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영



  1. 낯설음

  권정생 동화집 《강아지똥》(세종문화사, 1974)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낯설다. 강아지똥, 똘배, 지렁이, 구렁이, 깜둥바가지, 흙먼지……. 이들이 낯선 것은 우리 삶과 가깝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이들은 버려진 것, 찌꺼기, 징그러운 것, 있으나마나한 것 정도였다. 동화에서는 물론 현실에서조차 무척 낯설다. 낯설다는 말은 친하지 않다는 말이다. 낯설고 친하지 않으면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다.
  똥이 그렇다. 길가에 뒹구는 개똥이 그렇다. 개똥을 보면 더럽다고 침을 뱉거나 피해간다. 재수 없다고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겠다. 돌이네 어린 강아지 흰둥이가 누고 간 <강아지똥>도 다를 바 없다. 더럽고 아무 필요도 없고 찌꺼기뿐인 강아지똥이다. 참새도 더럽다고 침을 뱉고 날아가 버리고, 엄마 닭도 아무 필요도 없는 찌꺼기뿐이라며 가 버린다.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에 시궁창이 그렇다. 시궁창에 떨어져 물컹물컹 썩어갈 똘배가 그렇다. 잘 익어 잔칫상에나 올라갈 꿈을 꾸고 있는 똘배가 시궁창에 떨어졌다. 콩나물 동아리, 배추쪽이 같은 잡동산이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구정물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이 시궁창이다. 그곳에 돌이가 한 입 잘끈 물다 뱉어버린 똘배가 있다.
   강아지똥이고 똘배고 모두 우리와 친하지 않다. 낯설다. 우리 둘레에서 늘 있던 것이었지만 그야말로 둘레에 있는 것뿐이지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있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런 찌꺼기뿐인 강아지똥이, 시궁창에 떨어진 똘배가 권정생 동화 속에서 귀한 존재가 되었다. 모두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 이 세상에 쓰임이 있어 태어났다.

  별이 된 강아지똥
  
강아지똥은 더럽다. 누가 봐도 더럽고 쓸모없고 하찮다. 그러나 하나님은 쓸 데 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 강아지똥은 자신도 무엇엔가 귀하게 쓰이고 싶은 소망을 갖는다.

“아니야, 하나님은 쓸 데 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조금 전에 흙덩이가 일러 준 말을 되뇌어 봅니다.
‘정말 나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면 무엇에 귀하게 쓰일까?’
                                                                  (《강아지똥》, 세종문화사, 89쪽)

  긴긴 겨울이 지나도록 강아지똥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온몸이 늘어지고 노곤해지던 어느 봄날, 강아지똥은 제 몸을 고스란히 녹여 민들레 몸속으로 들어가 예쁜 꽃을 피웠다.
  비가 내렸다. 비가 사흘 동안 계속 내리면서 강아지똥은 온몸이 부셔졌다. 부셔진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살이 되어 꽃을 피웠다. 강아지똥이 민들레가 되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무엇엔가 귀하게 쓰이고 싶어 하던 강아지똥의 간절한 소망으로 된 것이다. 온몸이 부셔지는 아픔과 고통으로 된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강아지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민들레꽃으로 우리 곁에 함께 살아 있다.
  강아지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이 되기를 소망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언제나 꺼지지 않는 별이 되고 싶었다. 민들레에는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녹아 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강아지똥의 아름다운 불빛이 스며 있다. 이래서 강아지똥은 민들레가 되고 별이 되었다.
  우리는 민들레의 예쁜 모습만 보고 감탄한다. 강아지똥은 보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목숨들이 많다. <강아지똥>은 자연과 하느님을 섬기며 순리대로 살았다. 권정생은 그 존귀함을 역설한다. 민들레꽃이 지고 땅도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면 강아지똥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 따뜻한 사랑으로 사람들은 봄날에 피어날 민들레를 다시 또 기다리는 것이다. 별과 민들레와 똥으로 표현된 자연은 하나로 통하며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각기 자기 몫을 다하며 귀하게 살아간다.

  똘배의 마음
  
더럽고 찌꺼기뿐이라고 놀림 받던 강아지똥이 별이 되었다. 이처럼 하늘에는 귀한 영혼들의 소망으로 이루어진 별들이 무수히 많다. 강아지똥처럼 말이다. 그 별들이 비추는 세상은 평등하다. 더러운 것도 없고 쓸모없는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하지만 여긴 시궁창이잖니?”
“시궁창이니까 어떻다는 거니?”
“너무너무 더러운 곳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별님들이 찾아 온 게 이상하단다.”
돌배는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 아기별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더럽긴 무엇이 더럽니?”
아기별은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뭐야! 이제 보니까 날 놀리고 있구나.”
똘배는 잔뜩 도사리며, 아기별을 째려보았습니다.
“절대로 놀리는 게 아니야. 이런 시궁창도 가장 귀한 영혼이 스며 있는 세상의 한 귀퉁이란다.”(위의 책, 18쪽)

  사람들은 더럽고 깨끗하고, 좋고 나쁘고, 많고 적고…… 보이는 대로 둘로 갈라놓길 좋아한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끼리끼리다. 눈에 보이기에 깨끗하면 취하고 더러우면 버린다. 더러워서 쓸모없고, 더러워서 버려야 하고, 더러워서 가치없다고 한다. 그런데 아기별은 참 쉽다. “더럽긴 무엇이 더럽니?” 그래, 무엇이 더럽단 말인가. 처음부터 더럽고 깨끗한 것은 없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시궁창에 떨어지면 처음에는 좋은 냄새가 나다가 점점 지독한 냄새로 바뀐다. 땡감은 처음에 달짝한 냄새를 풍기다가 퉁퉁 곪았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것은 없다. 땡감은 그렇게 퉁퉁 곪아죽었다. 땡감은 죽었지만 장구벌레는 땡감의 달짝한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땡감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이다. 똘배가 시궁창에 왔을 때 꿀 냄새, 선녀님 냄새, 하늘 냄새, 바람 냄새로 가득하다. 장구벌레가 땡감을 기억하듯이 시궁창 어딘가에 똘배 냄새도 남게 될 것이다. 시궁창에 똘배의 귀한 영혼이 스미게 될 것이다.

“……시궁창은 곪아터져 죽어버리는 지옥이야. 지독한 냄새가 나는 세상 끝이야.……”(위의 책, 18쪽)

“아아, 꿀 냄새 봐.”
“아냐, 선녀님의 분 냄새야.”
“진짜는 하늘 냄새야. 아니면, 산딸기 골짜기를 스치고 불어 온 바람 냄새야.”
장구벌레들은 물구나무 재주를 부리며 제멋대로 지껄여 대었습니다.
“나 한테서 그런 냄새가 난단 말이지?”
똘배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래, 시궁창은 참 좋은 냄새로 가득 찼어.”
똘배는 어젯밤 보고 온 달나라가 떠올랐습니다. 한 쪽 눈을 가리고 보았을 때, 주검처럼 쓸쓸했던 그 광경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위의 책, 26쪽)

  똘배가 떨어진 시궁창은 무엇이 진짜일까? 지독한 냄새가 나는 세상 끝일까? 좋은 냄새로 가득 찬 곳일까? 똘배는 달나라에 가서 한 쪽 눈을 가리면 아폴로 지구인들이 다녀간 무시무시한 웅덩이와 돌멩이산이 보였고, 다른 한 쪽 눈을 가리면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계수나무 향기가 나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기 토끼들이 보였다.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는 어느 것이 진짜일까?
  아기별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똘배 마음대로 정하면 된다고 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볼 것인지 보이지 않는 뒤에 숨은 귀한 영혼을 볼 것인지 똘배 마음에 달렸다. 똘배의 마음은 곧, 우리 마음이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제 몸을 잘게잘게 녹여낸 강아지똥처럼 똘배는 제 몸을 시궁창에 맡겼다. 강아지똥이 예쁜 민들레꽃을 피우듯 똘배는 시궁창을 좋은 냄새로 가득 채웠다. 귀하게 쓰인 아름다운 영혼이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에도, 시궁창에도 있었다.

  권정생은 강아지똥과 똘배를 세상에 내놓아 나를 낯설게 했다. 처음에 그 낯설음은 이런 것도 동화 주인공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낯설음이었다. 그러나 곧, 그 낯설음은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충돌을 일으키는 낯설음으로 바뀐다. 동화를 처음 읽었을 때 ‘아, 그렇지!’ 하며 생각으로는 낯선 마음이 가신 듯하지만, 내 현실 삶에서 낯설음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이 낯선 마음을 어떻게 하진 못할 것이다. 순리대로 나를 낯추고 자연과 이웃과 함께 욕심없이 그렇게 천천히 살면서 이 낯선 인물들을 만나야겠다.  

  2. 불편함

  권정생 동화집 《사과나무밭 달님》(창비, 1978)에 나오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강아지똥》에 나온 등장인물들이 낯설었다면 《사과나무밭 달님》에 나오는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열일곱 살, 한창 꽃다운 나이에 열병을 앓아 앉은뱅이가 된 탑이 아주머니. 그이는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어 보고 싶은 소원을 가슴에 묻고 <보리이삭 팰 때> 쓸쓸히 죽었다.
  난쟁이를 겨우 벗어난 작은 키에 코가 탱자처럼 생겨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업신여김을 받는 <똬리골댁 할머니>도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인간성을 파괴하고 자연을 거스르는 6.25전쟁은 가여운 영혼 똬리골댁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았다.
  어머니가 실성하여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비웃거나 놀려도 아무렇지 않은 필준이 아저씨는 <사과나무밭 달님>처럼 아름답게 더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지만 문둥이가 된 <해룡이> 아저씨와 일본으로 품팔러 간 <공 아저씨>는 그럴 수가 없다. 식구들과 먹고 자고 일하며 사는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일이 해룡이와 공 아저씨에게는 너무 힘겨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탑이 아주머니, 똬리골댁 할머니, 안강댁 할머니, 필준이 아저씨, 해룡이, 공 아저씨……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우선, 이들에게 닥친 배고픈 삶 때문에 불편하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을 할 수도 없고 몸은 병들고 늙어 갈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탑이 아주머니와 똬리골댁 할머니는 동냥밥으로 겨우 목숨을 이었다. 못생기고 병들고 늙은 것은 죄가 아니건만 이들은 죄인처럼 업신여김을 받으며 살아야했다. 굶주려 살아야 했다.
  탑이 아주머니와 똬리골댁 할머니는 넉넉지 않아도 이들을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동네 사람들이 있어 살았다. 탑이 아주머니 저승 가는 길에는 솔밭 숲에서 뻐꾸기가 울어주었고, 똬리골댁 할머니 가는 길에는 들국화 몇 송이가 살래살래 고갯짓 하며 동무가 되어주었다. 살아서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새와 꽃이 달래주었다.
  다음으로, 자신 때문이 아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면서 세상의 고통을 모두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전쟁 때문에 고통 받고, 가난해서 고통 받고, 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힘겹게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런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한다. 함께 나누지 못하고 오히려 고개 돌리고 모른 듯 살아온 내 자신을 돌아보며 불편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전쟁은 사람과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이다. 부모형제가 총칼을 들이댄 6.25전쟁이야 말할 것도 없다. 문세아저씨가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고서도 다시 월남 전쟁에 나서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 우리가 가장 사람답게 자연을 섬기며 살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통일이 되어야 한다. 분단의 현실이야말로 가장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 아픔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불편하다.
  마지막으로, 《사과나무밭 달님》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가난하고 버림받고 불쌍한 사람들인데 착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다. 아픈 현실고통 속에서 오히려 더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화려하지 않아도 꾸밈이 없고 성실하며, 가난하여도 남을 것을 빼앗지 않고, 힘없어도 남을 헤치지 않으며,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지만 권정생의 동화에는 아무도 쓸모없는 곁다리 삶은 없다. 그들의 영혼이 귀하게 빛날수록 내 마음은 불편하다.

  3. 낯설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

  낯설고 불편한 권정생 동화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내 둘레를 둘러보게 한다. 멀게만 느껴지던 것들을 다시 살펴보게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사람이건 뭐건 귀하지 않은 건 없다. 쓸모없는 건 없다. 평등하다. 권정생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의 동화 주인공들에게 ‘평등’을 주었다. 귀한 영혼을 주었다. 함께 사는 세상을 보여주었다.

병을 앓으면서 나는 언제나 건강해지면 조그만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될 수 있으면 결혼도 하고 아기도 키우며 가난하더라도 산새와 들꽃과 함께 어울려 살고 싶었다. 그것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그 모든 걸 다 포기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자연과 인간과 하느님을 함께 섬기며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열여섯 살의 겨울>, 《날자, 깃을 펴지 못한 새들이여!》, 사계절)

  권정생은 열여덟 살부터 결핵을 앓기 시작하여 평생을 병마에 시달린다. 《강아지똥》과 《사과나무밭 달님》을 읽다보면 가난과 병마와 전쟁으로 괴로워하고 울분을 토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한 권정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권정생이 생각한 사람답게 사는 길은 참 평범하였다. 그는 병 때문에 그 평범하고 소박한 소망을 모두 포기하였다. 권정생이 병을 얻은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가난은 병을 불러왔고 아픈 몸은 배고픈 현실로 이어졌다. 그런 고통 속에서 쓴 <강아지똥>은 바로 권정생 자신이었다.
  권정생 동화가,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고 읽는 사람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해 주길 꿈꾼다. 그런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다. 낯설음과 불편함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권정생 동화는 읽을 때마다 나를 자극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권정생 동화가 좋다. 언제나 나를 자극하며 자연과 인간과 하느님을 섬기며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고 싶다.


이 기 영
마해송 동화를 읽고부터 동화 공부를 시작하였고
권정생 동화를 읽고부터 동화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화는 제 인생에 큰 스승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