 있고 둑이 있던 동네와 마당이 넓은 집, 차장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자동차를 꾸민 뒤에 찍은 흑백사진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차를 꾸민 뒤에 어머니가 시루떡을 찌고 고사를 지내던 순간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어린 나는 그 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나봅니다. 그래서 항상 졸음을 참아가며 그 시간을 기다렸고 어쩌다 잠들어버린 다음 날에는 억울해서 징징대기도 했으니까요. 그 시절, 자동차는 귀하고도 무서운 존재여서 어머니는 사고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사람 목숨 상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듯 합니다. 어린 나는 집안의 중요한 일에 끼고 싶었을 테고 떠들썩하니 함께 떡 먹고 잔치하는 분위기가 좋았겠지요. 그림책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려나 상상해 봅니다.   

  나는 주로 자연그림책에 글을 씁니다. 몇 해 전,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가 출판되었을 때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아버지께서 "너는 개구리 많이 못보고 자랐는데 어떻게 이런 글을 썼니?"하고 물어보시더군요. 나는 그저 빙그레 웃었지요. 우리 집은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강가의 공장 딸린 집에서 기와집골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자동차는 이제 더 큰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나는 골목 안에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동무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습니다. 오빠들은 하루종일 멀리 자연으로 나가서 놀다 돌아와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요. 뱀이 어떻고, 개구리가 어떻고 하면서, 계곡에서 빠져 죽을 뻔했다든지, 기차에서 뛰어내렸다든지 하면서 무용담을 말하곤 했는데, 아마 내가 무서워하겠지 싶어 놀리느라 더욱 열심히 이야기 해준 듯 합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언젠가는 나도 데려가겠지 싶어 기대하며 들었지요. 오빠들은 날 영영 데리고 다니지 않았고 나는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친구들과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고 있습니다. 병아리를 보던 그 눈길로 세상을 보면서요.
  어린 시절, 나는 책 읽고 글쓰고 그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지만 과학자가 꿈이었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며 살기엔 지구의 일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 지구는 과학자가 지킨다는 게 어린 나의 생각이었지요. 사정은 이랬습니다. 집에 있던 백과사전을 다 읽고 60권 동화전집을 다 읽은 뒤에 나는 항상 책에 허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척집에 가면 그 곳에 있는 책을 모두 읽었지요. 이모네 집에는 사촌오빠들이 보는 sf전집이 있었고 그걸 모두 읽은 나는 지구가 멸망할까봐 걱정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사는 게 좋고, 이 세상이 좋고, 친구들과 식구들도 좋았기 때문에 미래에 지구가 멸망해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데에 크게 낙담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슬퍼서 베갯잇이 젖도록 울기도 했으니까요. 그 생각은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나와서 국립환경연구소에 견습 나가기까지 계속되었지요. 8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연구소 대신 운동단체 쪽을 택했습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살아온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껑충 뛰어넘지요.)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참여해도 좋다고 여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즐겁게 잘할 수 있고 그래야 힘도 생기고 지구에 도움도 될 테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물론 자연으로 나가 쏘다니는 일, 어린이책을 만들고, 책과 아이들에 둘려 싸여 지내는 일입니다.

   며칠 전 찬바람이 부는 맑은 날, 내가 책 읽어주러 다니는 씩씩이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새를 보러 갔습니다. 산과 들, 바닷가로 쏘다니는 내게 아이들이 항상 따라가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날은 임진각 둘레의 새들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두 돌에서 여섯 돌까지인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망원경으로는 새를 보지 못하는 거예요. 임진강 하류를 앞에 두고 "저기 멀리 강 가운데 비오리가 있어."하고 말해줘도 아이들은 한쪽 눈을 감고 망원경에 눈을 대고 보는데 익숙하지 못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더군요. 결국 해서는 안될 나쁜 일을 벌였지요. 임진강 둘레의 논에는 기러기 떼가 채식하는 곳이 많거든요. "기러기들은 우리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멀리 시베리아로 날아간단다. 많이 먹고 쉬고 해야 멀리 날아가서 짝짓고 알 낳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자동차 소리를 내고 가까이 다가가면 잘 쉬고 먹지 못하거든. 그러니 조심해야해"하면서도 결국 가까이 갔지요. 어른들끼리 다닐 때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는데 아이들을 핑계로 좀 더 가까이 간 거예요. 수 백 마리나 되는 쇠기러기들이 먹이를 먹거나 쉬다가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오니까 '뭔가?' 하면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경계를 하더군요. 어른 키에 반도 안돼는 아이들이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다가가니까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그저 꽁무니를 뒤로하고 우두머리의 지시를 기다리는 듯 모두 한쪽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나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아이들과 새들을 함께 지켜보고 있었지요. 겨울 무논 위로 긴장이 가득해 숨죽이고 바라봤어요. 완전히 맞닥뜨렸다고 느낀 순간 새들이 모두 함께 날아올랐어요. 수 백 마리 새들이 하늘을 뒤덮고 아이들은 입을 '하' 벌린 채 새들이 날아오르는 걸 보느라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 있더군요.(그 순간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아이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논에서 나와 내게 가까이 왔어요. 새들은 다시 논에 내려앉았고요. "어쩌지? 새들이 오늘 오전에 먹고 쉬고 한 거 다 소용없게 되었네"하고 내가 말하니까 여섯 살 한별이가 말했어요. "그래서 기러기들아, 미안해하고 말하고 왔어요." 이미 한번 날아오른 기러기들에게 아무리 미안하다고 말해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한별이에게 그냥 웃어 보였지요. 어른인 내 책임인데, 어쩌면 아이들에게 위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더군요. 모쪼록 아이들이 자라서도 논이나 강,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말하는 곳에 새들이 살고 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랄 뿐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해보지만 자꾸 생각이 나네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생명'을 보여주고 '생명'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합니다. 생명은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그 자체로 아이들 마음을 움직일 테니까요. 또 사람은 생명이 있는 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거든요. 어떤 비평가는 논픽션작가는 교사이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작가는 교사와 달리 뭔가를 가르칠 의무도 권리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집중해서 보여줄 뿐이고 말하고픈 바를 말할 뿐이죠. 하지만 작가에게 예술가로서의 의무는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본 것이든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든 책 속에서 생명은 생명다워야 하고, 아이들이 경험한 일은 작가의 노력으로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 이르면 사실 책 만드는 일에 즐거움만 따른다고 할 수 없겠지요. 책에 깔려있는 메시지가 올바른지 항상 생각해야 하고 표현방법이 최선의 것인지 따져야 하니까요.
  지금 나는 서식지를 소재로 한 자연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주로 습지를 좋아해서 늪과 갯벌에 대해 쓰고 있지요. 아이들에게 "멀리서 보면 아무 것도 살고 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렇게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단다" 하고 말해주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자연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관계 맺으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다양한 서식지가 없으면 다양한 생물들도 없다는 사실을 바닥에 깔고 생명을 말하려는 것이지요. 우포늪과 산지 늪, 바닷가의 늪들, 새만금 갯벌과 강화도 갯벌, 서해와 남해 곳곳의 갯벌이 내가 쏘다닌다는 자연입니다. 주로 새를 보겠다며 다니지만 '새'는 핑계고 새가 살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생태계를 이룬 자연을 보는 게 목적이지요.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아침과 저녁 시간에 따라 자연은 항상 다른 모습으로 나를 감동하게 합니다. 생명들은 항상 사건을 만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내게 해줍니다. 갯벌에서는 뻘 바닥에 사는 저서생물도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결국 사람들 눈에 쓸모 없어 보이는 곳일수록 생명들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라는 걸 항상 깨닫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도로를 직선으로 내고 건물을 짓느라 숲과 강,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물과 뭍이 만나는 곳을 모두 끊어놓은 상태입니다. 곳곳을 경계짓고 잘라내고 뭉개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명은 그 모든 곳을 구분 없이 오가며 살고 있지요. 개발의 속도는 점점 가속이 붙어 지난해에 보았던 풍경을 올해에는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리 지키려해도 힘이 모자라 지키지 못한 곳, 지키지 못하고 훼손될 곳의 원래 모습을 기록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먼 미래에 다시 복원할지도 몰라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하지만 나는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정서'라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항상 '행복한 쪽'으로 선택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책에 '생명의 느낌'을 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생명'이 주는 행복감에 집중하려 합니다. 미래에 어른이 되어 세상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생명의 느낌'을 기억하고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일, 그 결과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돕는 일이 책을 만드는 나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작가는 그저 이야기해주고 보여주고 할뿐입니다. 생각과 행동, 선택은 아이들의 것이죠.
  살면 살 수록 내가 노력한 데 비해 누리는 게 참 많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엉뚱하고 빗나간 비유인지 몰라도 가스레인지를 켤 때는 내가 발명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불을 쓸 수 있네 하고, 비행기를 타면 내가 발명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늘을 날아다니네 하는 식이지요. 자연그림책을 내면서도 세상이 힘껏 밀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책을 읽어 주다보면 아이들은 이미 '경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내 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느낍니다. 아이들 자신이 사랑하고 사랑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생명'이라 그렇겠지요. 나는 따뜻한 생명을 향한 아이들의 눈빛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 힘에 떠받쳐 하루하루 살아가겠지요. 형식이야 어떻든 '생명'을 이야기하면서요.    


이 성 실
1963년에 춘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공부방 모둠에서 활동합니다. 그림책과 논픽션에 대한 비평활동을 하면서 자연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은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 '개미가 날아 올랐어'(다섯수레)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서식지 그림책 '늪'과 '갯벌'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한달에 두어번 자연으로 나아가 바람을 쐬고 다니는 게  큰 즐거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