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호
<전기>

서화담 선생 - 洋 처음의 大理學

차상찬


경기도 개성군은 누구나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옛적 고려 때의 서울이올시다. 그곳은 천하 명약인 인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고 또 조선의 승지로 치는 박연폭포가 있기로도 유명한 곳이올시다. 그 뿐 아니라 자래로 산수가 매우 가려하고 유명한 인물이 또한 많이 났습니다.
그 여러 인물 중에도 특별히 조선에서 제일가는 이학자(理學者) 한 분이 계시니 그는 곧 서화담 선생이올시다. 선생의 성은 서씨요, 이름은 경덕이오, 자는 가구(可久)요, 별호는 복재(復齋)니 개성 동문 밖 화담이라는 곳에 살으신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화담 선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의 본은 당성이니 지금으로부터 437년 전 바로 이조 성종대왕 20년 기유 2월 17일에 개성의 동부 쉬우물(禾泉里)이라 하는 동리에서 나셨습니다. 그는 얼굴이 매우 청수하야 관옥과 같고 두 눈은 새별같이 번적번적하야 누가 보던지 비상한 인물로 알게 생겼습니다. 어렸을 때로부터 재조가 퍽 비범한 중에 특히 연구성이 많아서 무엇을 보던지 심상히 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일곱 살 적에 그의 아버지를 따라서 들 구경을 갔었습니다. 그 때는 마침 춘삼월 좋은 때이라 일기도 따뜻하거니와 꽃도 피고 풀도 파릇파릇한데 종달새 떼가 공중으로 날아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노구지구졸졸- 노구지구졸졸-’ 하고 재미스럽게 울었습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그냥 심상히 보았을 것이지만은 선생은 퍽도 이상히 여기고 그날부터 수일 동안을 그 들에 가서 종달새의 날아오르는 것을 살펴보다가 그 새가 날마다 몇 자씩 더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깨닫고 동무에게 말하되 저 새는 지기(地氣)의 온난함을 따라서 나는 까닭에 날마다 몇 자씩 자꾸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그 한 일만 가지고 볼지라도 그가 얼마나 연구성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는 14살적에 서당에서 어떤 선생에게 서전(書傳)이라는 책을 배우는데 선기옥형(선기옥형은 옛날의 천문 보는 기계입니다)의 이치를 선생에게 물은즉 선생이 잘 알지 못함으로 그는 퍽도 갑갑하게 생각하고 집에 돌아가서 보름 동안을 두고 혼자 연구하다가 그 이치를 크게 깨닫고 다시 서당에 가서 도리어 그 선생을 가르쳐 주니 그 선생이 한쪽으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를 매우 경대하며 그의 동무들도 그를 선생 이상으로 대접을 하니 그의 이름이 날로 높아가며 또 그도 무엇이던지 연구만 하면 모를 것이 없게 되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야 그는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 위에 써서 붙이고 날마다 하나씩 연구하니 이 세상에 모를 이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집이 퍽 빈한하야 조석을 가끔 하는 일이 있으되 조금도 걱정하는 일이 없고 항상 춘풍화기로 지나며 나라에서 아무리 벼슬을 시켜도 벼슬도 사양하고 다만 도학 공부와 이치 연구에 열심하며 또 청년을 열심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너무 쓴 까닭에 일시에는 몸이 매우 쇠약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34세 때부터 다시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더 수양하려고 명산대천으로 유람을 다녔습니다. 남으로 전라도의 지리산과 충청의 속리산과 동으로 강원도의 금강산까지 아니 가 본 곳이 없습니다.(그 십여 년을 유람하는 동안에 이상한 일도 많이 있었고 곤란한 사정도 많이 있었지만은 그것은 약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선생님은 도덕으로나 이학으로나 인격으로나 우리 조선에 유명한 학자입니다. 아니, 이학으로는 지금 서양에서 소위 유명하다는 어떠한 학사 박사라도 못 따를 것이올시다. 우리 동양에서는 한나라의 제갈양이나 송나라의 소강절 같은 이를 유명한 이학가로 치지만은 이 화담 선생은 제갈양의 목우류마(木牛流馬는 나무로 만든 말인데 제갈양은 그것을 만들어서 전쟁에 군량과 군사를 운전하였습니다)를 가리켜 아이의 장난 같다고 말씀하고 또 소강절의 자미수(紫微數는 술법책의 이름입니다)를 보고는 이것은 요사한 술법인데 심사가 좋지 못한 사람이 배우면 안 된 일만 할 것이라고 불을 질렀습니다. 선생은 여러 가지의 이상 일이 많이 있지만은 몇 가지만 들어서 말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선생은 화담에 있을 때에 바위에 앉아서 연못에 있는 고기를 보고는 조그마한 종이쪽에 글자를 써서 물속에 던지었더니 불시에 서너 자 되는 고기가 저절로 펄펄 뛰어 선생의 앉은 바위 위로 오매 선생은 손으로 만져보고 웃으면서 다시 물속에 놓기도 하고 또 한번은 금강산에 있다는 도승 하나가 선생의 도학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는 찾아와서 선생과 재조 시험을 하는데 그 도승은 먼저 선생에게 잠 아니 자기 내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은 먹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밤낮으로 보름동안을 아니 자다가 견디지 못하야 다시 잠만 자기를 보름을 하되 선생은 먹지도 않고 한 달 동안을 꼭 앉았으나 조금도 피곤한 일이 없고 또 잠을 자되 전과 같이 잘 뿐이었더니 그 도승이 아주 놀래어 사죄를 하였고 또 한번은 어떠한 집에 호랑이가 와서 사람을 잡아먹을 줄을 미리 알고 제자를 보내서 주역을 읽게 하야 그 호랑이를 쫓은 일도 있었으며 그리고 또 한번은 그의 집 앞에 있는 복송아 나무 하나가 늦은 봄이 되도록 꽃이 아니 피는 것을 보고는 땅을 파고 무슨 물을 주어 즉시에 꽃을 피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있는 까닭에 고루한 유학자들은 그를 요술쟁이라고까지 말하고 배척한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결코 요술쟁이가 아니라 정당한 이학자올시다. 오늘에는 이학이 발달되야 무선 전화라든지 그 외 여러 가지 기계를 보고도 별로 이상이 여기지 않지만은 몇 십 년 전까지도 촌사람들은 무슨 귀신의 장난으로만 알았을 것이올시다. 서화담을 가리켜 요술쟁이라 하는 것은 그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쨌든 화담 선생은 참 유명한 학자님이올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자랑할 만한 선생이올시다. 그의 산소는 역시 그가 사시던 개성 동문 밖 화담리(花潭里)에 있고 그가 놀으시던 서사정과 그의 낚시질하던 연못도 지금까지 여전히 있습니다. 누구시던지 개성을 가시거든 그곳을 찾아가서 선생의 옛일을 생각하야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