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8호
<사담><역사>

온 세상을 흔들던 가난뱅이 허생원(2)

이병화


◇돈 오십만냥을 받아 바다에 던져

그들은 나무를 베어다가 집을 짓고 대를 찍어다가 울을 막으며 들에 나가 농사를 짓습니다. 땅이 어찌 걸든지 거름도 아니 하고 김도 안 매건마는 곡식이 무척 되어서 한 줄기에서 아홉다박씩 열렸습니다. 삼년 먹을 것을 남겨 두고 남는 것은 말끔 배에다 싣고 일본 장기(長琦)로 팔러가니 장기는 그때 마침 큰 흉년이 들어서 매우 곤란한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곡식을 다 내어 나눠주고 은 백만냥을 얻었습니다. 허생원이 한숨을 쉬며
『내 인제 좀 시험해 보았다.』
하고 다시 섬으로 돌아와서 남녀 이천 사람을 다 불러 세우고 영을 내려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너희들과 함께 이 섬에 들어와서 먼저 부자를 만든 후에 글자도 만들고 의관도 만들고 법도 마련할까 하였더니 땅이 워낙 작고 또 별 재미도 없으니 나는 인제 가겠다. 너희들은 아이가 나거든 몸 다스릴 줄 알고 어른 높일 줄 알고 부지런한 버릇을 길러서 농사를 힘써 하여 편안하고 넉넉히들 지내어라.』
하고 다른 배를 다 불 지르고
『너희들은 다시 나올 생각을 말아라.』
하며 은 오십만냥을 바닷속에다 집어넣고 하되
『바다가 마르면 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백만냥은 우리 나라에 가져가도 쓸 데가 없다. 더군다나 이 작은 섬에서 무엇에 쓰겠니?』
하고 돈과 군기와 책과 이것 아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나오면서 하되
『이 섬에 걱정거리를 없이 한다.』
하였습니다.

◇사람 노릇하는데 재물이 무슨 상관

그 길로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구차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 거리를 장만해 주고, 재주를 품고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일거리를 가르쳐 주고, 돈을 주어서 각처로 보내니 그래도 십만냥이 남습니다. 이것은 갖다가 변 부자에게 갚으리라 하고 변씨를 가보고
『그대가 나를 알겠소?』
변씨가 놀라며
『그대가 얼굴이 별로 피지 못하였더니 아마 낭패를 보셨는가 보구려.』
허생원이 웃으면서
『재물로 얼굴이 피고 안 핌은 그대네의 일이요, 돈 만 금이 사람 노릇하는 데에 무슨 상관이 있겠소.』
하고 은 십만냥을 변씨에게 내어주고
『사나이가 남의 힘을 빌어서 제 뜻을 행하니 부끄럽소.』
합니다. 변씨가 크게 놀라서 절을 하고 사양하며 이것은 너무 과합니다. 열에 하나만 이를 보겠습니다 하니 허생원이 성을 내서
『그대가 나를 장사치로 아오?』
하고 옷을 떨치고 갔습니다. 변씨가 가만히 뒤를 밟아서 보니 허생원이 남산 밑으로 가서 어느 다 찌그러진 오막살이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 곁 우물가에서 빨래하고 있는 할미에게 저 집이 뉘집이냐고 물으니
『그 집은 허생원 댁인데 가난하기가 짝이 없으면서도 글읽기를 좋아하다가 어느 날 집에서 나가신 뒤로 돌아오시지 않는지가 벌써 다섯 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님은 그 나가신 날로 제사를 지내십니다.』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 이가 성이 허씨인 줄 알고 한숨을 쉬고 돌아왔다가 그 이튿날 그 은을 말끔 가지고 가서 허생원께 드리니 허생원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내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백만냥을 버리고 십만냥을 취하겠소. 내가 인제부터 그대의 것을 얻어 살아갈 터이니 멀을 만한 양식이나 좀 주고 입을 만한 필육이나 주기를 바라오. 그만하면 족할 터이라 재물로 정신 허비하기를 즐기지 않소.』
합니다. 변씨가 이말 저말로 허생원을 달래되 도모지 듣지를 않습니다. 변씨는 하릴없이 은은 도로 가져오고 허생원의 집 살림을 헤아려서 없을만한 것이면 자기 손으로 갖다 주니 허생원이 기꺼워 받습니다. 어쩌다가 좀더 가져가면 허생원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대는 어째서 재앙을 갖다가 주오?』
하고 돌려 보냅니다.

◇세상을 널리 쓰면 가는 데마다 부자

이렇게 하기를 몇 해를 하니까 피차간 정이 들었습니다. 변부자가 하루는 조용한 틈을 타
『다섯 해 동안에 어떻게 해서 백만냥을 모았습니까?』
하고 물으니 허생원이 대답하기를
『알기 쉬운 일이요. 우리 조선은 배가 남의 나라에를 가지 않고 수레가 내 나라 안에를 다니지 않는 까닭으로 모든 물건이 제 곳에서 나서 제 곳에서 없어지고 있고 없는 것을 서로 옮겨다가 통용도 못 하고 싸고 비싼 것을 서로 바꿔다가 남의 재물로 내 이(利)를 만들지 못하였으니 어찌 부를 얻겠소. 이 세상에는 이(利)가 이르는 곳마다 널려 있소. 그렇지마는 이것을 거둘 줄 알고 늘일 줄 아는 사람이라야 취해서 부를 이루는 것이요. 더욱이 조선은 뒤쪽으로 들 하나만 지나면 황하 양자강 이쪽 저쪽이 모두 내 물건을 펼 곳이요. 그리고 앞으로 바다 하나만 나가면 동쪽 남쪽 이 섬 저 섬이 모두 내 재물을 거둘 땅이요. 쥐 코만한 속에서 양반 노릇 하나에만 정신이 빠져 가지고 하늘이 맡기신 앞뒤고 집을 열고 쓸 줄을 모르니 어찌 넉넉해 보겠소. 그대의 부가 비록 한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하지마는 실상은 우물 안 고기라 줄곧 그 자리에서만 오비작거리는 까닭에 열에 둘 셋 남기는 줄만 알고 하나로 열과 백과 천 만드는 줄은 모르니 그럴 것이 아니오.』
하고 여러 가지로 장사할 곳과 방법을 말하니 신기합니다.
변부자가 비로소 세상이 큰 줄 알고 큰 세상을 다 아는 허생원의 큰 국량과 큰 지식에 깊이 깊이 탄복하였습니다.
그러나 허생원에 본뜻은 잠시 작은 이(利)를 남기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 우리의 온통을 크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당장 가진 것을 밑천 삼아 사방으로 골고루 퍼져나가 보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롭지 못하고 일꾼이 변변치 못한 까닭으로 마침내 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자기와 세상 사람들과는 생각의 상거가 너무 멀음을 아신 뒤에는 차라리 넓은 세상에 시원히 놀아볼 작정으로 쓸만한 사람을 찾아 많이 데리고 바다 밖으로 나가서 여러 가지로 놀라운 일을 많이 하셨으니 그 자세한 일은 또 다음에 말씀할 기회가 있을 것이올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