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6호
옛 어른 이야기

세 살 때부터 글을 지은 율곡 선생 이야기

기전


이율곡 선생이라 하면, 보통학교 4학년 과정만 공부한 이는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선생은 우리나라에 훌륭한 명현(名賢)인 동시에 제일가는 정치가였으며, 더욱이 세 살부터 글을 짓고 열다섯 살부터 문장이 되여, 온 세상의 어른들을 놀래게 한 것은 우리 어린 사람으로서 특히 기억할 일입니다.
내가 이제 여러분을 위하여, 이율곡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할 터이니 들어보시렵니까.
선생의 성은 이(李)가요, 이름은 이(珥)요, 율곡(栗谷)은 그 별호(別號)인데, 금년으로부터 389년 전 병신년 12월 26일 새벽(이조 중종 30년), 강원도 강릉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 조선에서 여자치고도 글 잘 하기로 유명한 사임당 신씨(思姙堂 申氏)이였는데, 선생이 어려서부터 어찌나 재주가 많던지, 말하기 시작하자 곧 글을 배워서, 세 살 때에는 벌써 글짓기를 하였는데, 자기의 할머니 등에 업혀서, 그 할머니가 따 주시는 석류를 들고, ‘石榴皮, 裏碎紅珠(석류피 이쇄홍주)’ 라는 시를 지였으며, 여덟 살 되는 해에는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산토고윤월, 강함만리풍)’이라는 화석정시(花石亭詩)를 지었고, 열 살에는 ‘霜風振地, 鳴萬馬之刀?. 雪花?空, 散千里之玉屑(상풍진지, 명만마지도쟁, 설화번공, 산천리지옥설)’이라는 경포대시(鏡浦臺詩)를 지여서, 이름이 천하에 높았으며, 열세 살에 진사 초시(振士 初試)를 마치고, 열다섯 살에 아주 일등 문장이 되였습니다. 과연 얼마나 훌륭한 어린이입니까. 여러분 가운데에는 지금 열 살 된 이도 있지요. 열다섯 살 된 이도 있을지니, 그래 여러분의 지식 정도를 이율곡 선생에게 비겨보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어렸을 때의 선생으로서 한 가지 가엾은 일은 열여섯 살 되는 해에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우리 어른 네들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지마는 율곡 선생의 어머니 되신 신씨 부인 - 그야말로 조선에서 제일가는 갸륵한 부인 이였으며, 율곡 선생의 가진 - 천품과 비상한 재간은 모두 그 어머니에게서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이런 훌륭한 어머니가 그만 세상을 떠났으니, 선생의 그 슬프고 아픈 마음이 과연 어떠하였겠습니까.
울고 또 울고, 생각하고 또 생각다 못하여, 어머니의 삼년상을 마친 열아홉 살 되는 때에는 아주 금강산에 들어가 중이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산 속에 들어가 가만히만 있는 것이 어머니를 위하는 도리가 아니요 정말로 어머니를 위하려면, 자기가 더욱 학문을 힘쓰고, 나라 일을 많이 하여, 살아 계실 때에 어머니께서 자기에게 바라던 그 뜻을 이어 나가는 것이 제일이라 하여, 일년이 지나지 못해서 중노릇을 그만두고, 멀리 - 경상도로 길을 떠나, 그 때에 제일로 도학(道學)이 높은 이퇴계 선생을 찾아, 또 다시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선생의 공부가 크게 나아져 그 이름이 그 때의 임금께 까지 미치매, 임금께서 특히 선생을 부르사, 여러 가지로 벼슬에 대해서 그 이름조차 모르겠지요만, 참고삼아 선생이 지난 벼슬 가운데서 제일 높은 것만 적으면, 황해감사(감사는 지사와 같소) 전라감사 호조판서(대장대신 겸 농상무대신) 병조판서(육해군대신) 사조판서(내무대신) 대제학(국립대학총장 격)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벼슬하여 각각으로 그때의 조선 사람을 위해서 일하였으나 나중에는 선생을 시기하는 나쁜 놈들의 방해를 받아, 서울에 있지를 못하고 시골(해주)로 돌아가, 마흔 아홉 살 되던 해 1월 16일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선생께서 이렇게 일찍 돌아가시지 아니 하시고, 몇 십 년이라도 더 살아 계셨더라면 우리 조선 사람을 위하여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더욱 선생께서는 그 때 얼마 지내지 않아서, 큰 왜란이 나서 조선 사람이 아주 못 살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그 때의 임금께 글을 올려, 군사 20만명을 길러서 그 난을 막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의 임금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배척하여,
“이렇게 태평한 때에 군사가 무슨 군사냐.”
하며, 도로 그 말을 내인 선생을 고약한 놈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과연 어찌 되였습니까. 선생이 돌아가신지 아홉 해째 되는 임진년에 과연 전 만고에 없던 큰 왜란이 나서, 조선 팔도가 펄펄 끓고 말지 않았습니까.


=== 나도밤나무 ===

---호랑이의 낭패---

율곡 선생에 대하여 말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 선생이 나실 때 이야기만 한마디 더하고 그만 두겠습니다.
율곡 선생의 어머니가 별로 착한 부인이었다 함은 위에 말한바와 같거니와, 어머니가 그러하였음과 같이 그의 아버지도 대단히 좋은 어른 이였습니다. 더욱이 그 아들 되는 율곡 선생을 낳아 기르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좋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율곡 선생이 나기 얼마 전에 선생의 아버지 될 그이(기명은 원수)가, 서울 와서 과거를 보고 집으로 내려가던 길에 강원도 원주 땅의 어느 주막에 들었는데, 그 주막에 있는 어떤 예쁜 여자가 조용히 그이를 청하여
“제가 지금 당신의 기상을 보니, 이제 몇 해를 지나지 않아서 꼭 조선에 제일가는 귀동자(아들)를 얻을 터인데, 자못 걱정되는 것은 그 애를 열 살 만 넘기면 일이 없지만, 열 살을 넘기기 전에 호랑이에게 빼앗길 염려가 있으니 어찌 하겠습니까.”
하며, 자기 일 같이 근심하는 모양을 보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이는 말이 너무도 허망하여, 당장 믿기는 어려우나, 또 생각하면 말이 하도 이상하여서
“그러면 그 애를, 호랑이에게 빼앗기지 않을 방법은 없겠소.”
하고 물은즉, 그 여자는 서슴지 않고
“있지요, 그 애를 호랑이한테 빼앗기지 않을 방법이 있지요, 있어도 퍽 쉬운 방법이 있지요. 제일, 당신이 그만한 귀한 아들을 기르려면, 그만한 덕(좋은 일)을 쌓아야 될 터이니까, 우선 당신 집 위산에 밤나무 천 그루만 심으시오, 그러면 그 밤나무가 나서 자람과 같이 당신의 아들도 자라겠지요, 그 애가 자라서 열아홉쯤 되는 어느 때에는 어떤 중 하나가 당신을 찾아서, 그 애를 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그 애를 그 중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보이지는 말고, 나중에 정말 할 수 없거든, 나도 상당히 공덕을 들여서 이 애를 얻은 것이라 말하고 밤나무 천 그루 심은 이야기를 하시오. 그러면 알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 그 예쁜 여자는 그만 그 자리에서 간 곳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 광경을 당한 그는 모든 것이 하도 이상하여, 집에 돌아가서까지도 조금도, 그 일을 잊지 못하고 혼자 생각하되 ‘나무를 심는 일은 어쨌든 좋은 일이니 그 말대로 우선 밤나무 천 그루는 심어 놓고 보리라’ 하여, 부랴부랴 하고 그 일을 실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밤나무를 심은 그 해 이른 봄부터, 그의 부인이 태기가 있어, 그 해 겨울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잘 생겼는지, 암만 보아도 보통 어린이는 아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 어린이가 누군지를 아시겠습니까.) 그 애를 보고 그 여자의 말을 생각하는 그이(그 애 아버지)는 특별히 기쁜 중에도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그 어린이를 길러 오던 중, 그 어린이가 난지 아홉 살 되던 해 어느 날에, 과연 머리가 하얗게 늙은 노승 하나가 그 집을 찾아와서, 그 어린이를 보자고 하였습니다. 왜 보자하냐고 물은즉,
“그 어린이는 이 세상에 제일 갈 인물인데, 당신이 무슨 공덕을 쌓았기에 그런 어린이를 기르겠느냐.”
하며 어서 바삐 그 어린이를 자기에게 바치라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당한 그이(선생의 아버지 되는)는 문득 그 때 그 여자의 하던 말을 생각하여 자못 성난 눈으로 그 중을 흘겨보며,
“나도 상당한 공덕을 쌓아서 이 어린이를 기르거늘, 당신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 어린이를 바쳐라 말아라 하느냐.”
하며, 그 중을 꾸짖은즉, 중의 말이
“그러면 그 공덕을 쌓았다는 것은 무엇이요?”
하였습니다. 이 때에 그이는 그 중을 자기 집 뒤 동산으로 끌고 가서
“자- 이것을 보아라.”
하며 그 밤나무 천 그루 심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중은 그래도 항복하지를 않고,
“그러면 그 밤나무가 과연 천 그루가 되는가 못 되는가 헤어 보자.”
고 하여, 그 나무를 일일이 헤어 본즉, 공교롭게도 그중의 한 그루의 밤나무는 말라죽어서, 구백 아흔 아홉 그루 밖에 더 되지를 못 하였습니다. 이 때에, 그 중은 노기가 등등하야
“그러면 그렇지, 당신이 무슨 그만한 공덕을 쌓았단 말이오, …… 이제도 그 어린이를 나에게 바치지 아니할 터이야.”
하며 무섭게 고함을 치는데 그 소리가 꼭 호랑이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여러분, 이 때에 선생의 아버지 되는 그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눈이 아득하고 앞이 캄캄하여 그만 어쩔 줄을 모를 즈음에 그 옆에 있던 벚나무 한 그루가 문득 소리 높여서
“나도 밤나무요. 나도 천 그루 속에 하나 되는 밤나무요.”
하며 뛰어 나섰습니다. 이렇게 나무까지 말을 하며 나서는 바에야 그 놈의 중인들 어찌 하겠습니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부디 고이고이 길러서, 이 불쌍하게 되는 조선 나라를 구원해 내는 인물이 되게 하시오.”
하며, 그 중은 그만 간 곳이 없고, 커다란 백호 한 마리가 뒷산을 향해서 우덕덕우덕덕 뛰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강원도의 곳곳에는 지금도 ‘나도밤나무’라 하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잎이나 줄거리나 모든 것이 밤나무와 꼭 같은데, 다만 밤만 열리지 못할 뿐이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일지경이면 짐승도 초목도 다 그를 보호해 주는 법이며, 또 그만한 어린이를 기르는 부모는 그만한 좋은 일을 미리미리 하여야 되는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