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우뚝서다

           《한국 생활사 박물관 1~9》(한국 생활사 박물관 편찬위원회 엮음/사계절)

글 : 최정아


 

우리가 보았던 역사책들은 어떤 왕이 몇 년도에 무슨 업적을 이루었나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 많았다. 일반인들은 그런 책을 읽으며 역사는 뛰어난 영웅이나 능력있는 집단들이 이끌어 갔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역사의 방관자로 놔두었다.   최근에는 왕조사 중심으로 서술되던 책에서 벗어나 유적지와 문화재와 박물관을 안내하는 책, 역사 소설, 인물 이야기, 전통 문화를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역사책들이 많이 나왔다. 역사를 서술하는 작가의 관점이 소수의 엘리트 중심에서 벗어나 일반 백성들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백성들이 주도하는 역사는 변화가 느려서 쉽게 눈에 뜨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 변혁기에는 묵묵히 살아온 백성들의 힘이 결집되어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흐름에 동참해 마구잡이로 쏟아져 오는 책은 문제가 있겠지만, 역사를 다양하고 폭넓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다.
  역사의 주체였으나 잊혀졌던 백성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워 출간된 책이 있어 화제다. 백성들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같은 생활사를 총체적으로 살핀  ‘한국생활사 박물관’ 시리즈가 그것이다. 생활사는 21세기 역사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사의 새 패러다임이라 한다.  백성들의 능동적인 생활사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인데, 사계절출판사에서 해주니 반갑고도 고맙다.
  한국 생활사 박물관 시리즈는 2003년 12월인 지금까지 총 9권이 나왔다.
  1권은 선사생활관
  2권은 고조선생활관
  3권은 고구려생활관
  4권은 백제생활관
  5권은 신라생활관
  6권은 발해, 가야 생활관
  7권은 고려생활관1
  8권은 고려생활관2
  9권은 조선생활관1
  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조선생활관과 20세기 생활관이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생활사박물관 1》은  2000년 7월에 출간되었다. 책의 규모, 장정, 내용은 외국의 어떤 책과 비교해도 뒤짐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 이 책을 편찬한 사람들은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들이다.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각분야의 역사전문가와  사진, 그림의 전문가들이  치밀한 고증을 거쳐 역사를 복원했다. 글 한편 한편은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할 정도이다.큼직한 사진은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대체로 100여 컷의 사진이 실렸지만,  4권 백제 생활관에는 무려 200여 컷의 사진이 실려 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식으로 그려진 컬러 그림은 진한 감동을  준다. 4권 백제 생활관에 실린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그림, 5권 신라생활관에 실린 서라벌 그림,  7권 고려생활관1에 실린 팔관회,  9권 조선생활사1권에 실린  고을 그림(아래)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이 책은 박물관의 형식을 택하면서 책이 가지는 평면감을 극복했다. 공간 이동을 통해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며, 유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조상들의  삶을 생생히 되살려  놓는다. 야외전시실을 거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주전시실, 특강실, 특별전시실, 가상체험실, 국제실이 나온다. 책의 처음에 나오는 야외전시실을 보자. 큼직한 사진들은 앞으로 들어가게 될 시대에 대한 궁금증과 아련함을 불러 일으킨다.
  3권에 실린 고구려 산성사진들은 고구려인의 기상을 , 4권에서는 백제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6권에서는 발해에 대한  친근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주전시실에 들어가면 그  시대의 백성들이 우리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 고조선 시대의 영지네 식구들은 귀걸이, 목걸이, 팔찌, 가락지를 하고 제천행사에 간다. 고구려의 어느  마을에서는  농부인 용대 아들과 대장장이 을로의 막내딸이 입씨름을 하고 있다. 백제인 사여적의 집에서는  품에 안긴 꼬마가 호자에 오줌을 찍 갈기고 있다. 말갈계  발해사람인 섭리계는 숲에서 담비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옛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현재형으로  진행하는 이야기는 친근함을 주고 생생함을 준다.

   특별 전시실은 큰 사진을 활용하여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유물 하나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특강실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적어놓아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든다. 가상 체험실은 직접 겪는 것처럼  현재형으로 서술된 것이 재미있다. 4권은 무령왕릉을 두고 1400년을 뛰어 넘어 왕릉을 만드는 사람들과 발굴하는 사람들을 동시에 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국제실은 분야별로 사진을 모아놓아 다른 나라와 견주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찾아보기도 있고,  자료제공 및 출처도 정확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역사의 주체로  살아온 백성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입던 옷,  쓰던 가재도구나 물건들은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우리가  박물관 안에서 봤던,  유리  속에서 차갑게 누워있던 유물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역사의 한 장면을 재연한다.  그 물건들을   어떻게, 왜 썼는지를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므로  쉽고 재미있게  역사 속으로 몰입할  수 있다. 역사의 주체였지만 잊혀졌던 백성들이 우뚝서는  순간이다.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지만 안타까운 점도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의 1권은 2000년 7월에 출간 되었다. 2002년 3월에는 바로 개정판이 나왔다. 그림이 몇 군데 수정되었고, 사진과 글이 약간 바뀌면서 책값도 올랐다. 책을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급하게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6권에는 신라인과 경쟁하는 발해인이 나온다. 발해는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신라인과는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신라인과 문화적인 우월 경쟁을 하기도 했지만, 당의 견제정책에 의해 더욱 조장된  측면이 있다. 이를 밝혀주었더라면 국제 정세가  더욱 잘 설명되었을 것이다. 7권은 개성인의 삶, 고려 청자, 팔관회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청자가 고려인의 생활속에서 쓰였다지만, 책에 실린 청자는 장식성이 강해 백성들이 쉽게 쓰기 힘들었다. 그리고 개성에서 열리는 팔관회보다는, 고을에서 열리는 연등회가 백성들의 접근이 쉬웠다. 고려 시대의 주요 유적과 유물은 개성 부근에 몰려 있어 접근이 쉽지 않고,전해지는 자료도 제한적이서 백성들의 생활사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고려시대는 한 권만으로도 충분하다. 8권까지 고려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이 책을 처음 기획했을 때는 백성들의 생활사를 통해 역사를 보여주겠다고 시작했지만, 종합적인 역사교양서로 자리매김을 하고 싶어서일까. 책 제목과  일치된 내용을  일관되게 보여 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우리들은  2001년 상반기에 일어난  ‘일본 교과서 왜곡 사건’을 잊을 수 없다. 다행히  0.·39%라는 저조한 채택률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 주변국들을  자극해 한동안 시끄러웠다. 지금은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2001년 1월에 북한이 고구려 벽화 고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신청을 했는데,  2003년 2월에는 중국도  집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자국의  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중국은 세계유산 위원회 의장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6월에 있을  정기총회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뒤늦게  고구려  시대의 군사 유적지인  ‘아차산 일대 보루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우리들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외국의 움직임을 겪으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발해도  중국이나 러시아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  이  책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최정아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있습니다.
과거와 너무 달라진 역사, 인물책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좋은 책을 혼자 보기 아까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월곡 인표도서관'에서 어머니들과 함께 책이 주는 기쁨에 대해 나누고, 작은 서점에서 어머니들과 어린이들과도 나눕니다.
책이 주는 기쁨을 이웃과 나누며 곱게 늙어가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