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논픽션 문학
                 - 역사책을 중심으로

                글 : 이지수

 

  역사나 문화부분의 논픽션은 환경.과학책과는 달리 외국의 다양한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기 어렵다. 역사나 문화와 관련된 책들은 세계사나 백과사전식의 역사책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로의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주변지역과 분명히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하일 일리친(본명: 일리야 야코블레비치)의 《인간의 역사(원제-인간은 어떻게 거인이 되었나,1940년)》,《책의 역사》나 헨드릭 빌렘 반 룬의 《인류 이야기(1926년》) 같은 책도 있다. 반 세기도 훨씬 지난 이책들이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인류 보편의 역사를 다루는 세계사 영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대를 앞선 저자들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가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인류이야기> 2권의 목차를 보자.

중세의 도시 / 중세의 자치정부 / 중세의 세계 /  중세의 무역 /  르네상스 / 표현의 시대 / 대발견 /  부처와 공자 / 종교 개혁 /  종교 전쟁 /  영국에서의 혁명 / 세력 균형 /  러시아의 대두 / 러시아 대 스웨덴 / 프로이센의 등장 /  중상주의 /  미국의 독립전쟁

  2권 전체의 주제가 ‘중세부터 미국의 독립전쟁’인데, ‘부처와 공자’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는 서양의 이야기이다. 곧 이들이 말하는 인류는 서양인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고대사에 넣어야 할 부처와 공자가 갑자기 서양 중세사에 들어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20세기 초를 살아온 백인 작가들의 책들에서 서구 중심 사고는 저자 개인의 역량과는 사실 무관하다고 할 만큼 뛰어넘기 어려운 벽인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흑인에 대한 정치.사회적인 차별이 법적으로 철폐된 것을 생각할 때 이들 저자들이 나름대로 시대를 앞서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불행한 근대를 경험한 우리와는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인식의 차이를 갖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역사분야 논픽션 부분은 다른 아동문학에 비해 대외적인면에서 패쇄적인 시장구조를 갖어 치열한 외국 출판물과의 경쟁에서 한 발 비껴 있을 수 있었다.

  90년대 이전까지의 어린이-청소년 역사책들은 주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연려실기술 등에서 건국신화, 인물이야기, 정치 일화들을 모아 연대순으로 서술한 역사책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왕조의 흥망을 중심에 놓은 서술은 통시적인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기 곤란하였지만, 국사공부를 잘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역사책의 지위는 굳건하였다.  
  그러나 70-80년대를 통해 역사학을 비롯한 국학의 발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고문헌의 국역사업과 활발한 유물의 발굴과 같은 성과들이 쌓이면서 대중역사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어린이 역사책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생활사, 테마사의 등장

  역사에 있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향이나 ‘언어로의 전환’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전의 정치사 중심의 연대기적 역사 서술 경향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역사의 대중화’ 흐름과 아우러지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역사책을 선 보였다.
  이런 점에서 아이세움에서 출간한 ‘배움터 1-9’시리즈는 주목할 만하다. 언뜻보면 같은 시리즈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시리즈는 우리나라 과학사인 《돌도끼에서 우리별 3호까지》와 《밥힘으로 사는 우리민족》에서 미하일 일리인의《책의 역사》《등불의 역사》까지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돌도끼에서 우리별 3호까지는》 저자 전상운이 서문에서 “여러분이 읽을 수 있는 오직 한 권의 어린이 한국 과학사 책”이라고 한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과학사는 전무했었고, 과학사 뿐만 아니라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역사책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생활사를 표방한 사계절의 《한국생활사 박물관 1-9》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발간 초기에는 생활사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 하였으나 점차 박물관으로 초점이 이동하는 듯하여 안타깝지만, 여러 가지로 공을 들인 역작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딱딱한 박물관 도감을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 뿐 아니라 각종 생활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혀주고 있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시스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1-5》(박은봉/웅진닷컴) 통일문제, 인권, 외국인 문제등 이전에는 금기시 되었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민감한 현대사 부분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과거에는 현대사 부분은 의례적인 부분이었지만 이들 역사책에서는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5》의 경우 광주민중항쟁에 이어 통일문제로 끝맺음을 하는 부분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역사를 많이 보여주어 아이들이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에 대하여 물론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민족의 자랑스런 역사를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의 역사는 교과서에는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고, 또 학교에서도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나 민감하다는 이유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당대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방치되어온 느낌을 지울수 없는 것이다.
  빗살무늬 토기나 고인돌에 대해서는 미주알 고주알 자세히 배우면서도 우리가 왜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IMF 외환위기는 왜 닥쳤으며? 아버지는 왜 실직했는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런 점에서 역사는 실천적인 학문이다. 우리가 오늘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역사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정치.사회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90년대의 민주화 이후 열려진 공간 속에서 과거에는 이야기를 꺼려 하던 것들을 이제는 소신껏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교실밖 국사여행》(사계절)과 같이 제목에서부터 기존의 역사 해석과는 다른 관점을 시사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책도 있다. 이 책은 한 가지 주제를 5-6쪽의 분량을 통해서 당연히 받아들여 왔던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흐름은 결국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2》라는 대안교과서로 분출되었다.
 
   중등학교 교사들에 의한 역사 대안교과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2》는 국가가 지식을 독점하는 ‘국민 통제를 위한 교과서’에 대항하여 자유로운 열린 사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출발이었다.
  교과서 집필 시스템에서 일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에 의해 계획되고 만들어진 교과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채 아이들에게 국정교과서와 또 다른 무엇을 끊임없이 강요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19세기 민란 이후의 역사를 서술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역사 전문가들의 참여

  그동안 전문 논픽션 집필자, 특히 전문가라고 하는 해당 학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고는 아동문학의 발전이 더딜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는 흐름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들이란 꼭 관련 학과 대학교수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전문 논픽션 집필자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 속에서 사실상 전문가들이란 사실상 관련 학문을 전공한 강단의 학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우리 역사 1-5》(고래실)시리즈는 다분히 학술서적인 분위기를 가지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를 중심으로 관련 학자들이 집필한 이 책은 총 분량이 17권으로써, 한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한 통사이지만 분량으로 인하여 쉽게 읽어보기 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찾아보는 한국사 역사사전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속에서도 전문가들의 집필이라서 다른 어린이 책에서 쉽게 보지 못하였던 다양한 사진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청소년만의 책은 아니지만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7》(솔)는 새로운 방향의 역사책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학자들에 의한 해석을 지양하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1차 사료를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역사책을 표방한 것이다.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고 이해가 쉽지 않아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수 없을 뿐아니라 역사 매니아층이 아니면 첨부된 사료가 어렵고, 또한 학자들이 아닌 경우 사료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다가온다.

  사진과 그림 자료

   요즘 발간되는 역사와 문화 관련책들은 편집이 다양화되고 있으며, 특히 그림이나 사진 자료가 이전과는 달리 풍부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그림이나 사진을 배치하면서 사진이나 그림이 잘못된 경우가 많이 보여지고 있다.
  사진의 경우, 책이나 고문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어린이독자가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보통의 경우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 밖에 안되는 것으로 보다 다양한 사진자료의 개발도 필요하다. 또한 한 책에서 사용된 사진을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어디선가 본 듯한 사진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림의 경우는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세대가 이전의 문화와 철저하게 단절되었다는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집이나 옷이나 음악이 아니라 한옥, 한복, 국악이라고 구분하여 부르는 속에서 과거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의 모습을 그릴 경우 경우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잘못 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현대물이거나 특별한 시대적 배경을 갖지 않았던 그림에 익숙해있던 그림작가들이 특정한 시대 배경을 요구하거나 보다 구체적인 그림들을 많이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림 작가들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글에 따라가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써의 그림이 아니라 잘 그려진 그림 한 장은 독자들에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민속학이나 고고학, 문화인류학등의 성과를 다양하게 참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나 화산문화의 '중요무형문화재 기록 도서' 시리즈, 현암사의 '한국문화예술총서' 시리즈 등은 기계나 도구의 작동원리나 제조과정에 대한 이해를 꾸준히 높여 나가야 보다 낳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나의 분야로서의 논픽션

  그동안 어린이문학의 성인문학 진출의 발판으로, 어린이 논픽션문학은 창작동화로 진출하기 위한 길로 이용했다고 했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어린이책 공모에도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논픽션이 꼭 들어가는 경향은 반가운 일이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의 박은봉과 《밥힘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의 김아리와 같이 지속적으로 역사나 문화 논픽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작가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박물관 이야기》(세손교육)처럼 한 부분을 메워나가는 책들이 늘고 있어 반가운 일이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의 답사와 관련한 숙제 제출용으로 무엇인가 끊임없이 물어보기를 반복하던 책에서 벗어나 관심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들이 꾸준하게 모습에서 역사 논픽션의 밝은 앞날을 보게된다.


이지수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입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아내가 오른발왼발(childweb.co.kr)의 운영자이기도 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어린이 책, 그 가운데도 어린이 역사, 인물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은 역사, 인물 책들의 출판 기획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