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진 원



1. 들어가는 말
2. 애완동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
3. 동물원 - 동물들의 어두운 삶에 대한 이야기
4. 생명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5. 생명의 원초적 의식에 관한 이야기
6. 자연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7. 자연의 파괴를 이야기한 책
8. 어두운 미래
9. 나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종례 시간

                               - 도종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거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번씩 안아 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거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가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게 그러듯
과꽃 분꽃에 입맞추다 가거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방안에 갇혀 있지 말고
잘 자란 볏잎 머리칼도 쓰다듬다 가고
송사리 피라미 너희 발 간질이거든
너희도 개울물 허리에 간지럼 먹이다가 가거라
잠자리처럼 양팔 날개 하여
고추밭에 노을지는 하늘 쪽으로 날아가다 가거라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종례시간에 당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니 생태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바램을 담고 있는 시라고 하는 게 좀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비록 짧은 시지만 이 속에서 작가가 꿈꾸는, 아이들이 자연과 하나되어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는 바램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자연에 대한 어떤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인공적인 갇힌 공간에서의 놀이가 아니라 자연과 친구처럼 즐기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처럼 동화 가운데는 '생태동화'라는 표현을 빌려오거나 하지는 않았어도 작품 속에서 이미 생태주의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보통 생태동화들이 실제로 좁은 의미의 생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에 비해 때로는 좀더 근본적으로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세상을 보게 해 주기도 한다.
   여기 이 자리에서는 동화를 통해서 생태주의적인 모습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몇 가지 주제로 묶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애완동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

  애완동물은 아이들과 가장 친근한 존재이다. 애완동물은 귀여운 외모와 재롱으로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애완동물들은 철저하게 사람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존재할뿐, 동물로서의 삶은 비참하기만 할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을 것 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한다는 생각에 그저 자식처럼 여기기는 해도 애완동물에게 자신만의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게 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라고까지 여기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애완동물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와 일상에서 늘 만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가는 결국 우리들이 자연을, 생태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직접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는 애완동물들 가운데서도 눈여겨볼 대상이다. 애완동물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우리와 친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개와 친밀감을 느끼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때론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을 개를 통해서 느끼는 경우도 많다. 아마 사람들과 살아온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동화 속에는 개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참 많다.

  이태준은 <어린 수문장>(1929년)에서 그저 적적한 문간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에 삼칠일이 겨우 지난 어린 강아지를 데려왔다가 가련하게 죽고만 강아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미 품이 그리웠던 강아지는 밥도 안 먹고 밤새 끙끙거리고 난 뒤 사라진다. 강아지는 저녁이 되어서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된다. 그리고 '어린 수문장'을 삼으려는 마음에 어린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죽이고 말았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 어린 목숨의 가련한 죽음은 그 날 밤 새도록 나의 꿈자리를 산란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며칠 못 되어서 나는 윗말에 갔다가 그 어미개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 하나를 그처럼 비참한 운명으로 끌어낸 나임을 아는 듯이 불덩어리 같은 눈알을 알른거리며 앙상한 이빨을 벌리고 한 걸음 나섰다 한 걸음 물러섰다 하면서 원수를 갚으려는 듯한 기세를 돋구고 있었습니다.

강아지가 죽은 직접적인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는 않으나 결국은 자신(사람)의 욕심이 불러온 화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 마해송은 <사슴과 사냥개>(1955년)를 통해서 같은 짐승이면서도 사람 편에 서서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개 '비호'가 사냥개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베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벽돌로 지은 개집에서 대우를 받으면서 잘 살았던 비호는 첫 사냥에 나가게 되자 주인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싶은 나머지 무리를 하다 그만 덫에 앞발을 찡기고 만다. 주인은 숲속 깊이 들어와 버린 비호를 찾지 못하고 그냥 떠나버리고 비호는 사경을 헤맨다. 이때 사슴과 숲속 동물이 비호를 치료해준다. 자신이 사람을 위해 잡으려했던 짐승 덕에 다시 살아난 비호는 주인이 사는 곳과 반대편 길을 간다. 사냥개로서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대신 한 아이에게 발견되면서 '베쓰'란 이름을 갖는다. 베쓰는 비호였을 때 모습과 여러 모로 다르다. 더 이상 사람 편이 아닌 베쓰는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도 않아사람들은 똥개 취급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약으로 쓰려고 염소를 잡는 것을 보는 순간, 베쓰는 힘껏 짖으며 사람의 팔꿈치를 문다. 놀란 사람은 담뱃대로 베쓰의 머리를 내리치고 베쓰는 죽고 만다. 사람을 위한 사냥개가 아니라 자신의 자연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사슴과 숲속 동물 덕에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베쓰지만 이렇게 사람과 반대편 길을 가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극단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개의 존재를 애완견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님 독자적인 존재로서 개의 삶을 존중해줘야 할지를 아이들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해 준 작품이라면 무엇보다 김우경의 《머피와 두칠이》(1996년, 지식산업사)를 들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두칠이는 넉넉하진 않아도 평범한 주인 덕에 그 역시 평범하게 살아가던 개다. 옆집에 이사온 부잣집 애완견 머피를 좋아하고, 동네의 다른 개들과 어울리며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듯 살아가곤 했다. 하지만 여름이면 친구들이 보신용 개로 사라지곤 했던 위기감이 실제로 그에게도 닥치고, 두칠이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본다. 자신의 삶이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될 뿐 스스로의 존재 가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두칠이는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 숲에서 자유로운 개로 살기로 결심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도 따른다. 갑자기 영웅이 된 듯한 두칠이의 모습도 위태롭다. 또 제목에서 '두칠이'란 이름에 앞서 나온 애완견 '머피'의 삶에 대한 부분은 그냥 내던져둔 상태이기도 하다. 두칠이를 화자로 삼아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작가의 의도가 두칠이에게 너무 무리하다시피 실린 감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책을 읽는 아이들로 하여금 두칠이 입장에서 개를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머피와 같은 개를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라도 한번쯤 두칠이가 사람들 세계를 떠나 들개가 되기로 마음먹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의미를 곱씹어보게끔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박기범의 《새끼개》와 《어미개》(2003년, 낮은산)은 조금은 낯선 방법으로 개와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새끼개》는 새끼개의 입장에서 느끼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은 귀여운 모습에 반해 사 가지고 와서 이렇게 저렇게 데리고 논다. 하지만 새끼개에겐 그 과정이 무섭고 두려울 뿐이다. 그러지 말라고 작게 짖어보기도 하지만 그럼 아이들은  새끼개가 좋아한다고 여기고 오히려 더 신나게 데리고 놀뿐이다. 이렇듯 소통이 안 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개는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 조금씩 사나워지고, 사람들 기분을 맞추지 못하는 새끼개는 되팔려오고 만다. 좁고 답답한 개장에 갇힌 새개끼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결국 주인이 개장을 청소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그곳을 탈출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사람들에게만 자란 새끼개에게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결국 차에 치어 죽고 만다.
  이 책은 읽고 나면 굉장히 불편해지고 만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개와 사람 사이의 신뢰와 믿음은 다 부질없는 것이란 생각까지 든다. 필요없는 묘사 따위는 전혀 없이 박기범 특유의 아주 짤막한 문장으로 내뱉듯 하는 말은 선명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래서 한번 읽고 나면 결코 그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난 사람이라면 새끼개에 대해, 사람과 개에 대해 두고두고 생각을 안 할 수 없게끔 한다.
  하지만 박기범이 이처럼 개와 사람의 관계가 결코 소통할 수 없는 관계로만 여기고 있는 건 아니다. 《어미개》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와 사람의 소통과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어미개 '감자'다. 감자는 폐휴지를 팔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할머니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새끼개와는 달린 어미개는 할머니와 서로 신뢰를 하고 있다. 비록 감자가 본능에 따라 철마다 낳은 새끼를 할머니는 그대로 개장수에게 넘기고, 그 때마다 감자는 죽을 듯한 슬픔에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과정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끼개》에서 아이들이 예뻐해 주는 게 오히려 새끼깨에게 고통이었던 걸 생각한다면 자신의 새끼를 바로 거두어 팔아 넘기는 할머니 모습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처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자가 할머니와 함께 그런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서로에 대한 완벽한 신뢰 때문이다. 소통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단순히 개와 사람간의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갖기도 하는 작품, 그리고 개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 동물원 - 동물들의 어두운 삶에 대한 이야기

  동물원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애완동물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동물을 동물의 입장에서 봐주기보다는 사람의 재미를 위해서, 오로지 사람만을 위해서 보여지는데 중심이 맞춰져 있다는 입장에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집에서 기르기 쉬운 작고 귀여운 동물들은 주로 애완동물이 되어 주인들을 즐겁게 해준다면, 동물원은 몸집이 크고 사납고 구하기 쉽지 않은 동물들을 모아놓고 일반 대중들에게 돈을 받고 공개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고 또 가장 많이 보곤 하는 사물 그림책에서도 동물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인기를 누리곤 한다. 그리고 이들 동물은 아이들이 동물원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흔히 볼 수 없는 존재이기에, 동물원에 가서 보기만 하면 그대로 빠져들곤 한다. 그리고 동물원에 가서 이들 동물을 만나면 만날수록 아이들은 그 동물들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보다는 철창 속에 갇힌 동물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만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온갖 매체에서는 동물원을 소개할 때 보통 아이들이 쉽게 동물을 볼 수 있는 효용성, 그리고 사육사들이 동물을 돌보는 모습, 한가로워 보이는 동물들의 모습들을  집중해서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동물들에게 초점을 맞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물이 힘에 겨워서 취하는 특별한 행동마저도 사람들에겐 웃음을 자아내는 귀여운 행동처럼 보여주곤 한다.
  또한 동물원은 그 동물의 원래 서식지와 가장 흡사한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지만, 대개 이런 서식 공간은 무시된 채 청소를 위해서,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시멘트로 깔려 있기 쉽상이다. 거기에 바닷물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이라도 특별 공연으로 관람료를 벌어다주는 돌고래 외에는 모두 민물에서 방치되기도 한다. 또 때로는 사슴과 비슷하게 생긴 소과 동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습지대에 사는 시타퉁가와 사막지대에 사는 흰오릭스, 삼림지대에 사는 니얄라가 함께 초원 형태의 사육장에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동물원의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동물원의 현실을 반영하듯 동화 가운데 동물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동물원에 대한 고민이, 동물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미약하긴 해도 의미있는 작품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이현주의 <창경원에 나타난 비행접시>(1982년, 《날개달린 아저씨》, 창비)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원을 구경하던 환희네 식구는 부모를 잃어버린 한 아이가 울고 있는 걸 보고 미아보호소에 데려다 주러 나온다 비행접시를 발견한다. 창경원과 비행접시라니 조금은 뜬금없는 연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외계인들은 지구인을 향해 의미있는 말을 던지고 떠난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가페 별나라에서 온 어린이랍니다. 지구별 어린이들과 사귀고 싶어서 먼 길을 달려왔어요. 참 날씨도 좋군요! 그런데 저 철망은 뭔가요? 왜 짐승들을 모두 가두어 놓았지요?  불쌍하게…… 우리 아가페 별나라에서는 철망이라든가 울타리라는 게 없지요."

  이어서 우리는 녹아내려 사라지고 사람과 짐승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즐겁게 논다. 하지만 비행접시가 떠나고 나자 모든 건 다시 전과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작가는 현실에서 그 해결방법을 도저히 찾지 못했던 것일까? 마치 꿈결처럼 나타난 비행접시가 메시지와 환영을 남기고 떠나는 것처럼 끝맺고 만다.

동물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다니에 페낙의 《늑대의 눈》(문학과지성사)이나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논장)이 부럽기도 하다. 《늑대의 눈》은 우리 안에 갇힌 늑대와 우리 밖의 한 소년이 서로의 눈을 통해 교감하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동생을 구하려다 사람에게 잡혀 동물원에 팔려온 늑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물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책이긴 하지만 철창 안에 갇힌 동물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동물원의 부당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4. 생명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이원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하나의 목숨이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살려내는 이야기를 참 많이 쓴 작가다. 이원수 작품에서 죽음은 때론 새로운 자손을 퍼트리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손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목숨을 살리는데 바쳐지기도 한다.
  <희수와 라일락>에서 화자인 '나'는 기르던 개 희수가 죽자 뜰에 있는 라일락 나무 아래 묻어준다. 그런데 희수가 묻힌 자리의 그 라일락 나무는 해마다 놀랄 만큼 잘 자라서 봄이 오면 그야말로 꽃무더기를 이루어 달고 새콤함 향기를 온 집 안에 뿌리고, 그러고도 남아 담장 밖으로 넘쳐 흘려 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기르던 개가 라일락 나무에 거름을 만들어 더욱 잘 자라게 만들어주었던 게다. 그렇다면 결국 희수는 라일락과 하나가 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싶다.

 향기 속에 또 그 아름다운 꽃더미 속에 나는 희수를 본다. 희수의 사랑스런 모습이 선연 보이는 것 같다.

  작가의 이런 마음은 그저 마음만이 아님은 물론이다.
  <유리성 안에서>는 유리병에서 나가지 못하고 혼자 남게 된 코스모스 씨 이야기다. 코스모스 씨는 자기가 나가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지 못하고 딴딴한 씨앗 그대로 유리병 속에 있게 된다는 것은 결국 성 같아 보이는 유리병을 무덤으로 삼게 되는 것임을 안다. 그럴 듯한 성, 그 성에 갇힌 코스모스 씨를 통해 생명의 영속성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귀뚜라미와 코스모스>는 다소 직설적이지만 생명의 영속성에 대해 들려주는 작품이다. 가을이 지나면 이제 죽게 된다는 걸 알게 된 코스모스는 마냥 슬프기만 하다. 그러나 귀뚜라미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꽃이 지면 열매가 익고, 열매는 남아서 다음 해에 새로운 싸기 나고 잎이 자라서 더 좋은 꽃을 피우는 생명의 영속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기쁨으로 이어진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의 생명은 아주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생명은 더 많은 생명으로 더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생각한 슬픔은 이 사실을 생각하니 오히려 기쁨으로 바꿔지는 것도 같구나!'

  하지만 생명의 순환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잔잔하게 들려주는 건 아무래도 권정생의 <강아지 똥>(1969년)이 아닐까 싶다. <강아지 똥>은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강아지 똥이 민들레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다. 자연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조차도 할 일이 있고, 그래서 모든 건 다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또 자연이란 강아지 똥이 흙이 되고 거름이 되듯이 순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에게 자연의 모든 것은 동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작가가 정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강아지똥>이 실린 책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강아지똥은 자기 몸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차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비록 스스로는 사라져버리지만 결국은 민들레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다는 기쁨 때문이다.  

  한편 같은 똥 이야기를 가지고 또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 작가도 있다. 이상권의 《똥이 어디로 갔을까?》(2000년, 창비)다. 이 책은 '똥'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똥이 어디로 갔을까>, <아빠의 똥 이야기>, <똥 먹는 개>, <똥개 생각>, <개똥 참외>까지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똥 이야기라도 모두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똥이 어디로 갔을까>에는 단후의 똥이 흙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똥파리, 집파리, 말벌, 쇠똥구리, 노래기, 개미, 버섯이 등장하며 빠르게 보여주기도 한다. 또 <개똥 참외>에서는 개구멍에다 눈 똥에서 참외 순이 나와 참외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는 이야기다. 지저분한 똥에 대한 고정관념 대신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게 버무려져 똥이 자연에서 어떻게 순환이 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깃거리에 가려 주제가 때론 진지하게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기는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