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1호
<위인의 어릴 때 >

대 혁명가 홍경래원사의 어릴 때
- 임신서란(壬申西亂)의 평서 대원사(平西大元師)요 천하의 기걸 홍경래


청오생


임진란 때에 천하명장으로 이름을 세상에 흩날리던 김응서(金應瑞) 장군을 낳은 평안남도 용강(龍岡)땅에는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 이조 정조대왕 시대에 또 유명한 큰 인물이 나셨으니 그는 근대 조선의 큰 혁명가 홍경래(洪景來) 장군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얼굴이 비범하고 국량이 넓었습니다. 아홉 살 때에 일찍이 글방에 가서 선생에게 사략(史略)을 배우는데 진섬(陳涉)이란 사람의 “왕후와 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느냐” 하는 구절에 이르러서 해가 지도록 그것만 몇 백 번 복습을 함으로 선생이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장군은 대답하되 사람이란 원래에 그러한 것인즉 나도 커서 반드시 왕후나 장상이 되겠다하니 선생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으며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열두 살 때에는 또 용강 군수가 군내를 순회하는데 행차가 아주 장하니까 경래가 여러 아이더러 일러 가로되 예 들은즉 군수가 관력을 믿고 여러 백성을 마음대로 학대한다하니 내가 이 기회에 그 버릇을 고쳐 줄 터이니 너희들은 나를 조력하라하니 여러 아이가 감히 듣지 못하고 모두 도망을 함으로 장군은 할 수 없이 혼자 품속에다 돌을 한 아름을 잔뜩 넣고 숲 속에 숨어 있다가 군수의 사인교(네 사람이 메는 가마)를 냅다 때리고 도망을 치니 하인들이 모두 깜짝 놀라서 경래를 잡으려고 사방으로 찾아다니었으나 잡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는 차차 자라매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이인(異人)을 만나 병서와 술법을 배우고 또 문장이 능하여 열일곱 살 때에 서울에 와서 과거를 보고 그 때에 세력이 있는 집에 출입을 하는데 원래에 인물이 비범한 까닭에 여러 사람에게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나라에서 사람을 쓰는 법이 그 사람의 재주와 인격을 보지 않고 다만 문벌과 지방을 구별하여 벼슬을 주니 경래가 탄식하여 가로되 나라 일이 이와 같이 되니 비록 벼슬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하고 그만 혁명의 난리를 일으키려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에 그의 나이는 겨우 21세였습니다. 그는 그 길로 고향에 돌아가서 여러 동지를 모아 가지고 큰 난리를 일으켰으니 이것이 곧 이조 순조 때의 유명한 임신서란(壬申西亂)이올시다. 그는 그 때에 비록 실패를 하였으나 인물과 생각으로는 근대 조선에서 드문 어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