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5호
<역사>

강감찬 장군 이야기

손진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일본 조도전대학에서 역사를 연구하시는 색동회 손 선생이 유명한 강 장군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다. (박수)

곰보 장군 강감찬이라면 우리 조선 사람으로서는 누구든지 다 아는 이올시다. 곰보 강 장군은 지금부터 900여 년 전에 경기도 시흥군에서 났습니다. 장군의 먼! 할아버지는 본시 경상도 사람이었습니다마는 그의 고고조 할아버지 때에 시흥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 때에 우리 조선은 지금과 같이 나라 이름이 조선이 아니고, 고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서양 사람들이나, 만주 사람들은 우리를 고려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장군의 아버지도 나라에 큰 벼슬을 하였고, 그의 집안도 훌륭한 집안이었으며,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고, 용맹도 있고 꾀도 많았습니다마는, 그에게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그가 손님(마마)을 어찌 몹시 하였던지 어렸을 때부터 얼굴이 아주 곰보 딱지였던 것입니다.
그 꼴에다 더구나 키까지 겨우 난쟁이를 면할 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얼굴이나 키로써 그의 인격을 말 할 것이 아닙니다.
강감찬 장군에게는 별별 이야기가 많습니다마는, 그의 곰보 된 것에는 이러한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마음이 이상해서 우리 같으면 얼굴도 잘나고 몸집도 헌칠하게 큰 것을 좋아하겠습니다마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에든지 보통으로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아주 못 생겨보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에는 손님(마마)을 몹시 하게 하여 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하야 손님을 시키는 마마 귀신을 불렀습니다. 그는 마마 귀신에게 나의 얼굴을 아주 무섭고 더럽도록 만들어 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마마 귀신은 귀한 몸에 차마 그런 짓을 못 하겠습니다고 몇 번이나 사양하였습니다. 강감찬은 골을 내면서 되게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마마 귀신은 하는 수 없이 그의 얼굴을 조금만 곰보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첫 번 손님을 한 뒤에 강감찬은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고, 마마 귀신의 무례함에 골을 내여 다시 귀신을 불렀습니다. 귀신은 두 번째 강감찬에게 손님을 시켰습니다마는 그래도 아니 되겠다고 함으로 할 수 없이 세 번째까지 그의 얼굴을 주물러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무슨 악마의 얼굴이나 무서운 탈이나 같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키까지 조그마하게 되었으니 보통 아이들 같으면 동리에서 원숭이라고 놀림이 되었을 것입니다마는 통쾌한 우리 강 장군은 그것으로서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그렇다가도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책상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나 형님으로부터 “이애, 공부 좀 하여라. 밤낮 놀기만 하면 어쩌겠니?” 하는 꾸중을 한번도 듣지 아니 하였습니다. 노는 데든지 공부하는 데던지 자기의 할 일은 모두 자기 손으로 다 하였음으로 부모의 나무람을 들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강감찬 장군은 용감하고도 공부를 잘 하였으나 남 보다 별 다른 짓을 좋아하는 그는 얼굴도 얼굴이어니와 옷도 항상 다 떨어진 누더기 같은 것을 입기 좋아하였습니다.
나이 차차 많아져서, 강감찬 장군은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감찬의 곰보딱지요 더러운 꼴은 세상 사람들이 다 소문으로서도 알고 있으므로 아무도 딸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꾀 많은 강감찬은 여기서 장가 들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 때의 서울은 지금 개성이올시다. 강감찬은 여러 동무들을 만나서 서울 안에 뉘 집 처녀가 제일 어여쁜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알아보니 마침 강감찬의 고향에 그 집과 멀지 아니 한 일가 한 집이 있는데 몹시 구차함으로 서울 일가 대감집(처녀 있는 집)과는 오랫동안 내왕이 없이 지내고 시골 구차한 일가이란 집에는 강감찬과 나이 비슷한 젊은이가 한 분 있는 줄도 알았습니다.
강감찬은 아버지에게 말씀을 올려 처녀 있는 대감 집에 혼인을 하자고 말을 띄어 보았습니다. 대감 집에서는 두 말 없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강감찬은 속으로 코웃음을 웃으면서 “어디 좀 보아라” 하고 어머니에게 떡과 과실을 한 상자 만들어 달라고 해서 촌사람의 맵시를 차린 뒤에 그것을 짊어지고 서울 바로 처녀 있는 대감의 집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처녀 어머니에게
“저는 시골 사는 일가 아무개인데 일가 사이에 너무 안부를 알지 못함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올라왔습니다.”
하고 공손히 말하였습니다. 부인은 아이 꼴은 창피하나 일가 젊은이가 찾아 왔음으로 반가워 맞으며 집안사람들을 부르고 사랑에 계신 대감까지 청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떡과 과실을 상 위에 차려놓고 주인 대감은 강감찬의 절을 받으며 점잖게 말하였습니다.
“자네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한번 보았으나 그 동안 매우 숙성하였네. 그래, 아버지 어머니도 태평하시고…….”
강감찬은 다시 처녀의 어머니에게도 절을 올리고 고쳐 앉으면서
“제가 시골서 들으니 대감댁에 저의 누이동생이 한 분 계신다더니…….”
하니까 강감찬의 말이 끝나기 전에 대감이 하인을 불러 처녀를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는 공손히 맵시를 뽑으며 강감찬의 눈앞에 나왔습니다. 처녀의 아버니와 어머니는 처녀에게
“시골서 오래간만에 너의 오빠뻘 되는 이가 오셨는데 둘이서 서로 인사를 하여라.”
하였습니다.
떡과 과실 상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절을 하였습니다. 그 때입니다. 강감찬은 절을 마치자마자 펄쩍 뛰어가서 처녀의 입을 꼭 맞춘 뒤에 그만 도망을 하였습니다. 도망을 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일가는 무슨 일가야. 나는 강감찬이요. 오늘 잔치는 잘 하고 갑니다.”
처녀 집에서는 그제야 속은 줄 알았습니다마는 인제는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처녀와 처녀의 아버지는 강감찬의 그런 대담한 행동에 놀라고 감복하야 필경 강감찬을 사위로 맞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강감찬의 범 잡던 이야기, 개구리 못 울게 하던 이야기 같은 것도 있습니다마는 너무 길어짐으로 그것은 고만 두기로 하고 강감찬이 어른이 되어 나라에서 벼슬을 할 때였습니다. 그 때에 우리 고려 나라의 북쪽인 만주와 몽고 땅에는 키타이(契丹)라는 강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키타이 병정들이 항상 우리 고려 땅에 들어와서 백성들을 못 살게 굴었습니다.
강 장군은 이것을 크게 분하게 여겨 언제든지 키타이를 쳐서 조선 사람을 구하리라고 생각하여 나라 명령으로 군사를 조련하였습니다. 그러나 키타이 군사는 많고 우리 군사는 적음으로 항상 걱정 가운데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해 지낸 뒤에 과연 키타이는 병정 10만명을 거느리고 조선 땅을 --- 그 때의 고려 땅을 쳐들어왔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인제야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서 군사 20만명으로 평안도와 함경도 각지에 방비를 하게하고 장군은 친히 기병 1만2천명을 거느리고 산골 사이에 가만히 숨어 있고, 한편으로는 소가죽 수 만장을 커다란 새끼로 엮어서 키타이 군사가 지나갈 강물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소가죽 위에는 흙을 깔아서 강인 줄을 알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10만명의 키타이 병정들은 나팔과 북을 천지가 흔들리게 울리며 무인지경 같이 우리 땅에를 들어 왔습니다. 그들이 강가에 이르렀으나 그것을 강인 줄 알지 못하고 예사 길인 줄 알았음으로 의심 없이 강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자 소가죽이 터지고 키타이 군사들은 차례차례 강 속으로 풍덩 풍덩 들어갔습니다. 앞선 군사가 이렇게 되었음으로 뒤에 군사들도 깜짝 놀라서 키타이 군사들은 크게 소란하기 시작하야 진이 어지러워졌습니다. 그 때에 강 장군의 숨었던 군사는 사방으로 일어나서 키타이 군사를 향하야 일시에 함성을 울리고 나팔과 북과 쟁을 울리며 달려들었습니다. 키타이 군사들은 정신을 잃고 도망하는 놈 물에서 허덕거리는 놈, 칼과 창과 활살에 맞아 죽는 놈이 수효도 알 수 없었습니다.
키타이 대장은 남은 군사를 데리고 곧 서울을 치려 향하였으나 중간에서 다시 강감찬의 미리 숨겨두었던 군사가 이곳저곳서, 쉴 사이 없이 일어나며 습격을 하였음으로 키타이 병정 10만명은 거의 모두 죽어버리고 키타이 대장은 겨우 군사 몇 천 명을 데리고 저의 나라로 도망해 버렸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우리나라 임금님은 꿈과 같이 기뻐하야 날마다 강 장군의 돌아와 보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키타이 장수는 저의 나라 임금에게 뵈었습니다마는 참혹하게도 키타이 임금은 그 장수의 얼굴의 가죽을 벗긴 뒤에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강감찬 장군이 서울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님은 몸소 멀리 나가 장군을 맞으며 군악을 잡히고 음식을 차리고 온 장안 사람들도 모두 장군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강 장군이 지나는 거리거리에는 남녀노소 없이 만세를 부르며 장군을 맞았습니다.
그 때 곰보 강 장군의 얼굴에는 얽은 터마다 위엄과 귀염이 솟아올랐습니다. 딸 주기를 싫어하던 대감 집에서도 여러 가지로 옛날 일을 생각하고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강감찬 장군이 고대하든 임금 앞에 나아갔을 때 좌우에는 군악대가 음악을 울리고 밖에는 군사들과 수십만의 사람들이 첩첩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장군은 임금 앞에 절을 할 때 임금님은 친히 장군의 머리 위에 금으로 만든 꽃 여덟 가지를 꽂아 주시며 한편 손으로는 장군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술잔을 들어 장군에게 권하며 여러 가지 싸움 할 때의 이야기를 물어 가면서 차마 서로 떠나기를 싫어하였습니다.
그 뒤에 키타이는 다시 우리 땅에를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곰보 강 장군이 아니었으면 그 때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는지 생각하면 앗차러운 일이올시다.
(박수 대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