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忖과 무녀

1974년 10월 15일 충북 영동군 영동읍 금동 송재충(60세, 남)


우리가 잘 아는 청백리, 훌륭한 정치가, 고려 말기에서 이조 초엽에 걸친 인물로 방촌 황희 선생의 일화가 하나 있다. 영동에서 전해 오고 있는디 그분이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는 그런 안목을 가진 괴력이 있는 분이었다. 이게 전설이겠지마는 이 얘기가 전해 내레오는디 그분이 소시적에 소년 시절에 책을 끼고 서당에 공부하러 다니고 하는 이런 무렵에 하루는 책을 끼고 서당에서 오다 보니까 웬 기집 하나가 목판에다가 돈꾸러미 겉은 것을 담은 자루를 해서 머리 우에다 이고 오는디, 그 우에 방촌이 가만히 보니까 綠衣紅裳한 요염한 계집 하나가 날럼 올라 앉었더라 이거야. 방촌이 必有曲折이다 싶어서 밟엄밟엄 그 기집 가는 뒤를 따러갔더라 그거여.
그랬더니 동네 가운데로 들어가더니 어느 커다란 솟을대문을 써억 들어서 들어가더라 그거야. 그래 방촌은 대문, 남에 內庭에 들어갈 수는 읎고 해서 그 다녀나오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서 대문간에 섰더니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웬일인지 그 집 안에서 곡성이 낭자하고 발칵 뒤집혔다 그게여. 게 이거 필유곡절이다, 그 가만히 엿보고 대문간에 섰는디 젊은 계집 하인인 모양인디 여자가 황급하게 뛰어나오면서 어듸 가는 길이여. 게 방촌이 그 여자를 딱 불들고서 여보 당신 댁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아니요? 이제 곡성이 저렇게 낭자하니, 아이 여보 나 바쁜데 이얘기 마시요. 아이 글쎄 나한테 이얘기 좀 하라고 말이여. 이라니까 그 이얘기가, 우리 댁 작은 아씨가 지금 갑자기 광난이 났는지 죽어 나자빠졌다, 그거여. 거서 어데 가냐?이원을 불르로 가는 길이다, 그거여. 그래 방촌이 그 나도 의학 공부를 좀 한 사람이니까 내가 조끔 들어가 보면 안 되겄소? 아 그러느냐고 들어가 보시라고 말이여. 그래서 그 기집을 따라서 안 내정으로 들어갔더라 그게야.
거 마당에 떠억 들어가서 서서 보니까, 그때가 아마 날이 더운 시절이었든지 영창을 활짝 열어 놓고서 죽어 나자빠진 지악시를 가운데 두고서 온 가족이 황황급급히 울고불고 야단이 았더라 그거지. 게 방촌이 가만히 마당에 서서 보니까 마루에 그 목판을 이고 가든 계집은 마악 마루에 앉았고 그 목판 우에 녹의홍상한 기집 하나가 죽어나자바진 시악시 배 우에 가서 가심 위에다 떠억 올라앉어서 두 손으로다가 목을 꽉 눌르고서 앉었더라 그거여. 근데 그 시악씨는 죽어 나자빠져, 근데 그게 귀신이야. 다른 가족들 눈에는 안 보이지마는 방촌 눈에는 보이더라 그거지. 그래 가만히 보니까, 그 마루에 앉인 기집이 머라고 이얘기하는고 하니, “아아 댁이 왔드니 작은 아씨가 갑재기 저렇게 죽어 나자빠지고 야단이 났으니, 제가 어떻게 푸닥거리 한번 좀 해 볼까요?” 그러니까 그 주인들이 아 급하니까 해보라고 말이여. “그러면 여기 복채를 내야 되니가 복채를 좀 노시요.” 상에다 갖다 돈꾸러미를 모도 갖다놓고 이러니까 이 여자가 축문을 외고 이렇게 하드라이거야. 게 한참 축문을 외더니 아 이거 복채가 적으니까 복채를 더 노시요 허니께, 자꼬 그 집은 부자집이니까 대가고 그러니까 돈꾸러미를 갖다가 돈이고 머 은금보화 모도 있는 대로 모도 갖다놓고 이러드란 거지. 게 멫 번 그러고 나니까 수북하니 그 상 우에 은금보화며 돈꾸러미가 쌯이더라 그거야. 게 그렇게 되니까 배 우에 앉인 녹의홍상으 기집이 슬무시 목에 눌렀든 손을 놓더라. 그러니까 시악시가 후유우 하고 한숨을 들이키더라 그거야. 그러고서는 그양 올라앉었어.
그런듸 그 밖에 있는 마루에 있는 여자가 “조금만 더 노시면 좀더 해보겄십니다.” 그래 또 갖다노니까 그 제사 참 축문을 외고 이러는 것을 보고서는 그 녹의홍상에다가 슬무시 그 시악씨 가슴에서 내레앉더라 그거여. 그러니께 뻘떡 일어나, 그 시악시가 금방 죽었든 시악시가 일어나 앉더라 그거지. 그러더니 그 주인이 백배 사례하고 그 여자한테 다시 돈을 많이 주고 이래서 그 장면은 끝났다 그거지. 그러니까 그 돈을 모도 목판 우에다 담어서 이고 그 우에 다시 녹의홍상한 기집애 올라앉이고 이래서 대문간을 나가더라 그거여.
게 인제 방촌이 그 기집 뒤를 밟아서 따라가는 거야. 그러니께 석양 때가 됐는디, 저어 산골짝으로 자꼬 한읎이 들어가는디 사뭇 따라갔다 그거야. 게 어디만큼 가더니 그때선 땅거미가 필 무렵인디 참 무인지경까지 가가주고서 거기서 그 여자가 땅을 파고서 그 돈을 전부 갖다 묻더란 거야.
그것꺼지 전부 목격을 했습니다, 방촌이. 게 그걸 보고서 뒤에서 방촌이 한번 정색을 하고 호령을 했어요. 네 이년 고현 년! 네 이년 어듸 가서 도적질을 못 해서 이따위 행동을 한단 말이냐? 이년 죽일년이라고 말이여. 그라고서 호령을 하니까. 그 기집이 돌아서더니 방촌을 쳐다보고 방촌 앞에 가서 그제사 엎듸려가주고서 굴복을 하면서 “오늘 되련님이 오늘 여기 오실 것도 짐작을 했십니다. 그러니 제 - 그때는 참 머 미천한 사람들이 쇤네라고 그랬지요 - 쇤네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제 사복을 채울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다아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용서를 해주시지요.” “그러면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찌 그런 일이 있단 말이냐?” “이것이 다 되련님이 장차 이 나라를 위해서 쓰실 돈이니까 그런 줄 아시고서 이만하면 오늘로서 쇤네가 하든 일을 아주 끝을 막겠습니다. 이만해도 되련님이 장차 쓰실 돈이 아주 충족할 거 겉으니까 이걸로 끝맺겠는디 경상도 어듸, 전라도 어듸, 경기도 어듸, 충청도 어듸, 함경도 어듸, 강원도 어듸, 그 유명한 명산 골짜기 골짜기를 전부 일러주면서 여기여기 돈이 암만암만 전부 묻혀 있으니까 잘 기억하시었다가 장차 소용이 되실 때에 캐내서 쓰십시요”이렇게 이얘기를 하면서 忽忽不見으로 사라졌더라 그거여.
게 방촌이 하도 이상해서 그 질로 돌아왔는디 나중에 고려 말년입니다. 고려가 망하고 이조 때가 되어서 이조 태조 때에 그때 방촌이 집권을 해서 정승이 된 뒤에 대궐을 짓고 서울을 건설하고 이랄 때 전부 돈을 쓰는데 돈이 모자라더라 그거여. 그래서 방촌이 그때 그 젊었을 때에 그 무당기집이 하든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전부 사람을 풀어서 그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산속을 찾아가서 찾어보니까 과연 그 무당기집이 이야기하든 그곳을 가면 반다시 돈이 묻혀 있어서, 그걸 캐내가주고서 그때 건설 사업에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이러한 옛날 이야기가 이 고장에서 전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