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글재주

1943년 9월 경성부 관수정 목천장문


옛날에 중국에 우리나라에 글 잘 하는 문장이 없는가 알아 보기 위해서 이렇다 할 문장 하나를 우리나라로 내보내기로 했다. 우리나라 조정에서는 이런 소문을 듣고 이거 큰일났다. 중국으 큰 문장하구 대결할 만한 문장이 누가 있겠느냐 하고 글 잘하는 문장을 뽑아 보는데 그때 일곱 살 난 김시습이란 어린아이가 자기가 그 임무를 맡겠다고 나섰다. 나라 신하들은 이 어린 김시습을 보고 니가 어린몸으로 어텋게 중국으 대문장하고 대결하겠다고 하너냐 너는 어려서 못한다 하구 물러가라구 했다. 그래도 김시습은 저는 중국 문장하고 대결할 수 있다고 자꾸 말해서 신하들도 그럼 그렇게 하라 하고 김시습을 중국 문장과 대결할 우리 문장으로 삼었다.
김시습은 중국 문장이 우리나라로 올 무렵쯤 돼서 의주로 내려가서 압록강 강가에 가서 있었다. 중국 문장은 압록강을 건너오느라고 배를 타고 건너와서 말을 타면서 길가으 버드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들고 馬得千里鞭이라고 한시를 읊었다. 중국문장이 읊으는 소리를 듣고 김시습은 鶯丈一枝春이라고 한시로 읊었다. 중국 문장은 어린애가 자기가 읊운 시에 알맞게 즉각 응대하는 것을 보고 기특하게 여기고 너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예에 압록강 옆으 마을에 삽니다고 대답했다. 글을 배웠느냐고 물어서 집 옆에 서당이 있어서 거그 가끔 놀러가서 넘 글배우는 것을 어깨너머로 멫 자 배웠습니다고 말했다. 중국 문장은 내가 글 하나 지여 보겠는데 너는 거그 맍은 대구를 지어 보겠느냐 하면서 桃花落地에 不토닥 하고 지었다. 김시습은 그것을 보고 곧 影月水沈 無담방 하고 지었다.
중국 문장은 이것을 보고 조선은 이렇게 편벽진 압록강가에 사는 어린애도 기가막힐 만큼 글을 잘하는데 조정에 가면 거그에는 얼마나 글 잘하는 문장이 있을가 섣불리 갔다가 망신만 당하겠다 하고 그만 저으 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김시습은 어려서도 이렇게 글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