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호 129
<역사 소설>

정 포은(제3회)

고한승



5. 요동정벌

최영 장군의 계교대로 왕은 요동정벌을 하기로 작정하고 겉으로는 평안도 지방을 순행한다고 꾸미고 문무백관과 병정 4만 명을 거느리고 서울 송도를 떠나 평양으로 향하였다.
때는 초여름도 훨씬 지난 6월이었다. 산과 들에는 나무 잎이 무성하고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넘쳐흘렀다. 아름다운 고려국의 산천은 사람의 마음까지 황홀케 하였다.
그러나 지금 왕의 마음은 몹시 설레어 좌우의 좋은 경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요동정벌이란 커다란 일과 이성계 장군을 몰아낸다는 어려운 문제가 왕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다.
오직 최영 장군 만은 자신만만한 듯 훈훈한 여름 바람에 흰 수염을 나부끼면서 말 위에높이 앉아 태연히 행진한다.
병정들의 얼굴에서는 구슬 같은 땀이 흘렀다. 오래간만에 왕이 순행하시는 길이라 다른 때와 달라서 매우 흥그러웠다. 그러나 왕의 순행에 시위하고 가는 데는 너무나 군사 수효가 많았지마는 무심한 군사들은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왕의 일행은 닷새 만에 평양성에 이르렀다. 대동강 기슭에 고이 앉은 평양성은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백성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성안으로 들어간 왕은 문무백관을 모으고 이렇게 명령을 내리었다.
"요동 땅은 옛날 고구려 때부터 우리나라 국토요 그것을 이번에 새로 일어난 명나라가 빼앗으려 하니 우리는 그대로 있을 수 없소. 그러므로 이제 곧 군사를 일으키어 요동 땅을 쳐서 잃었던 국토를 찾기로 하겠소. 이성계 장군으로 좌도통사(左道統使)를 삼고 조민수 장군으로 우도통사(右道統使)를 삼아 정병 4만을 주노니 즉시 발행하여 요동정벌의 길을 떠나도록 하오.”
이것은 실로 천만 의외의 명령이었다. 더구나 이 어렵고도 괴로운 책임을 맡은 이성계 장군에게는 청천의 벽력과 같은 것이었다.
이 성계는 왕의 앞으로 나섰다.
"요동정벌을 떠나라 하시나 그 마땅하지 않음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 우리 작고 힘이 약한 고려국으로서 명나라 같은 큰 나라를 치려함이 잘못이요, 둘째로 지금 때가 더운 여름이오니 여름에 군사를 움직임이 잘못이요, 셋째로 요동은 길이 멀고 기후와 풍토가 좋지 못하니 군사들이 병들기 쉽고, 넷째로 4만 대군을 멀리 떠나보내면 나라가 비겠으니 그 틈을 타서 남쪽으로 왜병이 침범할 염려가 있사온즉 이렇게 이롭지 못한 원정의 길은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옵나이다.“
마음속에는 비록 딴 생각을 품었으나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도 이롭지 못한 정벌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이성계 장군의 세력을 꺾어 볼 날이 없을 줄 아는 최 영 장군은 왕의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이 장군의 말은 한편으로 당연한 듯이 들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작고 힘이 약하나 나라를 위하는 4만의 군사가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면 족히 요동을 쳐서 이길 수 있을 것이요, 더구나 명나라는 지금 건국 초이라 아직 기초가 튼튼히 잡히지 못하였으니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요동을 찾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 장군은 나라를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한 몸의 평안함을 꾀하려 함이니 빨리 왕명에 순종하도록 하시오."
하고 소리를 높이어 말하였다.
위로 임금의 어명이요 다음으로 팔도 도통사 최 영장군의 명령이다. 더구나 이성계 장군의 부하 심복들은 전부 서울에 머물러 있어 이곳에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장군의 편이 되어 돕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하여 할 수 없이 이성계는 이롭지 않은 요동정벌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6. 이성계 장군

이야기는 잠깐 딴 길로 들어가지마는 이 기회에 이성계 장군의 내력을 알아두기로 하자.
이성계란 분은 원래 함경도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무사였다.
어려서부터 기운이 장사요 담력이 크고 지혜가 많고 거기다가 남달리 욕망이 높았다. 활쏘기를 즐겨하고 또 할 쏘는 재주가 대단 놀라웠다. 달아나는 짐승이나 날으는 새나 사나운 맹수라도 이성계의 화살 한대만 날으는 날이면 백에 백, 천에 천 반드시 꺼꾸러지고 말았다.
이렇게 활쏘기를 잘 하므로 사람마다 그를 신궁이라고 불렀다.
일찍 그의 아버지가 죽어서 장사를 지내려 할 때 무학이란 유명한 중에게 청하여 아버지의 산소 자리를 잡는데 그 자손 중에 임금이 될 사람이 난다는 좋은 자리를 택하였다고 한다.
그런 뒤에 그는 함경도 시골 구석에서는 도저히 출세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서울로 뛰어 올라 갔다. 그리하여 그는 용감함과 지혜를 전부 이용하여 한걸음 한걸음 큰 욕망을 달하려는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
그 큰 욕망의 길이란 높은 벼슬도 아니요 백만장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도 몇십 갑절 더한 임금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이다.
이러한 큰 포부를 이루려면 먼저 자기의 힘을 기르고 만백성의 신망을 얻어야 하고 또는 자기를 도와서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동지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재주를 전부 기울이어 고려 나라를 위하여 일을 했다.
여러 번 전쟁에 목숨을 내놓고 싸워서 이겨서 벼슬이 나날이 오르고 만백성들이 그를 우러러 찬양하였다.
그리고 그는 배극렴, 조민수, 남언, 정도전, 이두란 같은 동지를 얻었다. 그 중에도 정도전의 글과 재주와 이두란의 무예와 용맹은 족히 천 사람 백 사람을 당할 만큼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이두란은 기운도 세거니와 이성계 장군 만큼 활 쏘는 재주가 용하였다.
어떤 때 이성계 장군과 이두란 두 사람이 황해도 지방에 사냥을 나간 일이 있었다.
그 때 마침 어떤 여자 하나가 오지항아리에 물을 길어가지고 머리 위에 이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성계장군이 두란을 보고
"여보게 두란이! 내가 활을 쏘아 저기 지나가는 여인의 물동이를 맞히어 구녁을 뚫어 놓을 터이니 자네가 다시 활을 쏘아 살대로 그 구녁을 막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두란은 서슴지 않고
"그리하오리다."
하였다.
이 장군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활을 다리었다.
날으는 화살은 똑바로 물동이를 꿰뚫었다. 동이가 깨어지지도 아니하고 구멍 하나만 빵! 뚫리어 물이 졸졸 새었다.
이 때 이두란이 활을 그었다. 그의 화살이 틀림없이 뚫어진 구멍에 가서 꽂히어 막아버렸다.
"다음에는 내가 쏘리다."
이번에는 이두란이 동이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이성계의 화살은 역시 틀림없이 그 구멍을 막아 버렸다.
두 사람은 유쾌히 웃고 서로 서로 일생을 돕기를 굳게 약속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활을 잘 쏘고 또 마음이 서로 통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앞에는 수없는 부하가 모여들어서 이성계 장군의 세력은 고려국 조정에서 크나큰 존재였다.
나라는 차츰차츰 기울어 갈 때 이 같은 큰 인물이 나섰으니 그의 욕망을 이룰 날이 멀지 아니한 것은 분명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천만 뜻밖에 요동정벌이란 어명이 내리어 몇 십 년 두고 쌓아 놓은 공을 헐어트리려고 하니 이성계 장군의 마음이 어찌 편할 리가 있으랴.(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