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래 희

   
  얼마 전에 DMZ 철책선이 뚫렸다고 해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일이 있다. 철책을 몰래 뚫고서야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다. DMZ는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전쟁과 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의 상징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는 증오와 적개심만 쌓이고 국토는 황무지가 되었다. 또한 휴전 이후에는 남과 북이 정신 없이 국토개발에 매달리면서 온 국토가 몸살을 앓게 되었고, 많은 야생동식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철조망을 쳐놓고 서로 접근을 막은 덕분에 살벌한 철조망 안에서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무장 지대'라는 말 그대로 남과 북이 서로 경계만 하고 침범하지 않는 그 곳의 자연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버려 둔 그 곳이 오히려 야생동식물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었고,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희망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남과 북의 관계는 늘 변화무쌍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둘러싼 세계의 관심도 뜨겁기 그지없다.  
  이제,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이라는 정치 현실, 남과 북의 관계 변화에 따른 개발과 보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간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연환경에 대한 전세계의 각성과 관심이 비상한 이 때에, '비무장지대'가 가지는 의미와 상징성은 더욱 커졌다고 하겠다. 한반도는 21세기를 맞이하여 통일과 환경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해결해야하만 하는 입장이 되었고, 그것은 '비무장지대'를 '자연'이라는 큰 창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만 제대로 풀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장차 21세기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에게 '비무장지대'의 현실과 의미를 제대로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자연환경이 단순히 보호하고 가꾸기만 하면 되는 '대상'이 아니라 역사, 정치, 경제 등, 여러 가지 사회 현실과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어서, 어린이 자신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자연생태를 설명하는 지식책 이라고 해도, 독자인 어린이에게 현실을 올바르게 설명해 주고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DMZ의 생태적 중요성을 설명하고 통일과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려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이 남다르다.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전영재 글/박재철 그림/마루벌), 《멀리서 온 귀한 손님》(전영재 글/ 김창희 그림/마루벌), 《산양의 비밀》(전영재 글/김재홍 그림/마루벌)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희망의 땅 비무장 지대'라는 소제목으로 특별히 묶어 놓은 이 책들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의 구체적인 자연을 집중해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더 반갑다. 세 권의 책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자연과 나의 관계, 그리고 DMZ의 생태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문제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자연 안에서 하나인 우리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멀리서 온 귀한 손님》, 《산양의 비밀》은 '자연과 나'라는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여러 권 가운데, 특별히 '비무장지대'라는 우리만의 특수한 자연환경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본래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어린이들 자신이 살고있는 이 땅의 자연환경을 설명하는 책이야말로 참으로 소중하다고 하겠다. 비록 비무장지대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심지어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어린이에게 비무장지대는 자신이 밟고 서있는 자연이며 조국의 현실인 것이다. 외국의 어떤 훌륭한 생태책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절실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멀리서 온 귀한 손님》, 《산양의 비밀》은 춘천MBC의 전영재 기자가 오랫동안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을 취재해온 경험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책이다. 처음부터 어린이책을 만들기 위한 기획취재는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한가지주제를 조사하고 고민해왔던 본인이 직접 책을 엮어냈다는 점에서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비록 어린이책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현장을 누비고 다닌 본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듣고 보았을 현장의 안타까운 상황들이, 투박하지만 절실한 마음으로 잘 표현되었다는 믿음이 든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힘으로 취재하고 고민해서 이만한 책으로 만들어낸 것이 참 반갑고 고맙다.

  먼저,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을 보자.  
  전쟁, 분단, 그리고 삭막한 비무장지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그림들이 차례로 나온다.

전쟁 후 비무장지대의 숲은
새까맣게 탄 황무지였어.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한 채,
비무장지대 안은 잊혀져 갔어.

  불에 타죽은 듯한 동물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이고, 잘리고 부러진 나무들 때문에 말 그대로 황무지처럼 보이는 숲의 입구에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가슴 철렁하게 버티고 서있다. 흑백의 그림이 황폐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한 편, 다른 한 쪽 면에는 초록으로 싱싱하게 살아나는 숲이 나타난다. 멧돼지, 토끼, 고라니들의 모습도 보이고, 이제는 녹슬어서 글자도 알아보기 힘든 '출입금지' 팻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겨났어.
50년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자
비무장지대는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싱싱하게 살아나기 시작한 거야.
사람들이 보살피지 않아도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추고 비가 내리니까.
까맣게 그을은 땅 속에서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타버린 나무도 뿌리로 힘껏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라나기 시작했어.
계곡 물에는 물고기가 생기고,
숲에도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었지.

  사람들이 스스로 철조망을 쳐놓고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은 제 스스로 생명을 회복했다. 우습지만, 사람이 이런 식으로라도 자연에 좋은 일을 한 셈이다. 이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그 곳에 온갖 동식물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비무장지대에서 사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멧돼지 어미가 지뢰를 피해 다니도록 안전한 길을 찾아서 새끼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 보자.
  끝없는 개발과 서식지 파괴로 돌아올 곳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철새들에게 '비무장 지대'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도망쳐버릴 만큼 예민하고 조심성 많은 새들에게, 50년이 넘도록 사람이 살지 않고 있는 이 곳이 피난처요 낙원인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민통선 안의 철원평야에 특히 겨울 철새들이 많이 찾아오는 데에는 쌀 농사를 짓는 넓은 논과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온천이 있다는 것 또한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방법은  매우 특별하다. 농사를 지을 수는 있지만 거기서 살지는 못한다. 철새들에게 이만큼 좋은 조건이 또 있을까? 물과 먹을 것은 풍부한데, 사람은 살지 않는 곳!

여기에서는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농부들도 아침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만
논밭에서 일하고 서둘러 나와야 해.
그러다 보니 가을에 추수를 하고 나면
들판에 벼 낟알이 많이 떨어져 남게 돼.
자연히 곡식류를 좋아하는 새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지.
곡식을 먹는 작은 새가 많아지자,
새를 잡아먹는 족제비도,
또, 족제비를 좋아하는 매 종류도 많이 살게 되었지.
곡식을 먹는 쥐들도 많아져 쥐를 잡아먹는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소쩍새들도 역시 많아졌단다.

  자연에서 아무 이유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사람이 떠난 곳에 새들이 돌아오고, 또 그 새를 잡아먹는 족제비, 그 족제비를 좋아하는 매가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먹이사슬이 복원되었다. 철원평야에 남겨져있는 곡식 낟알들은, 결국 곡식을 먹는 쥐들과 그 쥐를 잡아먹는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소쩍새까지 포함하는 커다란 생태계를 구해내는 일을 해낸 것이다. 한편, 먹이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것 역시 자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건강한 모습이다. 원래 새들은 다른 종류와 섞여 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먹이가 부족한 이 곳에서는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함께 살기도 한다. 먹이가 같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종종 싸우기도 하지만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신호를 보내서 일시에 날아오르기도 한다. 경쟁하면서도 서로 돕는 지혜로운 모습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루미는 이제 전 세계에 1700마리밖에 남지 않았고, 그 가운데 삼분의 일이 해마다 철원평야를 찾고 있다. 그야말로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이다.

  마지막으로 《산양의 비밀》을 보자.
  1964년 겨울, 설악산에 어마어마하게 큰 눈이 내리자 산양들이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왔고 사람들은 3000마리나 되는 산양을 마구 잡았다. 그 때는 산양이 매우 흔한 동물이었고 사람들도 먹을 것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했다. 그 후로 우리나라의 산양은 거의 다 사라지고 보기 힘든 귀한 동물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이 뭔지 아니? 호랑이일까? 사자일까?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은 사람일지도 몰라.

  산양은 인간보다도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지구에서 살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지구가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도 견디고 살아남았을 만큼 강인한 동물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연의 화석'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에 200마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희귀동물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살아있는 산양의 대부분은 철책으로 둘러싸인 비무장지대 안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산양들은 철책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사람들 역시 철책 때문에 비무장 지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덕분에 산양들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안전하게 살게 되었어.
자유를 잃은 대신 안전을 얻은 셈이야.

  '자유를 잃은 대신 안전을 얻었다'는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자연보호'라는 말이 무슨 운동 구호처럼 값없이 메아리치던 시절이 있었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은, 인간이 모든 동식물을 포함하는 자연 앞에 우뚝 서서 '자연'을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비무장지대의 경우는 처음부터 보호하고자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잊혀진 채 철저히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라는 사실을, 비무장지대의 자연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그렇게 저 스스로 회복한 자연의 품에 멀리서 귀한 손님이 날아오고 산양도 어렵사리 보금자리를 틀었다. 모든 것이 사람이 물러난 자리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산양이 살 수 없고 철새들이 살 수 없는 곳이라면 결국 우리도 살 수 없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시간이 많지 않다. 비무장지대가 이만큼이라도 자연을 회복하는데 50년 남짓이 걸렸다면, 이 것을 다시 황폐화시키는데는 그 절반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고라니, 두루미, 산양의 모습을 오랫동안 마음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비무장지대의 어제와 오늘을 제대로 배우고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고라니, 두루미, 산양들이 왜 자연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는지 궁금해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꼭 찾기를 바란다. 어차피 희망은 어린이들 안에 있으니까 말이다.  

  희망의 땅 비무장 지대

예쁜 꽃과
산양,
철새,
물고기들이
먼저 남북통일을 이룬 땅,
비무장지대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작가는 '통일된 조국 강산에서 살게 될 남과 북의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말로 시리즈를 시작한다. 자연생태를 설명하는 지식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특정 생태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과 문제점까지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비무장지대의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온갖 개발계획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북통일은 민족의 숙원사업이고, 통일의 첫걸음은 당연히 자연스런 인적 물적 교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남과 북을 이어줄 '길'부터 닦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에 난 '길'은 야생동물들에게 그야말로 '죽음'을 의미한다. 국토를 종횡무진하는 도로들 때문에, 이미 많은 야생동물들이 길을 잃고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오랫동안 야생동식물들에게 최후의 피난처가 되었던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이 146종이고, 무려 2800여 종이나 되는  동식물들이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들은 불행한 전쟁의 대가로 얻은 소중한 생태 자원이며 우리의 귀한 친구들이다. 통일이 되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그들에게는 모두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
비무장지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이 숲에서 살아온 동식물들의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는 우리 사람들의 것인가? 자연 안에서 너와 내가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작가는 어린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들에게 너무 무겁고 어려운 문제일 수 있지만, 때로는 복잡한 문제일수록 어린이의 마음과 눈으로 단순화시켜서 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것은 결국 우리 어린이들이 해결해야할 현실적인 과제이다. 어릴 때부터 올바르게 알고 문제의식을 키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은 반드시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하고 어린이다운 마음에서 키워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이 산양, 두루미, 멧돼지와 같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 될 때, 현실적인 눈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철조망이 거두어지고
두루미와 연어들처럼 우리도 남과 북을 오가게 될 거야.
그 날까지 우리는 마음 속에 통일의 싹을 키워 나가야지.
남과 북의 사람들이 사이좋게, 자연과 어우러져 살게 될 그 날을 준비하면서.
                                                                        《통일의 싹이 자라는 숲》


김 래 희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지식책과 환경을 생각하는 어린이책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