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蘭溪와 호랑이

1974년 10월 15일 충북 영동군 영동읍 금동 손재충(60세, 남)


난계 朴堧 선생 하면은 우리나라에 삼대 악성으 한 분으로 다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중 가장 근대으 이씨 이조 세종대왕 시절에 두드러진 명성을 냉긴 분이죠. 이분은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사회운동 여러 면에서도 큰 공을 남긴 분입니다. 그래서 역사상에 많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사실 여러 가지 관계로 널리 항간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많아서 야속하기도 합니다.
이분은 영동 출생이죠. 이분은 효자로서 부모한테 효행이 돈독한 분이였어요. 그분으 부모는 영동군 심천면에 살으서서 거그서 선생을 나셨지요. 부모가 돌아가서서 거그다 산소를 모셨지요. 그대으 효자들은 시묘를 살었는디 선생도 역시 시묘를 살었어요.
선생은 음악에 천재였기 때문에 음악에 재질을 나타냈지마는 그 중 장기는 대금이었어요. 시묘살이하면서 산에서 대금을 불면 날짐승이고 길짐승이고 모다 모여와서 춤을 추어서 선생과 같이 질겼다는 거요.
선생이 시묘를 살 때 밤이면 꼭 호랭이가 와서 호위해 주고 守直해주고 했답니다. 삼 년 간 시묘를 살고 삼 년째 大祥도 가까워질 무렵에 하루 저녁에 호랭이가 안 와요. 자정이 넘도로 새벽녘께꺼정 지달려도 여엉 안 와요. 그 이상하다, 삼 년을 두고 매일 밤 결한 일이 읎든 호랭이가 오늘 저녁에는 웬일일까, 한편 궁금하고 섭섭하고 이래서 지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아 호랭이가 현몽하드라는게요. “아이 상제님, 제가 지금 사경에 이르렀십니다. 절 좀 살려 주십시요.” 눈물을 흘리면서 애소를 하드라는 게요, 꿈에. 게 “제가 지금 당재 어느 돗에 걸려서 죽게 되었이니 상제님 곧 와서 살려 주시요.” 깜짝 놀래 깨보니 꿈이다 이거요. 그 이상하다, 그래서 어떡하나 하구 또 그 꿈이란 허산가 싶어서 앉았는데 또 잠깐 잠이 드니께 또 선몽을 해요. 세 번을 그랬답니다. 거 당재란 디가 거 어딘가. 그 양반이 시묘살던 마곡리서 한 이십 리 가량 되는 거린데 하도 꿈이 궁금해서 부랴부랴 상정 막대기를 짚고서 당재를 찾어갔답니다. 찾어가서 보니께 날이 후변히 샐 무렵인데 멀리 보니께 당재 고개에 사람들이, 동네 사람이 허옇게 웅게중게 서성거리고 있더랍니다. 하도 이상해서 달려가서 보니까 과연 호랭이가 돗에 걸려서 동네 사람들이 그 호랭이를 거낼라고 하고 있더라 그거에요. 조금만 더 일쯕 갔드래도 살렸을는지 모르는데 가 보니까 이미 호랭이는 숨진 뒤였드라 이거이여요, 시간이 넘어서. 그리서 보니까 틀림없는 당신을 삼 년 간이나 호위하고 수직해 주든 그 호랭이가 틀림읎드라 이 말이예요. 그래 기가 막혀서 이 양반이 동네 사람들을 붙들고서 사실 이 호랭이는 나한테 넹게주시요, 사실 약시약시한 호랭입니다 하고 자세히 이얘기하니까 비로소 동네 사람들도 이해하고서 호랭이 죽은 시체나마 난계 선생에게 넹게드린다고 했다는 이얘기가 있십니다.
이 양반은 눈물을 흘리면서 호랭이 죽음을 조상하고 호랭이 시체를 당신 아버지 산소 밑에다 정중히 장사를 지내주고 거그서 아버지 묘사를 지낼 때에는 꼭 호랭이 무덤에도 제사를 같이 지내주고 이것이 그래서 그 자손들은 虎?이라고 그러고서 그 난계 어르신네 산소에 제사를 지낼 적에는 꼭 근년까지도 호랭이 虎?에 대한 제사를 결하지 않고 있다는데 이것이 난계선생이 미물에꺼지 덕을 베풀었다는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