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3호
<사담><역사>

남이 장군

신명균


우리 조선은 지금 왜 이렇게 곯아떨어져서 인재도 없고 살림도 가난한가요? 여러분은 차차 역사 공부를 하시면 그리된 원인을 자세히 알겠지마는 이래 500년 동안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끔찍한 두 큰 난리가 있었고 또 남인이니 노론이니 하는 당파 싸움으로 인재란 인재는 양성하기는 고사하고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 큰 원인이 될 것이외다. 김덕령 임경업 같은 이도 다 그 참혹한 운명을 당한 어른들이올시다. 마는 그 중에도 우리와 같은 소년으로 가장 잘나고 용맹스럽고 이름이 높으면서도 참혹히 죽은 이는 아마 남이 장군일 것이외다. 장군은 스무 살 안에 병조판서(지금의 육해군 대신)가 되셨고 두 번이나 대장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난리를 쳐서 큰공을 이뤘습니다. 그 얼마나 숙성하고 잘난 이었습니까.
장군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임금님의 외손자로 태어난 귀족이올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귀족 티가 없이 여염집 아이들과 함께 섞여서 활도 쏘고 장난꾼이로 유명하였습니다. 하루는 아이들과 길거리에서 장난을 하고 노니까 어떤 계집애가 보자기에다 상자를 싸 가지고 이고 가는데 그 보자기 위에는 낯에 분칠한 여귀가 하나 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못 보는데 오직 남이의 눈에만 보였습니다. 남이는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하고 따라가서 보았습니다. 그 상자를 인 계집애가 어느 대신의 집으로 들어가더니만 조금 있다가 그 집안에서 곡성이 진동하였습니다. 남이는 그 곡절을 물은 즉 그 집 작은 아가씨가 갑자기 죽어서 그런다 합니다. 남이가 말하기를 내가 들어가서 보면 곧 살아날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 집에서 처음에는 곧이듣지 않다가 그 아가씨가 살아날 길은 바이 없고 하도 딱하니까 그러면 그래 보라 하였습니다. 남이가 문에 들어간즉 아까 보던 그 여귀가 아가씨의 가슴을 걸터앉았다가 남이를 보고는 곧 달아나 버리고 아가씨는 살아났습니다. 남이가 나왔더니 아가씨는 똑 죽습니다. 남이가 다시 들어가 본즉 아가씨는 또 살아납니다. 남이는 아까 이고 온 상자 속에 대체 무슨 물건이 들었느냐고 물어본즉 그것은 홍시인데 아가씨가 먼저 집어먹었다가 급체가 되어 그런다 합니다. 남이는 그 사귀의 희롱인 것을 말하고 사귀 다스릴 약을 써서 그 아가씨는 필경 무사히 되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곧 그대 세도부리던 권 정승의 따님이었었는데 정승은 그 일을 기특히 여겨 남이로 사위를 삼았다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귀신도 남이의 정기에 쏘여서 그 꼴을 감추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남이가 열다섯 살 때에 호반급제(무과)를 하고 열여덟 살 때의 일이올시다. 이시애란 이가 함경북도에서 난리를 일으켜가지고 쳐들어오니 형세가 자못 위급하였습니다. 인심은 크게 소동이 되고 임금님은 몹시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문관이나 무관들 중에서 대장 감 몫될 인재를 뽑았습니다. 남이는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히어서 대장이 되고 전장에 나가 앞장이가 되어서 난리를 평정시켰습니다. 그 뒤 건주위호란에도 먼저와 같이 또 대장이가 되어 큰공을 이뤘습니다. 임금님은 그 용감함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여 일등공신으로 병조판서를 제수하였습니다. 남이는 일찍 이런 글을 지었습니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波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유*(?)稱大將夫』
이 글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버리자.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태평을 못 만들면 뒤 세상에 뉘라서 대장부라 일컬을쏘냐.』
이런 뜻이올시다. 우리 소년들은 다 같이 이 글을 한번 외워 봅시다. 그 뜻이 얼마나 크고 그 기상이 얼마나 엄청난 지요. 우리 조선에 사나이들은 이런 이가 많았습니다. 어지러운 나라를 태평을 만들려고 큰 뜻을 세워 가지고 명을 떼어놓고 일을 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남이는 이렇게 잘나고 또 벼슬과 이름이 높아지니까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도 유지광이란 이가 더욱 심하게 굴어서 남이가 반역의 꾀를 한다고 모함을 잡아 임금님께 백방으로 참소했습니다. 임금님도 그 참소하는 말을 곧이듣고 남이를 잡아서 옥에다 가두고 초사를 받았습니다. 남이는 그런 일이 없다고 끝끝내 버티다가 모진 형벌을 받아 정강이뼈가 부서지니까 그때야 말하기를 내가 이미 병신이 되었으니 산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거짓 증거를 댔습니다. 그래서 남이는 스물 여덟 살이란 짧은 기한을 한평생으로 하고 그만 참혹히 죽어버렸습니다. 남이의 정령은 아마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두만강과 백두산 사이에 돌아다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