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0호
<역사>

역사 공부(3)



종교

조선 사람은 태고 적부터 신교를 믿었으니 그 종지는 한울께 제사 지내고 조상을 높이는 것이라. 그럼으로 매년 10월이 되면 온 나라가 크게 모이어서 한울님께 제 지내고 노래부르며 춤추며 북 치며 나팔불어 놀대로 놀고 즐거워할 대로 즐거워하였다. 그 신교에서 별로 일파가 있었으니 그것은 장생하는 법, 즉 신선이 된다 함이라. 그 술이 지나까지 크게 전파되었으니 우리 조선에 삼신산이 있고 거기 불사약이 난다 하였다. 진시황 한무제 같은 임금들도 그 말을 굳이 믿고 방사(신선도 닦는 사람)를 보내어 백방으로 구하여 보았다.

문학

단군 때 신지와 부여 때 왕문이란 사람이 글자를 지어 썼으니 전자(篆字)도 같고 부(符)도 같다 하였으나 그것은 지금에 전하지 못하였고 오직 평양 법수교에서 파낸 비의 글자가 그때 쓰던 것이 아닌가 할뿐이며 또 남해도 석면에 각한 글자는 삼한 때에 쓰던 글자가 아닌가 하나니 그 글자들은 물론 우리가 지금 보는 한문이나 정음글자와는 딴판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깊은 연구를 안 하면 다 자세히 알 수 없고 서로 지나와 접근한 지방에는 한문학이 행한 듯 하더라.

풍속

단군과 부여 때부터 농업은 벌써 크게 발달되었으니 그 농사짓는 법은 단군 신하 고시씨가 백성들께 가장 먼저 가르쳤음으로 지금까지 농부들이 들에서 박 먹을 때에는 반드시 『고시네』를 찾는다.
인민들은 부지런하고 순후하여 남자는 힘써 일하고 여자는 정신을 지켜서 선인 또는 미인의 이름을 들었다. 의복은 대개 포백을 입었으되 백색을 숭상하고 금은주옥으로 갖가지 꾸미개를 하였으며 음식은 오곡으로 상식을 하였다. 그러나 숙신과 맥나라 같은 데는 가죽옷을 입고 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다.

인물

치우는 신시 시대 사람으로 용맹이 절세하여 한족 황제로 더불어 판천 들에서 크게 싸웠다 하고
순임금은 우리 조선 사람으로 지나에 나가서 당 요를 대신해 임금이 되어 착한 정사를 행하고
기자는 지나 은나라 황족으로 그 나라가 망하매 동지 오천명을 거느리고 우리 조선에 와서 살다가 그 자손이 요동 땅에서 임금하고
대연 소연 형제는 행실이 지극함으로 소문이 천하에 드러나고
여도령은 예국(창해) 사람으로 지나 한국인 장량의 청을 받아 진시황을 박낭사 중에서 철추로 쳤으니 그 철추는 지금까지 창경원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식민

우리 조선 사람은 세력이 성함을 따라 사방에 퍼져서 북으로 흑수 이북 오만여리 땅 곧, 지금 시베리아 동반도와 황해 연안까지 나아가 허다한 소국을 세웠는데 서국은 그 중 대표가 되어서 서언왕이 임금이 되매 주나라를 정복하고 오십여 국을 공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남으로 왜의 땅에 나가 산 자는 축자와 출운으로부터 점차 북으로 나아갔으니 그 차지하고 살던 땅은 시토(금 복강시서)라 그들 중에 여러 밧치(工)가 있어서 갖가지 기술을 그 땅에 전하였으며 그 나라 사람도 우리 조선 남부 해변에 건너와 살면서 피차 통상을 한 듯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