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품은 역사를 꿈꾸며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1-5》(박은봉/웅진닷컴)

글 : 하지숙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백제 특별전을 열어 가보았다.
  농사도구를 전시해 놓은 곳에서 박물관도우미의 설명을 듣는데 귓속을 파고드는 말이 있었다.
  “요즘 쓰는 농기구랑 모양이 다르지 않죠?”
  손잡이가 될 나무막대에 쇠날을 이은 낫, 쟁기, 호미 따위의 농기구는 2천년 전 백제 것이나 20세기의 대한민국 것이나 비슷한 모양이었다.
  ‘진열장에서 숨 고르듯 자리잡고 있는 저 유물들을 지금은 만져볼 수 없는 유물들을 백제 사람들은 늘 썼겠지.’
  순간 ‘나’의 존재가 뚝 떨어진 게 아님을 깨달았다. 나 역시 이 백제처럼 다음 시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즉 역사가 되리란 생각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사건 연대나 유물 이름을 달달 외우는 식의 수업을 받을 땐 결코 가질 수 없던 생각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란 많이 읽고, 깊이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터인데 교과서에 나온 ‘신라는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공인’ 같은 결과만을 외웠을 뿐이다.
  삼국시대 불교가 왕권 강화를 위해 왕실의 필요 아래 받아들여졌다는 배경은 쏙 빠진 채 말이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는 법.
 이러한 아쉬움을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를 읽으며 채울 수 있었다.

  이 책을 쓴 박은봉 씨는 우리 역사를 딸에게 이야기 들려주듯 서술하고 있다. 이런 입말투의 접근 방식 덕분에 역사란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초의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원숭이!”
  그래, 세운이 말마따나 최초의 사람은 오늘날과 달리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겼을 거야.(1권 10쪽)
  책의 이런 한 부분처럼 역사는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임을 입말투를 빌어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선사시대에서 3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하고 연도와 학명을 외우느라 역사의 들머리 단계에서부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석기시대는 크게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눌 수 있어. 그럼 먼저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 알아볼까?’ 같은 서술은 다음 이야기로 잘 넘어가게 하는 장점이 있다.

  1편 원시 사회로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까지
  2편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까지
  3편 조선 건국부터 조선 후기까지
  4편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성립까지
  5편 대한제국부터 남북 화해 시대까지

  총 5편까지 최근 완간된 한국사 편지는 참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1편-3편까지는 원시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역사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 이야기가 나와 고개를 끄덕일 무렵이면 권력 다툼의 흥망을 들려주다 정치와 사회제도로 이야기를 돌린다. 전쟁사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강감찬의 ‘귀주 대첩’ 또한 바르게 알려 주길 잊지 않는다.
 강감찬이 소가죽으로 강물을 막아 대승을 거둔 싸움은 ‘홍화진 전투’이고 귀주 대첩은 강이 아닌 들판에서 벌인 전투라는 것이다.

  저자는 민중의 삶도 빼놓지 않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제목을 달아 지배자와 피지배자 양쪽에 고른 눈길을 보낸다. 3편 <농부 이막동의 하루>와 <왕의 하루>처럼 말이다.
  이렇게 정치, 경제, 문화, 생활 들을 넘나들며 역사의 다양한 면을 펼치고 있는 데다 그때그때 시대의 굵직한 사건을 짚어 주니 읽을수록 과거의 삶, 모습이 살아나는 것 같다.
  이 책은 사진, 지도, 삽화 같은 시각 자료에도 정성을 다했다. 한 쪽마다 내용에 맞는 시각 자료 덕분에 그 시대 모습이나 유물의 생김새, 유적지 들을 볼 수 있어 답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몽고군의 침입으로 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의 웅장함을 말할 때 도무지 그려지지 않던 내 빈약한 상상력은 이 책 1편 황룡사 목탑 복원 모형 사진을 보며 채워졌던 것이다. 높은 건물이 없던 때 이 목탑이 경주 어디에서나 보이며 신라의 힘이, 불교의 번성이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미치길 바랐던 마음과 높이 솟은 목탑의 웅장함이 사진을 보며 비로소 와닿았다.

  그리고 저자는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자고 강조한다. 새로운 관점이란 지금까지 배운 역사에 의문을 품고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다.
  2편 고려 시대 삼별초의 항쟁에서도(125쪽) 우리는 삼별초를 몽고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군대로 민족 정신과 자주 정신의 꽃이라 알고 있다. 그러나 삼별초의 태생을 생각하면 새로운 면이 보이는 것이다. 무신 정권 보호 아래 농민과 천민들의 봉기를 잡기 위한 군대로 정권 호위병 노릇을 했던 삼별초가 몽골 침입 때 어떤 처지가 되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왜 끝까지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다가 탐라(제주도)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고와 강화를 맺은 조정은 이때를 기회로 무신 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왕정복고’를 이루자 무신들을 처치하였다. 이에 처벌을 두려워한 삼별초는 반란을 일으켰고 4년에 걸친 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삼별초의 항쟁이 의미 없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출발과 이후의 변화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일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도 중국으로부터 불교 외에 여러 문화를 받아들였듯 문화란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것이기에 문화 전파는 우쭐할 일이 아닌 것이다.

  글쓴이는 이제 스스로 생각해 보자고 권한다. 그리고 이야기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끊임없이 묻는다.
  1편 150쪽 ‘나제 동맹을 깨뜨리고 백제를 공격한 진흥왕은 약속을 깨뜨린 배신자일까, 통일의 밑거름을 친 영웅일까?’
 4편 138쪽 ‘쇄국과 개화, 둘 중 어느 것이 진실로 조선을 위한 길이었을까’ 182쪽 ‘명성황후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우리 역사에 한 발 다가가는 일이 아닐까 한다. 역사책은 누가, 어떤 생각으로 썼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이것을 사관이라하는데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게 이 사관이다.
  20세기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100년의 우리 역사는 일본의 식민지, 한국 전쟁,남북 분단을 겪었다. 슬프고 상처 많은 시대였지만 희망이 있었기에 지금은 남북 화해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바로 희망을 품은 사관, 그러한 마음으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는 역사를 꿈꾸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숙
박물관의 청자 빛깔을 아끼는 저,하지숙은요 우리 모두가 평화롭기를 꿈꿉니다.
책을 열심히(?) 읽는 까닭은 언젠간 이 책에서 벗어나는 도의 경지를 책을 통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해서지요.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입니다.
파병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