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에서 바라본 논픽션 이야기

                글 : 오진원

 

  1. 논픽션 문학의 범주

  논픽션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게 된 것은 1912년 미국 잡지 《퍼블리셔즈 위클리》가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면서 픽션과 논픽션으로 분류하여 발표하면서부터다. 소설 같은 순수창작문학인 픽션과의 차별되는 장르로서 논픽션이란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논픽션이란 용어의 탄생 시점을 보면 그 역사가 무척 짧은 듯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지 이때부터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실재로 논픽션으로 분류되는 책들이 어떤 책들인가를 살펴본다면 논픽션은 역사 또한 짐작해 볼 수 있다.
  흔히 논픽션이라고 할 때는 역사, 전기, 일기, 사회, 인문, 여행, 자연과학, 음악, 미술 등 지식 ․ 정보 책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또 분류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희곡, 시, 민속 문학 등 소설을 제외한 모든 영역의 책들을 포함한다.

  2. 어디까지가 논픽션인가?

  하지만 여기서는 교과서나 여행 가이드 책 같이 단순 정보만을 제공하는 책들은 논픽션에서 빼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는 논픽션이란 마치 사전처럼 정리해낸 지식을 제공하는 게 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픽션 역시 픽션과 마찬가지로 읽는 것만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문학이다. 그리고 이 즐거움은 단순히 어떤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을 뛰어넘어 또 다른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논픽션의 영역이 넓다보니 영역에 대한 논란도 생기곤 한다. 이런 논란은 어린이문학에서 더 흔히 나타나곤 한다.

   (1) 어린이 논픽션 문학 - 지식, 정보책

  하지만 어린이문학에서 논픽션이라고 할 때는 흔히 역사, 전기, 과학 등의 정보책들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시나 희곡 등이 사람에 따라서는 논픽션의 범주에서 뺀다는 점을 생각할 때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민속문학의 경우도 어린이에게는 이미 한번의 가공(!)을 통해 순수한 의미의 민속문학이 아니라 하나의 ‘전래 동화’로 제공되면서 ‘동화’로의 의미가 강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 논픽션 책은 주로 지식, 정보책이 그 중심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어린이에게 뭔가를 가르쳐줘야 한다는 어린이문학의 뿌리 깊은 편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지식, 정보책이 어린이 문학에서 중요한 논픽션의 한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하거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지식, 정보를 전달한다는 목적의식이 너무 앞서 눈에 띄는 지식과 정보의 전달 쪽에만 매몰되는 모습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2) 픽션과 논픽션, 그 모호한 경계

  그런데 흔히 많은 사람들이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같은 책을 보면서도 그 책을 픽션으로도, 혹은 논픽션으로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혼란을 가져오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픽션=문학’ ‘논픽션=비문학’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논픽션을 평가하는 판단 기준이 사실성, 정확성 쪽에만 놓이는 것도 이런 혼란을 부추긴다.
  ‘픽션=문학’이라 여기는 경우 논픽션의 범주는 몹시 협소해지기 마련이다. 이야기 구성 요소 자체가 문학의 일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글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해도 그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갔다고 해서 논픽션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논픽션 역시 문학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훌륭한 논픽션 문학이란 단순히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읽는 대상에 따라 그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결국 독자가 단순한 사실을 다른 것들과 연관시킬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 허구적인 요소도 논픽션의 한 부분으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이 책은 성인물과는 달리 이런 경향이 더욱 짙다. 이는 어린이라는 독자 대상에게 흥미를 주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현재 출판되는 논픽션 책들의 대부분이 이런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이런 경향을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일단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논픽션의 지양점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논픽션의 목적은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독자가 사실의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자각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허구적인 요소의 삽입이나 다양한 시도들은 환영할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

  (3) 다양한 논픽션 모습  

     ① 허구 + 정보가 따로 또 같이

《신기한 스쿨버스》(조애너 콜 글/브루스 디건 그림/비룡소)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과학책이다. 이 책은 과학책이긴 하지만 허구적인 요소가 강하다. 프리즐 선생님이 안내하는 견학 수업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스쿨버스’부터가 굉장한 허구다. 허구도 보통 허구가 아니다. 프리즐 선생님의 안내로 견학을 갈 때마다 타고 가는 스쿨버스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사실성과 정확성을 기본으로 하는 과학책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는 분명 문제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과학책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는 훌륭한 과학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논픽션인 《신기한 스쿨버스》에서 허구와 사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정보 내용은 초등 2-4학년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재로 이 책에 빠져드는 연령층은 6-7살부터다. 물론 이렇게 낮은 연령층의 독자들은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스쿨버스가 실제로 변신을 할 수도 있다는 믿기도 한다. 이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도 못한다. 다분히 이야기를 중심으로 빠져든다. 그럼 내용을 소화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책을 볼 필요가 없을까? 이야기에 빠져드는 아이들은 놀랍게도 이 책의 내용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알아간다. 스쿨버스의 변신이나 프리즐 선생님과 학생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사람의 몸속을 탐험하거나 벌이 되어 벌집을 탐험하거나 하는 것 자체에는 많은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책을 보면서 과학 정보에 대해서는 스스로 호기심을 채워나간다.
  그래서 《신기한 스쿨버스》 허구성이 무척 강하지만 훌륭한 논픽션 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논픽션을 볼 때 단순히 사실성, 정확성뿐 아니라 아이들을 정보로 이끌어나가는 허구적인 이야기(픽션의 요소) 요소, 구성 등을 함께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② 동화 형식의 띈 책들

  그런데 《신기한 스쿨버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정보들이 책의 사이드에서 내용을 뒷받침을 해 주는 경우와는 달리 이야기 속에 모든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이른바 동화 형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져 나타나는 것은 주로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자연 관찰 책들이다. 또 역사책들 가운데 일부, 그리고 거의 모든 인물 이야기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얘들아, 역사로 가자》(조호상 글/풀빛)는 동화 형식을 띤 역사책 시작이라 봐도 좋을 듯하다. 1995년에 처음 나온 뒤, 20쇄를 거듭한 뒤 2003년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은 열세 살짜리 말썽꾸러기 성구가 삼촌이 만들다 만 타임 머신 '실패작 5호'를 타고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렇게 동화 형식을 띈 책들의 경우 픽션과 논픽션에 혼란이 오기 하지만 이 책을 동화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출판사에서도 ‘역사책’으로 구분하고, 독자들도 모두 ‘역사책’으로 구분한다. 성구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역사 이야기를 어린이에게 들려주기 위한 하나의 소재이자,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속의 체험을 직접 해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이걸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눈에 띄는 건 각 장마다 붙어 있는, 그 시대와 관련된 자료와 설명글이다.
  
   그리고 본문 내용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다시 한번 알 수 있다.타임머신을 타고 간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마치 《신기한 스쿨버스》에 나오는 스쿨버스처럼 타임머신은 우리 역사를 알려주는 하나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김병렬 글/신혜원 그림/사계절)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나리가 독도에 관해 궁금했던 것을 할아버지 말씀을 통해 풀어가는 과정은 픽션의 요소이지만 이 책 역시 분명히 논픽션이다. 그것도 독도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안용복 장군과 홍순칠 대장의 이야기를 통해 독도의 역사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역사와 인물 두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는 책이다. 독도 문제는 늘 한일간의 첨예한 쟁점이 되어왔기 때문에 자칫 편향되기 쉬운 쟁점인데 주인공이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되짚는 가운데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독도에 얽힌 복잡한 사실을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때론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과거와 현재 두 시대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③ 역사 동화(소설)의 범주

  그런데 간혹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이 아주 애매한 경우도 눈에 띈다.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을 쓴 김병렬이 쓴 《백두산정계비의 비밀》(사계절)의 경우를 보자.
  같은 작가가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고, 출판사에서도 두 권 모두 ‘역사 이야기’로 구분한 책이다. 하지만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논픽션이지만 《백두산정계비의 비밀》은 동화로도, 역사책으로도 구분한다. 그 구분이 이렇게 나뉘는 건 이 책이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이 책은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에서 독도 문제에 관한 한국과 일본의 영유권 문제의 쟁점을 다룬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첨예한 국경 논쟁을 벌이고 있는 백두산정계비에 관한 이야기다. 백두산정계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나의 소재가 아니라 그야말로 백두산정계비를 통해 간도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머리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빼앗긴 간도를 되찾아오자는 뜻으로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땅이라고 하더라도 지킬 힘이 없을 때는 엉뚱한 나라가 차지하거나 다른 나라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확인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워낙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굉장히 완곡하게 표현을 하긴 했어도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간도가 땅이라는 걸 깨닫고 간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가기를 바라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백두산정계비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간도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화두요 주제 그 자체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백두산정계비와 간도에 대해 정보를 주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논픽션(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가가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다루었나’보다 ‘무엇을 의도했나’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의 의도를 알려주는 머리말을 빼고 본다면 이 책은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간도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영기와 호철이네 가족의 이야기가 백두산정계비를 둘러싼 비밀과 함께 펼쳐진다. 2부에 해당하는,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는 과정은 당시 상황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작품 속의 인물도 허구의 인물이고, 줄거리도 사실을 따른 게 아니라 작가가 일어났다고 여기는 설정에 따라 전개된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보통 역사소설과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책은 논픽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역시도 확실하다.

    ④ 위인전 혹은 인물 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이하 ‘인물 이야기’)은 같은 인물을 대상으로 쓰였어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전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이른바 성인물들은 ‘평전’이거나 ‘자서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인물 이야기는 동화 형식을 띤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평전은 인물에 대한 작가의 평가와 해석이 담기고, 자서전에는 인물의 숨겨진 사건과 고민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어린이를 위한 인물 이야기에서는 이런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 때가 많다.
  어린이를 위한 인물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의 형식을 띄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것도 독자인 어린이가 인물에 대한 동일시가 가능하도록 인물의 어린 시절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어린 시절을 구성하기 위해서 허구적인 대화나 사건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인물 이야기의 질이 다른 분야보다 떨어지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를 위한 인물 이야기에서 동화 형식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는 때때로 어린이들에게 인물의 진실성에 다 가깝게 가다가게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실재 인물을 대상으로 실재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어도 그 구성만큼은 픽션이 되고 만다. 더구나 주인공인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동화로 꾸며진 인물 이야기 - 픽션 - 는 어린이들이 그 인물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런데 알고 있는 정보 몇 개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만들어내려다 보니 어른이 된 후의 이미지를 어린 시절에 그대로 적용시키면서 때로는 필연적인 위인상의 인물로 만들어 내는 경우가 생긴다.

  《금강을 노래한 민족 시인 신동엽》(김응교 글/사계절)의 한 장면이다.

푸르게 갠 투명한 하늘.
흰 물거품 같은 조개구름이 비단결보다 곱게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개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 그 황금빛 햇살을 받아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습니다.
한 소년이 잔잔히 흐르는 금강 언덕에 앉아 주변의 가을 풍경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다소 튀어나온 듯한 넓은 이마, 쌍꺼풀 진 영롱한 눈매에 꾸욱 다문 작은 입술.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소년의 얼굴에는 알지 못할 작은 괴로움이 있어 보였습니다.(7-9쪽)

  소년이 신동엽이란 사실을 모르고 그냥 읽었을 때는 그냥 한 편의 동화라 할 만하다.

  《이원수 선생님이 들려주는 해상왕 장보고》도 마찬가지다.

한 소년이 바위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먼 바다 끝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남해의 푸른 바다, 그 뛰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가슴은 부풀어 오릅니다. 물결처럼 일렁거립니다.
날아오는 갈매기처럼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가 하면, 멀리 포구 밖으로 달리는 배를 따라 끝없는 먼 나라로 줄달음칩니다.
소년은 생각난 듯이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뚱이가 되어 물 속으로 물고기처럼 뛰어듭니다. 팔다리를 힘차게 휘저어 물을 가르며 헤엄쳐 갑니다.
파도가 소년을 덮치며 수없이 지나갑니다. 그 수없는 거센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소년은 바다 깊은 데로 쑥쑥 밀고 나갑니다.(13쪽)

  하지만 모든 인물 이야기가 다 이처럼 동화로 쓰여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담하게 인물과 그 인물이 살던 시대의 정보를 충실하게 전달해주는 경우도 있다.
  《신채호》(유근주 글/창비)는 꼼꼼한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이 책처럼 어린이 인물이야기 뒤에 참고 서적들이 써 있는 경우는 드물다 - 있는 사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꾸며 쓰기 보다는 과감히 생략을 하고 있다. 서술도 대화글은 줄이고 대신 관련 자료들을 직접 보여주면서 독자가 상황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임시정부 안의 야당’에서는 이승만과 신채호의 관계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신채호는 끝내 이승만을 용서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승만의 죄를 공개적으로 따져 묻는 ‘성토문’까지 직접 썼다.

합병 10년 동안 일본인의 식민지된 뼈아픈 원한을 잊어버렸는가. 독립을 위하여 칼에, 총에, 심한 형벌에 돌아가신 충신과 열사가 계심을 몰랐던가. 조선이 옛부터 독립국이 아닌 줄로 생각하였던가. 갑자기 “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식의 요구를 미국 정부에 제출하여 나라를 팔고 민족을 팔아 넘기는 짓을 하였다.
                                                              - ‘성토문’ 중에서 -

   또 때로는 《물고기 박사 최기철 이야기》(이상권 지음/우리교육)처럼 주인공이 직접 화자가 되어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너희들에게 도움이 된다니까 하겠다만, 얼마나 보탬이 될는지는 모르겠구나. 보탬이 될 만한 이야기는 새겨듣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그냥 흘려 듣거라. 그러면 되지. 가끔씩 너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 때가 있었거든.
언제냐고?
할아버지가 너희들만한 시골 아이들을 붙잡아
“얘, 저기 저수지에는 무슨 물고기들이 사니? 물고기 이름을 아는 대로 다 말해 봐. 할아버지가 과자 사 줄게.”
하고 물으면, 그 아이는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거든. 바로 그런 아이들이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오며,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더구나. 할아버지는 시골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좋아. 할아버지도 시골아이로 돌아가지 뭐.(22-23쪽)

  이런 형식이 가능했던 건 이 글이 쓰여질 당시 주인공인 인물이 아직 살아있어 직접 취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진 이야기는 인물의 돋보이는 업적 - 최기철의 경우는 물고기 연구 -과 관련된 일화를 중심으로 쓰여진다. 때문에 인물의 모든 생애를 알 수는 없지만 대신 그들의 업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왜곡 없이 다루어진다.
   이처럼 같은 인물 이야기라도 그 구성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3.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논픽션 장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논픽션은 그 범주가 무척 넓다. 그 범주가 넓은 만큼 출판량이나 판매량에서도 픽션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평가에 있어서는 굉장히 취약하다. 이런 사정은 성인물이나 어린이 책이나 비슷하다. 실재로 픽션에 대한 비평은 있어도 논픽션에 대한 비평 글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때로는 전문가가 아니면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혹은 논픽션 분야는 픽션보다 덜 중요하다는 이유로 논픽션에 대한 비평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논픽션 분야에 대한 비평이나 리뷰를 해주는 전문가도 없다.
  또한 비평 뿐 아니라 상에서도 홀대를 받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 예로 작가들의 등용문이라 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듯 하다. 1922년 제정된 뉴베리상은 지금까지 단 여섯 편만 논픽션 수상자를 냈을 뿐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하늘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비룡소) 등 위인 이야기로 세 번의 뉴베리상을 수상한 러셀 프리드먼과 《인류 이야기》(아이필드)를 쓴 헨드릭 빌렘 반 룬이 포함되어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 책' 기획 부문 수상작품들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책과 관련된 각종 상들이 있지만 대부분 픽션(동화, 시)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7년부터 창비에서 시상하는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에서 ‘기획 부문’으로 논픽션 분야의 시상이 있고, 2004년 우리교육에서 ‘우리교육 어린이 책 작가상’ 공모를 시작하면서 ‘기획 부문’을 시상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당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것을 하나의 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뉴베리상 같은 권위를 갖기는 어렵다. 게다가 창비의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기획 부문에서는 1999년 2001년 2004년 3회에 걸쳐 시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무얼 의미할까?
  논픽션 분야가 비평에서 소외 받는 동시에 스스로도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사실 어린이 책의 역사는 어린이 교육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식 ․ 정보책으로 대표되는 논픽션 분야는 마치 학교 교과 공부 도움용이나 교훈서처럼 여겨져 온 게 사실이다.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정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거나 이 책이 몇 학년 교과 과정이랑 관련이 있다는 게 이들 책을 선택하는 기준처럼 여겨져 왔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출판되고 있는 논픽션에만 물을 수도 없다. 어쩌면 이렇게 논픽션을 소외시켜왔던 비평가들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4. 새로운 논픽션의 방향을 위해서

   이제는 논픽션 분야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할 때라 여겨진다. 단순한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책을 읽는 어린이가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무엇보다 뭔가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전달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관념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역사책에서는 더욱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으로 하고 이를 설명해 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곤 한다. 이런 책은 진실성의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독자인 어린이를 향해 일방으로 전달하고 또 이를 외여야만 한다고 협박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그 결과는 책을 읽고 난 뒤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는 현실뿐이다.
  누구나 다 읽어야만 하는 필독서처럼 여겨지는 역사책에서는 이런 일이 특히나 흔하다. 인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훌륭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뭔가를 배우기를 바라지만 어린이는 훌륭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겨움만 느낄 때가 많다. 훌륭한 인물의 이야기라는 결과를 잘 포장하는 글쓰기는 인물을 살아있는 인물이 아니라 ‘성인(聖人)’화 시켜 어린이들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작가는 그 분야에 전문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어린이들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 책에서 논픽션 작가는 어떤 분야의 이야기를 해당하는 연령의 어린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다. 이는 다양한 자료와 예를 적절히 독자의 수준에 알맞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세째, 작가는 자신만의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 자연과학 책이든 역사책이든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듯 보여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보 가운데 하나의 정보를 선택한다는 건 작가의 당파성이 관철되는 과정이다. 더구나 훌륭한 논픽션이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독자를 놀라운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이어야 할 때는 더욱더 중요한 일이다.
  네째, 활발하고 정기적인 비평 활동이 필요하다. 비평은 독자에게는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주는 행위다. 동시에 책을 쓰는 작가나 출판사를 늘 긴장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보다 질 높은 작품을 생산하는 힘이 될 것이다.

  5. 마무리

  논픽션에는 뿌리 깊은 편견들이 남아있는 게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픽션과 논픽션이 ‘창작’과 ‘비창작’으로 구분하거나 ‘문학’과 ‘비문학’으로 구분하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말들 속에는 논픽션을 픽션보다 상대적으로 가치를 폄하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실재로 논픽션은 픽션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문학성이 필요로 한다. 사실 논픽션이란 허구(fiction)에 의한 창작문학으로서의 소설에 반(反)한다는 뜻인데 말이다.
  게다가 어린이 문학에서는 논픽션은 교과서와 학교 공부와 연결되면서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주는 책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논픽션 책을 보는 건 순수한 의미에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생긴다. 논픽션에서는 동화나 소설에서와 같은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훌륭한 논픽션이 안내해주는 세계는 동화나 소설의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픽션과 논픽션이 주는 즐거움의 세계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모쪼록 앞으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논픽션 분야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오진원
오른발왼발(childweb.co.kr)의 운영자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