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1호
<전기><역사>

강감찬 장군

신명균


강감찬 장군이라 하면 그때에 만주와 몽고에 살던 사람들은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고 어린 아이들은 울던 울음을 뚝 그칠 만큼 무서운 어른이었습니다. 장군이 이렇게 무서웁다고 하니까 아무라도 장군은 남보다 키도 훨씬 크고 얼굴도 사나워서 감히 바라보지 못할 만큼 무섭게 생겼으리라고 생각할 것이올시다. 그러나 장군은 이렇게 무섭게 생기지 못하였습니다. 키가 작고 얼굴이 못 생기기 짝이 없는 데다가 의복까지 주제가 사나우니까 외양으로 보아서는 아주 하잘 것 없는 범인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총명이 있는데다가 공부를 좋아하고 또 지혜가 많을 뿐 아니라 사람이 진중한 까닭에 조정에서 나라에 큰일을 의논할 때이라든지 외국의 사신으로 더불어 일을 결단할 때에는 산악 같이 무거워서 조금도 흔들리는 일이 없고 의리에 틀리는 일이며 추호도 용서가 없이 목숨을 내어놓고 시비를 다투니까 사람마다 장군을 두려워하고 저절로 고개를 수그리어 공경하게 되었다 합니다.
장군은 지금으로부터 979년 전 고려 정종 임금 때에 지금 경기도 시흥군에서 나셨습니다.
지금 우리 서울은 그때에 한양이라 고을이었습니다. 장군이 설흔다섯 되시던 해에 한양 판관이 되어서 서울을 오시니까 그때에 서울은 지금같이 집도 그리 많지 못하였고 또 지금은 편편한 길이라도 그때에는 고개가 많고 나무가 우거진 까닭에 범이 많아서 대낮에도 집안에를 뛰어들어와서 사람을 물어가니까 사람들은 무서워서 문 밖에를 잘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집집마다 동아줄로 온 집에다 그물을 치고 장정어른이라야 겨우 밖에 나와서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본 장군은 하루바삐 범들을 다 내어쫓아야 저 불편한 그물을 끌러버리고 어른 아이가 마음을 놓고 편안히 살 것이다 하고 즉시 사령을 불러서 본부하기를
『네 이 길로 삼각산 상봉에 올라가면 어떤 늙은 중 하나가 있을 터이니 네 그놈을 즉각으로 잡아 대령하여라.』
하고 배지(잡으라는 명령장) 한 장을 내어줍니다. 이 분부를 들은 사령은 참으로 기가 막히었습니다. 상관의 명령도 아무리 중하지마는 번연히 죽을 줄을 알고 범의 굴에 들어가자는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상관도 사람이지 남을 공연히 죽으러 가랄 리는 없을 터이니까 어디 한번 가보리라 하고 삼각상 상봉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가니 과연 장군의 말과 같이 늙은 중 하나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꾸벅꾸벅 자고 있습니다. 사령은 그 앞으로 가서 기침을 한번 컥-하고 장군의 배지를 내어주니까 그 중은 깜짝 놀라 잠을 깨더니 장군의 배지를 보고는 암말도 없이 한숨만 길게 쉬더니 그저 사령을 따라 나섰습니다. 사령이 아까 올라올 적에는 그렇게도 험하고 멀던 길이 내려올 적에는 어쩐 일인지 편편한 길이 순식간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사령은 곧 장군께 중을 잡아 대령하였다고 여쭈었습니다. 장군은 그 중을 불러 세우시고
『네가 어째서 정해 있는 구역을 벗어 나와서 사람을 상하고 세상을 요란케 하느냐. 네 죄로는 마땅히 죽어야 옳을 것이지마는 십분 용서하는 것이니 이 밤으로 백두산 밖을 나가서 다시는 지경을 넘지 말렸다.』
하고 호령이 칼날 같습니다. 그 중은 그저 황송해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찌 추호인들 장군의 영을 어기오리까.』
하고 물러갔습니다.
그 날은 달빛이 우련하던 밤이었습니다. 사방이 고요하더니 별안간 천지를 뒤눕는 듯이 한참 동이 시끄럽다가 다시 조용해집니다. 이것은 낮에 잡히어 왔던 늙은 중은 사람이 아니라 범의 괴수올시다. 괴수 범이 장군의 영을 듣고는 그 밤으로 모든 범을 데리고 이사를 가느라고 그렇게 시끄러웠습니다.
장군은 이렇게 해서 서울 안에 있던 범을 모두 몰아내고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였습니다. 이 외에 경주에 개구리 못 울게 하던 이야기도 재미가 있지마는 그것은 그만 두고 장군이 거란이라는 나라와 싸움하던 이야기를 좀더 하겠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옛날부터 오늘까지 한번도 남의 땅을 욕심내서 군사를 일으켜 가지고 남의 나라를 쳐본 일도 없고 혹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의 땅이나 재물을 욕심내서 쳐들어올 때에는 한번도 싸워서 못 이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들은 우리 조선 사람들을 가리켜서 군자라 혹은 선인이라 하여서 칭찬들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두려워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용맹스럽기는 해도 항상 착한 때문에 그렇게 군사 같은 것은 일삼지 않으니까 다른 강한 나라들은 이런 틈을 타서 가끔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성가시게 곱니다. 그때에 거란이라는 나라도 지금 만주와 몽고에다 큰 땅을 차지해 가지고 있으면서 항상 우리 고려를 성가시게 굴었습니다. 이때는 바로 장군이 지금으로 치면 내무대신으로 계실 때올시다. 의적들이 항상 나라를 소란케 해서 백성들을 성가시게 하니 백성들만 괴로울 뿐 아니라 그놈들의 하는 짓도 괘씸하기가 짝이 없으니까 이런 놈들은 그대로 두어서는 아니 되겠다 생각에 우선 자기 땅부터 내어서 군사 기르는 데에 바쳐가지고 몇 해를 두고 군사를 가르치며 때가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군이 일흔 하나 되시던 해였습니다. 거란은 과연 소손령이란 장수를 시켜서 군사 10만 명을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옵니다. 그대에 우리 고려에서는 장군으로 상원수를 삼아서 군사 20만명으로 적군을 막게 하였습니다.
그때에 장군은 의주 황화진에를 가서 날랜 기병 1만2천명을 뽑아다가 어느 산골에 숨겨놓은 뒤에 그 앞 큰 내에 물이 벼로 깊지 않음을 보고 소가죽 여러 백장을 새끼에 꿰어 가지고 내의 물 내려오는 윗목을 막게 하니까 물이 조금씩 흘러서 겨울 발목이 잠길 만 합니다. 이때에 적군은 이것을 모르고 지키는 군사가 없는 것만 다행으로 알고 호기 있게 들이밀었습니다. 거란 군사들이 막 내를 건너서 한끝이 이쪽 언덕에를 오르락말락 할 즈음에 막았던 소가죽을 탁 놓으니까 막혔던 물이 일시에 쏟아져 내려가는 바람에 거란 군사들은 죽는 줄도 모르다가 모두 물귀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장군은 산골에 숨겨 두었던 군사를 내어 양쪽으로 들이치니까 적장 소손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겨우 남은 군사 얼마만 데리고 달아납니다. 장군은 미리부터 준비해 두었던 날랜 군사 일만명을 보내서 적군을 따라가서 들이치니 거란 군사들은 손발을 놀릴 새도 없이 엎어지며 자빠지며 해서 10만명 군사가 겨울 몇 천명 밖에 살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적군의 대장 소손녕은 살아서 저희 나라로 가기는 했으나 싸움에 졌다는 죄로 저희 나라 임금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장군의 승전한 소식이 그때 서울 개성에 오니까 여러 백성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임금께서도 매우 기뻐하셔서 멀리 성 밖에 잔치를 베풀어놓고 장군의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자 장군의 승전하고 돌아오는 북소리가 나니까 이쪽에서도 군악을 치며 임금께서 친히 나가 한 손으로 장군의 손목을 이끌어 맞아들이며 또 한 손으로 금꽃 여덟 가지를 집어 장군의 머리 위에 꽂아서 장군의 공을 칭찬하시며 친히 술을 부어서 장군을 주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장군의 승전을 얼마나 기뻐하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