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   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은 사람들을 계속 도시로 내몰았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대열에는 아이들도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아이들이 앞장 세워졌다. 왜곡된 산업사회에서의 과도한 교육열은 아이들을 도시로 먼저 떠밀었다.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의 결과, 이제 농촌은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란다.
  생명과 환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1980년대 산업공해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한 환경관련 사회단체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 자연과 환경문제로까지 관심의 폭을 넓혔다. 이들 단체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어린이책에서도 자연과 환경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개별 동식물의 생태 이야기나 도감, 시골의 풍요로운 자연관찰등 비교적 완벽한 자연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데 주력하였으나 이제는 아이들의 삶의 터전인 도심생태를 다룬 책들도 눈에 띤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조화로운 자연의 세계가 아닌 비록 만족할 만한 자연환경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의 생태계에 대해서《가로수 밑에 꽂다지가 피었어요》(이태수 글,그림 / 우리교육),《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박성호 지음, 김동성 그림/ 사계절)가 눈에 띄며, 보다 넓게 보면《산에 가자》(이상권 글, 한병호 그림/ 보림)와 같은 책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책들은 도시 생태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런 책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환경을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

《가로수 밑에 꽂다지가 피었어요》는 도시의 한 구석을 메우고 살아가는 이름조차 생소한 생명들의 모습을 그린 책이다. 생명이 움뜨는 봄날의 달맞이꽃과 망초부터 시작해서 눈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름 모르는 풀꽃, 곤충들 그리고 아파트 화분 받침대에 둥지를 틀 수 밖에 없는 갈 곳 없는 새들을 계절의 흐름 속에서 담아냈다.  
  작가는 천연색의 자연과 무채색의 인공을 대비시켜 도시를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치 네가티브 필름처럼 화려한 도시의 모습은 무시되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소박한 자연의 모습에 시선을 맞춘다.
  작가의 이분화된 시선 이전에 이미 도시의 생명들은 이분화되어 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모든 생명은 이미 ‘선’과 ‘악’으로 나뉘어졌고,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잘 기르고 지켜야 할 것과 사람의 생활에 별 필요가 없거나 유해한 것을 정하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몫이다. 따라서 도시의 주인인 사람은 모든 생명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준다.

작가는 그림에서 포장마차, 건물, 유모차 등 인공적인 물건은 무채색으로
그리고 사람, 꽃, 나무 등 자연은 천연색으로 처리함으로써 인공과 자연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길조로 환영받던 까치는 살 곳이 없어 전신주에 둥지를 트는 순간 해조(害鳥)가 될 뿐이고, 갈 곳이 없어 아파트 화분 받침대에 둥지를 튼 황조롱이는 뉴스꺼리로 잠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뿐이다. 모든 생명이 스스로를 지키며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이 책에는 도시의 자연을 생각하면 의례히 떠올리는 잘 다듬어진 정원이나 공원 주변의 넓은 잔디밭 같이 사람에 의해 선택되고 사람의 손에 다듬어진 그런 자연은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거친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생명들만 주목할 뿐 사람의 손길 아래 푸르름을 자랑하는 생명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작가는 심각한 도시의 생태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름 없는 생명들을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위한 출발이라고 이야기 한다.

청둥오리들이 철망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망엔 우리가 갇혀 있습니다.

철망이 걷히는 날, 그 날이 언제일는지
새들처럼 이땅 저땅 날고 싶습니다. - 32쪽

2.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는 11살 초등학생 병규의 매미 관찰일기다.
  병규는 자연이 조화롭게 생동하는 숲 속이 아닌 도심 속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서 매미를 관찰한다.
  이 책은 파브르의 곤충일기를 떠오르게 하지만,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 살았던 파브르에 비하면 병규는 휠씬 복잡하고 어려운 관찰을 하고 있다. 도시의 생태에서는 관찰 대상인 자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골칫거리 해충이 되어버린 매미를 옹호해야 하는 것도 관찰자 병규의 몫이 되어 버렸다.
  이제 도심의 매미는 골칫거리다. 시원한 울음소리로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던 매미는 어느새 시끄러운 해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시인들의 휴식과 내일을 위한 단잠을 방해하는 골치덩어리일뿐이다.
  균형이 깨진 도시의 생태계는 온통 모자람과 넘침만이 있을 뿐이다. 머리 위를 곡예하던 제비, 하늘 하늘 날아가던 나비, 맑은 물속에 노닐던 송사리떼의 자리를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슬슬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니는 도둑 고양이, 사계절 내내 날아다니는 모기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바퀴벌레들이 온통 채우고 있다.  도시화에 따른 생태계의 교란에 대한 자연의 대응이다.
  생태계 왜곡으로 인해 숫자가 줄어든 일부 생명들에게는 천연기념물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 반대편의 늘어난 일부 생명들에 대해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적대시한다. 이들의 균형을 파괴한 것은 바로 사람들인데, 모든 책임은 각각의 생명에게 떠넘겨졌다. 지구의 온난화와 무분별한 남획, 환경의 파괴등으로 인해 먹이사슬은 파괴되어 버렸고 그 결과 생명체들은 멸종하거나 이상증식을 한다. 사람들은 원인에 관계없이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만을 탓하고 있다.  
  매미를 관찰하던 병규는 어느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약을 뿌려 매미를 없애는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매미가 알을 낳은 가지를 잘라 태우거나 애벌레를 잡아 죽이는 게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 밑동에 그물을 씌워 애벌레가 땅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101쪽

  병규는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매미를 죽이는 것에 놀라며 그동안 매미 관찰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같은 아파트에 사는 대학생 동환과는 다시는 같이 놀지 않기로 다짐한다. 농생물학과에 다니는 동환이 말한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곤충 연구”가 결국은 매미와 같은 곤충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공부라고 여긴 것이다. 동환에게 배신감을 느낀 병규는 동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다닌다.
  어렵사리 다시 만난 두 사람, “형은 곤충을 죽이지 않아. 열심히 공부해서 곤충과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할 거야.” 라며 새끼 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도 찍는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두 사람의 갈 길이 웬지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3.

  《산에 가자》는 솔이와 아빠가 뒷산을 오르면서 운동도 하고, 놀이도 하고, 자연관찰도 하는 정겨운 모습을 가득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환경오염이나 도시환경이니 하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맨 마지장의 면을 펼치기까지는 그렇다.
  마지막 펼친면의 단풍이 붉게 물든 산을 사방의 회색빛 건물들이 온통 포위하는 장면에서는 어느덧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대부분 분지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또 워낙 산이 많아서 중심가를 벗어난 곳에는 낮으막한 뒷산이라도 하나 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난개발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산들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그 산 조차도 이제 힘들어 하고 있다.
 

  어릴 적 집에서 꽤 먼 안양천을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하천 가운데로만 시커먼 물이 겨우 흐르고 하천가에는 두터운 기름 덩어리들이 흐르지도 않고 고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재미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함께 물이 튀지도 않고 푹푹 박혀버리는 기름 덩어리에 돌이 던지면서 놀았다. 당시에는 집 주변의 개천에도 온갖 물고기가 살았을 때였으니 이 기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만한 강렬한 했을지 모른다.
  지금 안양천은 기름이 엉겨붙고 형용색색의 폐수들이 어우러졌던 당시 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물고기가 살았던 개천은 온통 복개되어 그 모습조차 찾을 수 없다. 도시의 환경은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는 것 같지만 도시 전체는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도시는 생명체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그나마 어렵게 살아가는 공간도 하루 하루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들의 삶에 인간은 필수적인 요소이고 최대의 변수이다. 이제 오로지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시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