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3호
<역사>

아이들의 조선 역사(7)

손진태


고조선과 삼한시대

우리 조선의 북쪽 대륙에 사는 퉁구스 사람들과 몽고 사람들이 따뜻하고 땅 좋은 남쪽을 찾아 내려와서 처음으로 우리 조선 땅에 살게 된 것이 지금 우리 조선 사람들의 선조들 이었음은 벌써 여러 번 말씀하였습니다. 그들의 처음 살던 곳은 날씨가 춥고 땅이 좋지 못한 만주, 시베리아, 몽고 같은 곳이었음으로 그들은 본시 농사를 짓지 못하였습니다. 농사란 것은 추운 곳에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들도 더운 여름 동안에 농사를 하지 추운 겨울에는 벼나 보리가 자라지 아니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소 말 양 돼지 개 같은 짐승만을 먹이고 그 고기를 먹었으며 그 짐승들의 가죽으로 옷도 만들고 집도 덮었습니다. 또 소와 말 양의 젖을 짜서는 먹기도 하고 술도 고았습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지 못하였음으로 쌀이나 수수로 술을 만들 수도 없었으며 짚으로 집을 덮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짐승들을 몰고 이리저리 풀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짐승을 먹이는 유목민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는 땅 좋고 날씨 따듯한 것을 보고 곧 농사짓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수수 피 콩 팥 조 보리 벼 같은 것을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고 보니 짐승들을 그렇게 먹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짐승들은 조금만 먹이기로 하고 농사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옛날 같으면 우리들의 집에는 소가 몇 십 마리 말이 몇 십 마리 돼지가 몇 백 마리씩 있어 여러분들은 아버지들을 따라서 산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마소의 풀을 먹이고 저녁이면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버드나무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고 한바탕 장난을 친 뒤에 아침이면 다시 돋아오는 해님에게 절을 하면서 마소를 몰고 산으로 떠날 것입니다. 또 만일 누군가
『너희 집은 얼마나 부자이냐?』
고 물으면 여러분은
『우리 집에는 소와 말이 몇 마라 돼지가 몇 마리 있습니다.』
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재산은 땅이나 돈으로 치는 것이 아니오, 짐승들의 머리 수로 쳤던 까닭입니다.
또 여러분이 만일 일본 처녀에게 장가를 들려면 소와 말을 잘 먹이며 활과 창을 잘 써야만 되었습니다. 마소를 먹일 줄 모르고 전쟁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아무 쓸 데 없는 사람으로 여긴 까닭입니다. 이렇듯 우리 조선 사람들이 농사를 시작한 뒤로는 매우 어질고 점잖은 사람으로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전쟁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농사짓기에 힘을 썼습니다. 참으로 이번에는 농사 잘 짓고 일 잘하는 아이들이 마소 먹이던 때와 같이 풀과 물을 찾아 돌아다닐 까닭도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마소는 몰고 다닐 수 있지마는 농사짓는 땅덩어리는 떼어 가지고 다닐 수 없는 까닭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일정한 곳에 사는 정착 민족이 되었습니다. 집도 퉁구스 사람이나 몽고 사람과 같이 뜯어 가지고 수레나 달구지에 싣고 다니던 것을 그만두고 벽에는 흙을 바르고 덮이는 짚이나 나무껍질로 하였습니다.
처음의 우리 조선은 다음의 지도와 같이 조선 진한 마한 변한의 네 나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지도 스캔)지금 우리가 우리를 조선 사람이라고 함도 실상은 그때부터 일어난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조선 사람이지만 옛날의 우리나라는 이름이 때때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조선과 옛날 우리 조선을 구별하기 위하여 옛날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한 마한 변한을 한꺼번에 부를 때에는 삼한이라고 합니다. 이 고조선과 삼한은 지금부터 3천년 이전부터 시작되어 이천년까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대의 조선이란 나라는 지금 만주의 서쪽과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경기도를 차지하여 서울은 평양에 두었습니다.
변한은 마한과 진한 사이에 있는 경상도 일부와 전라도 일부의 땅을 차지하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나라는 모두 단군을 그들의 제일 위대한 선조이며 가장 첫 임금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단군은 우리 조선 사람들의 첫 임금님이오, 첫 할아버지이었을 뿐 아니라 몽고 사람과 퉁구스 사람들에게도 첫 할아버지요 첫 임금님이었습니다.

【의복】
몽고사람이나 퉁구스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베며 명주도 짤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옛날 우리 조선의 네 나라를 건설한 뒤에는 농사를 짓고 삼베도 짜며 모시와 명주도 짜게 되었습니다. 해서 짐승들의 가죽과 털은 배자나 조끼 안 같은 것에다 털 토수 풍덩이(남방우) 같은 것에만 쓰고 의복은 모조리 모시 명주 같은 것으로 지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들이 입는 옷과 별로 틀리지 아니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 지금 우리가 입는 무명이나 솜옷은 없었습니다. 묵화를 타서 솜을 만들고 무명을 짜게 된 것은 여러분도 종종 이야기로 들었으리다마는 이조 때에 문익점이란 이가 지나에서 처음으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이전의 우리 조선 사람들은 여름동안은 삼베와 모시옷을 입고 추운 겨울에는 솜 대신에 짐승의 털로 옷을 받쳤습니다.
신발도 처음에는 짐승의 가죽으로 지어 신었습니다. 하던 것이 농사를 지어 짚을 얻게 된 뒤에는 짚으로 만든 짚신을 신게 되었습니다. 가죽으로 만들었던 신이 차차 변해서 지금 우리가 신는 가죽신이 되었습니다. 서양 사람이 신는 구두도 물론 가죽신에서 발달된 것입니다.

【가옥】
옛날 우리 조선 사람이나 삼한들의 집은 몽고 사람이나 퉁구스 사람들과 같이 움막(오막이라고도 합니다)과 몽고포였습니다.
움막이란 것은 마치 황해도나 평안도의 『짐치우리』와 가이 오막입니다. 그리고 몽고 집인 『몽고포』는 작년 8월호에 있는 그림과 같이 둥그렇게 지은 집입니다.
움집 속에서도 옛날 우리 조선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움집』이란 것은 네모나게 땅을 파서 그것을 방으로 하고 그 위에 지붕을 덮은 것입니다. 마한 사람들은 많이 이 『움집』속에서 살았습니다. 『움집』이란 본시 『퉁구스』 사람들과 같이 추운 곳에서 사는 이들이 겨울 동안에 땅을 파서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그들이 조선에 들어와서도 겨울에는 지었던 모양입니다. 하나 조선과 같이 따뜻한 곳에서는 그러한 지하실을 만들 필요가 없었음으로 그 뒤에 점점 없어졌습니다마는 아직도 어려운 사람들은 많이 『움집』 속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진한 사람들은 많이 『방털집』집에서 살았습니다. 『방털집』을 함경도에서는 『귀틀집』이라고 합니다. 이 집은 마치 우물 구털을 쌓아놓은 것 같이 큰 한 장 나무를 우물 정자 형으로 가루 세로 쌓은 뒤에 그 위에 지붕을 만들고 밑에다 방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들은 그 뒤에 차차 없어지고 지금 우리가 사는 초가와 기와집이 생겼습니다마는 옛날 우리 선조들은 그런 집 속에서 어머니 아버지 형님 누이 아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가족 생활】
우리 선조들의 가족 생활은 매우 따뜻하고 정다웠습니다. 그 가운데도 여러분과 같이 어린이들은 더욱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밥을 먹어도 반드시 아이들이 먼저 술을 뜬 뒤에야 어른들도 따라서 먹게 되며 밥을 담을 때에도 반드시 아이들 밥을 먼저 담았습니다. 명절이 되어 씨름을 시작하던지 줄다리기를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아이들이 먼저 시작한 뒤에야 어른들이 뒤를 이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다음의 훌륭한 국민이 되리라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다음날의 조선을 더욱 훌륭한 조선으로 되게 함은 모두 아이들의 힘과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습니다.

【사회 생활】
몽고 사람의 용감한 피와 『퉁구스』사람의 튼튼한 몸을 받은 옛날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일할 때에는 힘을 다하여 하고 놀 때에는 유쾌하게 놀았습니다. 다른 나라와 전쟁할 때에는 무섭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습니다. 아이들과 어머니들도 어른들과 함께 적의 앞으로 나아가며 싸웠습니다.
5월에 볍씨를 뿌린 뒤와 10월에 추수를 다한 뒤에는 아이 어른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함께 모여서 북소리 둥둥, 나팔소리 때때, 징 소리 쟁쟁, 꽹과리 꽹꽹, 피리 소리 삐삐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뛰며 굴리며 야단이었습니다. 이 놀이는 가을을 많이 거두게 하여 주신, 다시 말하면 풍년이 되게 하여주신 시조 단군님과 산신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제사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방안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옛날 우리 선조들은 한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뛰며 춤추면서 지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소리를 좋아하고 씩씩한 이들이었습니다 마는 또한 매우 어진 이들이었습니다. 좁은 길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나면 서로 서로 길을 사양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짓말하고 남의 것 도적질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습니다. 만일 거짓말을 하든지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죽여버렸습니다. 그럼으로 곡식이나 물건을 한데 내어버리고 살더라도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사람들과 같이 먹고 입고 남는 것을 곳간 속에 금고 속에 썩히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줄 줄 모르는 악한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잘 먹고 잘 입는 것보다는 다 같이 입고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노래하며 춤추며 정답게 잘 살자고 그들은 힘썼습니다.
나 혼자 잘 살기 보다는 우리 조선 사람 모두가 어떻게 하면 잘 살고 하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었습니다. 먹고 남은 것을 어려운 사람에게 주지 아니 하는 놈이 있으면 반드시 죽였습니다. 이렇게 법이 엄했습니다.

【토지 공유】
지금 우리들에게는 네 땅 내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땅을 많이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은 아무 일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잘 입고 잘 먹고 합니다. 만일 내 땅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땅을 붙여서 1년 동안 죽도록 일을 하여도 입에 풀칠할 것이 모자라며 귀여운 아들딸의 공부도 못 시키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 조선 사람은 이렇게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어떤 사람은 먹지 못하게 사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놀고 어떤 사람은 죽기까지 일하는 것을 크게 싫어하였습니다.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재미있게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동네 안에 있는 땅은 그 동리 사람 모두의 땅으로 하였습니다. 모두 같이 노래하면서 심고 가을도 같이 노래하면서 거둔 뒤에는 소와 닭을 잡고 집집에서 술을 가져다 모아놓고는 한 촌 사람들이 마치 한 형제 같이 춤추며 놀았습니다.
옛 조선과 삼한 시대는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평화롭던 세상이 어째서 이렇게 어지로운 세상으로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차차 조선 역사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나올 것입니다.

<연습 문제>

1. 고조선과 삼한의 각 영토를 머리 속에 환하도록 몇 번이라도 생각하시오.
2. 우리 선조들은 어디로부터 들어왔습니까?
3. 네 땅 내 땅이 따로 있는 것과 한 촌의 토지를 한 촌 사라들이 공유하였던 것과 어느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4. 단군은 우리 조선 사람만의 선조입니까?
5. 고조선의 서울은 어느 곳이었습니까?
6. 마한 진한 변한을 함께 말할 때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