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1호
<사담><역사>

박연 어른

신명균


이조 오백년 동안에 가장 꽃다운 시절은 아마 지금 조선 글을 지어내신 세종대왕 때이겠습니다. 그대에는 임금도 훌륭하셨지마는 또 신하들 중에도 잘난 사람이 많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유익한 일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때 충청도 영동 땅에 박연이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비단결 같이 고와서 동무들끼리도 매우 정다이 굴고 또 부모들께도 효성이 지극하여서 집안에는 언제든지 화한 바람이 불고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이 소년은 집안에서만 이런 귀염둥이가 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자라서 조선 민족에게 큰 자랑거리를 주고 모든 나라 여러 사람에게 길이길이 귀염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아십니까.
이 소년은 여러분과 같이 책을 끼고 글방에 다닐 때부터 퉁소 불기를 좋아해서 글방에 갈 때라도 퉁소를 차고 가서 어른들 모르게 퉁소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지금과도 달라서 퉁소 부는 것을 지극히 천히 여길 때이기 때문에 어른들에게 들켰다가는 큰일이 날 터이니까 몰래 몰래 숨어가며 퉁소 불기를 공부하였답니다.
박연은 무슨 일에든지 성벽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한번 시작한 일이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그만두는 성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눈을 기어가면서 틈틈이 꾀꾀로 퉁소를 입에서 떼어본 적이 없었음으로 동무들끼리도
『너는 이담에 풍각쟁이로 나가련!』
하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줄곧 공부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가 나날이 늘어서 남들도 그제는 모두 선수라고 칭찬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연은 나이가 열 칠팔 세가 되자 서울로 과거를 보러왔습니다. 반연은 과거를 보러 와서도 퉁소 공부는 조금도 게을리 아니하고 퉁소를 잘 부는 사람이 있다하면 어디든지 쫓아가 보았습니다. 한 번은 서울서도 가장 유명하게 퉁소를 잘 부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았더니 그 사람은 박연의 퉁소 소리를 듣고
『아직 가락도 뗄 줄 모르는구나. 어디 퉁소 분다고 하겠니? 또 인제는 버릇이 굳어서 더 배우기는 틀렸다.』
고 합니다. 박연은 일상에 그래도 내가 퉁소를 어지간히 부는데 하고 생각했다가 이번 이 사람에게 큰 코를 떼고는 속으로 놀라서
『선생님! 제가 아무리 용렬하더라도 정성을 다 할 터이니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 사람은 박연이가 하도 정성으로 비는 때문에 퉁소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을 가르쳤더니 놀라울 만큼 늘었습니다. 그 사람은 박연의 재주와 정성을 탄복하면서
『당신은 참 놀라운 재주요. 우리 따위는 아무래도 못 따라가겠소.』
하며 칭찬하였습니다.
박연은 과거를 보아서 급제를 한 뒤에도 퉁소 공부를 부지런히 할 뿐 아니라 거문고, 비파 같은 것도 모두 능통하도록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풍류를 맡아보는 도감 제조라는 벼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바로 세종대왕께서 조선 글을 지어내시고 또 나라에 풍류를 만들려 하실 때였습니다. 박연은 자기의 재주와 정성을 피어볼 시절을 만났습니다. 박연은 이 풍류를 궁리할 동안에는 밤에 잠을 아니 자고 이불 속에 누워서도 가슴 위에다 양 손을 올려 빼고 입으론 휘파람을 불어서 퉁소 부는 입내를 내 가지고 십년을 하루같이 궁리하였습니다. 그리하여서 마침내 터득하여 낸 풍류가 오늘날 세계에서 유명하다고 침들을 삼키는 아악이란 풍류올시다.
박연은 세종대왕을 도와서 이 풍류를 궁리하여 낸 뒤에도 또 여기에 쓸 풍류 제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풍류 제구는 한 가지가 아니라 북, 피리, 소라, 종, 경쇠들 외에도 여러 가지 올시다. 박연은 이 여러 가지 제구를 다 만든 후에 풍류를 울리면서 풍류 제구 중 어느 것이 잘 되고 못된 것을 검사하게 되었습니다. 박연은 귀를 기울이고 여러 가지 풍류 소리를 듣다가
『어느 것이 소리가 조금 높고 어느 것이 소리가 조금 낮구나.』
합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는 과연 티가 조금씩 붙어 있더랍니다. 그래 그 티를 떼어 버리고 다시 풍류을 울려본 즉 높고 낮은 것이 없이 똑 들어맞게 되었습니다. 그러함으로 세종대왕과 여러 사람들은 모두 박연의 재주가 신통함을 탄복하였습니다.
본디 세종대왕께서 이 풍류를 만드실 적에 박연과 장영실 두 사람이 세종대왕을 도와서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이 두 신하는 모두 뛰어난 재주와 정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은
『박연과 장영실은 세종대왕의 일을 돕기 위하여 특별히 태어난 사람이다.』
고까지 말들을 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고 세조대왕이 자기의 조카 되시는 단종대왕을 내어 쫓고 유명한 신하들을 죽이는 통에 박연의 아들이 역시 그 통에 끼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연도 의례히 죽을 것이지마는 특별히 사하여서 죽기만 겨우 면하게 되었습니다. 죽기를 면한 박연은 여러 정다운 친구와 그리운 서울을 내버리고 시골로 떠나게 되니 여러 친구들은 배에다 술을 차려놓고 강까지 나아가서 박연을 손목을 붙잡아 배웅하여 주었습니다. 박연은 술을 몇 잔 마신 후에 평생에 좋아하는 퉁소를 한 곡조 부니 그 신기하고 처량한 곡조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눈물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박연이 이처럼 뛰어난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그 재주보다도 꾸준한 정성이 박연으로 하여금 썩지 않는 사람을 만들게 한 것이올시다. 정성의 값이란 참으로 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