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4호
<역사>

조선은 이렇다

푸른소


◇ 지나온 조선(삼국시대)

삼한시대도 얼마 안 되어 우리 조선은 삼국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삼국이라는 것은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를 이르는 것입니다.
기자님의 후손이 나라를 잃어버린 지 140년도 채 못 되는 지금으로 약 2천년 전에 지금의 경상도 언저리를 판 잡고 있던 진한 나라에 신 같은 양반이 나섰습니다. 백성들이 뫼시어 임금님을 삼았으니 이분은 신라 나라의 맨 처음 임금님 시조 박혁거세라는 분입니다. 임금님 되시든 해에 겨우 열세 살밖에 안되셨으나 어른보다도 뛰어나게 영특하신 고로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바다 건너의 일본 사람들이 군사를 데리고 쳐들어오려다가 박혁거세님의 신덕이 있음을 듣고서 그대로 도망갔다는 말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혁거세님이 나라를 세운지 꼭 스물한 해되든 해에 북부여 나라 동명성왕의 아드님 고주몽께서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고구려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고구려 나라는 한 나라가 빼앗았던 우리 조선 땅을 모조리 도로 찾아서 북쪽은 멀리 만주 건너편까지, 남으로는 한강 언저리까지 넓고 넓은 국토를 차지한 큰 나라이랍니다. 고구려 나라가 개국된 지 20년 꼭 20년 되든 해에 고구려 임금님의 셋째 아드님 고온조께서 한강 남쪽에다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 나라가 백제 나라의 개국이요, 지금의 충청전라도 땅에 판을 차리었던 마한 땅을 차지하여 가지고 신라, 고구려와 맞서서 삼국시대를 꾸며 놓은 나라이랍니다.
신라와 백제 두 나라 틈에 가락국이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변한 땅을 물려 가지고 지금으로 1천900년 전에 김수로 라는 분이 개국한 나라로 늘 신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가 신라와 합해버린 나라입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 이 세 나라는 솥발 같이 버티어가지고 서로 힘을 내어가면서 날로 날로 나라를 발전시키고 문명을 더 밝게 하였습니다. 글이 비로소 생기고 온갖 재주가 점점 다하야 지금 와서도 세계 사람들의 혀를 두르게 하는 그림과 조각, 청기와, 질그릇, 등을 만들어 내기도 이 시대이었습니다.
을지문덕, 양만춘, 김유신과 같은 이름 높은 장수들도 이때 사람들입니다. 장수 말을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마는 이 시대처럼 옆에 여러 나라에서 싸움을 많이 걸은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락없이 잘 막아내고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삼국의 힘자랑은 굉장하였습니다마는 평화를 즐기우는 우리나라는 옆에 나라에게 싸움을 걸은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을 거는 다른 나라를 막아내지 못하고 물리치지 못한 때는 없었습니다. 일본에 글과 불교력법과, 의학들을 전하야 준 때도 이때입니다.
이때 우리 조선은 남의 나라에 앞에서 나갔고 조금도 뒤지지를 않았습니다. 삼국시대도 칠백여년이 지나간 뒤 백제, 고구려가 차례로 신라에게 망하였습니다. 백제는 개국한지 681년 31세의 왕위를 전하고 의자왕 때에 망하고, 고구려는 개국한지 705년 28세 보장왕 때에 망하야 신라에게 합하였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세 나라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게 안 하고 삼백년 동안(그 동안에 설총, 최치원 같은 문장이 나셨습니다) 잘 내려왔으나 51세 왕 진성여왕 때부터 나라가 흔들리기 시작하여서 견훤이라는 분은 후백제라고 하야 나라를 세우고 궁예라는 분은 태봉 나라를 세워 제각각 임금이라고 떠들어서 나라는 어지럽기 짝이 없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가서 신라는 왕건 어른에게 망하였습니다. 왕건 어른은 고려의 시조이십니다. 신라는 56세 952년 동안 이름이 날리었습니다.

◇ 지나온 조선 (고려시대)

삼국시대의 뒤를 이어 신라가 통일하야 내려오다가 고려 나라가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약 1천년 전(서력기원 918년)에 고려 태조 신성왕 왕건 어른이 임금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궁예를 물리치고 후백제를 항복 받고 신라를 합하야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정하고 지금의 개성에다 서울 터를 잡으셨습니다.
이 동안에 조선의 북쪽 지금의 만주 언저리에는 거란, 여진, 발해 등의 나라가 생기었습니다. 게다가 뒷날에 청국이 이곳에서 일어나서 중국을 통일하자 우리 조선은 아깝게도 조선의 옛 땅 만주 큰 덩어리를 잃게 되었답니다.
고려시대에 두 번 큰 난리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거란 군사 십만이 쳐들어 온 것이고 또 한번은 몽고의 큰 군사가 쳐들어 온 것입니다. 거란 군사는 연거푸 두 번이나 쳐들어 왔었으나 강감찬 장군으로 말미암아 가엽게도 패하야 돌아갔고 그 뒤의 몽고 군사는 거퍼 거퍼 여섯 번을 군사를 끌고 쳐들어 왔었으나 그들도 어쩔 수없이 돌이켜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 때에는 글(문학), 그림(미술), 공예, 모-든 것이 놀랍게 발달되어서 지금에도 고려자기는 세계에 또 없는 보기(寶器)로 이름이 날리고 조선의 고유한 노래 시조도 이때에 성하였고 삼국유사란 역사책도 이때의 중 일연이라는 분이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야 지어 내었고 미술품으로 고려의 불상은 동서에 이름이 난 것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잘 되어 나아가던 끝에 유교가 들어와서 그때의 굉장하든 불교와 다툼질이 나게 되고 한편에는 양반 싸움질이 나며 바깥 나라에서는 자꾸 싸움을 걸고 하야 나라는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잡은 불교의 중들이 별별 고약한 짓을 하고 임금님을 꼬이어 나라는 자꾸 기울게만 되었습니다. 끝끝내 충신 정몽주 어른의 마지막 피가 선죽교 다리 위에 흐르자 그때 백성들의 인심을 잔뜩 사고 계시든 이성계 어른이 나라를 잡게 되었습니다. 고려는 35 왕조와 475년의 역사를 남겨 놓고 지금으로 약 540전(서력 1392년)에 망하였습니다.

◇ 지나간 조선

그 뒤를 이은 태조 고황제 이성계 어른께서는 나라를 조선으로 고치시고 한양-지금의 경성-에 서울을 정하셨습니다. 지금 서울의 경복궁은 이 어른께서 지으신 것이고 창덕궁 이왕 전하께서는 이 어른의 후손이십니다.
조선은 태평한 날을 누리며 나리는 동안에 문명은 놀라게 진보가 되었습니다.
태종 임금님 때에 주자를 만들어서 책을 박아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때에 다른 나라에서 생각도 않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물리치어서 절들이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이때라고라고 합니다. 그 다음 임금님 세종어른께서는 문학을 크게 힘쓰시고 한편으로 법을 새롭게 고치시고 아악-조선 고유의 음악-을 연구하는 곳을 만들어 놓으시는 한편 지금 우리가 쓰는 조선 글(훈민정음 한글, 혹은 언문)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때는 지금으로(483)년 전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대궐 안에 풍파가 일어나고 양반들의 당파 싸움이 나고 임진 난리가 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조선은 뒤숭숭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박팽년, 성삼문 같은 충신이 나섰고 이퇴계, 이율곡 같은 큰 학자님도 나셨으며 이순신 김덕령 임경업 같은 장수도 나섰습니다. 그 뒤 얼마동안 편안한 날이 지낼까 말까 하야 조선이 없어지게까지 만들어 놓았다는 양반 싸움이 크게 벌어져서 나라 일이 서로 세력다툼이 될 적에 서양의 문명은 자꾸 들어오고 또 그들의 세력은 자꾸 밀리어서 앞뒤를 싸고 조선을 삼키려고 덤비어드나 나라를 맡은 이들은 우리 조선 일은 청국에 가서 물으시오 하고 그저 세도 얻기에 눈이 벌갰습니다.
김옥균, 서재필 같은 여러 개혁당이 나라를 바로잡으려고 애를 썼으나 할 일 없이 나라는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리하야 지금으로 꼭 20년 전(서력 1810년) 8월 22일에 28조 519년에 역사를 남기고 일본과 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조선까지 이른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