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3호
<역사>

김유신 장군

신명균


때는 고구려가 지나의 수나라와 당나라를 이긴 뒤에 범같이 무서운 위엄을 가지고 서로는 지나를 넘어다보고 남으로는 백제로 더불어 신라를 삼키려 드는 판이라 신라는 나라의 흥망이 조석에 달린 때였습니다. 이 때에 나라의 위태함을 건지고 삼국통일의 대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경주에서 한 위인이 나시니 이 어른이 곧 김유신 장군이올시다.
장군은 우리 2천9백2십8년에 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좋아하고 칼 공부를 즐겨하여 열다섯 되던 해에는 벌써 검술의 묘리를 터득하였습니다. 한 번은 장군이 기생집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께서는 장군을 불러 세우시고 준절히 꾸짖어 말씀하시되 『늙은 어머니는 밤이나 낮이나 어서 네가 장성해 가지고 나라에 공을 세워서 임금을 위하고 집안에 영광이 있기를 바라는데 인제 너는 더벅머리 계집아이하고 방탕하려 드느냐. 』하시고 흐느껴 우십니다. 장군은 어머니의 완곡하신 교훈이 뼈에 사무칠 뿐 아니라 더욱이 어머니의 우시는 양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황송한 생각이 나서
『어머님! 인제는 제가 결단코 그 집 문 앞도 지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어머니께 절절히 사죄하였습니다.
하루는 장군이 술이 취해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말은 이왕에 자주 가던 길이라 집으로 오지 않고 잘못 이왕 가던 기생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기생은 반가워서
『어쩌면 그렇게 한 번도 아니 왔느냐.』하고 눈물을 흘리며 나와서 맞습니다. 그제야 장군은 깜짝 놀라서
『이런 고얀 놈! 이놈이 대체 어디를 왔어』하시며 찼던 칼을 빼 가지고 말머리를 벤 뒤에 소매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장군의 결심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후에 세상 사람들은 장군의 결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거리의 이름을 참마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장군이 열일곱 되시던 해의 일이올시다. 고구려와 백제가 자주 신라를 침노하여 나라가 날로 달로 위태하여 갑니다. 장군은 이것을 크게 분개이 생각하시고 하루 바삐 삼국을 통일하여 나라를 편안히 하리라 결심을 가지고 월생산 석굴 가운데로 들어가서 목욕재계를 하고 한울께 맹서해 비시되
『적군이 시랑 같이 무도하여 항상 우리 나라를 요란케 함으로 나라가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변변치 못한 저는 재주와 힘을 돌아보지 않고 난리를 평정하려 하오니 신은 굽어 살피사 저에게 힘을 빌려 주옵소서』하며 정성을 다하여 나흘을 빌었습니다. 나흘 되던 날에 문득 한 노인이 와서 말씀하기를
『여기는 독한 벌레와 모진 짐승이 많아서 위험한 곳인데 귀 소년은 어떻게 여기를 와 있는냐 』고 합니다. 장군이 그 노인을 보니 아무리 하여도 범상한 사람은 아니올시다. 일어나 절한 뒤에
『나는 신라 사람이올시다. 나라의 적을 보매 마음이 아프고 살이 떨리어 참을 길이 없기로 적군으 평정하려고 여기를 왔습니다.』고 한즉 노인은 잠자코 섰더니
『어린 소년으로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은 것은 참 장한 일이다. 』하며 소매 속에서 신검 한 자루와 병서 한 권을 꺼내주시고는 그만 자취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장군은 얻은 신검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 옆에 있던 큰 바위를 찍어 보니 바위는 두부 토막 부서지듯 아무 힘 없이 도막이 나더랍니다.
장군의 제일 꺼려하던 고구려의 막리지 합소문 어른이 돌아가시니 장군은 가슴이 후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워낙 강한 나라이라 도저히 신라 혼자의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본디 당나라도 고구려에게는 깊은 원망을 가졌습니다. 이것을 아는 장군은 당나라에 사람을 보내 군사를 청하니 당나라도 워낙 고구려가 믿던 판이라 즉시 군사를 보내서 신라를 도와 백제와 고구려를 쳐서 멸하였습니다.
장군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하고 백제를 칠 적이었습니다. 소정방은 저희의 군사 많은 것만 믿고 장군께 무례하게 합니다. 장군은 크게 노해서 창을 잡고 군문 밖에 서시니 수염도 노기를 띄우고 거슬러 오르며 허리에 찼던 신검이 저절로 뛰어나와 장차 소정방을 치려는 기세가 보입니다. 소정방은 크게 놀라서 장군 앞에 엎드려 잘못한 것을 사과하였습니다.
그 후로 소정방은 정성껏 장군을 도와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소정방은 항상 장군이 무섭고 밉다가 백제와 고구려를 친 뒤에는 또 신라를 치려는 계교를 냈습니다. 장군은 미리 이 꾀를 아시고 당교라는 곳에서 당나라 군사를 무찔러버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