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호 127
<역사 소설>

정포은(제1회)

고한승



1. 공민왕 때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 단기 3,251 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고구려 신라 백제를 통일하여 고려란 나라를 세우고 송도 - 지금의 개성 - 에 도읍을 정하여 475 년 동안 왕업을 누리고 34 대의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었다.
이 이야기는 고려의 제 31 대 임금이던 공민왕 때부터 시작된다.
공민왕은 단기 3634 년에 임금의 위에 오른 분으로 천성이 어질고 영특하였고 특히 예술에 대한 이해와 조예가 풍부하였으며 그중에도 미술을 대단히 좋아하고 또 그림 그리는 재주도 훌륭하였다.
지금까지도 공민왕의 그린 그림이 전해 내려 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복하게 하는 것이니 한 나라 임금으로서 이와 같은 *대한 예술가를 겸한 분은 아마 고금을 통하여 공민왕 한분일 것이다.
왕은 젊어서부터 중국 원 나라에 유학하여 그 나라 문물과 제도를 배우고 또 원 나라 황제의 귀여움을 받아 그의 친척 되는 노국공주(魯國公主)와 결혼을 하였다. 그리하여 고려로 돌아와서 왕이 된 후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었고 더구나 아름다운 왕비 노국공주도 왕을 도와 좋은 정치를 하게 하여 한동안 기울어지려고 하는 고려 나라를 다시 튼튼하게 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왕이 등극한지 14년 되는 해에 왕비 노국공주가 우연히 병이 들어 세상을 따나자 왕은 몹시 슬퍼하여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주야로 애통하였다. 3년 동안 고기반찬을 받지 아니하고 왕이 손수 노국공주의 얼굴을 그리어 벽에 걸어 놓고 울었다. 나라의 돈을 아끼지 아니하고 공주를 위하여 그 명복을 빌고자 큰 절을 지었다.
나라의 정사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신돈이란 중을 불러 들여 높은 벼슬을 주어 나라 일을 맡기었다. 신돈은 좋은 정치도 많이 베풀었지마는 그 대신 나쁜 일도 많이 하였다. 나라는 극도로 문란해지고 백성은 몹시 고단하였다. 때마침 홍두적(紅頭賊)이란 도적의 떼가 일어나서 서울을 쳐들어오고 대궐과 민가를 불살라버리어서 고려국은 차차로 쇠약해지고 국가가 망해 버리려는 증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고려 말년 어지러운 세상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 정포은 선생이 출생한 것이다.

2. 정포은의 출생

정포은 선생은 단기 3,670 년 12월에 경상도 경주부 영일현(慶尙道慶州府迎日縣)에 출생하였으니 그 어머님이 난초를 안은 꿈을 꾸고 선생을 낳았다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고 지었다가 나중에 몽주(夢周)로 고치었다. 포은이란 그의 호(號)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나서부터 미목이 수려하고 천성이 총명하며 어깨로부터 등에 걸치어 검은 사마귀가 일곱 개가 있어 마치 북두칠성이 널리어 있는 듯 하여 사람마다 하늘이 낸 아이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글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며 특히 부모에게 효성 있고 친구들에게 믿음을 받아 장래에 큰 인물이 될 기초가 보이었다.
공민왕 9년 선생이 24 세 때 여러 동지들과 같이 과거를 보았는데 포은 선생의 성적이 제일 뛰어나서 제 1등으로 뽑히어서 비로소 나라 일을 보는 첫 걸음을 내어 디디었다.
정치에 나서서는 나라 일을 내 일과 같이 보살피고 백성을 사랑하기를 내 몸보다 더 중하게 여기고 더구나 나라를 위하여서는 내 목숨과 바꾸어도 싫다고 아니하는 지극한 충성을 가지었으므로 선생의 벼슬은 나날이 오르고 선생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소리는 천지에 가득하였다.
그 때는 전에도 잠깐 말한 것과 같이 공민왕의 정치가 대단히 어지러워지고 또 홍두적의 난리를 치러 나라가 몹시 혼란한 뒤라 이 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무엇보다 다음 날의 나라를 맡아 볼 젊은이들을 교육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학교를 세우고 청년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흩어진 학교를 다시 고치고 흩어진 학생들을 불러 들여 그때의 성균관을 맡으신 유명한 학자 이색이란 분과 손을 서로 잡고 선생이 친히 학생을 가르치었다.
그 뿐 아니라 중국에서 좋은 책을 많이 갖다가 선생이 그 책을 다시 내어 여러 젊은이들을 가르치어 이 나라에 새로운 싹을 성심껏 키웠으니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수많은 선비들은 장차 고려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되기에 족한 것이었다.

3. 중국으로 사신 가다

고려 31 대 임금 공민왕도 세상을 떠나고 우왕이 등극할 지음 중국에는 원나라가 쇠약하여 가고 명나라가 새로 일어난 때이다.
원래 중국은 고려 나라보다 크고 강한 나라이므로 예전부터 원나라를 형의 나라라고 존경하고 또 그의 명령에 복종하여 왔던 것이다. 그 원나라가 쇠약하고 새로 명나라가 섰으므로 고려는 어느 나라를 형이라고 받들어야 할지 몰랐다. 혹은 아직 원나라가 망하지 아니하였으니 원나라를 섬기자거니 혹은 명나라가 이제 강한 나라가 될 것이니 명나라를 섬기는 것이 앞으로 좋다거니 하고 갈팡질팡하였다.
그러는 중에 원나라가 기어이 멸망하여 버리고 명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게 되자 고려국이 지금까지 명나라를 완전히 섬기지 아니하였다 하여 몹시 괴롭게 굴었다.
병정을 내어 보내어 고려국을 치려고도 하고 또는 매년 많은 물건을 바치라고도 하였다.
그 바치라는 물건을 보면 대단히 비싸고 귀한 물건이니 금 500근, 은 5만냥, 좋은 말 50필, 그 밖에 베와 모시 같은 의복감 5만필, 이러한 것이었다. 만약 이것을 매년 바치자면 나라가 가난하여질 것이요 바치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하여 버릴 것이니 참으로 고려국은 큰 두통거리였다.
이때 정 포은 선생이 자진하여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도 힘드는 일일 뿐 아니라 잘못하면 명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목숨조차 위태로울 것이 언만은 나라를 위하여는 죽음을 가리지 않는 포은 선생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사신 길을 떠난 것이었다.
여러 날 만에 중국에 도착하여 명나라 황제를 뵈옵고 이렇게 말하였다.
고려국은 작고 가난한 나라요 또는 명나라의 동생뻘 되는 나라입니다. 해마다 힘에 겨운 귀한 물건을 바치면 나라의 재산은 다 없어지고 백성은 헐벗고 굶주릴 것입니다. 그렇다 하면 동생은 망하고 말 것이니 동생이 멸망하고 형이 잘될 수 없는 것이요. 입술이 망하면 이가 성하지 못한 것과 같이 고려가 멸망하면 다음은 명나라도 위태하게 될 것이니 형님은 아우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고로 이러한 무리한 요구는 그만 두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의미의 말을 도도 수천어로 사뢰었다. 학식이 높고 도덕이 출중하고 더구나 몸과 마음이 도시 충의로 뭉치인 포은 선생의 말은 능히 명나라 황제를 감복시키었다.
그리하여 무리한 제도는 고치어지고 오직 몇 가지 약소한 물건으로 정의만 표하기로 허락이 내리었고 정 포은 선생의 충성에 감탕한 명나라 황제는 특별히 많은 상을 주어서 무사히 고국으로 돌려보내었다.
이와 같은 외교의 대성공을 한 포은 선생에게 고려국에서는 벼슬을 더욱 높인 것은 물론이요.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제한 은인이라 하여 온 나라 백성들이 우러러 찬양하고 공경하였다.(계속)

★(고려말년의 충신 정포은 선생의 이야기는 앞으로 피가 끓고 두 주먹이 쥐여질 사실이 전개될 터이니 길이 애독하시기 바랍니다.)