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호 131
<역사 소설>

정 포은(제5회)

고한승


8. 화원별궁에서(花園別宮)

이성계장군이 위화도에서 임금의 명령 없이 회군하여 돌아오는 줄을 모르는 우왕과 최영 장군은 지체하지 않고 그들의 계획을 진행시키었다.
먼저 이성계 장군의 가장 친밀한 부하들을 조정에서 쫓아내기로 하였다. 정도전 남언 같은 이들을 벼슬을 떼어내어 보내고 그 밖에 그들의 일당을 모조리 몰아내었다.
그리고 이 나라 어지러운 정세를 바로잡고 괴롭고 굶주리는 백성들을 건지기 위하여 어진 정치를 베풀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덕이 높고 마음이 어진 사람을 택하여 정사를 맡겨야 한다. 그리하여 유명한 인격자요 학사인 이색 선생을 불러 높은 벼슬을 주어 정치를 다스리게 하고 최영 장군은 오직 팔도도통사로 군사의 일만 맡기로 하였다.
그 뿐 아니라 다음 날 나라를 맡아 볼 청년을 가르치는 중요한 책임을 가진 성균관 대사성이란 자리는 정 포은 선생이 앉게 되었다.
이렇게 내정을 새롭게 하고 인심을 안돈하여 흔들려 가는 고려 나라의 사직을 바로잡기에 골몰하였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반석 같이 튼튼하여지고 만백성은 성주의 만만세를 마음껏 부를 것이옵니다."
최영 장군은 흰 수염을 여름 바람에 나부끼면서 젊은 왕께 이렇게 아뢰었다.
"이것이 모두 장군과 여러 신하들의 충성된 덕이요."
하고 우왕도 오래간만에 만족한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젊은 왕과 늙은 장군은 며칠 동안 평양성에 머물러 아름다운 경치도 구경하고 틈틈이 나라 일을 바로 잡을 의논도하였다.
만약 이 계획대로만 나간다면 과연 고려나라는 다시 일어나고 강하고 부한 나라가 되었을는지 몰랐다.
그러나 천만 뜻밖에 놀라운 소식이 들어 왔다.
"이성계 장군이 회군한다!"
"4만명 대군을 거느리고 반역하여 들어온다!"
이것이었다.
왕과 최영은 놀랐다.
"설마하니 이성계가 왕명을 거역하고 회군하리?"
하고 의심하였으나 연달아 들어오는 소식은 이것이 분명한 사실임을 전한다.
왕과 최영과 그 외의 모든 신하들은 분하고 원통함을 참으면서 말과 수레를 재촉하여 서울인 송도로 돌아가기를 바삐 하였다.
돌아가는 고을마다 이성계의 반역군사를 힘껏 막으라고 분부를 내리고 주야를 도와 회정하였다.
그리하여 서울로 돌아온 왕은 송도의 화원에 있는 별궁으로 들어와서 앞으로 막아 낼 계책을 의논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소."
왕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여러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먼저 이성계의 벼슬을 깎아버리시고 그의 왕명을 거역한 죄악을 천하에 알리신 후 남아 있는 군사를 시급히 모아 그들을 대항해야겠습니다.“
군국 실권을 손에 쥐고 있는 최영 장군은 이렇게 아뢰었다.
"그러나 정병 4만명이 이성계의 수하에 있고 남아있는 군사와 병기가 얼마 되지 아니하니 어떻게 하오?"
왕은 근심스러이 물었다.
"아무리 4만 대군이 이성계의 수중에 있다 할지라도 아직도 이 나라에는 수만 명 군사가 남아있고 또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된 젊은 국민이 많이 있사온즉 나라가 위태로운 이 마당에 목숨을 내어놓고 나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논을 하고 있을 즈음에 벌써 풍우같이 몰아오는 이성계의 군사는 송도 서울을 쳐들어왔다.
만월대 대궐을 겹겹이 둘러싸고 왕을 찾다가 왕이 화원 별궁에 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몰아 자남산(子男山)을 넘어 화원으로 별궁으로 몰려 왔다.
이성계 장군이 지휘하는 군사들은 황룡대기(黃龍大旗)를 앞에 세우고 아우성 소리를 지르면서 별궁을 에워쌌다.

9. 최영이 귀양 가다.

우왕과 왕후인 영비 최씨 - 왕후는 최영 장군의 따님이다 - 는 용상에서 발발 떨고 있었다.
이색과 정 포은 등 여러 신하는 주먹을 쥐고 발을 굴렀다.
오직 백전노장 최영 장군 만은 침착한 얼굴에 노기를 띠우고 엄하고 분명히 명령을 내렸다.
"궁정에 남아 있는 금군을 풀어라. 그리고 나의 갑옷과 용천검(龍泉劍)을 가져오너라."
몸에 갑옷을 입고 손에 익은 용천검을 빼어들고 나시는 최영 장군은 몸은 비록 늙었으나 용기와 위의가 늠름하였다.
그리고 왕께 나와
"신이 비록 늙고 병들었으나 금군을 지휘하여 이성계를 맞아 싸워 반적을 물리치겠습니다.“
이같이 아뢰고 밖으로 나갔다.
"반역 이성계는 나서라!"
산이 울리는 듯한 호령 소리에 금군은 앞을 다투어 나아가 싸웠다. 그러나 수효로도 당치 못하고 의기로도 당치 못하였다. 더구나 저편은 지금 한창세도가 하늘을 찌를 듯한 이성계 장군이 있음을 어찌 당하랴.
모래성이 무너지듯 허수아비 같은 금군은 이성계 장군의 손에 몰리어 달아나 버렸다.
최영 장군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70평생에 처음 당하는 패전이요. 치욕이었다.
그는 이미 시세가 글렀음을 깨달았다. 눈물을 머금고 궁전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왕 앞에 엎드리어
"이 늙은 몸을 처벌하여 주소서. 수십 년 동안이나 손때 먹여 길러놓은 병사들이 허수아비 같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모두 신의 잘못이오니 신을 죄주소서."
왕은 용상에서 내려서서 손수 최 장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어찌 경의 죄리요. 다 짐이 덕이 없는 탓이요."
하고 위로하였다.
밖에서는 군사들의 함성이 점점 높아가고 징소리 칼소리 말의 우는 소리가 소란하다.
이 때 반란의 대장 이성계 장군이 들어왔다. 그는 공손히 절하며
"임금께 아뢰오. 지금 군사들은 저렇게 야단들입니다. 그것은 결코 임금님을 배반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이번 요동 정벌의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동 정벌의 책임자라니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오."
"4만 대군을 죽음의 땅으로 몰아넣고 조그만 고려국으로써 대국인 명나라를 침범하여 우리나라 사직을 위태롭게 한 것은 나라의 큰 죄인입니다. 이러한 정벌을 발론한 자는 곧 최영 장군이올시다. 그러하오니 즉시 최 장군의 벼슬을 뺏으시고 그를 귀양 보내셔야 군사들이 진정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 장군의 말에 임금은 진노하였다.
"무슨 소린고? 왕명을 거역하고 군사를 충동하여 나라의 충신을 없이하고자 하는가?"
"어명 없이 회군한 것은 4만 군사의 뜻이올시다. 그리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 것은 분명히 최 장군의 책임이오니 만약 이 말씀을 듣지 아니하신다면 신은 군사들을 진정시킬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4만 대군이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모르겠사오니 이 때를 놓치지 마시고 결단하셔야겠습니다."
이것은 실로 큰 위협이었다. 4만이란 군사의 힘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이성계의 말은 이 마당에 반대 할 수 없는 큰 존재였다.
그러나 왕은 반대하였다.
"안되오. 최장군은 나라의 주추와 같은 충성된 신하요. 절대로 못하오."
그 때 최영 장군은 왕 앞으로 나와 엎디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신의 벼슬을 거두시고 죄를 내리소서. 그리하여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케 하소서"
실로 비장한 결심이었다. 이제 나라는 바야흐로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이 위태로운 순간을 당하였다. 이성계 장군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단 최영 장군 한 사람 뿐이랴, 임금님의 목숨이 위태할는지도 모른다. 그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고려란 나라가 망하여 버리고 이 씨가 임금님의 자리에 나아갈는지 모른다. 최영 한 사람만이 희생을 하고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어찌 이를 사양하랴? 이것이 충신 최영 장군의 마음이었다.
"장군의 충성된 마음은 감사하오. 그러나 장군이 없으면 이 나라 사직을 누가 보호하리? 못하오.”
왕은 눈물을 머금고 거절하였다.
"아니요. 70 평생을 나라에 바친 최영이 늙고 병들은 나머지 몸을 마저 바칠 때가 왔습니다. 이 몸을 바쳐 나라의 사직을 구할 수 있다면 즐겁게 바치오리다."
주름잡힌 얼굴에 눈물을 머금고 최영 장군은 일어섰다.
"자, 이 장군! 나를 군사들에게 내어주오. 그리고 한마디 마지막 부탁이요. 장군도 고려의 백성이요. 외람한 마음을 먹지 말고 이 나라의 충신이 되시오."
이성계에게 이러한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정 포은 선생의 손을 잡았다.
"포은! 부탁하오. 이 나라 사직을 부탁하오. 최영이 지고 가다가 못다 진 이 나라 사직을 대신 맡아 지시오."
창자 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간곡한 부탁이었다.
"생이 비록 재주 없고 힘이 약하오나 장군의 이 말씀은 뼈에 새기어 잊지 아니 하오리다.”
정 포은도 충심으로 맹세하였다.
"고맙소. 마음 놓고 가오리다."
"상감마마, 신은 가오. 만수무강하소서."
마지막 군신의 작별이다.
영비 최씨는 소리쳐 울었다.
왕도 곤룡포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느껴 울었다. 여러 신하들도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느꼈다.
최영 장군은 눈물을 거두고 뚜벅 뚜벅 걸어 나갔다.
충신의 나라에 바치는 최후의 장엄한 길이었다.
이렇게 하여 고려 나라를 버리고 가던 최영 장군은 이성계의 계획대로 벼슬을 버리고 고봉현(高峯縣)으로 귀양살이를 떠났고 그 후에 이성계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 죽을 때
"내가 평생에 나라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다가 억울한 죄에 죽음을 당한다. 내가 만약 죽은 뒤에 내 무덤에 풀이 나지 아니 하거든 나라를 위하여 억울히 죽은 줄로 알아라.”
하였다.
과연 그의 무덤에는 봄이 오나 여름이 되나 풀 한 포기 나지 아니 하였다. 하니 충신의 맺힌 한이 얼마나 크고 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최영 장군이 죽은 후 고려국은 어찌 되겠습니까? 더구나 고려의 사직을 두 어깨에 짊어진 정 포은 선생의 충의의 힘이 어떠한 결과를 지을는지? 다음 호를 기다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