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8호
<사담>

김삿갓 이야기

박달성


덥고 땀나고 목마르고 답답하고 지루하니 이번에는 시원시원하고 선들선들한 장난꾼 이야기를 하나 합시다.
여러분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형님에게 혹 들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이야기야말로 조선에 유명한 누구나 다 아는 김삿갓 이야기입니다. 글 잘 하고 장난 잘 하고 돌아다니기 잘 하고 봉변도 많이 당하고 욕도 실컷 얻어먹는 유명한 글쟁이 유명한 김삿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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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은 이로부터 한 100년 전 사람인데 그의 본명은 병련(炳鍊)이 입니다. 본래 서울 유명한 양반의 자손으로 인물 잘 나고 글 잘 하는 그는 그만 그 할아버지의 잘못으로 그만 역적의 자손이란 이름을 가지고 한 세상을 불평과 낙망으로 지내게 되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김익순(金益淳)이라는 서울 양반으로 그 때에 선천 방어사(宣川防禦使)를 해 가지고 선천에 가서 관원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마침 유명한 홍경래란 이가 평안도에서 일어나게 되여 여러 고을이 함락되는 바람에 선천 방어사로 있던 김익순이는 할 수 없이 홍경래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 난리가 평정되고 나라에서 공신은 공신대로 올려 세우고 역적은 역적으로 몰게 될 때에 이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도 물론 역적 측에 들게 되여 그 자손은 대대로 벼슬도 못하고 행세도 못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니까 인물도 잘 나고 글도 잘 하고 지체도 좋았으나 할아버지의 역적 죄명 아래에서 김삿갓은 과거도 못 보고 벼슬도 못하고 그저 불평과 낙망만 가지고 이리 저리 다니며 세상 구경이나 하다가 죽을 밖에 없게 된 신세였습니다. 그래서 부끄럽다 하야 어디를 가든지 삿갓을 쓰고 다니었습니다. 삿갓을 늘 쓰고 다닌 고로 세상 사람이 불러 주기를 김삿갓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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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제부터는 김삿갓이 장난하던 이야기를 두 마디 해 봅시다.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끌고 거지 모양으로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인정풍속(人情風俗)도 살피고 글도 짓고 장난도 하다가 한 곳을 가니까 조그마한 촌이 있고 수무나무가 있는 큼직한 집 한 채가 있습니다.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프고 그래서 그 수무나무 있는 집을 찾아가서 밥을 청하였습니다.
주인이 나와 보니까 어떤 놈이 커다란 삿갓을 쓰고 거지 비슷이 차리고 와서 밥을 청하거든요. 단바람
“밥 업소. 가오.”
하고 문을 딱 닫고 들어갔습니다. 할 수 없어 다른 집으로 가서 또 그 모양으로 밥을 청했습니다. 또 그 모양으로 쫓겨났습니다. 서너 집을 다니며 그 모양으로 밥을 청했습니다. 그러다 못하여 이번은 수무나무 있는 집으로 또 갔습니다. 가서 또 요란스럽게
“주인 계시오. 밥 좀 주시오.”
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주인 놈은 두 번째 와서 시끄럽게 자꾸 야단을 하니까 할 수 없어서
“그럼 한 술 줄게 먹고 가라.”
하고는 먹다 남은 쉰 찬밥 덩어리를 더럭 내 주었습니다.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아보니까 퀘퀘 쉰 찬밥이거든요. 우습기도 하고 골도 나서
“에라 이놈 욕이나 실컷 해주고 가자.”
하고 이어 밥그릇에다가 ‘二十樹下三十客 四十家中五十飯(이십수하삼십객 사십가중오십반)’이라고 글 한 구를 지어 들여보냈습니다. 즉 무슨 말인고 하니 ‘수무나무 아래 서른 손이(슬픈 손님이라는 뜻) 마흔 놈의(망한 놈이라는 뜻)의 집에 쉰밥’ 이라는 욕입니다. 주인이 받아 보니까 이런 욕이 없거든요. ‘야 이놈 봐라 글 잘 하는 거지로구나!’ 하고 따라 나와 보니까 벌써 달아났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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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어떤 곳을 가니까 큼직한 촌중이 있고 그 촌중에는 서당(글방)이 있더라나요. 그런데 마침 비가 오더랍니다. ‘에라 이놈의 서당에나 찾아가 훈장 놈이나 놀려 보자’ 하고 슬금슬금 글방으로 찾아갔습니다. 글방 얘들은 김삿갓을 보고
“어떤 농사꾼이 글방을 찾아 오노? 막 비가 오니까 비를 그어 가려나 보다.”
하고 모두 쑤군쑤군 하더랍니다.
“에헴 좀 쉬어 갑시다.”
하고 글방 윗목으로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아랫목에 앉은 훈장인가 한 작자가 정자(丁字)관을 쓰고 흔들흔들 하고 앉아서
“애들아 오늘은 희우(喜雨)라고 문제를 내가지고 글을 지어라. 마침 비가 잘 오니.”
하고 농사 때 마침 기쁜 비가 오니까 ‘희우’라고 문제를 내더랍니다. 문제를 내놓고 모두 글을 짓노라고 흥얼흥얼 하는 판인데 어떤 아이가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글이 안 나와요. 첫 구 하나만 불러주세요.”
하고 청하더랍니다. 그러니까 훈장은
“그걸 못 지어. 그럼 한 구만 불러 줄게…… 자 - 받아써라.”
하고 ‘今日雨來見(금일우래견)하니 誰家者不喜(수가자불희)리오’ 라고 부르더랍니다. 즉 무슨 말인고 하니 ‘오늘날 비 오는 것을 보니 뉘 집 놈인들 기뻐 아니 하리요’ 라는 말입니다. 불러 놓고는 잘 지은 듯이 한번 읊어보면서 제법 수염을 쓰다듬더랍니다. 이 꼴을 본 김삿갓은 어찌도 우스운지 ‘에라 이놈, 욕이나 한번 해 주자’ 하고 슬그머니 다가앉으면서
“여보시오 선생님 저도 한 구 지읍시다.”
하니까 훈장 놈은 물끄러미 보더니
“자네도 글 지을 줄 아나? 그럼 한 구 불러 보게.”
하고 아주 우습게보더랍니다. 그래서 김삿갓은
“실례합니다마는 부를 테니 받아쓰십시오.”
하고 훈장 놈의 글과 같은 음으로
“금일에 우래견하니 수가자불위”라고 불렀습니다. 훈장 놈은
“아 이 사람아 그것은 내가 지은 글 아닌가?” 하고 붓대를 놓고 성을 내더랍니다. 그러니까 김삿갓은
“아니올시다. 음은 같지만 글자는 다릅니다.”
하고 훈장 놈의 글에서 비 우(雨)자를 우연 우(偶)자로, 기쁠 희(喜)자를 될 위(爲)자로 두자만 갈면서 욕하는 글로 불렀습니다. 즉 ‘今日偶來見하니 誰家者不爲’라고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연히 와 보니 뉘 집 놈인지 되지 않았더라’ 라고 욕한 글입니다. 이것을 본 훈장 놈은 골이 상투 끝까지 나서 ‘이놈 봐라’ 하고 야단을 치려고 했습니다. 김삿갓은 벌써 ‘이 자식 엿 먹어라’ 하고 달아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