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호 128
<역사 소설>

정포은(제2회)

고한승



4. 최영 장군

우왕 14년 찌는 듯이 더운 6월 염천이다.
고려 문하시중이요 팔도 도통사 - 문하시중이란 지금의 국무총리와 같은 벼슬로서 문관에 제일 으뜸가는 벼슬이요 팔도 도통사란 이 나라 육군을 통솔하는 무관에 제일 으뜸가는 벼슬이다 - 를 겸한 최영 장군이 왕에게 아뢰었다.
"지금 밖으로는 새로 일어난 명나라가 있어 아직도 우리나라를 여러 가지로 압박하고 있고 안으로는 이 나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반역도들이 갖은 모략을 다 쓰고 있습니다. 이 틈에서 무고한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해매고 있으니 하루바삐 외국과의 관계를 밝게 하고 안에서 반역 하는 무리들을 쫓아내어야 하겠소이다."
이 말을 듣는 우왕은 최 장군에게 다시 물었다.
"고려의 왕위를 탐내고 민심을 소란하게 하는 자가 누구이오?"
"이성계 장군인가 하오."
최영은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70년 동안 그 몸이 늙고 머리에 흰 털이 날릴 때까지 나라를 위하여 전심전력한 최 장군은 그 마음과 몸이 도시가 충의뿐이었다.
이제 새로 일어나서 그 용맹과 지혜와 실력을 길러 장차 고려 나라를 빼앗고 고려 임금을 내어 쫓은 후 자기가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이성계의 힘은 컸다. 조정에 있는 여러 관원들도 겉으로는 고려 왕에게 충성된 듯이 보이나 속으로는 실력이 있고 미구에 큰 뜻을 펼 이성계 장군에게 기울어지고 있을 때라 이러한 말을 왕 앞에서 대담히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건마는 충의가 뛰어난 최영 장군은 대담히 왕께 진정한 사실을 아뢴 것이다.
왕은 놀랐다.
"설마 이성계가?"
부왕 공민왕 때부터 함경도 구석에서 처음 올라온 일개 시골 무사를 지극히 애호하여 이제 일국의 상장군이란 높은 지위에까지 올려 준 이성계가 나라를 배반하고 임금의 자리를 엿보다니 그것이 참말인가? 하고 젊은 왕은 의심하였다. 물론 그 동안 이성계의 공로도 크기는 컸다. 선왕 공민왕 때에 홍두적이란 도적의 떼가 나라를 쳐들어 와서 서울인 송도를 쑥밭을 만들고 왕은 강화로 피난까지 갔을 때 친병 2천명을 거느리고 갖은 위험을 무릅쓰며 싸워서 기어이 홍두적을 물리친 이도 이성계 장군이다. 왜병이 전라도에 침입하여 백성의 재물을 노략질하고 도성을 빼앗았을 때에도 이성계 장군이 출전하여 용감히 싸워서 운봉이란 곳에서 왜병을 깨뜨리어 물리친 공도 컸다. 그 밖에도 혹은 북쪽에서 들어온 적군을 물리치고 혹은 동으로 오는 도적을 막고 하여 고려의 위급한 경우를 구한일이 한두 번이 아니요 또 그럴 때마다 반드시 찬란한 승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고 싸움에 이긴 것이 이성계 장군의 힘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는 그를 어디까지 믿고 격려하려 준 임금의 힘이 있었고 그의 뒤를 어디까지 받들어준 원로 장군 최영의 후원이 있었고 더구나 항상 그와 같이 전지에 나아가 그를 도와주고 그의 미치지 못한 점을 보충하여 준 정 포은 선생의 보조가 있지 않았으면 그와 같은 위대한 전공은 거두지 못 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은혜와 선배와 친구의 마음을 져버리고 나라를 배반하려 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니 왕의 마음은 더욱 아프고 설레었다.
"그럼 어찌하면 이 어려운 고비를 피할 수 있겠소?"
얼마 만에 우왕은 이렇게 물었다.
"이성계 장군으로 하여금 요동정벌을 떠나보내십시오.
최영 장군은 말하였다. 요동이란 만주에 있는 땅으로 예전 고구려(高句麗)의 영토이었다. 그 후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요동만은 고려의 국토로 되어 그 때의 원나라에서도 이것을 인정하여 주었다.
그러나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서자 요동은 명나라 땅이라 하여 빼앗아 버렸다. 이것이 고려 나라의 큰 두통거리로 되어왔다.
그러므로 이번에 이성계 장군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 땅을 쳐서 잃어버린 국토를 찾자는 것이다.
"요동 정벌? 그것이 성공할 듯 싶소?"
왕은 근심하는 얼굴로 물었다.
"물론 꼭 성공하리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조고만 고려국의 힘으로 크나큰 명나라를 대적하여 싸우는 셈이니까 힘은 크게 들고 공은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영 장군은 늠름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필요라니 꼭 그렇게 할 필요를 말하여 보오."
"아뢰오리다. 지금 우리나라 조정에는 이성계 장군의 편이 되어 나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는 무리가 많습니다. 그들을 모조리 잡아 없이하여야 나라가 편안하게 될 것이 온데 그렇게 하려면 먼저 이성계 장군을 멀리 떠나보내고 그가 없는 틈을 타서 일을 진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만약 이번 요동 정벌에 이 장군이 천행으로 싸움에 이기면 우리는 잃었던 국토를 도로 찾게 되는 것이오며 만약 싸움에 지고 돌아오면 그 책임을 흠뻑 이 장군에게 뒤집어씌워서 이 장군을 없이할 수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여러 방면으로 보아 묘한 계책일까 합니다.
이 같은 최영의 말을 듣는 우왕은 연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나 이 성계가 이 말대로 행하겠소?"
하고 물었다.
"임금의 명령이라고 어디까지 강경히 주장하면 들을 것이요. 더구나 이번 일은 극히 비밀히 해야겠사온즉 전하께서는 평안도 방면으로 순행하신다고 하시고 이성계 장군과 그 외에 군대를 데리시고 도성을 떠나셔서 평양에 가시어서 갑자기 명령을 내리시면 그를 도와 반대할 사람도 없을 것이오니 그렇게 하시도록 하소서"
이렇게 계교를 의존하였다.
나라를 사랑하는 늙은 충신 최영의 말대로 젊은 임금 우왕은 실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의외의 대 사건을 일으킬 도화선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