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부터1990년대 이전까지의 역사, 인물책

                글 : 오진원

 1.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기술하는 게 아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이긴 하지만 역사가가 어떤 사실을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한 시대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넘어 ‘과거와 현재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고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980년 광주의 역사를 기억한다. 1980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 기억에 광주는 ‘불순 세력들이 무력 폭동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이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총을 들고 차를 타고 가는 불순세력(?)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줬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모두 광주란 끔찍한 사건에 대해서 무서워했다. 한 가지 의문은 대학생들의 시위였다. 왜 대학생들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불순세력과 맞서 싸우는 계엄군과 대치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학교가 서울역에서 비교적 가까웠던 탓(보성여고)인지 가끔 ‘절대 서울역 쪽으로 가지 말 것!’을 당부하며 수업을 일찍 마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서울역을 향한 관심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집에 가는 버스를 타는 곳과 서울역은 단 한 정거장 차이였기에 호기심이 더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엔 광주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늘 서울역과 반대쪽인 집을 향하게 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자 광주는 다시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광주와 다른 광주에 대한 증언과 사진은 충격이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까닭이 무엇인지, 같은 광주에 대해서 어떻게 이처럼 상반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이 일을 나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했다. 그리고 1988년 광주청문회가 열릴 때까지 광주는 오랜 시간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개인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하지만 광주에 대한 내 경험은 아주 값진 교훈을 주었다. 역사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 역사란 시대마다 그 평가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사 속에 얼마든지 거짓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역사 속에는 그 시대의 역사인식이 담겨있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 시대별로 기록된 역사책을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다.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그 시대 사람들의 역사 인식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작업에는 괴로움도 따른다. 우리의 역사의 삐뚤어진 부분을 확인할 때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왜곡되어가고 말 테니 말이다.

2.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범주는 일제 치하에 있던 1920년대부터다. 당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역사 출판물이 따로 눈에 띄지는 않는다. 대신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바로 방정환이 발간했던 잡지 《어린이》(1923년-1934년)와 프롤레타리아 아동문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잡지 《신소년》(1923년 - 1934년)에 실린 역사와 인물 관련 글들을 살펴보는 일이다. 《어린이》와 《신소년》은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고생까지를 포함하는 일종의 청소년 잡지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 잡지에는 유난히 역사와 인물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띈다. 왜일까?
  그건 아마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당시의 현실 인식 때문일 것이다. 먼저 《어린이》와 《신소년》에 어떤 역사, 인물 이야기가 실렸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어린이》에 실린 역사, 인물 이야기

◎ 1권 9호 <1923년> 고주몽 이야기-손진태
◎ 2권11호 <1924년> 날쌔고 기운 센 김덕령 김 장군 이야기-조산강
◎ 3권 2호 <1925년> 검도령 이야기
◎ 3권 2호 <1925년> 거북 배를 만드신 이충무공 이야기-신영철
◎ 3권 5호 <1925년> 강감찬 장군 이야기-손진태
◎ 3권 6호 <1925년> 세 살 때부터 글을 지은 율곡 선생 이야기-기전
◎ 3권 8호 <1925년> 김삿갓 이야기-박달성
◎ 3권 9호 <1925년> 이번은 혼나던 김삿갓 이야기(2) -박달성
◎ 3권 9호 <1925년> 박문수이야기 -고한승
◎ 3권 9호 <1925년> 을지문덕 장군 -차정오
◎ 3권 10호 <1925년> 천하영웅 당 태종의 눈을 쏘아 쫓은 양만춘 장군 -조규수
◎ 3권 11호 <1925년> 사법명대장군 -조규수
◎ 3권 12호 <1925년> 서은왕 이야기 -조규수
◎ 4권 2호 <1926년> 서화담 선생 -차상찬
◎ 4권 3호 <1926년> 정충신 이야기 -차상찬
◎ 5권 6호 <1927년> 고려 충신 정포은 선생과 어머니 -신영철
◎ 5권 7호 <1927년> 정몽주 선생 -신영철
◎ 7권 2호 <1929년> 정포은과 이율곡 -차상찬
◎ 7권 3호 <1929년> 조선의 지도와 고산자 -신영철
◎ 7권 3호 <1929년> 양만춘 장군의 안시대승 -조규수
◎ 7권 3호 <1929년> 수나라의 백만 대병을 일거에 전멸시킨 살수대첩 -차상찬
◎ 7권 3호 <1929년> 천하의 용장 을지문덕 장군 이야기 -차상찬
◎ 7권 3호 <1929년>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7권 4호 <1929년>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7권 5호 <1929년>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7권 6호 <1929년>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7권 7호 <1929년>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7권 8호 <1929년>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7권 9호 <1929년> 천강 홍의장군 -푸른소
◎ 8권 1호 <1930년> 고려 용장 강감찬 장군의 어릴 때 -송선생
◎ 8권 1호 <1930년> 철학자 이율곡 선생의 어릴 때 -계산인
◎ 8권 1호 <1930년> 만고 충신 임경업장군의 어릴 때 -차상찬
◎ 8권 1호 <1930년> 만고 충용 이충무공의 어릴 때 -삼산인
◎ 8권 1호 <1930년> 대 혁명가 홍경래원사의 어릴 때 -청오생
◎ 8권 2호 <1930년> 이괄란 이야기 -차상찬
◎ 8권 3호 <1930년> 마의래의 용력 -김진구
◎ 8권 3호 <1930년> 임경업의 호용 -김옥빈
◎ 8권 3호 <1930년> 장붕익의 용맹 -연성흠
◎ 8권 4호 <1930년> 김응하 장군 -차상찬
◎ 8권 5호 <1930년> 궁예왕 이야기 -차상찬
◎ 8권 9호 <1930년> 천도교의 시조 최수운 선생 -김기전
◎ 8권 9호 <1930년> 천하 용소년 최윤덕 장군 -차상찬
◎ 9권11호 <1931년> 홍경래 난 이야기 -최진순
◎ 10권 5호 <1932년> 조선 역사 독본(5) -최진순
◎ 10권 6호 <1932년> 삼국시대의 문화 -최진순
◎ 11권 2호 <1933년> 맹고불 맹정승 -차상찬
◎ 11권 5호 <1933년> 천하명궁 이지란 장군 -차상찬
◎ 12권 1호 <1934년> 고려 용장군 김경손 -차상찬

  《신소년》에 실린 역사, 인물 이야기

◎ 2권 1호 <1924년> 문익점 선생 -신명균
◎ 2권 6호 <1924년> 을지문덕 -김재희
◎ 3권 4호 <1925년> 서경덕 선생 -이상대
◎ 3권 7호 <1925년> 온 세상을 흔들던 가난뱅이 허생원(1) -이병화
◎ 3권 8호 <1925년> 역사 공부
◎ 3권 8호 <1925년> 온 세상을 흔들던 가난뱅이 허생원(2) -이병화
◎ 3권 9호 <1925년> 힘과 옳음의 덩어리 김덕령 장군 -이상대
◎ 3권 9호 <1925년> 역사공부
◎ 3권 10호 <1925년> 김시습 어른 -이상대
◎ 3권 10호 <1925년> 역사공부(3)-조규수
◎ 3권 10호 <1925년> 한가위-권덕규
◎ 3권 11호 <1925년> 임경업 장군(1) -이상대
◎ 3권 12호 <1925년> 역사공부(4)
◎ 3권 12호 <1925년> 임경업 장군(2) -이상대
◎ 4권 2호 <1926년> 역사공부(6)
◎ 4권 2호 <1926년> 최영 장군 -신명균
◎ 4권 3호 <1926년> 김유신 장군-신명균
◎ 4권 4호 <1926년> 역사공부(7)
◎ 4권 4호 <1926년> 황희 정승-신명균
◎ 4권 6호 <1926년> 을지문덕 장군 -신명균
◎ 4권 7호 <1926년> 아이들의 조선 역사 -손진태
◎ 4권 7호 <1926년> 아이들의 조선 역사 -손진태
◎ 4권 10호 <1926년> 아이들의 조선 역사 -색동회 손진태
◎ 4권 11호 <1926년> 성삼문 어른 -신명균
◎ 4권 12호 <1926년> 소년 용사 관창 -신명균
◎ 5권 1호 <1927년> 강감찬 장군 -신명균
◎ 5권 1호 <1927년> 목화 이야기 -색동회 최진순
◎ 5권 3호 <1927년> 남이 장군 -신명균
◎ 5권 3호 <1927년> 아이들의 조선 역사(7) -손진태
◎ 5권 4호 <1927년> 화랑 - 이상대
◎ 6권 4호 <1928년> 신라 지증왕 -신명균
◎ 6권 4호 <1928년> 아동의 조선 역사(9) -색동회 손진태
◎ 8권 1호 <1930년> 박연 어른 -신명균
◎ 8권 2호 <1930년> 합소문-신명균
◎ 9권 2호 <1931년> 근대 기걸 홍경래 장군 -신명균

  위 표를 살피다 보니 눈에 띄는 게 있다. 유난히 역사 이야기보다는 인물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에 실린 인물만도 고주몽, 김덕령, 검도령, 이충무공, 강감찬, 율곡, 김삿갓, 박문수, 을지문덕, 양만춘, 사법명대장군, 서은왕, 서화담, 정충신, 정몽주, 김정호, 곽재우, 임경업, 홍경래, 이괄, 마의래, 장붕익, 김응하, 궁예, 최수운, 최윤덕, 홍경래, 맹사성, 이지란, 김경손 이야기가 실렸는데 이 가운데 강감찬, 을지문덕 등은 몇 번에 걸쳐 반복해서 싣고 있다.

 

 《신소년》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익점, 을지문덕, 서경덕, 김덕령, 김시습, 임경업, 최영, 김유신, 황희, 성삼문, 관창, 강감찬, 남이, 지증왕, 박연, 합소문, 홍경래 등의 인물을 볼 수 있다.
  물론 《어린이》나 《신소년》 모두 전권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현재 구해볼 수 있는 수준에서 살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경향성만은 확인할 수 있다. 인물 이야기가 많고, 그 인물 가운데 대부분이 이른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건 일제 치하라는 당시 현실을 생각할 때 굉장한 중요성을 갖는다. 이는 당시의 역사 인식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1876년 개항 이후 끊임없는 이어지는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을 강요당했고 선진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다 결국은 일본의 지배에 놓이고 만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필요로 했고, 새로운 역사인식은 국가의 독립과 근대화로 집약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백성들이 깨어야 한다는 이른바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계몽주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역사 교육은 구국의 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 인식을 사람들에게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난 극복형 인물’만큼 좋은 소재는 없었다.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게다가 인물 이야기는 일반적인 역사서와 견줄 때 작가가 자기의 견해를 좀더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다.

개항기의 역사인식과 서술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을지문덕』(乙支文德)과 같은 역사적 인물의 전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1908년에 국한문본 및 한글본으로 간행된 이 책은 수(隨)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을지문덕을 모범으로 내세워, 전통적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던 중국 중심의 사고방법을 청산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외세의 침입에 효율적으로 대처했던 고구려 시대의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조선 민족도 외세의 침략을 격퇴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동시에 모든 외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고자 했다.
    《한국사 23 - 한국사의 이론과 방법 1》<개항기의 역사인식과 역사 서술>
                                                                       한길사, 이철성, 95-96쪽

  또 당시는 암울했던 현실 탓에 민족적인 자부심을 필요로 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민족의 자랑거리가 될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선호하는 경향이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하던 진시황을 죽이려고 철퇴를 내리쳤다는 검도령 이야기도 소중하고, 또 서나라는 우리 겨레가 건설한 나라라 강조하기도 한다.

여러분 서울동물원(창경궁)안 박물관에 있는 큰 철퇴를 보신 일이 있지요. 그 무섭게 큰 철퇴가 그때 검도령이 진시황제를 치든 것이라고 전해오는 말이 있습니다. 못 본 이는 다시 한번 가서 주의해 보십시오.
                                                              《어린이》3권 2호, 1925년

중국의 옛 역사를 보다가 서융(西戎)이라고 쓴 것이 있으면 한족 가운데 하나이거니 하였지만 실상은 우리 겨레 가운데 서예(徐濊)라 하는 것으로 서(徐)나라를 그곳에 건설하였던 것입니다.[……]우리 겨레 중 예의 한파가 그곳으로 가서 나라를 세운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5,600년을 지나서 우리 서나라의 국운이 더욱 창성하니 양자강 북편으로 회수(淮水), 사수(泗水) 사이가 모두 서나라의 강토가 되고 그때 임금인 서은왕(徐偃王)의 착한 덕이 사방에 미쳐서 한족의 모든 나라도 돌아와서 항복하는 곳이 50여 나라가 더 되었습니다. [……]자는 호랑이의 코를 찌른 것과 같이 서나라의 쳐들어오는 것을 도리어 받게 된 주나라 임금 목왕(穆王)은 크게 두려워하여 싸움이 그치기를 간절히 빌면서 동편은 서나라가 주장하고 서편은 주나라가 주장하자는 조건을 들어서 싸우지 않기로 맹서하여 간신히 평화가 되었으니 이것은 우리 겨레가 밖에 나아가서 활동하던 큰 사실이요, 우리와 한족 사이에 큰 기록이라 할 것입니다.
                                                                  《어린이》3권 12호, 1925년

  이처럼 나라를 국난에서 구해낼 희망을, 그 상징을 국난극복형 인물에서 찾거나 민족의 자부심을 빛낼 수 있는 영웅적인 모습에서 찾다 보니 자연스레 그 인물은 영웅주의 사관을 반영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 인물의 성격에 대한 주변부는 모두 생략된 채 인물의 영웅주의적인 모습만을 부각해서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인물 이야기의 하나의 전형으로 굳어져 해방 뒤, 그리고 1970-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인물로 미국의 워싱턴과 링컨, 그리고 이탈리아의 가리발디 등이 부각되었다. 이는 이들 인물이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그리고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영웅이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 강한 민족의 상징으로서 스파르타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가리발디는 이태리의 제일 훌륭하고 이름 높은 영웅입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통일하기 위하여 기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리 만한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중에도 제일 크고 놀랄만한 사업은 『천인대의원정(千人隊의 遠征)』이었습니다. 가리발디는 뽑고 뽑은 용사로 조직한 이 유명한 천인대를 거느리고 1860년에 시칠리아(나라 이름)와 나폴리(나라 이름)를 뽈뽀니 왕가의 나쁜 정치에서 구원해 내 가지고 이것을 엠마누엘 2세의 왕국에 복종시켰습니다.
                                                                      《신소년》8권 4호

밤이면 늦도록 글을 읽고 글씨가 쓰고 싶으면 나뭇잎을 따다가 쓰고 쓰고 하였다. 그러나 원래 가난한 그 집은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 살 소처가 못되었다. 그래서 그가 학교를 다닌 아홉달 채 안 되는 달에 그는 그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어느 날 링컨은 이웃의 어느 사람에게 「워싱턴전」이란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합중국을 건설한 제1기의 대통령인 워싱턴의 전기가 몹시도 읽어보고 싶었다. 그는 마침내 그 책을 빌려서 미친 듯이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링컨은 물에 젖은 그 책을 가지고 그 책 임자의 집으로 갔다.
『내가 부주의한 까닭에 이 책을 버렸습니다. 용서하시고 그 대신에 그 값이 될만큼 내 몸을 써 주시요.』하고 빌었다.
                                                                         《신소년》 8권 3호

  《어린이》《신소년》에도 어김없이 이들 인물 이야기가 실렸다.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서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일화들을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외국 인물들 역시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시는 독립과 조국 근대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링컨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공부를 해서 큰 인물이 되는 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올 때일 테니 말이다. 따라서 뭔가 지금 현재 우리 민족의 모습과 관련된 인물들의 부각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는 김유신이나 정몽주 등과 연결되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3.

  그렇다면 해방 후의 현실은 어땠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되짚어보는 게 필요할 것이다.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은 했지만 바로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지고 이어서 1950년 한국전쟁을 겪는다. 이른바 한반도는 본격적인 냉전시대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들어오면서 실제는 독재정치가 자행되는 상황, 이것이 바로 당시의 현실이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은 됐지만 아직도 조국은 암담하기만 했다. 조국 근대화는 여전히 핵심적인 과제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계몽주의적인 분위기도 계속됐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 애국심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학계에서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행방불명, 월북, 납북되어 사라진 민족주의사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사라지고 문헌고증사학계열의 역사학자들만이 남게 된 현실은 이들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쓰여지는 어린이 역사, 인물책들의 입지는 더욱 협소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 역시 앞서 살펴본 1920-30년대와 크게 달라진 점은 눈에 띄질 않는다.
  인물 이야기에서도 인물의 차별성이 보이질 않는다. 김구, 윤봉길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인물 이야기의 한 축으로 흡수되어 들어왔다는 걸 빼면 더욱 그렇다. 당시는 단행본출판이 위축되고 전집 시장이 활성화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현재 남아있는 자료들이 많지를 않아서 확인을 하기가 어렵다. 일단 1925년 <고향의 봄>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해 1981년 돌아가실 때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이원수의 인물 이야기의 유형을 살펴보는 게 인물의 경향을 살피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듯 싶다.

◎ 최영(이원수/동아출판사/1964년)
◎ 장보고(이원수/계몽사 《한국전기전집》 가운데 / 1966년)
◎ 을지문덕(이원수/정문사/1971년)
◎ 이순신(이원수/한국자유교육협회/1973년)
◎ 김유신(이원수/한국자유교육협회/1974년)
◎ 을지문덕(이원수/을유문화사/1975년)
◎ 을지문덕(이원수/동아출판사/1977년)
◎ 안창호(이원수/동아출판사 《애국의 등불 1》/1977년)
◎ 최  영(이원수/동아출판사 《애국의 등불 2》/1977년)
◎ 정몽주(이원수/동아출판사 《애국의 등불 2》/1977년)
◎ 김종서(이원수/동아출판사 《애국의 등불 2》/1977년)
◎ 배중손 ․ 김통정(이원수/동아출판사 《애국의 등불 2》/1977년)
◎ 이율곡(이원수/동아출판사 《애국의 등불 2》/1977년)
◎ 김유신(이원수/한림출판사/1980년)
◎ 원효대사(이원수/한림출판사/1980년)
◎ 이순신(이원수/한림출판사/1980년)
◎ 사명대사(이원수/한림출판사/1980년)
◎ 김  구(이원수/계몽사)

  인물이 겹치는 건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한 책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같은 인물이 반복돼서 출판되었다는 건 어쨌든 그 인물에 대한 선호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확인되는 책으로는 창비아동문고로 나온 《백범 김구》(1982년), 《윤봉길 의사》(1983년), 《이육사》(1985년)와 이주홍이 쓴 《바다의 사자 안용복》(1996년/우리교육) 정도를 들 수 있다. 《바다의 사자 안용복》을 여기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가 1976년 이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1996년 재출간과 함께 머리말에서

그런데 이주홍 선생님은 벌써 20여 년 전에 독도를 걱정하시고, 어린이 여러분에게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안용복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1920-30년대와 마찬가지로 을지문덕, 이순신, 김유신, 정몽주 등은 여전히 인기이고, 여기에 독립운동가들이 추가된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난극복형의 인물’ 이 한마디로 한 범주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인물은 그대로라도 내용에 있어 어떤 변화를 찾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보자. 정몽주는 1920-30년대는 물론 해방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선호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해방 뒤 잠시 복간된 《어린이》에서도 몇 회에 걸쳐 연재한 인물은 정몽주였다. 그런데 정몽주에 대한 시각은 늘 선죽교의 핏자국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는 시조로 유명한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충신’으로써의 정몽주일 뿐 그 외의 다른 면은 전혀 이야기 되질 않는다. 이율곡도 마찬가지다. ‘십만양병설’로 대표되는 일면일 뿐이다.
   이런 현상은 앞서 말한 당시의 현실과 다분히 관련을 갖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이들 인물 이야기들이 조국의 근대화와 애국심 고취를 뛰어넘어,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주는 한 축으로 강요된 측면들이다. ‘북진 통일’ ‘멸공 통일’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내부의 모순을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해서 싸우는 정의로운 모습으로 바꾸는데 이들 인물 이야기만큼 적절히 사용된 건 없지 않나 싶다. 특히나 1980년대 이전까지 인물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 분위기에 부흥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은 또 한번 최고의 영웅으로 부각되었고, 정몽주의 죽음은 어린이들에게 조국을 위해서 온 몸을 바쳐야 한다고 애국심을 강요하게 되었다. 국난극복형의 인물들은 조국 - 이제 조국은 한반도가 아니라 남한만을 뜻하게 되고, 타도 대상이 되어버린 사회주의 국가들은 우리 민족을 침략했던 적으로 규정된다 - 즉 이제는 협소해져버린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면 정권의 정당성은 일본과 맞서 싸운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보장받았다. 이순신, 사명대사, 이율곡 등 임진왜란 때 인물이 그들이다. 이는 인물의 다른 성격은 생략한 채 일본과 맞서 싸운 일만을 강조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결국 인물 이야기 한편 한편에 대한 평가로서가 아니라 한 시대를 보여주는 큰 틀로써 인물 이야기로써 살피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처럼 인물 이야기는 유명한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의 어떤 점을 부각시켜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인물 이야기는 한 편의 문학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교육용 도서로 작가가, 사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대신 이야기해 주는 하나의 수단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책 분야는 어땠을 까?
  역사책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인물 이야기와 견줄 때 출판된 양도 그다지 많지 않고 그 성격도 비슷비슷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운데 몇몇 이야기를 뽑아서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내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 이조실록의 국역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이조실록 이야기》와 같은 형식의 책들도 출현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통사 형식의 책들은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대개는 교과서 보조용이거나 혹은 민족의 자부심을 갖거나 역사를 통해 뭔가 반성을 해 새로운 도약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여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1979년 이주홍이 쓴 《소년 한국사》(을유문화사) 머리말의 일부를 통해 당시 역사책의 한 방향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지금부터 이 조그마한 책자를 자료로 삼아서 우리 나라 역사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우리 나라 역사 공부를 하려 하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의 목표를 세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째는, 나를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 근원을 찾아보기 위해서 오늘의 전신이 어제를, 어제의 전신인 그제를, 그제의 전신인 옛날의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내 보자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우리 나라 역사 공부를 통해서 우리의 주체성을 강력히 내세우자는 것이다. [……] 그러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 강한 자들한테 비겁하지 않고 굴종하지 않도록, 자신을 가지고 겨루어 나갈 수 있게 힘을 주는 것일까? 이 늠름한 주체성이야말로 우리 겨레의 영원한 앞길을 보장해 주는 튼튼한 기둥이 되는 것이다.
세째는, 우리의 과거를 밟히 앎으로써 우리가 나라에 봉사하고 인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잇는 방향에 대한 암시를 받는 일이다.[……]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터득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문화 민족임을 실제로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 책도 조그만큼이나마 그런 데에 도움이 되어지기를 스스로 기대해 보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978년에 나온 전집 딱다구리도서관 가운데 한 권인《이조실록 이야기》(윤재영 엮음/동서문화사)의 풀이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역사의 장을 넘기면, 그때 그때의 정치와 경제와 생활 모습을 한눈에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 그 시대의 잘잘못을 냉정하게 헤아려 볼 수 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데 좋은 교훈과 참고로 삼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올바른 역사 의식과 민족 주체성이 필요로 되는 오늘날에는 더욱 역사 연구의 중요성이 도드라집니다.

   역사란 역사가의 잣대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역사란 ‘있는 사실’이라는 결과론적인 사고에서 역사를 교훈적인 입장에서 재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이상에서 일제시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어린이 역사, 인물책들을 개괄적이나마 살펴보았다.
  어린이 책에 대한 무관심으로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지만 커다란 흐름은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이는 이 시기 어린이 역사, 인물책들은 다분히 ‘민족적 과제’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린이들을 이에 동참시키기 위한 교재화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오진원
오른발왼발(childweb.co.kr)의 운영자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