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1호
<사담><역사>

성삼문 어른

신명균


이 어른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쯤 전 이조 넷째 임금 세종대왕 때 어른이올시다.
삼문 어른은 어려서부터 기롱을 좋아해서 동무들하고 우스운 소리와 농담을 잘 하십니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는 너무도 실없는 사람 같았지마는 마음은 쇠보다도 더 단단하고 돌보다도 더 단단해서 남이 어쩌지 못하는 굳은 뜻을 가졌기 때문에 조그만 일이라도 남하고 한번 약조를 한 일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약조를 어기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삼문 어른은 재주가 많고 총명이 있어 세종대왕께서 지금 우리들이 배우고 쓰는 이 조선 글을 만드실 적에도 많은 공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우리 조선 글을 만드시는데 명나라 소리를 좀 알아보시기 위하여 삼문 어른을 요동(만주)까지 열세 번이나 심부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세종대왕과 그 아드님 문종대왕이 돌아가시고 문종대왕의 아드님 단종대왕이 임금이 되셨습니다.
단종대왕이 임금이 되시던 때는 나이가 겨우 열두 살 밖에 안 되셨습니다. 그래서 문종대왕이 살아 계실 때도 자기 아드님이 너무 나이가 어리시니까 장래 무슨 변이 있을는지 알 수가 없어서 늘 걱정으로 지내셨습니다.
한번은 문종대왕이 자기 제일 믿는 여러 신하들하고 나라 일을 의논하시느라고 밤이 깊어졌습니다. 문종대왕은 자기의 어린 아드님을 앞에다 앉히시고 머리를 쓰다듬어가면서
『내 아들은 경(임금이 신하에게 하는 말)들에게 부탁한다.』
하시고 용상에서 내려와 여러 신하들과 같이 앉으시더니 친히 술잔에 술을 부어서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여러 신하에게 차례로 권하셨습니다. 이 신하들은 모두 술이 취해서 임금님 앞에 쓰러져 잠들이 들었습니다. 문종대왕은 왕비를 시켜서 문설주를 빼어다가 가마를 만들어 가지고 한사람씩 태워다가 번 자는 방으로 갖다 뉘었습니다. 여러 신하들은 술이 좀 깨어서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들은 어느덧 번 방에 와서 누워 있는데 어쩐 일인지 이상히 향내가 방안에 가득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들 몸에는 모두 임금님의 잘옷(털옷)이 덮여 있습니다.
이것을 안 여러 신하들은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임금님의 부탁이 이처럼 중하시니 우리가 죽는 한이 있기로 이 부탁이야 져버릴 수 있겠느냐.』
하고 서로 맹세를 하였습니다.
단종대왕이 열일곱 살 되시던 해올시다. 단종대왕의 아저씨 되는 세조대왕은 자기가 임금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그때에 대장으로 유명하던 김종서 어른을 죽이고 억지로 자기가 임금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성삼문 박팽년 그 외에 여러 어른들은 세조대왕이 임금 되는 것을 모두 싫어하였습니다. 그 당장에라도 세조대왕을 내어쫓고 다시 단종대왕으로 임금을 삼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그때는 어쩔 수가 없으니까 때를 기다려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신숙주는 세조대왕이 단종대왕을 내어쫓고 자기가 임금이 되려는 것을 미리 알고서도 성삼문이나 박팽년 어른께는 말도 하지 않고 도리어 세조대왕하고 부동을 해서 단종대왕을 내어쫓았습니다.
그해 여름 창덕궁 안에서 연회가 있어서 세조대왕과 그 아드님과 또는 세조대왕 편의 신하들이 모두 창덕궁 안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성삼문 어른은 이때를 놓치지 말고 연회에 칼을 차고 들어갔다가 세조대왕 편을 일시에 잡아죽이고 다시 단종대왕으로 임금을 삼자고 비밀히 약속하였습니다.
세조대왕 편에서도 연회에 혹 무슨 변이나 날까 하고 생각을 했는지 그 날은 칼을 차지말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때에 성삼문 어른은 아버지 성승님과 유응부님은 윤걸이란 칼을 차고 들어가려 하니까 문에서 못 들어오게 막습니다. 그러니까 성승 유응부 두 분은 문에서 막는 놈을 곧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삼문 어른은
『오늘은 첫째로 세조대왕의 세자가 아니 왔으니 참으라.』
고 말립니다. 유응부 님은
『일이란 그렇지 않다. 할 적에 속히 해야 하는 법이다. 밀렷렷렷 밀어나다가는 일이 탈로 되기도 쉽고 또 세자가 아니 왔더라도 그것은 내가 담당할 터이니 염려마라.』
하고 기어 우깁니다. 성삼문 어른은 그래도 그렇지 않으니 참으라고 해서 그날을 참게 되었습니다.
만사가 다 틀렸습니다. 일은 과연 탄로가 났습니다. 단종대왕을 도우려던 신하들은 다 잡혔습니다. 세조대왕은 성삼문 어른을 잡아들였습니다.
『너희들은 어째서 날을 배반하느냐.』
하니 삼문 어른은 소리를 지르며
『내 임금을 내가 다시 세우려는 것이 무엇 때문에 배반이란 말이요? 당신이 남의 나라를 막았고 임금을 내어쫓는데 내가 신하 되어서 우두커니 보고 있어야 옳단 말이오.』
하니 세조대왕은 성이 나서 쇠를 시뻘겋게 달궈다가 삼문 어른의 다리를 지지며 팔을 끊어내어도 삼문 어른은 얼굴빛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쇠를 내어던지며
『쇠가 다 식었으니 다시 달궈 오너라. 당신도 형벌을 너무 참혹히 하는구려.』
하였습니다.
그때에 신숙주가 세조대왕 옆에 있습니다. 삼문 어른은 숙주를 보고
『너는 나하고 대궐 번 들었을 때에 세종대왕께서 손자 아기를 안으시고 마당으로 거닐으시며 「내가 죽은 뒤에라도 너희들은 이 아이를 생각해야 한다.」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지 않으냐. 이놈! 네가 못 되어도 이렇게 못될 수가 있니.』
하고 꾸짖었습니다.
삼문 어른은 갖은 형벌을 다 당한 뒤에 수레를 타고 죽으러 나가려 할 제 이런 글을 읊으셨습니다.

북을쳐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구나
머리를 돌이켜 보니 해가 기울어져간다.
황천길에는 주막이 한집도 없으니
오늘밤은 뉘집에 가 잔단 말이냐.

삼문 어른이 수레를 타고 떠나가시니 아직 대여섯 살씩 된 따님들이 수레를 따라가며 울고 몸부림을 합니다. 삼문 어른은 이것을 돌아보시고
『내 아들들은 다 죽어도 그래도 너희들은 살아있겠구나!』
하십니다. 또 종이 울면서 술을 드립니다. 삼문 어른은 그 술을 받아 잡수시고 원통하게도 이 세상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삼문 어른의 아버지와 세 아우님과 다섯 아드님도 다 세조대왕에 죽었습니다. 이 통에 죽은 신하들이 많지만은 특별히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여섯 분을 사육신이라고 합니다.
삼문 어른을 죽인 뒤에는 다시 그 집안 세간을 모두 적물했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다만 방안에 거적자리가 있을 뿐이더랍니다. 이 어른의 신의와 절개는 만고에 드문 것이올시다. 이 어른은 또 이런 시조를 끼쳐 놓으셨습니다.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낙장송 되어있어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