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1호
<위인의 어릴 때 >

철학자 이율곡 선생의 어릴 때
- 대철학자 대정치가요 문장이 천하제일이던 이율곡의 어릴 때 이야기


계산인


이율곡(李栗谷)선생님의 이름은 이(珥)요 자는 숙헌이요 율곡은 그 별호올시다. 그 선생님은 지금으로부터 394년 전 이조 중종 대왕 31년 병신 12월 26일 인시 - 오전 4시로 6시까지의 사이-에 강원도 간릉군 북평촌 오죽헌이란 집에서 나셨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상하여 세 살에 능히 시를 잘 짓고(시는 어려운 까닭에 여기에 쓰지 않습니다) 네 살부터는 벌써 글방을 다니면서 사략초권(史略初卷)을 배우는데 선생이 토를 잘못 붙이었더니 선생이 고쳐 붙여서 선생과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하고 또 일곱 살 때에는 이웃에 사는 진복창(陳復昌)이란 사랑의 전기(傳記)를 장난으로 짓는데 “외형은 비록 얌전하나 속은 흉측하니 이는 소인이라. 만일에 이 사람이 무슨 일에 세력을 잡게 되면 세상을 반드시 어지럽게 하리라.” 하였더니 그 뒤에 과연 진씨는 벼슬을 함에 간사한 소인노릇을 하여 여러 사람을 많이 해치고 나라 일을 그르쳤습니다. 그 한 일만 보아도 선생은 하늘이 내신 명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여덟 살 때에는 파주 화석정(花石亭)에서 유명한 화석정 시를 짓고 열 살 때에는 유명한 강릉 경포대부를 지어서 지금까지 세상 사람에게 많은 칭찬을 받습니다. 선생은 이와 같이 문장이 도저한 까닭에 열세 살 때에 일찍이 진사초시 - 지금으로 치면 문관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 를 마치고 열다섯 때에는 여러 가지 의학문에 아주 능달하여 노숙한 큰 학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열여섯 살 때에 불행히 그 어머니 사임당 신씨가 돌아가시고 서모 시하에 있게 되매 자연 가정의 뜻이 맞지 않아서 열아홉 되던 해에는 그만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약 1년 동안을 중노릇을 하여 불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세상에 나와서 여러 학자들과 같이 놀며 공부를 하더니 23세 때에는 그 때에 유명하신 학자님 이퇴계(李退溪) 선생에게 다시 수학하여 아주 조선의 큰 철학자와 큰 정치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