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호 130
<역사 소설>

정 포은(제4회)

고한승



7. 위화도 회군

이성계장군은 4만명 대군을 거느리고 이튿날 평양성을 떠나 남만주 요동 땅을 바라보고 떠났다.
기치와 창검은 햇발에 번쩍이고 군사들의 용감히 행군하는 말발굽 소리는 천지를 뒤흔드는 듯 하였다. 장교들의 지휘하는 소리와 유량한 군악 소리도 한데 뭉치어 엄숙하고 장하기 짝이 없었다.
그 중에 이 장군은 말 위에 높이 앉아 보기 좋은 수염을 여름 바람에 휘날리며 말없이 가는 품이 과연 4만 대군을 거느릴만한 위엄과 자격을 갖춘 장군답게 뵈었다.
그러나 지금 장군의 마음은 몹시 설레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만한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이렇게 위의 있고 엄숙하게 행군하는 것이 대단히 용감하고 흥겨운 일일 것이지마는 오늘 이 행군은 장군으로서는 원치 않는 일이요 또한 자기의 일생의 대사업을 단번에 그르치는 원인이 될는지 모르는 것이므로 가슴이 무겁고 앞일이 캄캄하였다.
아무리 평소에 손수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또 여러 번 싸움에 나가서 단련한 군사요 그 수효가 4만 명이나 된다 할지라도 고려국의 몇 십 갑절 몇 백 갑절 되는 명나라 군사를 당해 낼 재주가 없다. 설사 한 번 싸움에 이긴다손 치더라도 그 위에는 무기와 군량과 군사가 무한히 많은 명나라를 끝끝내 이겨낼 수는 도저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요동정벌이야말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 들어가는 셈이요 이성계의 일생을 멸망하러 가는 것과 같다.
그 뿐이랴 설사 운사가 좋아서 요동 땅을 쳐서 빼앗는다 하더라도 그 동안이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잘못하면 반년이나 1년이나 걸려야 할 것이니 그 동안에 자기는 도성을 떠나 있게 되고 조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되니 자기 없는 틈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첫째 수십 년 동안 쌓아 놓은 장군의 기초가 무너질 것이요, 자기의 수많은 심복 부하들이 조정에서 쫓겨나고 벼슬자리도 떨어질는지 모른다. 그리면 이 후에 다시 자기가 돌아갈지라도 팔과 다리를 없이 해 놓은 병신 모양이다. 옴짝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지금까지 쌓아놓은 공든 탑이 일조에 무너지는 것이다.
"고려의 강토를 차지해 보자. 고려 국왕의 용상에 올라 앉아 보리라! 그리하여 고려 국민을 호령하여 그들을 잘 살도록 만들어 보리라!"
이려한 야심을 품고 있는 이 장군인지라 이번 행군이 몹시 불길하게 생각되는 것은 정한 이치이었다.
그러나 이장군은 작심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그의 크고 광채 나는 눈은 항상 먼 하늘을 바라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유월의 뜨거운 햇볕에 얼굴은 상기가 되어 무른 대추 빛 같고 넓고 시원한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도 씻을 마음도 없는 듯 하였다.
이 장군은 곤란한 경우를 당하여 그것을 이기어 나갈 줄을 잘 안다. 불길한 일을 도리어 행부된 길로 이끌어 나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는 이이다.
이것은 그가 항상 싸움에 나아가서도 경험한 일이다. 꼭 지게 된 싸움이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낙망하지 아니한 그 어떠한 기회든지 붙잡아 가지고서는 되돌아서서 그 싸움을 이기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이번에 당한 이 요동 정벌이란 가장 불길한 경우를 당하여도 그는 이 불행에서 벗어날 길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 불행을 도리어 행복의 길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늙은 충신 최영 장군과 그를 믿고 일하는 우왕! 이 임금과 신하 때문에 이러한 큰 곤란을 받는다. 이것을 이용하여 이쪽에서 그 임금과 그 충신을 몰아낼 수 없나?"
이것이다! 이것이 지금 이장군의 머리 속에 가득 찬 생각이다.
평양성을 떠나서부터 이틀 사흘 닷새 엿새 되는 날까지 필요한 말 외에는 말한 마디 아니하고 행진하던 이장군의 머리에 비로소 계교와 생각이 완전히 섰다.
닥쳐온 불행을 물리치고 도리어 행복의 길로 나아갈 방법이 정하여진 것이다.
그리하야 그날 밤 그의 심복 조민수 장군을 불러 앞으로 해나갈 방침을 비밀히 의논하였다.
첫째로 이번 행군이 몹시 괴롭고 어렵다는 것을 군사들에게 알릴 것.
둘째 이번 요동정벌은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는 싸움이요 열에 아홉은 죽고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할 것.
세째 이러한 이롭지 못한 싸움을 시작하게 한 것은 완고한 늙은이 최영 장군이 어리석은 우왕을 꾀어내서 한 일이라는 것.
이런 것들을 널리 군사들에게 알게 하자는 것이었다.
계교는 그 이튿날부터 착착 진행되었다.
찌는 듯한 유월 염천에 조금도 쉬지 않고 행군을 시키었다. 하루 세 끼 음식을 제 때에 먹이지 아니하였다. 군사들은 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기진맥진하여 쓰러지는 이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대장들은 채찍을 들고 길을 재촉하면서
"이것이 최영 장군의 지시요 임금의 명령이다!"
하고 소리쳤다.
"나라에서 준비 없는 전쟁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군량이 부족하여 제대로 밥을 못 먹인다."
하고 모든 괴로움을 나라와 최영 장군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군사들은 괴로웠다. 더위는 점점 심하고 몸은 쇠약하여 갔다. 그들은 차차로 불평을 부르짖게 되었다. 행군하기가 싫어지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요동 땅에는 명나라 군사가 10만 명이나 있고 든든한 성벽과 훌륭한 무기가 준비되어 있어서 천하에 당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소문이 났다.
이번 싸움은 절대로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전부 죽어서 요동 땅의 외로운 귀신이 된다는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나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온 군중에 퍼지었다. 설사 목숨을 보전한다 하여도 나중에 명나라를 범한 죄로 큰 벌을 받으리라는 말까지 돌았다.
군사들은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이번 싸움에 크게 이기어 많은 상을 탈 줄 알고 용기가 충천하던 것이 초죽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평화스러운 고향의 처자가 그립고 하루바삐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요 싸우러 나갈 생각을 꿈에도 없어졌다.
이러한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하여 갔다. 평양을 지나 선천을 지나 고향 산천이 점점 멀어갈수록 심하여 졌다.
드디어 대군이 의주성에 도착하였다. 앞으로 흐르는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만주 땅이다. 이 강을 건너서 다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으랴? 승전할 희망이 없는 이 전쟁을 하려 이 강을 건너겠느냐?
군사들의 마음은 극도로 흥분하였다. 그날 밤이었다.
이성계 장군은 몇 사람 장수와 같이 의주에 있는 통군정이란 정자에 올라 술을 마시었다. 마음속에 불평을 잊으려는 듯이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비분한 노래를 부르고 또 술을 마시었다.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고 멀리 고국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것을 군사들이 보았다. 그것은 일찍이 보지 못하던 광경이었다. 언제든지 전장에 나갈 때에는 장하고 쾌한 기운을 가지고 호화롭게 웃으며 용기를 보이던 이 장군이었다. 그런데 오늘 밤은 웬 일인지 비통하고 쓸쓸한 얼굴이다. 그 뿐이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조차 흘리지 않느냐? 이것은 반드시 이장군도 이번 싸움은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인 듯싶다. 이 길이 마지막 길이므로 고향 눈물을 짓는 것일 것인가.
이 장군의 이러한 태도를 본 군사들은 드디어 지금까지 쌓이고 쌓였던 불평이 폭발하고 말았다.
"평소에 부모 같이 믿고 바라던 이 장군이 저러하실 때야 이번 싸움은 죽으러 가는 것뿐이니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장군을 따라 승전을 하고 공을 세우고자 했더니 이제는 아무 희망도 없구나."
"싸움을 그만두고 돌아가자!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러한 공론이 그날 밤으로 돌았다.
이튿날 강을 건너 위화도라는 섬에 도착하였을 때 하늘도 이 장군의 계교를 돕는 듯이 때마침 장마 비가 시작하여 내렸다.
비는 점점 채찍같이 퍼부어서 행군할 수가 없어서 위화도에 쉬었다.
어제 밤부터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숙덕숙덕 공론은 기어이 있었다.
군사들은 창과 칼을 들고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이 장군의 처소 앞으로 모이었다.
"회군 합시다. 싸움은 그만두고 돌아가기를 바라오."
군사들의 외치는 소리는 위화도를 뒤흔들었다.
이 장군은 속으로 만족하였다.
"이제야 내 계교가 들어맞았구나!"
하고 기뻤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러한 빛도 보이지 않고 위의를 엄숙히 하여
"그게 무슨 소리들이냐. 우리는 임금님의 어명으로 요동정벌을 떠난 것이다. 임금의 명령 없이 마음대로 회군한다는 것은 반역행위이다. 너희들은 역적 놈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
이렇게 호령하였다.
"반역 행위라도 좋습니다.”
6월 염천에 아무 준비 없이 군사를 움직이어 우리들로 하여금 굶주리고 병들게 하였고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병력으로 명나라 같은 대국을 치러 가다니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는 싸움이요 우리는 개 돼지 같이 죽으러가는 것보다 오히려 반역도가 되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하오."
"옳소이다. 나라를 좀 먹이고 우리를 죽을 곳에 집어넣으려는 최영 장군을 몰아내야겠소.“
"더구나 이 장마 가 오려 계속되면 만주 땅은 말이나 군사가 움직일 수 없이 진흙구렁이가 된다하오. 이렇게 피곤한 군사들이 어찌 험한 길을 행군할 수 있겠소? 한시 바삐 회군합시다!"
이렇게들 떠들었다.
이 말을 듣는 이장군은 잠시 동안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얼마 후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었다. 그리고 눈을 떠 군사들을 돌아보고 가장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여러 분의 고충을 잘 알았다. 여러 군사들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다. 지난 해 여려 번 전장에 죽고 살기를 같이한 내가 어찌 그대들의 고충을 모르랴. 그러나 우리는 임금님을 배반하여서는 안 된다. 이번 요동정벌을 떠나보내기는 비록 임금님께서 명령하셨다 할지라도 이것은 도시가 최영 장군의 계교인즉 우리는 최 장군을 반대할지언정 임금님에게 반역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최 장군으로 말하면 자기의 세력을 펴고 우리 고려국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 야심이 있어서 나를 몰아내고 나를 죽을 곳에 빠트리어 다시 살아오지 못하게 할 량으로 이번 일을 꾸민 것이 분명한즉 우리는 마땅히 회군하여 이러한 자를 처벌하여야겠다!"
이 말을 듣는 군사들은 소리를 같이하여
"옳소이다. 회군합시다. 최영을 몰아냅시다!"
하였다.
이성계장군의 계획은 똑바로 들어맞았다. 장군은 고려 임금님에게 충성한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고 임금님보다는 제일 무서운 이가 최영 장군이니 최 장군만을 없이하면 임금님쯤은 허수아비 같이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군사들의 마음을 충동한 것이다.
"자- 송도를 향하여 회군하라!"
하는 명령이 이 장군에게서 내리었다.
군사들은 기뻐서 날뛰었다.
“이성계 장군 만세!"
를 부르면서 압록강을 다시 건너 회군의 길에 올랐다.
갈 때는 그렇게도 기운이 없고 마음이 내키지 않더니 돌아오는 길은 그와 딴 판으로 용기백배하여 나는 듯이 행진하였다.
의주 선천 안주를 얼른 지나 평양성을 바라보고 의기양양하게 회군을 하는 것이었다.(계속)

(역사에 유명한 위화도의 회군은 이렇게 행하였습니다. 이제부터가 고려국의 최후 중요한 시기에 다다랐고 만고 충신 정 포은 선생의 활약할 때가 왔습니다. 다음 달 호를 기다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