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2호
<사담><역사>

합소문

신명균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고구려는 모든 문명이 한없이 발달될 때였습니다. 그 중에도 그때의 서울인 평양은 높은 벼슬아치와 큰부자 사람들이 많음으로 그 화려하고 사치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고구려 영양왕 25년에 그 뒤에 을지문덕이와 같이 장군으로 이름 있는 합소문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났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얼굴이 완벽하게 생기고 체격이 웅궐하여서 전기불 같이 번쩍이고 그 무서운 눈을 볼 때에는 어른들도 겁을 낼만 하였습니다. 그뿐이면 하지만은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이 비범하고 의기가 굿굿하고 위풍이 열렬하여서 누구에게든지 범인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이 비록 어렸어도 무한히 검소하여서 그의 아버지가 그때에 제일 가는 동부대인이란 큰 벼슬에 있고 또 나라를 흔들만한 큰 부자이었지만 합소문은 결코 호화로운 생활을 하거나 사치를 자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무사의 기질이 띄어서 항상 조그만한 칼을 만들어 차고 무술을 흉내내어 밥 먹을 줄도 잊어버리고 자꾸 그것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몸이 강건하고 의기가 더욱 용맹스러워지고 또 무술이 능숙하여져서 그 준궐스러운 위풍 밑에는 누구 없이 우러러보게 하였습니다.
그가 열다섯 살 먹던 해였습니다. 그 총명한 지혜와 신기한 무용은 드디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양왕은 하루에 합소문을 불러들여서 여러 가지로 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때에 합소문은 겨우 열다섯 살의 소년 무사에 지나지 못한 터이었지만 임금의 묻는 말에 조금도 주저하는 빛이 없이 척척 대답했습니다. 임금도 합소문의 그 영리한 데 감동하시고 사랑히 생각하셔서 즉시 그에게 벼슬을 주면서 뒷날에 나라에 큰 공이 있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이것이 합소문이가 장래에 큰 재상이 되어서 전국의 정권을 한손에 쥐고 천하에 위엄을 떨칠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조금도 거만스러운 태도를 갖지 않고 사치를 물리치며 끝까지 무술을 단련하고 정사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이 한살씩 더 먹어가는 동안에 그는 훌륭한 무사요 정객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그의 부친이 죽고 난 뒤에 합소문은 그 아버지의 벼슬 동무대인을 이어서 벼슬에 나아갔습니다.
그때 고구려의 나라법에 대인이란 벼슬은 귀족이 대대로 하는 것이지만 다만 벼슬에 나아갈 때에는 그 위에 사람들의 허가를 얻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합소문이 그 아버지 벼슬을 이어 나아갈 때에는 모두들 꺼리고 좋지 않게 여겨서 시원하게 허가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물론 합소문이가 모든 것이 비상한 인물이라서 그들은 혹이나 어떻게 될까하고 의혹을 품은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합소문은 굿굿하고 또 공손하게 그 간섭하는 어른들 앞에 나아가서
『제가 직책을 맡았다가 만일에 옳지 못한 일이 있거든 곧 축출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사람을 써 보기도 전에 남의 인격을 판단함은 너무도 야속한 일이 아닙니까. 원컨대 제가 벼슬에 나아가기를 허락하셔서 장래를 시험하여 주옵소서.』
하고 말함으로 그들도 하는 수 없이 허가를 하여주었습니다.
동부대인 벼슬을 가진 합소문은 그 뒤 영류왕 시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정사의 의견이 다른 정객들과 마지를 않았습니다.
임금도 합소문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 나머지 다른 정객들도 모두 합소문을 꺼림으로 합소문도 나라의 정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불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루라도 일찌기 그 그릇된 정객들을 정리할 궁리를 하였습니다. 드디어 임금의 싫어하는 바 되어서 영류왕 25년 되던 해에 합소문은 그것을 멀리 떠나가 장성이란 성을 감독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역시 그 해 10월에 모든 정객들은 임금과 서로 비밀히 의논하고 합소문을 죽이기로 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벌써 알아차린 합소문은 어느 날 동부의 군사를 모아 가지고 열병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잔치를 벌여놓고 각 대신을 청해 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 술을 마시고 짓거리는 판에 합소문의 호령이 내리니 미리 계획한 수만 명 군사들은 일시에 모여들어 백여 명의 대신을 일시에 베어 죽이고 또 그 길로 *태창에다 불을 지르니 성 가운데는 불바다로 변해졌습니다.
합소문은 곧 궁중으로 뛰어들어가서 영류왕을 죽이고 그의 조카인 보장왕을 맞아드렸습니다. 그리하여 합소문은 지금으로 말하면 총리대신인 모웅지란 벼슬에 나아가서 나라의 정권을 한 손에 쥐고서 사방의 열국에 위풍을 떨쳤습니다.
이때에사 비로소 합소문의 이상을 실현할 시대가 이르른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 그의 바르고 굿굿한 인격에는 누구나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고 그의 땅이라도 흔들릴 듯한 위엄에는 이웃의 모든 나라가 모두 겁을 내었습니다.
그럼으로 당나라 태종이 30만 군사를 몰아서 고구려를 치고져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를 하였고 또 신라의 김유신 김춘추 같은 장군들은 삼국을 병합코자 꾀하였으나 모두 합소문의 위엄 앞에는 모든 계획인 산산이 깨어졌습니다.
그럼으로 나중은 신라와 당나라가 동맹을 하여 가지고 쳐들어오려 함으로 합소문은 백제 나라의 양해를 얻어 가지고 그 두 나라 사이의 통로를 끊어버렸습니다. 그 뒤에 백제가 망하고 나니 그 두 나라가 다시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애 썼으나 변함 없는 합소문의 위풍 아래에는 모두 감히 대항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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