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논픽션 문학
                 - 인물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 : 이지수 ·오진원

 

  1. 전통시대, 그리고 근대 인물 이야기의 흐름

  전통시대의 인물이야기는 ‘열전’이다. 기전체 역사서술은 중국 전한 때 사마천이 지은 사기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본기, 세가, 열전, 표(지), 연표로 구성된다. 본기는 왕조의 통치자의 역사이며 세가는 제후국이나 주요 신하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열전은 신하들의 전기다. 또한 표(지)는 통치제도와 문물. 경제. 자연현상을 내용별로 분류해 기록한 것이며, 사건의 흐름을 알기 쉽게 연표도 덧붙인다.
  전통시대의 인물들은 열전의 사료를 1차 자료로 삼는다. 물론 조선 중기 이후에는 각종 개인문집이나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이 있으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록 열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의 인물이라면 삼국사기의 ‘열전’ 부분이 김유신 외 68명의 전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 1)에도 일부 기록이 있지만 편찬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삼국사기와 같은 전기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승려에 국한되어 있다. 이외에도 중국 2) 이나 일본 등의 기록이 있겠으나 기록의 분량이 많지 않고, 다른 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에 내용이 부정확하고 폄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외의 자료로는 구전자료가 있다. 민간에서 전승되어 온 구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후대의 시대상을 덧붙여 원래의 모습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자체가 우리 역사를 반영하였다는 점과 이름 없는 민중들의 집단적인 정서가 반영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구전으로 전해지는 인물이야기는 외국의 침략을 물리친 장군이나 억울하게 죽은 인물, 민중의 구원자에 대한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강감찬, 을지문덕, 강홍립, 남이, 박문수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는 것은 민중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근대적인 인물이야기는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시기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하였다. 신채호의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 거걸 최도통전≫ ,≪을지문덕전≫과 박은식의 ≪동명성왕실기≫,≪발해 태조 건국지≫,≪천개소문전≫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이시기의 인물들은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이순신 같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장군들이 중심이 되었고, 불굴의 투지로 어려운 속에서도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려내는데 역점을 두었다.
  또한 외국의 워싱턴이나 프리드리히 대왕과 같은 외국인들에 대한 소개도 대거 이루어졌다. 특히 영웅주의 역사관이 일본을 통해 전해지면서 인물들은 절대화되어 갔으며, 해방 이후에도 전체적인 큰 흐름의 변화는 없이 김구, 신채호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인물군으로 추가된다.

   2. 근현대 인물들의 증가

   이러한 흐름은 해방 이후 인물의 범주가 독립운동가를 일부 포함한 수준으로 나아갔을 뿐 그 이상의 큰 변화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다 90년대를 맞이하여 인물이야기는 그 지평을 넓혀 나간다.
  사계절의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우리 시대의 인물이야기’는 시리즈의 제목처럼 ‘우리 시대’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민족주의의 등불 장준하》, 《인권 변호사 조영래》, 《청년 노동자 전태일》등 아이들에게도 한 세대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독립운동가를 끝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소개되지 않고 있던 오랜 정체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며, 이후 예술가, 연예인, 학자, 사회운동가 등이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이들 대부분의 인물들은 일제시대 성장해서 해방 후에 본격적으로 활동한 세대들이거나 그 바로 뒷 세대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인물이야기로 한길사의 《겨레의 역사를 빛낸 사람들 1-7》도 주목할만 하다. 역사문제연구 소장인 이이화가 쓴 책은 이른바 ‘주제별 위인전’이라 할 수 있다.
  조선․근대시기에 활약한 학자들, 몸으로 현실을 부딪치며 극적으로 살아간 문인과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열과 성을 다해 매진했던 의사․과학자, 종교인이면서 현실개혁에 앞장선 인물들, 예술인․상인․여성활동가, 임금이나 왕비․재상 같은 높은 사람들, 김춘추와 김유신처럼 역사 속의 ‘위대한 커플`들,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인물들을 각 주제별로 소개한다.  
  이처럼 주제별로 다양한 인물들을 엮어내는 방식은 당시 인물 이야기의 흐름에서 새로운 흐름이라 보인다. 주제별로 구성이어서 한 개인에 맞춰지는 기존의 인물 이야기와 견줄 때 개인 찬양 일변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요, 인물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던 많은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교육의 쑥쑥문고 가운데 인물 이야기들과 산하에서 나오는 ‘나도 따라 갈래요’ 시리즈가 그렇다. 쑥쑥문고의 인물들은 물고기 박사 최기철, 새 박사 원병오, 옥수수박사 김순권, 큰소리꾼 박동진 등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인물 가운데 원로라 할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나도 따라 갈래요’는  연극배우 박정자 이야기인 《얘들아, 무대에 서면 신이 난단다》와 밥퍼목사 최일도 이야기인 《당신이 영웅입니다》두 편밖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젊은 인물에 대해 조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인물 본인에 대한 철저한 취재가 가능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갈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소개는 엄격함이 필요하다. 예로부터 우리의 기록문화는 당대의 것을 평가하지 않는 전통이었다. 왕이 죽은 후에야 실록을 편찬하였고, 나라가 망한 이후에야 역사책을 편찬하였다. 당대의 인물들을 평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인 평가가 내려질 때까지 시간을 유보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교육과 산하의 인물 이야기는 어떻게 보아야할까? 충분히 조심스러운 점들이 많이 있다. 다행히 우리교육에서 뽑은 인물들은 각 인물들이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인정받고 있고 또 이야기 구성도 주로 그 업적과 관련되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큰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미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인물들이어서 그 평가가 사후 평가가 크게 달라질 부분이 많지 않다. 최기철, 박동진 등이 이미 이야기가 나온 뒤 돌아가신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산하의 인물 선정은 조금은 불안해 보인다. 너무 젊은 인물들, 그 분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 상태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영웅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3. 새로운 인물들

  1990년대 중후반 이후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인물 이야기의 주인공이 기존의 왕, 군인, 정치인 위주에서 벗어나 여러 분야의 다양한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개항기 이후 해방 이후 80년대까지 이어지는 국난극복형의 인물은 어른들에게 익숙하고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인물이라는 유명세를 타고 여전히 이어졌지만, 그 외에 다양한 인물들이 새로운 포멧으로 등장했다.
  등장 인물의 변화를 알리는 첫 신호는 1990년 산하에서 출간된
《전태일》(위기철 글)  3)이 아닐까 싶다. 성공한 사람들의 기록으로만 여겨져왔던 인물 이야기에 노동자, 그것도 분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지금까지의 시각으로 볼 땐 실패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전태일이 동자의 역사를 이뤄낸 인물로 어린이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후 1994년 사계절에서 《민주주의의 등불 장준하》(김민수 글)로 시작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우리 시대의 인물 이야기’ 시리즈는 해방 이후 근현대 인물인 석주명, 김순남, 김창숙, 신동엽, 조영래, 전태일로 이어져오고 있다. 또한 같은 해 한길사에서 나온 《겨레의 역사를 빛낸 사람들 1-7》는 ‘주제별 위인전’이라는 포멧으로 만적, 정인홍, 정여립, 임경업, 홍경래, 최시형, 전봉준, 신돌석 등 기존의 인물 이야기에서 다루기 다소 껄끄럽던 인물들은 끌어들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눈에 띄는 변화로는 과학자나 미술가등 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활발하게 출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8년 《새 박사 원병오 이야기》를 비롯해 《큰 소리꾼 박동진》《물고기 박사 최기철》《옥수수 박사 김순권》《아름다운 농부 원경선》으로 이어진 우리교육의 책들은 ‘새 박사’ ‘큰 소리꾼’ ‘물고기 박사’ ‘옥수수 박사’ ‘아름다운 농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해당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인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 인물의 삶 가운데서도 해당 분야와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물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인물의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흐름의 한 경향으로 미술가들 이야기가 대거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2000년 나무숲에서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는 앞서의 우리교육과 같이 한 인물의 삶을 전부 다가 아니라 그 작품 세계와 연결 지어서 끌고 나간다. 하지만 그림책 형식으로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술 이야기와 인물 이야기의 중간 지점, 이 시리즈의 성격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쨌든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는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박수근》에 이어 김정희, 신사임당, 백남준, 김환기, 김기창, 정선, 장욱진, 이중섭, 권진규로 이어지고 있다.

 

   또 아이세움에서도 2001년부터 ‘그림으로 만나는 세계의 미술가들’이라는 시리즈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세계편과 한국편으로 나뉘어 발간되는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한국편으로는 《조선의 풍속을 그린 천재화가 김홍도》,《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신선이 되고 싶은 화가 장승업》,《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이 나온 상태다. 같은 미술가 이야기지만 나무숲 시리즈와는 또다른 맛을 느끼게 해 준다.

 

  4. ‘타고난 위인들’을 넘어서

  ‘위인전’이란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위대한 일이라는 게 강조되다 보니 모든 인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타고난 위인들’일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용들이 넘나드는 태몽과 별이 떨어지는 출생과정, 골목대장을 도맡아 하고, 어른들도 혀를 내두르는 지략과 용기를 가지고, 간신배들의 모략에 빠졌다가, 구국의 영웅이 되는 신화가 전개되었다.
  누구나 몇 번은 읽었을 이순신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서 살펴보기로 하자.

모친의 태몽에는 기묘사화로 억울하게 죽은 조부가 나타나서
“이번에 낳은 손주는 망할 운명의 조국을 한 몸으로 막아 낼 나라의 방패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억울하게 꺾여버린 충성의 명예를 회복할 효자다. 이름을 순신이라고 지어라.”
고 일렀다 한다.
[가운데 줄임]
순신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대같이 곧고, 옳다고 생각한 일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용기가 있었다. 그 곧은 마음에는 철석같은 강한 의지가 밑받침했고, 불의와 싸우는 용기에는, 웅장한 기골과 힘이 또한 보장했으며, 그는 하늘이 낸 장수의 기개를 어려서부터 나타냈던 것이다.
                                 - 《한국 위인전》,정문사, 김용제, 1969년 8판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아오던 위인전의 정형은 이런 식이었다.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었기 때문에 인물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남다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를 읽는 어린이들은 뛰어난 능력에 언제나 바른 길만 가는 주인공을 보며 자신과 비교하게 되고,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주인공에 주눅이 들어 버리고 한없이 초라한 자기만을 발견하고 만다. 결국은 책은 이야기일 뿐이며, 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는 자식이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과 맞물리면서 아이들이 위인전을 더욱더 지겨워하게끔 만든다.
  
 다행히 이런 ‘위인 예정설’류의 이야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으아앙 으아앙 으아앙……!
별안간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그 순간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느님이 내려다보시는 이 세상 어느 마을에서나 끊임없이 아기들이 태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울 건천동의 한 번듯한 기와집 안에서 들려 오는 그 울음소리가 이 세상을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균》, 파랑새어린이, 손춘익, 2000년

   위대한 인물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반드시 특별한 위인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세상에 태어나는 다른 생명들과 똑같은 생명의 하나였을 뿐이다.

  5. 인물을 통한 다른 세계의 경험

  아이들은 주인공의 삶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옛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과학자가 되어 발명품을 만들 수도 있다. 다양한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이 주인공의 삶과 동일시가 가능할 때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잘 쓰여진 인물 이야기 한 편은 한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다. 이는 허구적인 픽션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는 다르다. 실재 살았던 사람의 진짜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이들은 흥분한다. 그 가능성의 세계를 찾아낸다.
   더구나 인물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다양해지면서 아이들은 예전과는 다른 훨씬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갖고,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지식들을 접하게 된다. 이는 아이들이 인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계획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나는 집 안에서는 할아버지 무릎 위에서 살았고, 밖에 나가서는 벌거지하고 살았어.
벌거지라고 하니까, 꾸무럭꾸무럭 기어다니는 징그러운 애벌레가 생각나지?
허허허, 그럴 거야. 요즈음은 애벌레만 벌거지라고 하니까 하지만 예전에는 애벌레뿐 아니라 작은 곤총들도 다 벌거지라고 불렀단다.
[가운데 줄임]
나는 친구들하고 노는 것보다 벌거지 잡는 것을 더 좋아했단다. 벌거지가 무섭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어. 오히려 벌거지만 보면 만지고 싶고, 한 마리씩 잡을 때마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기분이 좋았지.
[가운데 줄임]
하지만 벌거지만 잡고 다니느 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어.
“쯧쯧, 저런 벌거지를 잡아서 뭘 하겠다고……. 장래성 있는 것을 해야지. 벌거지가 뭐야. 벌거지가! 저런 짓은 백정 놈들이나 하고 다니는 짓이지.”
          - 《이승모 할아버지의 남녘북녘 나비 이야기》, 청년사, 이상권, 2003년

  이런 이야기는 벌레를 좋아하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 눈으로 볼 때 ‘장래성 있는 것’과 거리가 먼 일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충분히 빠져들 만하다. 더구나 인물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의 지식까지 얻게 된다면 이는 금상첨화다.

가령 한강에서 사는 물고기하고 서해안 덕적도에서 사는 물고기는 달라야 해. 한강과 덕적도 사이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잖아? 민물고기들은 바다에 들어가는 즉시 죽기 때문에, 혹시 바다를 통해서 오고 갔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단다. 민물고기에게 바다는 거대한 산맥이나 다름없거든.
또 삼척에서 사는 물고기와 평창에서 사는 물고기는 달라야 해. 삼척과 평창 사이에는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니까. 하지만 연준모치라는 물고기는 두 지역에서 다 살고 있었어. 물론 다른 물고기들도 있지만 말야.
한마디로 옛날에는 서로 같은 냇물이었거나 같은 강에서 살았다는 뜻이지. 빙하가 녹아서 바닷물이 높아지기 전에는 서해나 남해나 다 같은 육지였으니까.
                        -《물고기 박사 최기철 이야기》, 우리교육, 이상권, 1999년

   화자인 최기철은 자신의 이야기가 뿐만 아니라 물고기에 대한 각종 지식, 더 나아가 지질시대의 땅의 형성에 대한 문제까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인물의 주인공과 함께 하는 과학인 것이다.
  더 나아가 주인공이 예술가인 경우에는 개인의 삶보다는 예술세계를 조망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경우 엄격한 의미에서 인물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주인공의 예술세계를 통해 주인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가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어. 아저씨는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 대학교에서 제자를 가르치기도 했지. 그렇지만 1950년에 6.25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
아저씨가 가장 활기차게 그림을 그리고 있던 때에 그런 전쟁이 일어난 것이지. <피난 열차>라는 그림은 그 때 그린 거야.
전쟁을 피해서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을 그린 것인데, 기차 속에도 지붕에도 사람들이 빽빽이 그려져 있지. 어떤 사람은 피난 열차에 탄 사람들이 마치 성냥갑에 촘촘히 들어 있는 성냥개비 같다고 말했단다.
                           -《꿈을 그린 추상화가 김환기》, 나무숲, 임창섭, 2001년

  책의 뒷부분을 보면 김환기의 연표도 있지만 환기미술관에 대한 소개나 ‘김환기 선생님처럼 해보기’와 같이 직접 책을 보며 그림을 그려보는 부분도 있다. 인물 이야기와 함께 보는 그림 이야기인 셈이다.

  5. 마무리

  1990년대 중반으로 인물 이야기는 이전과 비교될만한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일단 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힐만한 인물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현실이다. 이는 인물 이야기가 아직까지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인물과 그 시대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나 인물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도들, 관심있는 인물에 대해 좀더 깊은 탐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한 참고자료의 미제시, 다양한 사진과 그림 자료들, 다양한 구성 방법……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신사임당, 허난설헌 정도에 국한되던 여성 인물 이야기가 이태영, 최은희 등으로 넓혀져 가고 있기는 하다.
  2001년 12월부터 아이세움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여성 인물이야기’는 그래서 반갑다. 지금까지 나온 여성 인물로는 《이태영》,《수잔 B. 앤터니》,《엘리너 루스벨트》,《최은희》,《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했을 뿐 인물 이야기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도 위안을 얻는 건 2002년 교학사에서 나온 《여자는 힘이 세다》(유영소 글)이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여자들의 빛나는 도전 이야기’다. 여성 인물 한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세상을 바꾼 여자들의 빛나는 도전’에 초점을 맞춰 여러 명의 여성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02년 ‘세계편’에 이어서 2004년 1월 ‘한국편’이 나왔다. 최승희, 정정화, 박에스더, 명성황후, 이태영, 조수미 이렇게 여섯 명의 여성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여성 인물 이야기 출간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여성 인물 이야기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비판을 통해서 앞으로는 좀더 나은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


 1)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해편에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전기를 14항목으로 구성하였다. (↑위로)

 2) 중국의 기전체 역사서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의 역사는 열전에 기록한다. 우리나라 역사책에서도 많이 인용하고 있는  ≪삼국지≫ 동이전, ≪사기≫ 조선전(조선열전), ≪진서(晋書)≫ 동이전과 같은 책에서 ‘전’은 열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편찬은 중화사상을 토대로 이웃 나라의 역사를 자국 신하의 전기에 준하는 의미로 격하시킨 것이다.   (↑위로)

3) 이 책은 지금은 산하가 아니라 사계절에서 《청년노동자 전태일》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고 있다.  (↑위로)


이지수 · 오진원
둘은 부부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으며,
어린이 책을 보며 티격태격하며 살아갑니다.
1965년 동갑내기로 1999년생 딸 유경이와 함께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